<김삼기 단상>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와 영국연방의 운명

70년 넘게 영연방의 상징으로 강력한 구심력을 행사해왔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8일 서거하자, 호주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지혜롭고 용기를 주는 군주를 잃었다”며 조의를 표했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최장수 치세 군주였던 여왕의 사망을 알게 돼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고, 뉴질랜드 저신다 아던 총리도 “우리는 운이 좋게도 우리가 여왕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놀라운 여성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뿐만 아니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15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이자, 56개국으로 구성된 영연방의 수장이기 때문에, 위 세 나라 총리가 영국의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를 자국의 수장(군주, 여왕)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연합체고, 영연방 왕국은 영연방 중에서도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을 맡고 있는 구성체로 영국을 포함해 15개 국가가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구성된 영연방이 초장기에는 영국 본국이 다수의 자치령, 식민지 등을 거느리는 형태여서 영연방 내 회원국들이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국왕으로 모셨지만, 대영제국이 쇠퇴하자 영국 국왕을 자국의 국왕으로 여기지 않는 영연방 국가들이 많아지면서 영연방 내에서 영국의 국왕을 자국의 국왕으로 모시는 국가들만 따로 구분해 이들을 영연방 왕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국이 이렇게 100여년 동안 영연방과 영연방 왕국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이 과거 영국의 식민지배를 통해 피해를 입은 국가에 대한 배려와 원조 등 영국 국왕의 관심과 의지가 엿보인 정치적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서거한 여왕도 국왕에 오르기 전, 오롯이 평생 동안 영연방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선언했고, 1952년 26세 나이로 즉위한 후 지속적으로 각국을 방문하며 결속력을 높이는 등 영연방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수장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영연방 회원국끼리는 지금도 나름의 유대관계를 갖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영연방 회원국 사이에 여행이나 유학, 취업에서 비자가 면제되고, 영연방 국가는 영국에 다양한 물건들을 관세 없이 무제한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 우대관계가 더 돈독했다.

또 영연방 소속 국가들이 4년에 한 번씩 모여 커먼웰스 게임이라는 국가 대항전 성격의 종합 스포츠 대회를 열고, 이민이나 인적 자원 교류에서 서로 우대해주기도 하며, 국제적 사안이나 지역 현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지원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1973년 영국의 EC 가입과 이에 따른 영연방이 유럽 관세동맹과 경제 공동체에 가입하면서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가 독립하고, 영연방 국가와 국민들에 대한 국가 간 이주, 경제 교류 혜택이 철폐되고, 이어 1993년 EU가 등장하면서부터 영연방의 기능과 혜택이 점점 축소돼왔다.

사실 영연방은 영국을 도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와 싸워 이김으로써 세계평화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차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었고, 지금은 과거 화려했던 모습을 아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해졌다.

이런 와중에 영연방의 100여년 역사 중 무려 70년 이상을 통치해왔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을 접한 세계 언론은 일제히 영연방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면서, 힘이 약해진 영연방에서 탈퇴하는 국가들과 영연방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에 대한 기사를 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해 영국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독립 55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더는 여왕을 섬기지 않게 됐고, 카리브해 다른 국가에서도 영국 왕을 수장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도 여왕 서거 후 마야 재서노프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여왕은 떠났고, 제국주의 군주제도 끝나야 한다”며 “후계자인 찰스 3세는 여왕의 역할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새로운 왕은 왕실 권위를 축소해 영국 왕실을 북유럽 왕실처럼 바꾸는 역사적인 결정을 할 기회를 맞았다”고 밝혔다.

자메이카도 최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6%가 영국 국왕을 원수로 삼는 군주제의 폐지에 찬성했고, 자메이카 총리는 공화정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벨리즈에서는 영국 왕세자가 후원하는 재단과 토지 분쟁을 겪는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제 영연방은 영연방의 역사 자체라 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새로운 국면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약 영국이 앞으로 영연방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나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아마 영국 중심의 영연방은 해체되거나 다른 국가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근 영연방 내에서 목소리가 커진 인도가 실제로 미국의 지원 아래 인도양 지역 영연방 국가들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영연방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영연방 주요 국가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영연방 가입도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미국도 최근 영연방 중에서 국력이 강하고 같은 앵글로색슨계 백인 위주로 구성된 메이저급 국가인 영국, 호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5개 국가를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삼고, 영연방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여전히 세계 5대 경제 대국이고, 글로벌 지도자로서 프론티어 정신에 입각해 지구촌 아젠더 제시에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다. 이런 영국이 영연방과 영연방왕국의 주도권을 쉽게 내줄 리가 없다.

영국의 새 국왕인 찰스 3세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평생 헌신하겠다고 지난 10일 약속했다. 찰스 3세 국왕의 헌신 대상이 영국뿐만 아니라 영연방까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왠지 찰스 3세 국왕의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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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