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살인강도 사건’ 범행부터 검거까지 풀스토리

‘완전범죄 없다’ 미제사건 푸는 DNA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아주 작은 혈액이라도 묻어 있기만 한다면 10년, 20년, 100년이 지나도 DNA 검출은 가능하다는 거야. 현대 의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이지.” - 드라마 <시그널> 중 차수현(김혜수)의 대사.

2016년 tvN에서 방영된 드라마 <시그널>은 장르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시그널>은 1~2화에서 아동 유괴 사건을 다뤘는데 형사 차수현이 용의자 오연수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DNA를 언급한다. 유괴 사건의 공소시효가 10분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그땐 못 잡아도…

<시그널> 차수현의 대사가 현실화됐다. 20여년 동안 장기 미제로 해결이 요원했던 사건이 DNA 식별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된 것. 지난 시간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수사의 쾌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로써 유가족은 물론 경찰에게도 ‘마음의 짐’이었던 장기 미제사건 해결의 길이 열렸다.

지난달 28일 대전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대전 국민은행 권총 살인강도 사건’ 용의자로 50대 남성 2명을 검거해 구속 수감했다고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21년 만이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손수건에서 확보한 DNA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앞서 법원은 “도망의 염려 및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다”며 용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01년 12월21일 오전 10시경 2인조 복면강도가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지역 지하 1층 주차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용전동 지점 김모 과장 등 은행 직원 3명에게 총을 발사한 뒤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 김 과장은 왼쪽 가슴 등 4곳에 총을 맞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현장에는 지문 등의 흔적이 전혀 남지 않았다. 범인들이 도주할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도 도난 차량으로 드러나면서 경찰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충남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해 목격자와 전과자 등 5321명, 차량 9726대, 통신 자료 18만2378건, 탐문 2만9269개소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을 특정할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다. 

21년 만에 손수건으로…
용의자 2명 검거해 구속

이듬해 8월 20대 남성 등 용의자 3명을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당시 용의자들은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후 이 사건은 20년 넘게 미궁에 빠졌다. 그러다 2011년 대전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설치되면서 둔산경찰서에 있던 사건이 인수됐다. 

수사의 실마리는 2017년 신원미상의 DNA가 발견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2017년 10월 범행에 사용된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손수건과 마스크 등 유류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해당 유전자가 2015년 충북 소재 불법 게임장 현장 유류물에서 발견된 DNA와 동일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경찰은 해당 게임장에 출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종업원과 손님 등 1만5000여명에 대한 DNA 대조, 몽타주 비교, 차량 절도 전력 등 수사를 벌였다. 지난 3월 용의자 1명을 특정한 데 이어 지난달 25일 강원도 정선군에서 그를 검거했다. 검거된 용의자의 진술을 토대로 공범 역시 곧바로 체포됐다. 


지난달 30일 경찰은 두 용의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전 신상정보공개위원회는 범행의 잔인성,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점, 충분한 증거, 공공의 이익 등을 고려해 용의자인 이승만과 이정학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신상공개위원회는 경찰청 소속 경찰관을 비롯해 내부 전문가 3명과 외부 전문가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돼있다. 

이날 브리핑을 담당한 백기동 대전경찰청 형사과장은 “두 사람 모두 일정한 직업 없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은행 주변에서 날치기 범행을 벌이다 점점 간이 커져 현금수송차량까지 털게 됐다”며 “과학수사 기법의 발전뿐만 아니라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 설치와 범인 검거를 포기하지 않은 형사의 집념 등 3가지가 조화를 이뤄 피의자 검거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도 해결
‘태완이법’으로 길 열렸다

이어 “많이 늦었지만 피의자를 검거해 유가족과 고인을 위로할 수 있게 됐다”며 “검찰과도 지속적으로 협력해 권총의 행방과 여죄 등을 파악하고 피의자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금융거래 내역 확인과 디지털 포렌식, 거짓말 탐지기 검사 등 혐의를 보다 명백히 입증하기 위한 집중 수사를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DNA 비교·대조 수사가 미제사건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검찰청 ‘DNA 신원확인정보 데이터베이스 운영보고서’를 보면 교도소 수용자의 DNA와 일치해 재수사가 시작된 미제사건은 지난해 72건을 포함해 2010년 이후 모두 2457건에 이른다. 이 중 43.7%인 1073건의 범인이 확인돼 유죄가 확정됐다. 10건 중 4건 꼴이다. 

여기에 경찰청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2011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DNA 비교‧대조 수사로 미제사건 60건을 해결하고 88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올린 바 있다. DNA 비교·대조 수사의 가장 큰 쾌거로 꼽히는 사건이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의 검거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 일대를 중심으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은 ‘개구리 소년 실종·살인 사건’ ‘이형호 소년 유괴·살인 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으로 불릴 만큼 악명 높았다. 

하지만 2019년 8월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춘재의 DNA가 화성 3·4·5·7·9차 사건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같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춘재는 1994년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이미 수감생활 중이었다. 이후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재명명됐다. 

1998년 서울 노원 가정주부 성폭행‧살인사건도 범인이 버린 유류물에서 2016년 DNA가 확인돼 18년 만에 해결됐다. 당시 범인은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30대 가정주부를 성폭행한 뒤 목 졸라 숨지게 했다.

당시 경찰은 채취한 DNA와 사진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다가 2016년 11월 유사 범행 전과자를 상대로 혈액형을 대조하는 방식의 재수사를 진행한 끝에 용의자를 검거했다. 

지금은 잡는다


앞으로 DNA 수사 기법이 더욱 발달하면 장기미제사건 해결률은 크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2015년 이른바 ‘태완이법’이 개정되면서 2000년 이후 발생한 살인죄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사라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시그널> 차수현의 말대로 DNA가 존재하기만 하면 언제든 범인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