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한국인 최연소 PGA 우승 20세 김주형

허세 아닌 기세…우즈보다 빠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첫 홀부터 큰 실수를 범하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20세의 어린 골프선수에게 쿼드러플 보기의 ‘충격’은 오히려 약이 된 듯하다. 김주형은 쿼드러플 보기 이후 오히려 집중력을 되찾으며 선전했다. 마지막 날에는 완벽한 경기력을 뽐내며 역전 우승을 일궜다. 한국 최연소 PGA 우승 기록을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김주형은 지난 8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의 세지필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윈덤 챔피언십 최종 합계 20언더파 260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4라운드에서 9언더파를 몰아친 결과였다.

흔들린 시작
완벽 마무리

연이은 ‘강행군’이었다. 이번 시즌 김주형은 차기 시즌 PGA투어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잰걸음을 이어왔다. 김주형은 지난달 스코티시 오픈에서 3위를 차지하며 PGA투어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얻었다. 세계랭킹 상위권 선수 대부분이 참가해 ‘페덱스컵’ 포인트 배점이 높은 대회였다.

임시 특별회원은 PGA투어 무제한 출전이 가능하다.

김주형은 디 오픈 대회를 치른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3M 오픈, 로켓 모기지 오픈에 출전했다. 윈덤 대회까지 5주 연속으로 대회에 참가한 셈이다. 긴 이동거리에 더운 날씨까지. 아무리 젊은 피라고 하더라도 체력적 부담이 우려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김주형은 지난주 로켓 모기지 오픈에서 단독 7위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차기 시즌 PGA투어 출전권을 사실상 확보했음에도, 그는 정규 시즌 마지막 대회인 윈덤 대회 출전을 강행했다. 혹시 모를 변수를 완벽히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불안했다. 1라운드 1번 홀에서 샷 미스가 나왔다. 김주형은 고전 끝에 쿼드러플 보기를 범했다. 한 홀에서 무려 4타를 잃은 것인데, 프로 수준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체력 부담 속에 출전했던 잃을 것 없는 대회로 시작부터 최악의 실수까지 범했다면 포기할 법도 했다. 하지만 김주형은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후 1번 홀 이후로 단 한 개의 보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버디만 7개를 잡아내며 1라운드를 3언더파로 마쳤다.

김주형의 약진은 2라운드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2라운드에서 6언더파를 몰아쳤다. 단숨에 선두권으로 올라선 김주형은 악천후 속 펼쳐진 3라운드에서 더 줄이며 공동 3위를 수성했다.

컷 통과로 PGA투어 출전권은 이미 확보한 상황. ‘톱(TOP)10’만 기록해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김주형은 더 높은 곳을 바라봤다.

‘쿼드러플 보기’ 딛고 역전 우승 성공
임시 회원에서 정식 회원으로 발돋움

김주형은 최종 4라운드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과시했다. 앞선 라운드에선 다소 흔들렸던 샷은 점차 정교해졌고 높은 퍼트 정확도도 눈길을 끌었다.


김주형은 2번 홀부터 6번 홀까지 매 홀 버디 이상을 기록했다. 5번 홀에서 터진 이글까지 묶어 5개 홀에서 단숨에 6타를 줄였다. 당시 2타 앞서 있던 임성재를 제친 것도 모자라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후반에도 집중력이 빛났다. 김주형은 무리하지 않고 파를 잡는 전략을 취했다. 이미 벌려둔 격차를 활용하는 경기 운영이었다. 하지만 버디 기회가 왔을 땐 놓치지 않았다. 김주형은 3~4타 차이를 줄곧 유지해냈고, 결국 ‘챔피언 조’ 경기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 우승으로 김주형은 여러 기록을 새로 썼다. 그는 20세 1개월17일로 역대 한국인 PGA 우승자 중 가장 어리다. 김주형의 ‘우상’인 타이거 우즈보다도 빨랐다. 우즈는 20세 9개월6일의 나이에야 첫 우승을 맛봤다.

PGA투어 전체에선 조던 스피스(미국, 19세11개월14일)에 이어 2번째로 어린 우승자가 됐다. 김주형은 PGA투어 최초의 2000년 이후 출생 우승 선수이기도 하다.

또 PGA투어 역대 처음으로 1라운드 첫 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하고도 역전 우승에 성공한 주인공이 됐다. 앞서 김주형은 한국남자프로골프투어(KPGA) 코리안투어 최연소 우승(18세21일), KPGA 입회 후 최단 기간 우승(3개월17일) 등 국내 각종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김주형은 윈덤 대회를 통해 PGA투어 정식 회원이 됐다. 향후 2시즌간 PGA투어 출전권을 보장받는다. 그의 영어 이름은 톰 김이다. 애니메이션 <토마스 더 트레인(토마스와 친구들)>의 주인공인 장난감 기차 ‘토마스’의 이름을 땄다. 김주형이 각별히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알려졌다.

미국 언론은 김주형을 버디 트레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높은 적응력
두둑한 배짱

김주형은 17세 때 프로 골프선수가 됐다. 선수 생활 초반에는 주로 아시안 투어에서 활동하다 2020년 코로나 유행을 계기로 국내로 돌아왔다. 지난해 KPGA와 아시안투어에서 동시에 상금왕에 올랐다.

올 시즌에는 처음부터 PGA투어 진출을 목표로 잡았다. 해외 투어에 나선 그는 아시안 투어에서 2승을 거두고, PGA 챔피언십과 US오픈 등 메이저대회에 참가했다. 결국 그는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임시 회원 자격이 대회 출전에 큰 도움을 준 건 아니었다. 김주형은 시즌 말에 다다라 임시 특별회원이 됐다. 플레이오프를 제외하면 남은 대회는 3개뿐. 하지만 결과적으로 김주형이 특별회원이 될 점수를 얻은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는 얻어낸 기회를 십분 활용했다.

김주형은 이번 시즌 PGA투어 9개 대회에 참가했다. 그중 메이저대회를 제외한 순수 PGA 투어 대회는 6개뿐이었다.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TPC 사우스 윈드에서 열리는 페덱스 세인트주드 챔피언십에 나섰다. PGA투어 플레이오프 첫 대회다.


기세는 한껏 오른 상태다. 임시 특별회원 자격으로 출전한 김주형이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 출전할 방법은 ‘우승’이 유일했다. 김주형은 누구도 쉽게 낙관할 수 없었던 ‘경우의 수’를 뚫고 티켓을 확보했다. 김주형의 자신감이 ‘허세’가 아니라 ‘기세’인 이유다.

플레이오프 대회는 PGA투어가 메이저대회 이외의 대회에도 흥미를 높이기 위해 만든 제도다. 정규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페덱스컵 포인트 상위 125위 안쪽에 진입한 선수만이 출전 자격을 부여받는다. 플레이오프 대회는 내로라하는 PGA투어 선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만이 나설 수 있는 무대라는 의미다.

갓 스물이 된 김주형에게는 큰 경험이 될 대회다.

참가 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출전 명단이 화려하다. 이번 시즌 4승을 쓸어담고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한 스코티 셰플러(미국)부터, 캐머런 스미스(호주), PGA투어 2승을 챙긴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톱랭커가 모두 나선다.

다음 도전
어디까지?

이들은 대부분 지난주 열린 윈덤 대회를 건너뛰었다. 이미 플레이오프 출전권을 확보한 상황에서 무리하기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전략이었다.


PGA투어 2시즌 출전권을 확보한 김주형은 앞으로 톱랭커들과 수없이 경쟁해야 한다. 더 큰 목표를 이뤄내려면 경쟁을 뚫고 우승을 노려야 한다. 김주형에게 이번 플레이오프는 향후 2시즌의 메이저대회를 준비하는 ‘모의고사’인 셈이다.

김주형의 강점은 높은 적응력과 두둑한 배짱이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이미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골프를 배워왔다. 지난달 스코티시 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선 잰더 슈펠레‧패트릭 캔틀레이(미국), 토미 플릿우드(잉글랜드) 등과 우승 경쟁을 벌였다.

같은 대회에 출전했던 스미스와 조던 스피스(미국)는 공동 10위로 오히려 김주형보다 순위가 낮았다.

압박감도 크게 줄었다. 김주형은 임시 특별회원 자격을 얻은 이후로도 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5주 연속 대회에 출전했다. 체력적 부담에 압박감까지 더해져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하지만 김주형은 압박감을 내려놓고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그는 사실상 PGA투어 출전권 획득을 확정하고 참가한 윈덤 대회에서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정상에 올랐다.

김주형은 이번 대회까지 총 6주 연속 경기에 나서는 중이다. 체력 부담은 어느덧 ‘상수’가 됐다. 하지만 윈덤 대회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극복한 것처럼, 자신감과 집중력이 최고조에 오른 김주형에게 체력 문제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던 스피스 이어 2번째 어린 우승자
체력적 한계 딛고 플레이오프도 기대

이번 대회에는 기존 정규 시즌 대회보다 더 많은 페덱스컵 포인트가 걸려 있다. 통상 대회 우승자는 500점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 대회 우승자는 그 4배인 2000점을 획득한다. 우승자 이외의 상위 랭커들도 더 많은 점수를 받게 된다.

이 대회 결과는 다음 주에 열리는 플레이오프 2차전 BMW 챔피언십 출전과 직결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125명 중 55명이 탈락하고, 상위 70명만 2차전에 진출한다. 같은 방식으로 BMW 챔피언십을 거쳐 최종 투어 챔피언십에 나서는 선수는 절반 이하인 30명이다.

김주형의 세계랭킹도 급등했다. 김주형은 대회 종료 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평균 3.8837점을 기록하며 21위에 안착했다. 한 주 만에 34위에서 순위가 13계단이나 올랐다.

플레이오프 선전도 점쳐졌다. PGA투어는 홈페이지에서 세인트주드 챔피언십 파워랭킹을 공개했다. 김주형은 1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욘람(스페인)보다도 한 계단 위다.

PGA투어는 김주형을 “쿼드러플 보기로 1라운드 1번 홀을 시작하고도 5타 차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골프에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20세 선수”라고 평했다. 

페덱스 랭킹 34위인 김주형은 1라운드를 35위 셉 스트라카, 36위 케빈 키스너와 같은 조로 출발했다. 평소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는 PGA투어 ‘코리안 브러더스’ 중에서도 네 살 차이인 임성재와 김주형은 ‘골프 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가깝다. 김주형에게 우즈가 우상이라면 임성재는 옆에서 본받고 따르는 친한 형이다. 

김주형은 우승 직후 임성재를 두고 “성재 형처럼 우승하고 싶었다”며 “평소 ‘형, 이거 이런 느낌 어때요?’ ‘형, 이런 공 칠 때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면 형은 참 자상하게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형에게 많이 감사하다. 제가 한 번 밥을 사야 한다”고도 전했다.

빛나는 오늘
기대되는 내일

당시 임성재는 동생 김주형에게 역전패를 당하고도 환하게 웃었다. 그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늘 이기고 지는 일이 반복된다”며 “PGA투어 특별 임시 회원 신분인 김주형이 우승해 정말 행복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정말 자랑스럽다”며 칭찬했다. 둘은 윈덤 대회에서 각각 우승, 준우승하면서 새로운 진기록을 일궈냈다. PGA투어에서 한국 국적 선수가 우승·준우승을 독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경기당 3억원’ 돈방석 앉은 김주형

김주형이 PGA투어 9경기에 출전해 33억원을 벌어들였다. 단순 계산하면 대회당 3억원 이상을 챙긴 셈이다.

김주형은 지난 8일 끝난 PGA투어 정규시즌 최종전인 윈덤 챔피언십에서 우승상금 131만4000달러(한화 약 17억원)를 받았다.

시즌 상금은 252만9338달러(약 33억원)까지 늘었다. 김주형은 상금 랭킹 44위에 올랐다.

김주형은 지난해 10월 CJ컵부터 본격적으로 PGA투어 경기에 나섰다.

그는 지난주 윈덤 챔피언십까지 9개 대회에서 컷을 8번 통과했으며 최종 10위 안쪽에는 3번이나 드는 등 호성적을 거뒀다.

김주형은 더 많은 상금이 걸린 페덱스컵 플레이오프에 출전 중이다.

현재 페덱스컵 랭킹은 34위.

2차전인 BMW챔피언십까지는 무난히 출전할 것으로 점쳐진다.

만약 30명만 출전할 수 있는 투어 챔피언십까지 뛸 수 있다면, 지금까지 벌어들인 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전망이다.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1~2차전에는 각각 1500만달러(약 196억원)씩 상금이 걸려 있다.

최종전인 투어챔피언십 상금은 추후 결정된다.

하지만 김주형은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김주형은 최근 PGA투어 관련 인터넷 라디오방송 <siriusXM>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얼마나 번 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계좌를 확인하지 않았다”며 “타이거 우즈도 그랬을 것이다. 플레이를 잘하면 모든 건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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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