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단상> 메멘토모리와 메멘토마사다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2.07.25 10:08:44
  • 호수 13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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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2020년 4·15 총선에서 문재인정부의 지지를 받아 대승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연일 의원들에게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의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며 메멘토모리 교훈을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163석을 얻어 거대 여당이 됐지만, 2022년 3·9 대통령선거와 6·1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하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속에서 이른바 ‘탄돌이’로 불렸던 의원들이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거 당선되면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이른바 4대 개혁 입법을 밀어붙이다가 그 과정에서 여·야 갈등이 폭발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열우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노무현정부는 개혁 동력을 상실했고, 결국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해체되면서 대선에서 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민주당 의원들은 2020년 4·15 총선 직후 당시 지도부가 언급한 메멘토모리 정신을 망각하고, 다수 의석으로 정권 연장을 위한 입법을 강행하다가 열우당의 전철을 밟으면서 올해 3·9 대선과 6·1 지선서 패하고 말았다.

메멘토모리(Memento-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이라는 미래 상황을 현재 상황으로 인식하라”는 실존주의 철학의 이론을 닮고 있다.


고대국가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모리!’를 외치게 했는데, 이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고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는 죽을 수 있으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메멘토모리는 패자가 아닌 승자에게 주어지는 교훈이기에, 2020년 4·15 총선에서 패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해당하는 교훈이 아니라 승리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해당하는 교훈이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올해 3·9 대선과 6·1 지선 승리는 총선 승리가 아니기 때문에, 메멘토모리가 국회의원이 아닌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게만 해당하는 교훈일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주요 선거는 정당에서 후보를 공천하고, 정당 차원에서 선거를 관리하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승패도 정당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메멘토모리는 여당이 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필요한 교훈이다.

그런데 올해 대선과 지선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끈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2년 전, 민주당 지도부처럼 메멘토모리 교훈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자가 아무도 없다.

무엇보다 2년도 남지 않은 의원 본인들의 선거인 2024년 4·10 총선을 앞두고 있는데도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들이 전유물을 나눠 갖기 위해 다투듯이 싸움만 하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윤석열정부를 도와주는 국정 파트너가 돼야 할 여당인데도, 오히려 당 대표는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외유 중이고, 내부적으로는 안장, 김장, 철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오면서 당권 싸움만 하고 있는 게 국민의힘의 현재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3·9 대선 때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하면서 느슨했던 민주당에 비해, 윤석열 대통령 임기 100일도 안 된 최근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2년 후 참패할 수도 있다”는 메멘토모리 교훈을 조금이라도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30%대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주는 메멘토모리 교훈이 된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운 대한민국 집권여당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힘 당사에 메멘토모리(Memento-mori) 문구라도 걸어놓고, 개선장군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모리를 외쳤던 로마의 교훈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 당사에는 메멘토마사다(Memento-masada) 문구를 걸어놓으면 어떨까? 대선과 지선 양대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8·28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장교 임관 시 유대인이 로마군과 최후의 항전을 펼치면서 스스로 자결했던 마사다 전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임관자들이 ‘메멘토마사다!’를 외치며 다짐하듯이, 민주당 의원들도 지금이라도 대선과 지선의 패배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해야 할 것이다.

메멘토마사다도 실존주의 철학의 이론처럼 마사다 전투 패배라는 처절한 과거 상황을 현재 실제 존재 상황으로 인식하라는 교훈이다.

2024년 4·10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올해 대선과 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메멘토모리 정신으로, 참패한 민주당 의원들은 메멘토마사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5년 후 임기를 마치는 윤 대통령과 4년 후 임기를 마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도 임기 내내 메멘토모리 정신으로 무장해야 다음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과 지선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끈 후 메멘토모리 정신으로 무장했어야 했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윤리위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최근에는 지지층 저변을 넓혀 가는 전략으로 장외전을 치르면서 메멘토마사다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우리 정치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메멘토모리는 “승자가 미래의 실패를 예상해 현재 겸손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교훈이고, 메멘토마사다는 “패자가 과거의 실패를 교훈삼아 현재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둘 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말한 실존주의 교훈이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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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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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