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국제병원으로 본 의료민영화 이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5.11 09:54:55
  • 호수 13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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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생명이 상품으로 전락”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병원은 지역사회 주민의 치료와 예방을 포함한 총괄적인 의료를 서비스하며 병의 예방과 연구도 함께 시행한다. 병원은 공익적 목적에 설립 기반을 두지만, 제주도 서귀포시의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기점으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녹지국제병원’이 설립되면 한국에 의료민영화가 시작될 거라고 지적한다.

녹지국제병원의 전신은 녹지 제주 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다. 이 회사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녹지그룹이 전액 투자했다. 2015년 12월 녹지그룹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승인받았다. 여기서 말하는 영리병원이란 개인이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병원을 말한다. 

영리병원
첫 시작

이렇게 따지면 진료나 입원 등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병원이 전부 영리병원이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개인병원을 제외한 국내 병원은 병원에서 취득한 이윤을 병원의 인건비, 시설투자 등 병원 내부 투자를 하는 데만 이용 가능하다. 

반면 영리병원은 병원의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할 수 있어 특정 사업을 하는 다수의 투자자가 모여 설립한 법인이 된다.

즉 ‘영리 추구’의 의미가 아닌 ‘영리법인이 설립한 병원’을 뜻한다. 영리병원은 병원이 번 돈을 병원의 내부 투자 외에 투자자들에게 배당할 수 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는 병원 개설의 자격을 제한한다. 이 법에는 병원 개설 자격을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준정부기관·지방의료원·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으로 제한해 영리병원 설립을 막고 있다.

한국이 영리병원 설립을 막은 이유는 병원의 이익금이 밖으로 빠져나갈 경우, 병원이 사익만을 추구해 환자의 치료가 뒷전이 될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해서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주 영리병원 응급실 담당 국장인 크레이그 브러머 의학박사가 밝힌 사실에 따르면 영리병원은 경제적 이득만을 위해 환자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조건 없는 입원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영리병원의 사례다. 열이 40도까지 올라간 생후 11개월 된 아기가 응급실로 왔다. 여러 조사에서 이상이 없었고, 체온이 정상인 37.1도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병원은 ‘열병’ 진단으로 입원 조처를 했다. 또 목 통증 때문에 응급실을 찾은 71세 노인은 가슴 통증을 호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전도 검사와 흉부방사선영상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으나 가슴 통증 규정에 따라 불필요하게 입원 조처됐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영리병원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국의 영리병원은 병원 방침을 거역한 의사를 가차 없이 해고했다.

한국 공공병원 5% 내외로 OECD 최하
일본은 영리병원 금지, 공공병원 30%


미국 연방수사국은 “이 병원은 외부 의사들과 사무실 임대계약을 해 정상가보다 낮은 임대료를 받거나 검사 대행 계약으로 검사비를 계약서보다 높게 지불했다. 이런 금전적 관계를 맺고 있어서 이들 의사들이 이 병원에 환자 진료 의뢰를 한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영리병원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이런 와중에 녹지국제병원은 어떻게 승인을 받은 것일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정부는 의료법 제23조 ‘의료기관 또는 외국인 전용 약국의 개설’에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을 폐기하고 ‘외국인이 개설하는 의료기관’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했다.

이 기관에서는 내국인이 진료 받을 수 없게 했고 건강보험 비용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외국인 진료만으로는 대규모 외국 의료기관 개설이 어려웠다. 곧 정부는 내국인 진료를 무제한 허용하는 취지로 법률을 개정했다. 

여기에 더 나아가 ‘구제주 국제 자유 도시 특별법 법률’ 제20조의4에는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특례를 규정해서, 제주도 내에 외국인 전용 영리병원을 설치할 법적인 근거가 최초로 도입됐다. 

이 같은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서귀포시 동홍동과 토평동 일원 38만1495㎡에 ‘제주 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을 위한 녹지 제주 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예산은 800억원이 들었다. 2015년 6월 이 회사는 제주도지사에게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사업계획서에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국인 등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대상이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성형·미용·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의료기관’이라고 명시돼있고, 같은 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사업계획을 승인받았다. 

정부가
적극 주도

2017년에는 녹지국제병원 건물 착공·준공 후 진료과목을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로 외국 의료기관 개설허가 신청을 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영리병원 개설에 부정적이었다. 여론조사 결과 제주도민의 10명 중 7명은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반대했다.

이 같은 제주도민들의 의견은 반영됐다. 이듬해 ‘제주도 숙의형 정책개발 심의위원회’가 녹지국제병원 의료기관 개설허가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의논에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숙의형 정책개발’ 절차를 거쳤다. 녹지국제병원은 개설 불허 권고를 받았고, 녹지국제병원은 비영리병원으로 활용될 것을 제시했다.

이후 녹지국제병원은 ‘진료 대상자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함’으로 바꿔 원 도지사로부터 개설허가를 받았지만, 조건부 개설허가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병원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원 도지사는 의료법 규정을 들어 청문 절차를 거쳐 2019년 4월17일, 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했다.


유한회사 측에 제주도 보건의료 정책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와 청문 일정을 보냈다. 심의위 측은 녹지국제병원이 제주특별법상 외국인 투자 비율을 충족하지 못했고, 병원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한 외국 법인만 가능해 녹지국제병원이 당장 영리병원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외국인만?
내국인 포함

수차례 법적 공방 끝에 개설허가 취소 소송은 지난 1월13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녹지국제병원은 이달 제주도를 상대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올해는 녹지국제병원 논란이 발생한 지 벌써 7년째다. 다만 녹지국제병원이 이번 재판에서 최종 승소해도 단기간 내 국내 첫 영리병원이 열릴 가능성이 작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주도에서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내·외국인 진료를 모두 허가할지 아닐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전문가들은 녹지국제병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운영되면 발생할 문제점들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도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걱정하는 것은 제주도가 2006년부터 꾸준히 영리병원 개설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2006년에는 ‘제주 메디컬리조트’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으나 투자가 무산됐다. 2007년에는 PIM(Philadephialnternational Medicine-Management Development)와 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설립 부지 미확보, 국내 협력사의 열악한 재무구조 등의 문제로 설립이 무산됐다. 


이런 식으로 2006년부터 2013년까지 제주도는 영리병원 개설을 위해 7번의 양해각서(MOU) 체결 및 사업을 진행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녹지국제병원은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 사례까지 합치면 영리병원 개설을 위해 총 8번 시도한 것이다. 

제주도 이외에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인천 ▲부산 ▲대구 등지에서도 영리병원 도입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실제 운영된 사례는 없다. 지자체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 개설을 막은 것은 영리병원이 의료민영화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서울시 종로구에서 개최한 ‘왜 다시 영리병원(투자개방형 병원)인가? 위기의 시대, 영리병원 재점화 논란과 한국 의료위기 토론회’에서는 녹지국제병원을 포함한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다방면으로 다뤘다.

변혜진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은 태국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태국은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관광을 실시했다. 이후 태국 연 의료비는 10~25% 상승했고 의료에 관한 지역 불균형도 초래됐다.

의료비 10~25% 상승
지역 불균형도 초래

한국과 유사한 의료체계를 가진 일본은 영리병원을 금지하고 공공병원을 비중을 25~30%로 유지하고 있다. 영리병원을 허용한 미국도 의료체계가 OECD 최하위지만 공공병원 비율은 22%다. 반면 한국은 공공병원이 5%밖에 되지 않고 비영리병원의 수익성 추구도 심각한 상황이다. 

결국 공공병원이 확보된 미국도 영리병원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공공병원 확보가 부족한 한국에 녹지국제병원이 생기면 문제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변 위원은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의료비 폭등, 지역 병원 폐쇄, 건강보험 재정 고갈 등 미국식 의료민영화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영리병원과 의료민영화는 정부가 추진한다고 밝혔다.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는 ‘의료서비스산업의 고도화와 과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의료민영화를 위한 주요 과제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민영보험 활성화 ▲영리병원 허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여기서 말하는 민영보험은 미국식 관리 의료형 민간의료보험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0년에도 개인의료정보 데이터베이스화와 환자 정보 공유 등 의료정보화, 건강관리 서비스 등 예방산업 육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목했다.

당시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임기 내 이를 그대로 시행했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 정책을 이어 보험회사 건강관리 서비스 합법화를 추진했고, 보험회사가 병원을 통제해 의료제공자로서 해야 할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변 위원은 “즉각 영리병원 도입을 허용하는 법을 개정해 우회적 영리병원 도입 및 의료민영화 추진을 막아야 한다. 또 공공병원을 대폭 확충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공공의료 및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도 영리병원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영리병원은 보건의료 데이터를 원하는 기업들이 공적 통제에서 벗어나 데이터 수집과 집적화를 쉽게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현재 기업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의 라이프로그 정보 수준만 접근할 수 있다. 개인의 의학적 과거력과 검사 결과 및 처방 내용은 병원에서 발생하고 축적되는데, 영리병원이 허가되면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데이터를 의료기관 밖에서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위협받는
국민건강

이 국장은 “우리나라는 의료자원의 절대 다수를 민간이 공급하고, 영리적 의료행위가 용인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영리병원을 허가하면 국민의 생명이 상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과도한 의료화로 상업적인 낭비 의료가 증가할 것이고, 국민건강 수준은 향상되지 않는 가운데 높은 의료비를 부담해야 할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인공지능이 의료인력으로 대체되면서 환자 안전과 국민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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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미리 보는 지방선거 관전 포인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이 끝났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갈렸다. 각 정당은 선거 결과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역할에 골몰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선거를 치른 정치권은 숨 돌릴 새도 없이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지방 권력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방선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서 시작된 대선 정국이 마무리됐다. 2022년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했던 진보 진영은 3년 만에 다시 여당의 지위를 되찾았다. 보수 진영은 비상계엄과 탄핵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로 치러진 보궐선거인 만큼 당선인은 인수·인계 기간 없이 바로 임기에 돌입했다. 또 한 번 정권교체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6개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한 지 60일 만에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난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49.4%,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 무소속 송진호 후보는 0.1%였다. 지상파 3사(KBS·MBC·SBS)가 진행한 출구조사 결과와 차이를 보였지만 당락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는 한국리서치·입소스·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서 본투표 당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25개 투표소의 투표자 8만146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0.8%포인트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이 대통령 51.7%, 김 후보 39.3%, 이 후보 7.7%였다. 출구조사와 비교해 이 대통령은 낮았고 김 후보와 이 후보는 더 득표했다. 이 대통령은 1728만7513표를 얻어 역대 대선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지만 과반 득표율에는 실패했다. 역대 대선에서 과반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선관위가 지난 4일 오전 6시21분 이 후보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확정하면서 이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됐다. 임기 개시와 동시에 국군 통수권을 비롯한 대통령의 모든 고유 권한이 이 대통령에게 자동 이양됐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30년 6월3일까지다. 비상계엄부터 대통령 탄핵, 대선까지 숨 가쁜 6개월을 보낸 정치권은 대선 후폭풍에 직면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던 민주당은 3년 만에 여당으로 복귀했다. 민주당 단독으로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범진보 진영(192석)으로 보면 200석에 육박하는 ‘거대 여권’의 등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 이어 대선서도 패배하면서 존망의 갈림길에 섰다. 당장 대선 패배 책임론이 불거졌고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이전투구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범진보 진영과 비교해 107석이라는 ‘초라한’ 국회 의석수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차지한 이재명정부를 견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3년 만에 정권 탈환 국민의힘, 총선 이어 또 졌다 대선 후폭풍이 걷히면 정치권은 또다시 ‘선거 모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6월3일 지방선거가 예정돼있다. 채 1년이 남지 않은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지 않았다면 내년 지방선거는 윤석열정부 임기 중에 치러질 예정이었다. 윤정부서만 두 번의 지방선거가 열리는 셈이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대선 전초전 격이었을 선거가 이재명정부의 첫 대형 선거가 된 것이다. 이미 여당이 행정과 입법을 완전히 장악한 상황서 지방 권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재명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른바 ‘절대 권력’을 손에 쥐게 된다. 가능성은 작지 않다. 대선 이후 몇 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서 여당이 진 적은 거의 없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이 압승한 게 대표적이다. 2022년 6월, 윤정부 출범 한 달 만에 열린 지방선거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서울·인천 등 12곳에서 이겼다. 민주당은 경기·광주·전남·전북·제주 등 5곳에서만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도 국민의힘이 완승했다. 전국 226곳 중 145곳에서 이겼다.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7곳에서 승리했다. 2018년 지방선거서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민주당이 이겼던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열린 재보궐선거서도 7곳 중 5곳을 차지했다. 당시 이 대통령이 출마한 인천 계양을과 제주을을 제외한 대구 수성을·경남 창원의창·경기 성남시 분당구갑·강원 원주갑·충남 보령·서천 등에 국민의힘 깃발이 꽂혔다. 지난 지방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고 불릴 정도로 네거티브가 난무했던 20대 대선 직후에 열리면서 당시 투표율은 50%를 간신히 넘는 낮은 수준이었다. 역대 지방선거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새 정부 탄생과 거의 동시에 치러진 만큼 ‘허니문’ 성격이 강했던 점도 국민의힘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심이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계엄·탄핵 보수 폭망 불과 3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대선 승리를 등에 업고 지방 권력까지 차지했던 국민의힘은 순식간에 야당으로 전락했고 민주당은 기세를 탄 상황이다. 이재명정부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한 호흡으로 같이 나가려면 기울어진 지방 권력 구도를 돌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내년 6월3일 열릴 지방선거는 대선 이후 1년 뒤에 치러진다는 점에서 이전 허니문 선거와 비교해 기간이 긴 게 변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임기 초인 만큼 여당에 유리한 이슈가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두고 진행 중인 재판이 1년 내내 사회를 달굴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부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대통령직을 상실하면서 불소추특권도 사라졌기에 혐의가 더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윤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심판 심리 때부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재판서도 같은 태도를 보여 1심 선고까지는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당선 수락 연설에서도, 취임사에서도 내란 종식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국회 본청 로텐더홀서 진행한 취임 선서에서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주권을 빼앗는 내란은 이제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 철저한 진상 규명으로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제 문제도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현재 안팎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 내수 시장은 ‘폭망’ 상태에 접어들었고 외부에선 관세 등으로 시장을 흔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경제 이슈는 선거판을 늘 좌지우지했다. 텃밭 빼고 다 뒤집혀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먹사니즘’이라는 표현으로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특히 이 대통령은 국가 재정 투입을 예고했다. 취임 선서에서도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 극복과 경제 회복을 전면에 내세워 민심을 다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은 ‘견제론’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의회 권력과 행정부를 장악한 이재명정부를 지방 권력으로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총선은 2028년, 이 대통령의 임기 중반 이후에나 치러진다. ‘거대 야권’ 국면이 이 대통령의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사이 판을 흔들만한 대형 선거가 없기에 보수 진영으로선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총선이 지방의회 상황에 영향을 받는 만큼 국회 의석 상황을 바꾸려면 지방선거 결과가 중요하다. 문제는 내부 상황이 지나치게 어지럽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서 배출한 대통령이 벌써 두 번째 파면됐고 총선에 이어 대선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보수 세력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총선 때부터 나왔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선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여준 윤 전 대통령 측 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서 보수 진영의 주도권을 둘러싼 혈전이 예상된다. 새 정부 1년 만에 맞대결 3년 전에는 여당이 압승 대선을 완주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 의원은 비록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대선 기간 내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을 모두 처리하고 난 뒤에야 보수 진영은 지방선거에 몰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선 과정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하거나 지지층만 믿고 막무가내식 행보를 보이면 총선, 대선서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대선과 8대 지방선거, 이번 대선서 각 정당 후보가 얻은 표를 보면 보수 진영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가 드러난다. 국민의힘 후보로 윤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로 이 대통령이 나선 20대 대선 당시 승부를 가른 건 ‘서울’이었다.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면서 서울서 진 적이 많지 않았는데 2022년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로 민심을 까먹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50.6%, 이 대통령은 45.7%를 받았다. 표수로는 31만표 차이였다. 윤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전체 표 차인 24만7000표(0.73%p 차이)보다 컸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을 필두로 강원·대전·충청·TK(대구·경북)·PK(부산·경남)·울산서 승리해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방선거 때에는 대선서 패했던 인천과 세종에서도 국민의힘이 이겼다. 서울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국민의힘)이 민주당 송영길 후보를 무려 20%p 차이로 이겼다. 대선서 45.6%(윤 전 대통령) 대 50.9%(이 대통령)로 5.3%p 차이가 났던 경기도조차 48.9%(국민의힘 김은혜 후보) 대 49.1%(민주당 김동연 후보)로 초접전 양상을 보였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 대선서 국민의힘은 강원·TK·PK·울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서 졌다. 지역별로 보면 6곳에서만 김 후보가 이 대통령에 앞섰다. 국민의힘 텃밭이라고 불릴만한 지역과 보수세가 강한 지역서 선전했을 뿐 수도권과 표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충청권서 모조리 패배했다. 여러 차례 대통령을 배출한 전국 정당이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순간이다. 안정론? 견제론? 발 빠른 인사들은 벌써부터 지방선거를 정조준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도 대선 패배 연설서 “저희가 잘했던 것과 못했던 것을 잘 분석해 정확히 1년 뒤 다가올 지방선거서 개혁신당이 한 단계 약진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어느 정도 승부가 예측됐던 이번 대선과 달리 내년 지방선거가 진짜 대결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 국민투표 가능성 ‘동시에 진행될까?’ 이재명정부는 개헌을 할 수 있을까? 대선일로부터 꼭 1년 뒤인 내년 6월3일 열리는 9대 지방선거서 개헌 이슈가 다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대선 이후 첫 대형 선거인 만큼 이날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의견은 대선 기간 내내 나왔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지난 4월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로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며 “대선후보들은 개헌을 약속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정 회장은 “느닷없는 계엄령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지를 절감했다”며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결정적 기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87체제’ 종말 초읽기? 그러면서 “개헌 시점은 늦더라도 2026년 6월이어야 한다”며 “이번 대선 이후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협력 아래 정부가 지원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칠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후보 당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무총리 국회 추천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제안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