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으면 싸다고? 저층의 반란

최근 저층부를 찾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저층으로만 구성된 아파트나 도시형 생활주택, 타운하우스 등 주거단지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저층부는 고층부 대비 선호도가 낮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저층부만의 장점이 하나둘씩 부각되면서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 부동산 정보업체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1년간(2021년 4월~2022년 3월) 전국에서 이뤄진 아파트 매매 거래량(지하층 제외)은 총 48만6429건이다. 이 중 저층부(1~5층)가 37%(17만7913건)를 차지했다. 이는 2~3명 중 한 명이 저층부를 구매한 셈이다.

주차장
지하로

저층부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는 주차장이 지하로 내려간 점도 주효했단 분석이다. 주차장이 대부분 지상에 위치해 소음 및 매연 문제가 빈번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주차장을 모두 지하로 배치해 저층세대가 겪을 수 있는 불편함을 해결한 것이다. 더불어 지상에는 공원 못지않은 다양한 조경시설을 마련해 저층부는 쾌적한 조경 프리미엄을 가깝게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1층의 경우 층간소음에 대한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는 점 또한 저층부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자녀가 있거나 계획 중인 3040세대 학부모들의 1층 이사 문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활력이 넘치는 어린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유일한 층이다 보니 경쟁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표 주거시설인 아파트에서 고층부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선호를 받았던 저층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고층부에 비해 사생활 보호와 조망 여건, 가격 프리미엄(웃돈) 형성 등에서 불리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저층부만의 특장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층부 주거단지 찾는 수요↑
층간소음 해방…쾌적한 조경

국토부의 지역별 아파트 매입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에서 이뤄진 35만3010건 거래 중 1~5층 거래는 15만1276건으로 전체에서 42.85%를 차지했다. 업계는 저층부 거래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고층부 대비 합리적 매매 가격과 저렴한 관리비가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달라진 집에 대한 개념도 한몫하고 있다. 주거, 휴식 등 집이 가진 고유의 기능뿐만 아니라 영화관, 카페 등 다양한 커뮤니티시설과 주차관제, 침입 감지 등 외부 첨단 시스템까지 추가되면서 개념이 점차 확대되고 있어서다.

내부 조경이 공원 못지않은 수준으로 꾸며져 최근 아파트 저층에서는 이 같은 조경 프리미엄을 가까이서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층에 거주하는 것을 불안해하거나 저층을 선호하는 고령층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집에 어르신들이 있는 경우 계단 사용의 최소화나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저층을 원하기도 한다. 복잡한 출퇴근 시간대 엘리베이터 사용을 피할 수 있고, 빠르게 단지 밖으로 이동할 수 있어 ‘칼출근’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 중 하나다.

저층부 가구에 다양한 특화설계까지 적용되고 있다. 작년 하반기 대전 중구에서 공급된 ‘대전 하늘채 엘센트로’는 저층부 필로티 설계와 지상 주차 최소화한 공원형 단지로 조성된다는 점이 실수요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이 사업장은 지난해 11월 1순위 청약 당시 평균 46.76대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됐다.

입주 후 저층부가 고층부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청주 서원구 ‘우미린 에듀파크 2단지’전용 84㎡는 작년 10월 4억7500만원(3층)에 거래됐는데, 이 가격은 한 달 전인 9월 거래된 같은 주택형 4억7000만원(27층)보다 500만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대전 유성구 ‘도안신도시7단지 예미지백조의호수’전용 84㎡(5층)도 8월 8억8400만원에서 9월 같은 주택형(14층, 7억9300만원)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손바뀜 됐다.

최근 1년 실거래 37% ‘1~5층’
장점 하나둘 부각되면서 인기


지난달 16일 진행된 해당 지역 1순위 청약접수에서 평균 10.18대1의 경쟁률로 전 주택형이 마감된 ‘한화 포레나 청주매봉’의 경우 최고 경쟁률이 전용 84㎡A에서 나왔다. 이 주택형 1층은 일부 동에 필로티 설계가 적용되고, 최상층보다 3800만원가량 저렴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저층부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대표적인 저층형 단독주택인 타운하우스에 대한 관심도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타운하우스는 2~3층 규모의 주택이 아파트 단지처럼 모여 있는 형태다. 마당과 정원, 테라스 등 단독주택이 지닌 장점과 주차, 보안·관리 커뮤니티 등 아파트의 장점을 모두 모아놓은 주거상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늘어나는 아파트로 이웃 간 갈등이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좁은 주차공간과 층간소음, 반려견 등 공동생활에서 사생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에 타운하우스 등으로 이주 수요가 적지 않다.

계단 사용
최소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층간소음의 대안처로 단독형 타운하우스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코로나19에 따른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지난해 11월까지 접수된 층간소음 전화상담 건수는 4만2440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주거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높아진 저층부 선호도 역시 코로나 여파와 상당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면서 “코로나 시국과 맞물리며 문만 열면 자연과 접촉이 가능한 친환경 저층형 주거단지들이 기존에 없었던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분양(예정) 중인 저층부 주거단지.

 

▲석수동 엘림하우스= 관악구와 금천구 등 서울과 인접한 안양 석수동에 대단지 단지형 연립주택인 ‘엘림하우스’가 1단지, 2단지를 후분양 방식으로 분양에 나선다.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23번지, 126번지에 1단지 48세대(6개동), 2단지 49세대(7개동) 총 12개동, 96세대를 공급한다. 주차는 세대당 1주차가 가능하다. 1단지의 경우 전용면적기준 52.94~77.88㎡이며 2단지의 경우 62.54~82.05㎡이다.

어르신들
좋아한다

경인교대와 인접하고 서울 접근성이 아주 우수해 서울생활권이 가능하다. 실사용 면적이 약 72.73㎡(22평) 내외로 방 3개, 거실, 욕실 2개 구조라 신혼부부나 어린 자녀를 둔 초혼부부에게 적합하다. 삼성산, 삼막사, 삼막마을 식당가 및 예쁜 카페 및 관악산 둘레길이 가까워 답답함 도심속 주택과는 다른 한적함과 조용함을 제공한다. 인근에 안양시립 유치원, 호암·삼성초등학교, 연현중학교, 양명고등학교 등이 위치한 학세권 단지다.

도보 5분 거리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편리하고 경수산업도로, 외곽순환도로, 제 2경인고속도로, 안양-성남 고속도로, 강남순환도로 접근성도 좋다. 지하철 1호선 관악역과는 도보권이며 신안산선과 월판선(월곶판교선)이 들어서는 석수역과는 불과 1정거장 거리다. 이들이 개통되면 서울 청량리에서 안산까지 남북으로는 신안산선이, 월곶에서 판교까지 동서로는 월곶판교선이 만안구의 교통을 한층 업그레이드 해줄 전망이다.

 

▲장락동 세영리첼 에듀퍼스트= 에쓰와이이앤씨㈜는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일원에서 ‘장락동 세영리첼 에듀퍼스트’를 분양한다. 지하 5층~지상 최고 23층 7개동 총 564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전용면적별 가구 수는 84㎡A 282가구, 84㎡B 47가구, 84㎡C 235가구로 전 주택형이 전용면적 84㎡의 단일 평형으로 구성됐다.

단지가 들어서는 장락동은 제천의 대표적인 주거타운으로 교육은 물론 문화, 생활편의시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원스톱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다. 단지 바로 앞에 장락초와 병설유치원이 위치해 있으며,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제천여자중학교가 위치해 있다. 단지 바로 옆에는 장락 제2근린공원과 기적의 도서관, 다양한 체육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문화생활과 레저 활동을 즐기기 좋다. 여기에 병원과 마트, 관공서, 도서관 등의 생활인프라 이용이 편리하다.


평택-제천 간 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등이 인접해 있으며, 단지 인근에 위치한 제천고속터미널, 제천역을 이용해 시외로 이동도 가능하다. 지난해 개통된 중앙선 제천~원주 간 복선전철로 제천역에서 청량리역까지 60여 분만에 도착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단지는 제천산업단지, 고암테크노빌, 강저농공단지 등이 인근에 자리해 직주근접성이 뛰어나고 풍부한 배후수요도 확보했다는 평가다.

제천시 일대에 6년 만에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인 만큼 제천시 일대의 주거가치를 높일 다양한 설계가 도입돼 주목된다. 전용 84㎡에 4베이 위주로 설계돼 통풍과 일조가 우수하다. 펜트리 등 수납공간을 배치해 공간 활용도가 뛰어나다. 전 동을 필로티로 설계해 저층 세대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단지의 개방감을 높였다.

 

▲홍천 리빙웰타운=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하화계리 720-5번지 일대에 2층 구조 테라스형 타운하우스인 ‘홍천 리빙웰타운’이 분양 중이다. 국내 유일 강변온천인 홍천 온천지구 내 고품질 온천을 각 가정에서 즐기는 타운하우스로 총 50세대의 대단지로 조성 계획이다.

현재 건축된 타운하우스는 전용 89㎡(구 27평형), 99㎡(구 30평형), 109㎡(33평형), 145㎡(44평형) 등 4가지 타입이다. 서비스 공간인 테라스를 포함하면 분양 면적이 357㎡(108평)~403㎡(122평)까지 된다. 필지 분양의 경우 분양주를 위한 맞춤형 평면 설계로 시공되며 입주자를 위한 다양한 혜택이 제공되는데 집 안에서 온천을 테마로 스파나 월풀 등을 추가적인 비용 없이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홍천강 변의 사계절 풍경도 즐길 수 있으며 녹색 힐링 환경을 갖추고 있다. 홍천강을 따라 산책로, 자전거 길, 공원 등이 조성돼 있고 각종 휴양림과 테마파크, 거기에 홍천군에만 있는 20여 개의 캠프장과 래프팅 명소로 자연과 함께하는 각종 여가생활을 가까운 곳에서 누릴 수 있다.

홍천의 구도심과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로 하나로마트, 은행, 홍천군 보건소, 홍천 아산병원, 홍천초·남삼초·홍천여고 등 학군과 교육지원청 및 교육도서관 등 풍부한 생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동서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5번과 44번국도가 관통하는 지역으로 서울과 동해안을 잇는 길목이다. 유명한 산과 계곡, 강이 곳곳에 있어 자연경관도 수려하다. 이런 이유로 전원생활을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


문만 열면
자연 속으로

분양 관계자는 “단지는 전원생활이나 세컨드하우스용으로 적합한 쾌적한 주거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며 “용문~홍천 광역철도 사업과 홍천군 도시재생 사업, 양평군 소재 제20기계화보병사단이 홍천군 소재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흡수하는 등 개발호재가 겹치면서 수도권 거주자들의 높은 관심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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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