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 사랑

미국 대통령들은 얼마나 골프를 열심히 즐겼을까. <뉴욕타임즈>의 밥 에드워즈 기자는 ‘대통령과 골프’라는 기사에서 20세기 미국 대통령 19명 중에서 15명이 골프를 칠 정도로, 골프는 미국 대통령들과 밀접한 스포츠라고 밝혔다.

미국 대통령들은 순전히 개인의 취미 차원에서 골프를 즐겼다. <First Off The Tee>의 저자인 돈 반 나타에 따르면 1913년 당선된 28대 토마스 윌슨 대통령은 훗날 최고의 골프광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보다도 더 골프에 매진했으나 한 번도 100타를 깬 적이 없다.

각양각색

전임 34대 아이젠하워 못지않은 골프광이었던 35대 존 F. 케네디는 역대 대통령 중 핸디캡 8의 실력에다 스윙이 가장 출중한 골퍼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이젠하워와는 달리 대중 앞에 내놓지 않고 비밀리에 골프를 즐겼던 그는 아아젠하워를 ‘얼간이 대통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스윙에 관한 한 그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석을 향한 연습에 매진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스탠스를 좁게 잡고, 백스윙은 낮고 짧게 하면서 되도록 몸통이 꼬이는 스윙은 자제하고 백스윙을 적게 한 뒤 빨리 다운으로 끌어내리는 자연스러운 스윙을 했다. 교본에 의한 정석 스윙에 집착했던 그는 티칭 프로를 백악관으로 불러 개인지도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곤 했으며, 연습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19명 중 15명 골프광
케네디, 남모르게 연습벌레

그는 거리낌 없이 골프를 치는 속전속결 골퍼였으며, 홀을 건너뛰어 다른 홀에서 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따금씩 18홀에서는 동료들이 홀아웃을 하기도 전에 먼저 차에 올라타고, 영부인이 있는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차를 돌려서 경호원들이 허겁지겁 따라가야 하는 낭패를 겪기도 했다.

많은 국민은 그가 골프를 치는지조차 몰랐다. 백악관에 입성하고도 비밀리에 골프장을 간 관계로 사람들은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그가 골프를 치고 있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마릴린 먼로와의 관계에서는 CF를 찍은 것 외에는 그녀가 골프를 치지 않았던 관계로 적어도 골프장에서의 염문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영부인 재클린과 아들을 불러 이따금씩 가족이 함께 골프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반 세기가 넘는 현재까지도 케네디와 먼로의 관계가 의문에 쌓인 채 그들이 함께 찍힌 현존하는 유일한 사진은 1962년 5월19일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케네디의 생일 축하 겸 민주당 모금 파티에서 찍은 것으로, 축가를 부른 먼로, 존 케네디,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함께 있는 사진이다.

FBI는 미국에서 존재하는 케네디와 먼로가 함께한 사진을 모두 찾아 소각시켰는데, 이 사진 역시 수거됐으나, 바닥에 떨어진 필름 네거티브를 빠뜨리는 실수를 범했다. 사진을 찍은 세실 스토턴 백악관 전속 사진사는 영부인 재클린의 심기를 건들지 않고 숨기고 있다가 훗날 5만달러에 중계상에게 넘겼다.

먼로는 사진이 찍힌 이후 석 달만인 1962년 8월5일 의문사를 당했고, 이듬해 11월22일 케네디가 댈러스에서 암살당했다. 사진 속에 등장했던 동생 로버트 케네디마저 1968년 6월6일 암살당했다.


케네디의 임기를 채운 36대 린든 존슨 대통령은 대책 없는 골퍼였다. 18홀 동안 무려 400회가 넘는 연습 스윙을 했고, 심할 때는 티박스에서 무려 10번의 연습 스윙을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불평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워터 게이트로 잘 알려진 37대 리차드 닉슨은 재임 시절 중 골프를 그만뒀다. 한 때 79타까지 기록한 그는 골프보다는 정치를 우선하면서 대통령직에 매진했지만 결국 임기 중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클린턴, 멀리건으로 유명
오바마, 가장 양심적인 골퍼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보브 호프 등과 플레이를 하면서 샷을 하면 오른쪽에 있는 갤러리 중 누군가를 맞추는 지독한 슬라이스의 명수였다. 좋은 스윙은 아니었음에도 이따금씩 80대를 치는 실력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곤 했다.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마스터즈의 고향인 조지아주 출신이면서도 골프를 치지 않았다. 40대 로널드 레이건은 73세라는 고령에 대통령이 되어 골프는 쳤으나, 그다지 열성적인 골퍼는 아니었다. 체력을 고려해 재임 기간 중 겨우 10여 차례만 골프를 쳤다.

다만 힘들지 않은 퍼팅은 좋아해 집무실에서 인조 매트를 깔고 퍼팅을 주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은 멀리건으로 유명해 별명도 빌리건이었다. 경호원들과 함께 치면서 타수도 줄여서 기록하기 일쑤였으며 웬만한 거리의 퍼팅도 컨시드를 받곤 했다.

18홀이 끝난 뒤 분명 120타였지만, 스코어카드에는 82타로 기록되기도 했다. 타이거 우즈와의 라운딩에서도 여러 번 멀리건을 받아, 18홀을 도는 데 무려 6시간을 허비하기도 했다. 1998년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으로 우승했을 당시에도 그는 라운딩을 제의하는 등 프로들과 동반 라운딩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는 광적으로 골프를 즐겼던 아버지 부시와는 달리 골프는 쳤지만, 그토록 미치지는 않았다. 8년 재임하는 동안 24번에 그쳤는데,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18홀을 몇 시간 만에 끝내느냐였다.

핸디캡 15 정도였던 왼손잡이 부시는 다양해서 친구들이나 백악관 관리. 혹은 여성 각료 등과도 간혹 라운딩을 가졌다. 부시는 라운딩 도중 그의 샷과 세계 정세를 한꺼번에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44대 오바마 대통령은 양심적으로 골프를 쳤으며, 겸허하게 플레이를 하던 보기 플레이어였다. <골프다이제스트>에 따르면 오바마는 코치의 정석 스윙을 거절하고 “자연스러움에 맡겨야 한다”면서 본능적인 동작을 따랐다. 그는 코치보다도 벤 호건 등 골프 서적에서 스스로 터득한 스윙을 고집했다.

체구에 비해 장타는 아니지만, 그가 미국골프협회에 제출하고 인정받은 공식적인 핸디캡은 2.8이다. 화창한 날씨에 화이트티에서 치고, 짧은 퍼팅은 컨시드를 받으면서 70타 중반에서 80타 초반을 기록했다.


밀접한 취미

비록 드라이버 거리는 230야드 정도지만, 롱아이언 샷이 특기다. 드라이버는 위에서 내리치면서 높이 뜨는 바람에 거리가 짧은 반면, 아이언샷은 낮고 길게 날아가 트러블샷이 별로 없다.

오바마의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뛰어난 아무추어 골퍼이자, 골프 사업가였다. 뉴욕, 플로리다 등 미국은 물론이고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에 17곳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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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