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동구리 20주년' 권기수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 소재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ㅁ)에서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동구리 20년’을 준비했다. 올해는 권기수의 기호화된 인격체 동구리가 탄생한지 20주년 되는 해.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언제나 미소 짓고 있는 동구리는 권기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인 캐릭터다. 

권기수의 ‘동구리’는 무지개를 건너기도 하고 대나무에 매달려 있기도 하며,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기도 한다. 화려한 색감과 유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문화상품으로도 다양하게 소비됐다. 

동양의 정신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는 동구리의 또 다른 모습을 들춰냈다.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평소 모습이 아닌 유쾌하지만 냉소적이고 거친 동구리가 관람객들과 만난다.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 관계자는 “20주년인 만큼 권기수가 동구리를 어떤 의미로 만들고 그려왔는지 그동안 숨겨왔던 그의 내면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네오팝 아티스트로 알려진 권기수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그의 작품은 장르와 형식적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화선지와 먹 대신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한 여백 없는 밝은 화면과 두꺼운 아웃라인, 평면성이 두드러진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
냉소적이고 거칠게

동구리가 행위를 하고 있는 배경에는 대나무 숲과 매화, 파초, 보름달, 쪽배 등 동양화에서 상징성을 가진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권기수는 동양의 정신에 풍자적 요소를 사용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보여주고 있다. 

그의 무릉도원에는 많은 동구리가 서로 소통 없이 앞만 보며 획일적인 웃음을 짓고 있다. 불안과 두려움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하지만 마치 SNS 가상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어딘가 고독해 보인다.

타인의 시선과 긍정의 에너지를 강요받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또 소외감을 느끼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는 표현주의적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빠른 붓놀림과 거친 붓 자국, 자유롭게 흐르는 물감 자국을 이용해 검은 먹이 가진 물성의 에너지를 시각화했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에서 동구리는 정형화돼있지 않은 날것의 형태로 작가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동구리는 권기수가 2001년경 인물 드로잉을 빠른 속도로 그리기 위해 연습하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흥적으로 빠르게 그려낸 동구리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관람객을 바라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절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흐르는 물감을 그대로 두어 동구리 위로 눈물 또는 피처럼 흘러 내려 번져 있는 모습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진다. 


유약한 내면 노출한
작가 자신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 권기수는 작품을 오로지 동구리만으로 가득 메웠다. 화려한 무릉도원은 없고 하얀 여백으로 비워두거나 금색을 칠해 동구리만 주체로 강조된다. 마치 비잔틴 시대 황금으로 표현된 성당의 아이콘처럼 인물에만 시선이 머무르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황금색 모자이크 성상처럼 위엄 있고 전지전능한 모습은 아니다. 자신의 유약한 내면을 그대로 노출한 채 관람객과 마주하고 있다. 그가 20년 동안 그린 동구리는 예쁜 미소를 짓는 아이콘이 아닌 불안하고 상처받는 군중 속 한 사람, 바로 작가 자신이다. 

권기수는 “이 전시는 20세 동구리의 내력을 밝히고 탐구하는 자리이자 동구리와 대화하는 동구리들의 잔치”라며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부른다, 동구리들아”라고 말했다. 

현대적 해석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 관계자는 “동구리 20년 전시는 권기수가 20년 동안 숨겨놓은 내면의 자화상을 공개하는 자리”라며 “장르와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확장하는 작가 권기수의 저력을 새롭게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전시는 내년 1월20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권기수는?]

1972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한 권기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전통 수묵화 형식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1999~2002년 장지에 수묵으로 ‘동구리’라는 기호화된 인격체를 탄생시켰다. 

2003년 이스라엘 Jerusalem Center for Visual Arts의 레지던스에 초대된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iGoogle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됐다.

2015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장학재단 중 하나인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에 선정돼 미국 Concordia College에서 방문 교수를 역임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오스트레일리아 Asia-Pacific 트리엔날레, 상하이 MOCA, 일본 MORI ART Museum, 런던 Saatchi Gallery, 뉴욕 MAD 미술관, 뉴욕 UN 본부, MOCA 타이페이 등 다양한 곳에서 국제 전시를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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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