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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1월24일 12시48분

사건/사고

'그들만의 벙커' 가출 청소년 아지트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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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붙일 수 있다면…”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청소년들에게 가출은 단순히 집을 나왔다는 의미가 아니다. 집 밖으로 나온 청소년은 흉흉한 세상에서 범죄에 쉽사리 노출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가출 청소년을 보호해주기 위해 청소년쉼터도 있긴 하지만 이용률은 높지 않다.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이 주로 찾는 장소는 어디일까?

청소년 가출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 비행 청소년이 행하던 작은 일탈들이 상습  가출 및 장기화로 대형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각종 위험들과 마주친다.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고, 때론 성매매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2021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무려 총 11만5741명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의 가출 원인의 가장 큰 이유는 가정불화 및 부모와의 갈등이었고, 다음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학교폭력, 성폭행 등 순이었다.

통계에서도 가출 원인 중 가정환경 요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듯이 ‘가정의 안전’이 그만큼 중요하다. 

바닥 누워
전화 통화

▲무인점포 = 최근 가출 청소년들의 활동 장소로 무인점포가 떠오르고 있다. 24시간 영업인 데다가 주인도 없기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24시간 무인점포 근황’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24시간 운영되는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밤을 보내는 10대 사진이 첨부됐다.  

청소년들은 비어 있는 무인점포를 사실상 점거했다. 셀프 계산대 위에 앉아 있거나 심지어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바닥에 누운 채 전화통화를 하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전선을 길게 연장해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글쓴이는 “동네 중·고등학생이 새벽에 갈 곳이 없으니 24시간 무인점포를 아지트로 쓴다”며 “동네의 24시간 매장에 다 저러고 있다. 업주들은 골치를 앓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이튿날 새벽 시간까지 무인점포에서 머물다 떠났다. 가게 주인이 뒤늦게 CCTV를 통해 이 모습을 확인했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이 가게뿐 아니라 무인 편의점·빨래방 등 다른 24시간 점포도 같은 피해를 입었다. 

막상 무인점포 점주들 얘기은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무인점포를 노린 절도 범죄가 기승인데다, 심야에 가출 청소년이 가게에 들어와 영업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지만 정작 점주가 종일 CCTV를 들여다보는 ‘원격 노동’을 해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모텔 = 무인모텔이나 숙박 앱은 10대가 이용할 수 있고 미성년자 확인 절차도 까다롭지 않다. 이 때문에 무인모텔은 가출 청소년 투숙이나 청소년 이성 간 성적 목적의 출입, 청소년 대상 성매매 등 범죄 장소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

무인모텔은 결제기에 돈만 넣으면 카드로 된 열쇠가 나온다. 신분증 확인을 위한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신원 노출, 개인정보 보호 등으로 신분증 노출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숙박 앱 이용 일행끼리 모여 활동
음료 한 잔 주문 시간 제약 없어

숙박 앱 업체도 중개만 해줄 뿐 청소년이 모텔을 이용한다고 해도 법적 책임은 없고 현행법상 고객이 미성년자인지를 확인해야 할 의무는 업주에게 있어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들은 “남녀 혼숙도 아니고 동성끼리 낮에 모텔에 들어가 놀다 오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아 숙박 앱을 이용하면 출입이 더 쉽다”고 말했다.

박옥식 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은 “무인모텔이 가출 청소년에게 취약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예견돼왔다”며 “숙박업소 업주는 결제 전 성인인증을 거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고 당국은 업소의 위생·청결 외에 청소년 보호에 초점을 맞춘 단속과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헬퍼 집 = 집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동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출 청소년 모임 커뮤니티를 통해 같이 지낼 수 있는 동료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가출한 청소년은 가출 모임 게시판에 성별, 나이, 지역을 밝힌 뒤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적는다. 

이들에게 생활비와 잘 곳을 마련해 준다며 유인해 성 착취를 일삼는 이른바 헬퍼가 가출 청소년에게 접근한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도움을 주겠다’며 다가가 자신이 사는 집에 빈 방이 있다며 가출 청소년을 도와주고 싶다는 식으로 유혹한다.

이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겠다며 ‘헬퍼’를 자처한 성인들이 갑자기 돌변해 성폭행하기도 한다. 

평택에 거주하는 한 헬퍼는 “본인이 나 믿고 일하면 한 달에 돈 천 이상은 벌 수 있어요. 1억 벌고 나간 애도 있고”라고 말했다. 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수상한 도움의 손길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이용한다. 

또 다른 헬퍼는 성매매를 위해 오피스텔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퍼들은 아이들을 끌어들여 노래방 도우미, 마사지 등의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전북에서 가출 청소년에 접근, 금품을 미끼로 성 착취를 시도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당시 SNS에서 만난 미성년자에게 “성관계는 50만원, 영상은 5만원을 주겠다”며 성관계, 신체 부위 촬영 등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워줄게요”
성범죄 악용

성매매를 요구당한 가출 청소년이 살해당하는 사례도 있다. 2015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모텔에서 조건 만남을 하던 여중생이 성 매수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여중생은 가출 청소년으로, 당시 채팅 앱을 통해 접촉한 성매매 포주로부터 조건 만남을 알선받았다.

▲24시간 카페 = 아메리카노 한 잔만 시켜도 계속 머무를 수 있는 24시간 카페도 가출 청소년이 머물기엔 최적의 장소다. 미성년자라고 눈치 보지 않고 오랜 시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출 청소년이 카페에서 주로 앉는 좌석은 카페 직원이 잘 오지 않는 구석으로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잠이 오면 엎드려서 자면 그만이다. PC방, 찜질방과 달리 카페에는 미성년자도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가출 장소로 뜨고 있다.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아무래도 쾌적한 분위기에서 머물며 핸드폰 충전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심야 시간에 제약 없이 출입해 편한 의자에서 쉴 수가 있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카페 말고도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도 가출 장소로 자주 이용된다. 주문을 하지 않아도 눈치를 주지 않고 종이컵만 올려 놓으면 몇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공·폐가 = 가출 청소년은 후미진 주택을 찾는다. 구멍가게 내부에 안방이 딸린 형태의 폐가는 안성맞춤이다. 이곳에는 가출 청소년 여럿이 모여 ‘가출 팸’ 생활을 하는 게 가능하다. 

가출 팸이란 청소년들이 모여 ‘동반 가출’한 후에 일행이 뭉쳐 함께 거주하는 모임을 말한다. 마음이 맞는 경우 아예 팸을 이뤄 3~4명이 공사, 폐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지내기도 한다. 청소년에게 ‘가출 팸’은 탈출구나 해방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단 가출 팸이 구성되면 나이 등의 순서에 따라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등을 뽑아 역할을 분담한다.

이들은 오랫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공가나 폐가에 모여 궁핍하게 산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수시로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 때문에 가정에서 실종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빈집이나 폐가는 가출청소년이 모여 절도 모의나 환각물질을 흡입하는 등의 장소로 이용될 우려도 있다. 또 상가건물 옥상에서 노숙하기도 한다. 심야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버스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들은 마을회관 옥상이나 공설운동장 구석, 상가건물 지하, 아파트 보일러실 등에서 자면서 밖으로 떠돌아야 하는 신세다. 

▲치킨집 =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 음식점이 가출 청소년 사이에서 새로운 아지트로 뜨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음식점 사장들은 배달 주문이 많아지자 배달원을 늘려야 했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미성년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신 잘 곳 없을 때 가게에서 자도 되느냐’는 요청이 온다. 돈은 전부 계좌에 있어 훔쳐 갈 것도 없으니 승낙을 해준다. 가출 청소년이 “가끔 친구를 데려와도 되느냐”고 묻자 사장들은 가게에 있는 라면도 끓여 먹으라며 인심까지 쓴다. 

세 사업자와 가출 청소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가출 청소년을 고용한 음식점 사장은 “옳지 않지만, 많이 힘들어서 내린 선택”이라며 “아이들은 큰 말썽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점서 숙식 해결
영세 사업자와 협의

잘 곳이 마땅치 않은 가출 청소년들은 배달원으로 일하는 치킨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일해서 식사는 해결할 수 있지만 밤에 잠잘 곳은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연말에는 성인 남성 집에 여러 명 얹혀살기도 한다. 남녀 청소년 3~4명이 머무는 대가로 여자 청소년들은 집주인과 성관계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목(미성년 여자가 남성에게 성매매하겠다며 속이고, 다른 무리가 현장을 급습해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수법을 뜻하는 은어)’을 무서워하는 집주인이 늘어나면서 얹혀살기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편의점 = 편의점도 가출 청소년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꼽힌다. 저렴한 음료 한 잔을 산 뒤 편의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핸드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편의점에 들어가 몸을 따뜻하게 녹인다. 

최근 들어 편의점들도 무인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 8월까지 33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5만6000명 늘었다.

완전 무인은 아니더라도 낮에 직원이 근무하고 밤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도 많아졌다. 

현행 아동복지법도 아동보호 시설에 입소한 청소년을 주된 지원 대상으로 규정한다. 아동보호 시설은 보호자와 상담해 사실 확인을 거친 청소년만 들어갈 수 있다. 청소년 쉼터는 이런 절차 없이 가출 청소년이 직접 신청해 들어간다. 

아동보호 시설에서 퇴소하면 임대주택을 지원받을 수 있다. 반면 청소년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의 경우 2년 이상 지내고 만 18세 이상이어야 매입 임대주택 또는 청년 전세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청소년 쉼터에서 2년 이상 연속으로 지내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가출 청소년이 머무를 수 있는 정부 운영 ‘청소년 쉼터’는 전국에 135곳, 한 번에 입소 가능한 최대 수용 인원은 1369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0만명 이상 거리로 쏟아지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년 약 2만4000명의 청소년이 실종·가출 등으로 신고된다. 신고되지 않은 가출 청소년까지 포함한 여성가족부 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가출 청소년 규모는 연간 약 12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당시 여성가족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터넷에는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출카페’가 수십 개씩 나온다”며 “2020년 9월에는 가출 여성 청소년 9명을 상대로 ‘잘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유혹한 뒤 성매매를 알선하고 강요한 일당이 검거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쉼터 확대와 더불어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가출 청소년이 적극적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소년 쉼터
규모 부족해

황진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출간한 ‘가출청소년 지원 강화를 위한 청소년복지시설 재구조화 연구’에서 “청소년기 가출 행동은 원인이 매우 다양하고, 쉼터에서 생활하기가 여의치 않거나 당사자가 쉼터 입소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 쉼터가 과밀이나 사생활 보장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적인 환경을 개선하면 쉼터 이용이 용이해질뿐만 아니라, 입소 청소년 심리·정서 안정에 기여해 자립 지원 효과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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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줄 타는 안철수 사생결단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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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정권교체에 대한 여론은 정권 재창출에 대한 여론보다 높다. 그러나, 여당의 이재명 대선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고 있진 않은 모양새다. 야권 대선후보가 여러 명이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은 야권 대선후보를 하나로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선후보들은 구체적인 단일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선 전 단일화는 철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 화두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대선후보들은 그동안 후보 단일화를 첫 번째 승리 조건으로 여기곤 했다. 2022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식 대선후보 등록이 시작도 되기 전에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단일화 이야기가 돌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국민의힘의 내홍 논란을 딛고 약진을 이어간 후부터다. 좁혀진 차이 자존심 싸움 합친다고 무조건 당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야권 대선후보들은 단일화에 유독 집착한다. 1987년 대선에서 단일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난 탓이다. 1987년에 제6차 국민투표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확정된 후, ‘양김’의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여권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이기려면 야권 대선후보가 한 명이어야만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후보는 본인의 승리를 장담했다.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강한 열망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보들은 그 표가 다 본인에게 올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김대중 후보는 ‘사자필승론’을 주장하며 다자구도가 오히려 본인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대중 후보는 지역 표심을 중심으로 대선판을 그렸다. 그는 노태우·김영삼이 영남 표를 나눠 받고, 김종필이 충청 표를, 그리고 본인이 호남 표를 독식해 당선된다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화는 실패했고, 최종 대선에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모든 후보가 출마했다. 김 후보가 그렸던 대선 판세와는 달리, 실제 대선에선 지역색보다는 정치색이 후보들의 희비를 갈랐다. 보수 지지자들의 표는 한 명의 여당 후보에게 결집된 반면, 진보 지지자들의 표가 두 명의 야당 후보에게 분열된 것이다. 결국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최종 당선됐다. 이때의 이변을 대한민국 역대 대선후보들은 잊지 않았다.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의 역사가 이후로 끊임없이 쓰여졌다. 1997년엔 김대중·김종필 후보가, 2002년엔 노무현·정몽준 후보가(정 후보 후에 지지 철회), 2012년에는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단일화 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2012년 문재인 후보는 낙선했다. 사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입장에서는 안 후보와의 단일화가 썩 반가운 주제는 아니다. 단일화설이 나온다는 의미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좁혀졌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후보 간의 지지율 추이는 과거에 비해 많이 좁혀졌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만해도 윤 후보는 야권의 압도적인 차기 대통령 감이었다. 지난해 5, 6월에 실시된 대통령 적합도 관련 모든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는 지금의 대선후보들을 크게 따돌리며 단독 질주했다. 지지율 급상승…선두권 합류 한계 ‘혼자는 어려워’ 어느 쪽 선택할까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리 의혹이 있는 정치계 인물 모두를 기소하는 강골 검사로 이름을 알렸던 윤 후보는 국민들에게 ‘공정과 정의’라는 기치로 큰 인기를 누렸다. 검찰총장 임기 시절 막바지에는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인기는 배가 됐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청와대 인사인 조국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조사하는 모양새는 윤 후보에게 공정하고, 정의롭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주는 동시에 야권의 정치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수개월간 이어진 ‘조국 수사 논란’은 윤 후보를 자연스레 야권의 잠룡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의 인기가 점차 사그라든 것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부터다. 공직자에서 정치인으로 직업을 한 번에 바꾼 윤 후보에게 정치인의 언행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선거운동을 이어갈 때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고, 정치부 기자들은 그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대중에게 여과 없이 전달했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나 ‘부정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발언 ‘개사과 논란’ 등 윤 후보는 정치인으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하며 유권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지지율 2%였던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에게 경선 막판까지 쫓기는 초접전 양상을 허용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경선 때의 실책은 윤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에도 이어졌다. “노동자 사망은 노동자 탓”이나 “부득이하게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전두환을 지지하는 호남 사람들도 많다” 등의 실언을 쏟아내며 당 안팎에서 윤 후보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 쏟아졌고, 이는 지지율 하락세로 이어졌다. 특히,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극심한 마찰을 겪을 당시에는 지지층인 ‘이대남’을 안 후보에게 내주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몇 주간 지지율 1위 자리를 허용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60%에 육박하는데도 여당의 후보에게 진다는 것은 윤 후보에게 매우 뼈아픈 지점이었다. 이는 “정권교체는 원하지만 윤 후보는 싫다”는 뜻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후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왔고, 이때 안 후보와의 격차는 많이 좁혀졌다. “안 후보와 단일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크게 대두된 것도 이때다. 국민의힘? 국민의당? 요즘 야권 대선 레이스 양상은 홍 의원과의 경선 때를 떠올리게 한다. 야권 후보 중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윤 후보가 미미했던 지지율의 안 후보에게 추격 받고 있는 중이다. 경선 레이스와 대선 레이스의 한 가지 다른 점은 안 후보를 이긴다 해도 대선의 ‘최종 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지율을 안 후보에게 빼앗겨 야권 표가 분열되면 이 후보에게 대권을 내어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윤 후보에게 단일화는 ‘달갑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숙제로 다가온다. 윤 후보에게 단일화는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인정하고, 승리를 위해서 야권의 선택지를 하나로 줄여야 하는 과정이다. 지난해만 해도, 윤 후보는 단일화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단일화에 대한 생각이 일절 없다”고 일관해왔다. ‘국힘 원팀’을 만드는 것도 버거운 상황에서 국민의당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견에 늘 난색을 표해온 것이다. 그러던 그가 지난 11일 “단일화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며 입장을 미온적으로 바꾸었다. 시험이 다가오자 숙제를 끝내는 학생처럼, 윤 후보도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 앞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을 서서히 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안 후보 측의 입장은 아직도 강경하다. 본인으로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수차례 단일화를 경험한 안 후보는 그때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쌓았다. 안 후보는 나름 큰 희생을 감수했는데, 그만한 결과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단일화의 기억을 회상한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그랬고, 2012년 대선 때도 그랬다. 안 좋은 기억 속에서 그는 항상 “안철수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16일 안 후보는 KBS 에 출연해 “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라는 말이 시중에 떠돈다고 하더라”며 “정권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이 어떤 후보가 더 적합한 후보인지, 더 확장성 있는 후보인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 말했다. 이어 “내가 야권의 대표선수로 나가야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고,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에게는 ‘중도 확장성’이라는 주요한 무기가 있다. 유권자들에게 안 후보는 보수색보다는 중도 색이 강한 후보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 자유롭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는 늘 대립각을 세워왔다. 따라서 안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정권교체를 한다는 명분도 서고, 보수당을 찍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도 된다. 안 후보는 현재 대선 레이스에서 지지율이 윤 후보에게 크게 밀리고 있지만, 야권 단일화 적합도에서는 윤 후보보다 10%포인트 넘게 웃돈다. 안 후보가 말했듯이, 야권 대선후보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또 양보? 당선 포기? 반면, 윤 후보에게는 조직력이 있다. 비례대표 3석이 전부인 국민의당과는 달리 국민의힘은 국회 106석을 확보하고 있다. 전국에 지역구가 있으며 선거운동을 할 인력도 압도적으로 많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대선에서 ‘이겨왔던’ 전례가 많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배출한 경험이 있다. 민주당과 대립하며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지, 전략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많은 데이터가 쌓여 있다. 또, 지지율 측면에서도 윤 후보가 안 후보보다 많이 앞서 있다.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로 올라온 안 후보지만, 국민의힘이 내홍을 끝내면서 윤 후보가 지지율을 거의 다 회복하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7일 이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총회 자리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며 원팀 의지를 굳건히 했다. 이후 홍보전에 이 대표가 큰 힘을 실어주며 하락세를 그리던 윤 후보의 지지율은 회복세로 접어들었다. 순항이 이어지는 윤석열표 대선호가 안 후보와 단일화하는 것은 여러 모로 명분에 맞지 않는 상황이다. 정계 전문가들은 ‘윤일화’도, ‘안일화’도 아닌 ‘무일화’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양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 단일화를 하려면 여러 이해관계들이 맞아야 하고, 희생정신도 강해야 한다. 김대중·김종필의 이른바 ‘DJP연합’ 때처럼 말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야권의 1위 대권주자로 달리고 있었다. 1997년 9월 가 공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 후보는 30%에 육박하는 지지율 받았고, 김종필 후보는 약 3%의 지지율을 받았다. 단순 수치만 봐도 10배가량 차이나는 것이었다. 단일화 없이도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김대중 후보였지만, 그는 김종필 후보에게 많은 부분을 양보하며 연합을 이뤄냈다. 김대중 후보가 김종필 후보 자택에 직접 찾아가 연합할 것을 제안하면서다. 현재의 안 후보처럼 아쉬울 게 없다며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던 김종필 후보는 김대중 후보를 만난 후, 연합에 동의하며 김대중정부에 들어가 일할 것을 약속했다. ‘실리냐 고집이냐’ 딜레마 완주하고 지방선거 출마? 김종필 후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양보’ 덕분이었다. 이날 DJP연합 논의에서 김종필 후보는 내각제 개헌과 경제 부처 인사권이 보장된 ‘실세형 총리’의 자리를 약속받았다. 후에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국민의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실제로 김종필 후보가 지명한 인사로 채워졌다.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표적인 예다. 윤 후보가 안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키려면, 안 후보에게 많은 것을 양보한 단일화를 제안해야 한다. 김대중 후보가 그랬듯, 차기 정부 인사들의 일부 인사권을 넘겨주고 힘 있는 자리를 약속하지 못한다면, ‘윤일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후보만큼 윤 후보가 당내의 권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본인의 권력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윤 후보 혼자 당내의 반대를 무릅쓰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 후보 측 또한 김종필 후보처럼 윤 후보의 제안을 선뜻 수락하지는 않을 모양새다. ‘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선에 참여했다’는 기존 입장이 여전히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단일화를 하고 대선을 완주한 경험과 하지 않고 완주한 경험 모두 갖고 있다. 낙선을 하더라도 끝까지 대선을 완주해 이름값을 높인 뒤, 곧 있을 지방선거나 재보궐선거에 나가는 것도 그에게는 좋은 방법이다. 1997년 당시의 김종필 후보와는 달리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지지율이 높은 후보가 많은 것을 양보해서 지지율이 낮은 후보와 연합을 하는 ‘DJP연합’의 그림은 지금의 윤 후보와 안 후보가 ‘그려야 할’ 그림과 많이 닮아있지만, 맞지 않는 이해관계와 양보 의지가 없는 양 후보에게 ‘그릴 수 없는’ 그림이 돼있다. 국민의힘 이 대표는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저희의 지지층이 일시적으로 이전돼 수치가 상승한 것에 너무 고무돼 안일화 이런 말도 만드셨더라”며 “인터넷 가 보면 안일화보다는 간일화(간 보는 단일화)라는 단어가 더 뜬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다르다” 자신만만한 국민의힘 측의 입장과 안 후보에 대한 조롱이 섞인 발언이다. 이에 대해 안 후보는 “이 대표는 내가 무서운 것”이라며 “정치인들은 아무런 신경 쓸 게 없으면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위협이 될 때만 발언한다”며 맞받았다. 양측은 현재 단일화는커녕 갈등 양상으로 가기 직전이다. 여권 단일화는? 야권이 만일 단일화에 기적적으로 성공한다면 여권도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선거에서는 같은 색의 후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진보색을 강하게 띠고 있는 정의당의 심상정 대선후보 또한 여권 단일화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이 후보는 지난해 10월 “중요한 분기점인 내년 대선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기 때문에 개혁 진영이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한다”며 “여권 대통합을 해야 한다. 심 후보 본인은 완주 의지를 표명하는데,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그때 가서 우리가 함께 이길 수 있는 길을 국민이 제시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빙의 상황 속에서 상대가 단일화한다면, 개혁 진영도 뭉쳐야 한다는 게 이 후보의 의견이다. 그러나, 심 후보는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많은 국민이 ‘이런 대선은 본 적이 없다’며 혀를 차고 있다”며 “34년 양당 정치가 보여준 민낯의 끝판왕을 보여주고 있다고들 하신다. 그럼에도 염치없는 양당정치는 또 차악의 선택을 강요하려고 단일화에 대한 미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율 정체에 따른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해산과 며칠간의 칩거 후, 심 후보의 입장도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심 후보가 대선을 끝까지 완주해서 얻는 정치적 자산보다 단일화로 얻는 정치적 자산이 더욱 크다면, 여권의 단일화도 완전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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