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벙커' 가출 청소년 아지트 실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1.08 15:40:50
  • 호수 13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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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붙일 수 있다면…”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청소년들에게 가출은 단순히 집을 나왔다는 의미가 아니다. 집 밖으로 나온 청소년은 흉흉한 세상에서 범죄에 쉽사리 노출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가출 청소년을 보호해주기 위해 청소년쉼터도 있긴 하지만 이용률은 높지 않다.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이 주로 찾는 장소는 어디일까?

청소년 가출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 비행 청소년이 행하던 작은 일탈들이 상습  가출 및 장기화로 대형 범죄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리로 나오는 그 순간부터 각종 위험들과 마주친다.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고, 때론 성매매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2021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기준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무려 총 11만5741명으로 조사됐다. 청소년의 가출 원인의 가장 큰 이유는 가정불화 및 부모와의 갈등이었고, 다음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 학교폭력, 성폭행 등 순이었다.

통계에서도 가출 원인 중 가정환경 요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듯이 ‘가정의 안전’이 그만큼 중요하다. 

바닥 누워
전화 통화

▲무인점포 = 최근 가출 청소년들의 활동 장소로 무인점포가 떠오르고 있다. 24시간 영업인 데다가 주인도 없기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24시간 무인점포 근황’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24시간 운영되는 한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에서 밤을 보내는 10대 사진이 첨부됐다.  


청소년들은 비어 있는 무인점포를 사실상 점거했다. 셀프 계산대 위에 앉아 있거나 심지어 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바닥에 누운 채 전화통화를 하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전선을 길게 연장해 휴대전화를 충전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글쓴이는 “동네 중·고등학생이 새벽에 갈 곳이 없으니 24시간 무인점포를 아지트로 쓴다”며 “동네의 24시간 매장에 다 저러고 있다. 업주들은 골치를 앓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이튿날 새벽 시간까지 무인점포에서 머물다 떠났다. 가게 주인이 뒤늦게 CCTV를 통해 이 모습을 확인했지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이 가게뿐 아니라 무인 편의점·빨래방 등 다른 24시간 점포도 같은 피해를 입었다. 

막상 무인점포 점주들 얘기은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한다. 무인점포를 노린 절도 범죄가 기승인데다, 심야에 가출 청소년이 가게에 들어와 영업을 방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지만 정작 점주가 종일 CCTV를 들여다보는 ‘원격 노동’을 해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모텔 = 무인모텔이나 숙박 앱은 10대가 이용할 수 있고 미성년자 확인 절차도 까다롭지 않다. 이 때문에 무인모텔은 가출 청소년 투숙이나 청소년 이성 간 성적 목적의 출입, 청소년 대상 성매매 등 범죄 장소로 많이 악용되고 있다.

무인모텔은 결제기에 돈만 넣으면 카드로 된 열쇠가 나온다. 신분증 확인을 위한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신원 노출, 개인정보 보호 등으로 신분증 노출을 꺼리는 사람이 많아 실제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숙박 앱 이용 일행끼리 모여 활동
음료 한 잔 주문 시간 제약 없어


숙박 앱 업체도 중개만 해줄 뿐 청소년이 모텔을 이용한다고 해도 법적 책임은 없고 현행법상 고객이 미성년자인지를 확인해야 할 의무는 업주에게 있어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들은 “남녀 혼숙도 아니고 동성끼리 낮에 모텔에 들어가 놀다 오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라며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아 숙박 앱을 이용하면 출입이 더 쉽다”고 말했다.

박옥식 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은 “무인모텔이 가출 청소년에게 취약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예견돼왔다”며 “숙박업소 업주는 결제 전 성인인증을 거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하고 당국은 업소의 위생·청결 외에 청소년 보호에 초점을 맞춘 단속과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헬퍼 집 = 집 밖으로 나온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동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가출 청소년 모임 커뮤니티를 통해 같이 지낼 수 있는 동료나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가출한 청소년은 가출 모임 게시판에 성별, 나이, 지역을 밝힌 뒤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적는다. 

이들에게 생활비와 잘 곳을 마련해 준다며 유인해 성 착취를 일삼는 이른바 헬퍼가 가출 청소년에게 접근한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을 통해 ‘도움을 주겠다’며 다가가 자신이 사는 집에 빈 방이 있다며 가출 청소년을 도와주고 싶다는 식으로 유혹한다.

이들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겠다며 ‘헬퍼’를 자처한 성인들이 갑자기 돌변해 성폭행하기도 한다. 

평택에 거주하는 한 헬퍼는 “본인이 나 믿고 일하면 한 달에 돈 천 이상은 벌 수 있어요. 1억 벌고 나간 애도 있고”라고 말했다. 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수상한 도움의 손길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이용한다. 

또 다른 헬퍼는 성매매를 위해 오피스텔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퍼들은 아이들을 끌어들여 노래방 도우미, 마사지 등의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에는 전북에서 가출 청소년에 접근, 금품을 미끼로 성 착취를 시도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당시 SNS에서 만난 미성년자에게 “성관계는 50만원, 영상은 5만원을 주겠다”며 성관계, 신체 부위 촬영 등을 요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워줄게요”
성범죄 악용

성매매를 요구당한 가출 청소년이 살해당하는 사례도 있다. 2015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모텔에서 조건 만남을 하던 여중생이 성 매수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여중생은 가출 청소년으로, 당시 채팅 앱을 통해 접촉한 성매매 포주로부터 조건 만남을 알선받았다.

▲24시간 카페 = 아메리카노 한 잔만 시켜도 계속 머무를 수 있는 24시간 카페도 가출 청소년이 머물기엔 최적의 장소다. 미성년자라고 눈치 보지 않고 오랜 시간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출 청소년이 카페에서 주로 앉는 좌석은 카페 직원이 잘 오지 않는 구석으로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다가 잠이 오면 엎드려서 자면 그만이다. PC방, 찜질방과 달리 카페에는 미성년자도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가출 장소로 뜨고 있다.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아무래도 쾌적한 분위기에서 머물며 핸드폰 충전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심야 시간에 제약 없이 출입해 편한 의자에서 쉴 수가 있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카페 말고도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도 가출 장소로 자주 이용된다. 주문을 하지 않아도 눈치를 주지 않고 종이컵만 올려 놓으면 몇 시간을 버틸 수 있다. 

▲공·폐가 = 가출 청소년은 후미진 주택을 찾는다. 구멍가게 내부에 안방이 딸린 형태의 폐가는 안성맞춤이다. 이곳에는 가출 청소년 여럿이 모여 ‘가출 팸’ 생활을 하는 게 가능하다. 

가출 팸이란 청소년들이 모여 ‘동반 가출’한 후에 일행이 뭉쳐 함께 거주하는 모임을 말한다. 마음이 맞는 경우 아예 팸을 이뤄 3~4명이 공사, 폐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지내기도 한다. 청소년에게 ‘가출 팸’은 탈출구나 해방구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단 가출 팸이 구성되면 나이 등의 순서에 따라 아빠, 엄마, 오빠, 동생 등을 뽑아 역할을 분담한다.


이들은 오랫 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공가나 폐가에 모여 궁핍하게 산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가출 청소년 대부분은 수시로 집을 나갔다 들어오기 때문에 가정에서 실종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빈집이나 폐가는 가출청소년이 모여 절도 모의나 환각물질을 흡입하는 등의 장소로 이용될 우려도 있다. 또 상가건물 옥상에서 노숙하기도 한다. 심야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버스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들은 마을회관 옥상이나 공설운동장 구석, 상가건물 지하, 아파트 보일러실 등에서 자면서 밖으로 떠돌아야 하는 신세다. 

▲치킨집 = 치킨이나 피자 같은 배달 음식점이 가출 청소년 사이에서 새로운 아지트로 뜨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음식점 사장들은 배달 주문이 많아지자 배달원을 늘려야 했고,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미성년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신 잘 곳 없을 때 가게에서 자도 되느냐’는 요청이 온다. 돈은 전부 계좌에 있어 훔쳐 갈 것도 없으니 승낙을 해준다. 가출 청소년이 “가끔 친구를 데려와도 되느냐”고 묻자 사장들은 가게에 있는 라면도 끓여 먹으라며 인심까지 쓴다. 

세 사업자와 가출 청소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가출 청소년을 고용한 음식점 사장은 “옳지 않지만, 많이 힘들어서 내린 선택”이라며 “아이들은 큰 말썽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음식점서 숙식 해결
영세 사업자와 협의

잘 곳이 마땅치 않은 가출 청소년들은 배달원으로 일하는 치킨집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일해서 식사는 해결할 수 있지만 밤에 잠잘 곳은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갈 곳 없는 연말에는 성인 남성 집에 여러 명 얹혀살기도 한다. 남녀 청소년 3~4명이 머무는 대가로 여자 청소년들은 집주인과 성관계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각목(미성년 여자가 남성에게 성매매하겠다며 속이고, 다른 무리가 현장을 급습해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수법을 뜻하는 은어)’을 무서워하는 집주인이 늘어나면서 얹혀살기는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편의점 = 편의점도 가출 청소년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꼽힌다. 저렴한 음료 한 잔을 산 뒤 편의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핸드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편의점에 들어가 몸을 따뜻하게 녹인다. 

최근 들어 편의점들도 무인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2018년 12월부터 지난 8월까지 33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5만6000명 늘었다.

완전 무인은 아니더라도 낮에 직원이 근무하고 밤에는 무인으로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도 많아졌다. 

현행 아동복지법도 아동보호 시설에 입소한 청소년을 주된 지원 대상으로 규정한다. 아동보호 시설은 보호자와 상담해 사실 확인을 거친 청소년만 들어갈 수 있다. 청소년 쉼터는 이런 절차 없이 가출 청소년이 직접 신청해 들어간다. 

아동보호 시설에서 퇴소하면 임대주택을 지원받을 수 있다. 반면 청소년 쉼터에 입소한 청소년의 경우 2년 이상 지내고 만 18세 이상이어야 매입 임대주택 또는 청년 전세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문제는 청소년 쉼터에서 2년 이상 연속으로 지내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가출 청소년이 머무를 수 있는 정부 운영 ‘청소년 쉼터’는 전국에 135곳, 한 번에 입소 가능한 최대 수용 인원은 1369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10만명 이상 거리로 쏟아지는 청소년들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년 약 2만4000명의 청소년이 실종·가출 등으로 신고된다. 신고되지 않은 가출 청소년까지 포함한 여성가족부 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 가출 청소년 규모는 연간 약 12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당시 여성가족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인터넷에는 가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출카페’가 수십 개씩 나온다”며 “2020년 9월에는 가출 여성 청소년 9명을 상대로 ‘잘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유혹한 뒤 성매매를 알선하고 강요한 일당이 검거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쉼터 확대와 더불어 주거환경 개선을 통해 가출 청소년이 적극적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청소년 쉼터
규모 부족해

황진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출간한 ‘가출청소년 지원 강화를 위한 청소년복지시설 재구조화 연구’에서 “청소년기 가출 행동은 원인이 매우 다양하고, 쉼터에서 생활하기가 여의치 않거나 당사자가 쉼터 입소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 쉼터가 과밀이나 사생활 보장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적인 환경을 개선하면 쉼터 이용이 용이해질뿐만 아니라, 입소 청소년 심리·정서 안정에 기여해 자립 지원 효과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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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