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치열한 아파트 포기해?

청약통장이 없어도 청약 가능한 분양단지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종의 풍선효과로 수도권 아파트 청약경쟁이 치열하고 가격 또한 매섭게 오르면서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등 규제가 적은 주거용 상품으로 수요자들이 눈길을 돌리고 있다.

분양시장에서 청약통장 없이 분양이 가능한 주거용 상품은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민간임대 아파트, 타운하우스, 도심형 전원주택·전원형 빌라 등이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경쟁이 치열하고 구입 비용이 많이 드는 아파트에 비해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주거용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들 상품에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평면이나 주차장, 커뮤니티 시설, 조망권 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오피스텔

수도권 지역 내 아파트 공급 부족 현상으로 청약 당첨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대체 주거상품으로 공급되는 주거용 오피스텔에 수요자들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청약 제한 및 부동산 규제와 관련해서 비교적 자유로운 데다 아파트 못지않은 상품성을 갖춰 주거용 오피스텔로 시선이 향하고 있다.

아파트와 달리 청약 통장 및 가점 등과 무관하며 주택 보유 수에 포함되지 않아 무주택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공급되는 주거형 오피스텔들은 투룸 이상인 경우가 많고 붙박이장, 드레스룸 등 수납공간과 복층, 테라스, 다락 등 특화설계도 다양하게 도입되고 있어 주거 대체상품으로 떠올랐다.


청약통장 필요 없는 주거용 상품 각광
규제 적고 시설 좋아 수요자들에 인기

주거용 오피스텔은 청약 시장에서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의하면, 올해 청약 접수를 진행한 오피스텔 중 주거 대체가 가능한 전용 40㎡ 이상 세대는 총 8479실 모집에 18만2683건이 접수(9월1일 기준)돼 평균 21.5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9월 경기 광명시에서 분양에 나선 ‘광명 퍼스트 스위첸’은 평균 36.7대1, 최고 150.8대1이라는 높은 경쟁률로 전 호실 마감에 성공했다.

높은 수준의 프리미엄(웃돈)도 형성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시의 ‘힐스테이트 광교’전용 53㎡은 지난 9월 8억3700만원에 거래됐다. 약 한달 만에 1억7700만원이나 올랐다.

 

▲평택 고덕 2차 아이파크= HD C현대산업개발이 경기 평택시 장당동 153-1번지 일원에 ‘평택 고덕 2차 아이파크’오피스텔을 분양한다. 지하 5층~지상 29층, 2개 동으로 ▲A타입 전용면적 24.92㎡ 756실 ▲B타입 전용면적 31.09㎡ 588실 ▲C타입 전용면적 52.15㎡ ▲D타입 전용면적 52.43㎡ ▲E타입 55.03㎡ ▲F타입 전용면적 62.21㎡ 등 총 1480실 규모로 이뤄진다.

생활주택

도시형 생활주택은 서민과 소형 가구의 주거 안정을 위해 도시 지역에 공급되는 주택을 말한다.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통장 유무와 관계없이 청약이 가능하고 당첨자도 무작위 추첨으로 가린다. 청약가점이 낮은 2030세대는 일반 매매나 아파트 청약보다 내 집 마련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당첨이 돼도 당첨자 자격에 따른 청약 제한을 적용받지 않는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청약 당첨 당사자와 세대원은 5년간 투기과열지구에서 1순위 자격이 제한되고 주택 유형에 따라 재당첨이 막히는 등 청약 참여 기회가 줄어든다. 하지만 도시형 생활주택은 서민의 주거 안정 목적으로 도입돼 이 같은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


청약시장 완판 행진
높은 수준 프리미엄

거주 환경도 준수하다. 오피스텔과 달리 주택법이 적용돼 전용률이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이며 발코니 등도 설치할 수 있다. 일반 연립주택에 비하면 가구 수도 비교적 많은 편이라 공동 편의시설이 갖춰지는 경우도 있다. 도심 내에 지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대중교통 접근성도 좋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도시형 생활주택 1074가구 분양에 총 2만1309명이 신청했다. 평균 경쟁률은 19.84대1로, 지난해 연간 경쟁률(9.97대1)의 2배에 육박한다.

수도권에서는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상반기 807가구 분양에 2만여명 넘게 몰리며 25.32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6월 입주자를 모집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힐스테이트 수원 테라스’전용면적 55㎡ 타입은 경쟁률이 274.82대1까지 치솟기도 했다.

 

▲등촌 디앤써밋=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도시형 생활주택 26가구, 오피스텔 42호실,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구성되는 ‘등촌 디앤써밋’이 분양 중이다. 우수한 입지와 굵직한 호재, 고급 특화설계 적용 등 다양한 장점을 갖춘 등촌디앤써밋은 차원이 다른 하이엔드 콤팩트하우스로 원룸·1.5룸·투룸 등 전 세대에 복층형 특화설계를 도입했다.

민간임대

민간임대 아파트는 임대주택 확대 보급과 집값 안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됐다. 10년간 시세 대비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하고 10년 후 분양받을 수 있는 아파트로, 분양아파트와 임대아파트의 장점만을 담았다.

분양아파트에 비해 목돈이 들지 않고 적은 자금으로도 안정적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 내 집처럼 살지만 임대아파트라 취득세와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이 없고 분양 전환 시 감정평가금액 80% 정도의 합리적 가격으로 취득 가능해 시세와 비교할 때 투자성도 뛰어나다.

임대료 상승률도 2년간 5% 이내로 제한된다. 청약자격 제한이 없다는 것도 특별한 혜택이다. 공공임대아파트는 당해 지역의 무주택자만 청약이 가능하고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한 정식 청약절차에 따라야 해 자격조건이 까다롭다. 단위 세대의 면적도 소형이 대다수라 가족 규모에 따라 선택에 제약도 크다.

하지만 민간임대아파트는 청약제도와 무관해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주택 소유 유무와도 상관없어 유주택자도 청약할 수 있다. 거주지역 제한도 없어 19세 이상인 국민이면 누구나 청약이 가능하고 전매 제한도 없어 전월세 형태의 재임대도 가능해 투자상품으로서도 인기를 누린다. 임대보증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을 받게 돼 안전하며 분양 전환 후에는 양도소득세 면제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안성 금호어울림 더프라임= 민간임대아파트인 ‘안성 금호어울림 더프라임’이 공급된다. 안성시 당왕동에 지하 2층~지상 29층, 12개동, 전용면적 59~84㎡, 총 1240세대의 대단지로 구성된다.

최대 임대 보장기간은 10년으로 임대료 상승률이 5% 이내로 제한된다. 임차기간 내에는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등 세금 부담이 없다. 입주는 2024년 1월 예정.


타운하우스

타운하우스를 찾는 수요자도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여유로운 공간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쾌적성에 대한 니즈가 커지면서 숲세권·공세권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 이를 갖춘 타운하우스에 대한 인기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운하우스는 여유로운 공간과 주거 쾌적성에서 상당한 강점을 지닌 상품으로 분류된다. 타운하우스는 테라스나 복층, 정원 등 넉넉한 서비스 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산, 숲, 공원 등이 둘러싸 프라이빗한 경우가 많다.

이 상품들은 테라스나 정원 공간에 수영장이나 텐트를 설치해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다. 추가로 구성되는 다락방, 알파공간에는 영화관이나 재택근무를 위한 오피스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 선보이는 타운하우스의 경우 실용성까지 높인 곳이 많아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요 수요층은 대형·고급화로 인해 은퇴자들이나 자산가들이었다. 전용 84㎡ 위주의 평형에 아파트 같은 편리한 시스템으로 쾌적함도 갖춘 주거상품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테라스하우스는 분양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공급된 타운하우스인 ‘쌍용 더 플래티넘 종로 구기동’은 최고 24.9대1로 청약을 마감했다. 이어 10월 경기도 파주시 운정신도시에서 공급된 ‘운정 아이파크 더 테라스’도 1순위 청약에서 평균 6.6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올해도 타운하우스 인기는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올 상반기 경기도 고양시 삼송지구에서 공급된 ‘힐스테이트 라피아노 삼송’은 평균 8.3대1, 최고 55.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높은 인기에 시세 상승도 가파른 편이다. 그동안 타운하우스는 시세가 크게 오르지 않는 상품이란 인식이 컸는데, 최근 인기가 높아지면서 이런 과거 인식을 바꾸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김포시 운양동에 위치한 ‘자이더빌리지어반 5단지’전용 84㎡는 2017년 분양 당시 분양가가 5억70 00만원대였다. 지난해 11월 8억8000만원에 실거래가로 진행돼 약 3억원이 올랐다. 네이버부동산 기준으로 현재 매물은 9억~10억원대까지 나오고 있다.

 

▲김포 힐스테이션= 경기도 김포 한강신도시 석모리 운유산 자락에 조성돼 본격 분양에 들어간 기흥종합건설의 김포 전원주택 ‘김포 힐스테이션’타운하우스가 구조가 다른 세 가지 타입으로 조성된다. 전 세대 한강 조망권을 가지고 선착순 분양 중이다. 60세대의 전원주택 대단지로 들어서게 되는데, 주택 전문가를 통해 설계 완성된 A, B, C 타입 구조 중 한 가지를 선택해 건축을 할 수 있다.

전원형 빌라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면서 아파트를 대신할 도심형 전원주택이나 전원형 빌라 단지도 주목을 받고 있다. 과거 전원주택이나 전원형 빌라는 높은 분양가와 대형 평형 위주로 공급해 3040세대에겐 막연한 꿈이었다. 또 자녀 교육, 출퇴근 및 생활기반시설 부족 등의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심에 자리 잡은 3억~5억원대 ‘실속형’전원주택과 전원형 빌라가 공급되면서 꿈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 도심형 전원주택이나 전원형 빌라는 편안한 주거생활과 향후 지가 상승 측면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일수록 공동시설과 편의시설이 인접한 곳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수동 엘림하우스= 관악구와 금천구 등 서울과 인접한 안양 석수동에 대단지 단지형 연립주택인 ‘엘림하우스’가 1단지, 2단지를 후분양 방식으로 분양에 나선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123번지, 126번지에 1단지 48세대(6개동), 2단지 49세대(7개동) 총 12개동, 96세대를 공급한다. 주차는 세대당 1주차가 가능하다.

1단지는 전용면적 기준 52.94  ~77.88㎡이며 2단지의 경우 62.54~82.05㎡ 실입주금(대출가능금액은 개인 신용에 따라 변동가능성은 있음)은 1억600만원부터 시작해 최대 2억1800만원 선까지 다양하다. 실사용 면적이 약 72.73㎡(22평) 내외로 방 3개, 거실, 욕실 2개 구조라 신혼부부나 어린 자녀를 둔 초혼부부에게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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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