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리더십 리스크 막전막후

샅바만 잡고 있다가 진짜 싸움 끝날라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투스톤’의 공방으로 국민의힘이 연일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민심은 이준석 대표의 판정패. 각종 난제들로 이 대표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야권이 이대로 분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의힘이 녹취록 파문 등 각종 내홍에 시달리면서 ‘이준석 리스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대표는 “경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분란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한 발 물러난 상태다. 하지만 당의 자중지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내 갈등의 불씨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다.

내홍에
힘겨루기

지난 4월 이후 국민의힘은 연일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여당을 누른 후 당은 승승장구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당 대표가 당선됐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론이 부상했다. 

이 대표는 정권교체를 위한 적임자로 자리 잡는 듯했다. ‘영남당’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탈피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대변인 토론 배틀과 같은 신선한 시도 역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국민의힘은 두 달 만에 11만명의 당원을 모으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최근 이 대표와 야권 1강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기싸움’으로 민심이 식어가는 양상이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는 응답은 47%, ‘정권 재창출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9%였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 당시 해당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각각 55%, 34%로, 21%에서 8%로 격차가 좁혀진 상황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참조). 

둘의 갈등은 지난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표가 ‘정시 출발론’을 내세우며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연일 압박했을 당시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일 입당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입당 예정 사실이 유출되자 다음 날 전격 입당을 단행했다. 

유례없는 당 대표-대권주자 ‘1강’ 갈등
각종 대리전에 민심 싸늘…당 자중지란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 대표가 호남에 출장 차 내려갔다. 이 대표는 윤 전 총장의 입당 소식을 다른 인사들을 통해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거진 ‘당 대표 패싱론’은 둘의 갈등에 결정적인 화근이 됐다. 

이후 이들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윤 캠프 신지호 정무실장의 ‘탄핵’ 발언에 이어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의 ‘통화 녹취록’ 파문까지 터지면서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단체가 규탄대회를 열고 이 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윤 캠프는 “우리와 무관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비대위 추진설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윤 전 총장 측에서 이 대표 체제를 대신한 비대위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 대표는 불쾌함을 토로했고, 윤 전 총장은 비대위 추진설에 대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황당무계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의 세력으로 꼽히는 ‘유승민계’도 반격에 나섰다. 유 전 의원은 지난 24일 윤 전 총장을 향해 “정권교체를 하러 온 건가, 아니면 당권 교체를 하러 온 건가”라며 공개 저격했다. 대권후보가 ‘대리전’에 나선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 대표의 측근은 현재 유승민 캠프에 대거 몰려있다. 당내 주요 보직에는 이 대표의 측근이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가 스스로 ‘유승민계’라는 눈총을 의식해 거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투스톤
대리전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이 대표에게는 ‘공정성’ 시비가 늘 따라 다녔다. 계파가 뚜렷한 그가 경선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이 대표는 “내가 당 대표가 되면 오히려 유승민이 가장 불리해질 것”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유 전 의원에 대한 이 대표의 각별한 애정은 정계 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 전 의원은 이 대표의 부친과 두터운 관계다. 이 대표는 유승민 의원실에서 인턴 경력을 쌓았고, 이를 발판 삼아 박근혜정부의 비대위원으로 정계에 데뷔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윤석열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지구를 떠나야지. 유승민 대통령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준석=유승민계’ 공식이 다시 한번 강조되자 정계는 들썩였다.

당 대표와 이례적인 갈등에 윤 캠프 측은 “개별 구성원의 발언을 일일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식의 해명을 내놨다. 민심 역시 윤 전 총장으로 기울었다. 최근 이 대표와 당내 대권주자 간 갈등이 불거졌던 것을 두고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선 ‘이 대표의 책임이 크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알앤써치가 <매일경제>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 대표와 윤석열, 원희룡 등 일부 대선주자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데 누구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당 지지층 중 35.1%가 이 대표를 지목했다. 대표와 후보 모두의 잘못이라는 응답이 23.7%로 뒤를 이었다(자세한 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참조).

줄줄이
판정패

이외에도 이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다. 최근 정계에 떨어진 ‘부동산 폭탄’이 대표적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4일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로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된 의원 12명 중 절반에 대해서만 징계 조치를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 대표의 리더십이 난관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는 당 대표 선출 후 부동산 문제에 대해 여당보다 더 엄격한 기준과 징계를 예고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에서만큼은 선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보다 다소 낮은 처벌 수위로 인해 이 대표가 당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더해 이 대표는 국민의당과의 합당 역시 실패한 상태다. 합당은 야권 단일화를 위한 이 대표의 핵심 과제였다. 이대로면 국민의당이 주축이 되는 제3지대와 중도층 표심 경쟁을 해야 한다. 사실상 야권 분열인 셈이다.

그간 이 대표와 안 대표는 지난한 ‘샅바싸움’을 이어왔다. 안 대표는 지난 16일 회견을 열어 “통합을 위한 노력이 여기서 멈추게 됐다”고 선언했다. “상처를 입었다”는 감성적인 호소까지 더해졌다. 

국민의당 합당 결렬…멀어지는 보수통합
“골든타임 놓칠라” 이대론 정권교체 필패?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이 대표가 안 대표에게 합당에 관한 양자택일을 공개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예스(Yes)냐, 노(No)냐만 답하면 된다” “정상적인 언어로 소통하자”며 강압적인 태도로 국민의당의 감정을 건드렸다.

이 대표가 속으로는 협상 결렬을 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당내에서 이 대표를 향한 질타도 나왔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준석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 대표가 워낙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직접 협상하겠다고 하길래 정말 그걸 믿고 있었는데 공격하고 끊고 일주일이 지나니까 국민의당 측에서 협상 결렬 선언을 해버렸다”고 비판했다. 


당내 대권주자인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역시 “분열은 공멸이다. 감정싸움할 때가 아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더라도 다시 하시라”면서 “당 지도부의 노력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한다”고 했다.

안 대표의 독자 대선 출마로 국민의힘은 야권 분열의 리스크 하나를 안게 됐다. 제1야당으로서 ‘범야권 플랫폼’을 자처한 게 무색해진 양상이다. 당 밖에선 제3지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안 대표는 최근 대권 출마 의사를 밝힌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향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안 대표와의 연대에 선을 그었지만, 야권 분열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3지대
야권 분열?

야권 통합은 대선 승리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꼽힌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진보진영 득표율은 47.25%이고 보수진영의 득표율은 52.2%였다. 야권에서는 당시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의 단일화 실패를 뼈아픈 실책으로 기억되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