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갑론을박 '말 많은' 장애인이동센터 무슨 일이…

“어두운 괴물 뱃속에 갇혀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주변이 너무 어두워 불을 켰다. 조금 밝아지나 싶더니 이내 꺼졌다. 이번에는 주변 사람들과 같이 불을 밝혔다. 하지만 또 꺼졌다. 거듭된 시도에도 어둠은 가시질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괴물의 뱃속에 있다는 것을….

“내가 군청 앞에서 분신자살이라도 해야 내 말을 믿어줄까요?” 모든 직장인이 ‘전태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전태일’은 직장에서 태어난다. 평범했던 월급쟁이 직장인이 노동법을 줄줄 읊는 투사가 되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범했는데
노동투사로

박주연씨는 대학에서 보건복지학을 전공했다. 2015년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장애인이동센터)에 지원할 때도 사무원을 희망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장애인이동센터는 센터 업무를 총괄하는 센터장, 상담업무와 차량예약, 회계 등을 담당하는 사무원, 운전을 맡는 운전원 등으로 구성된다.  

당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직원은 총 4명. 박씨는 사무원 대신 운전원으로 일했다.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2호차’를 맡은 박씨에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거의 모든 배차가 몰렸다. 차에서 내릴 시간도 없이 종일 운전을 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직원이 4명뿐인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박씨는 말 그대로 왕따였다. 8세 어린 동료 사무원은 박씨에게 ‘너’ ‘2호차’ ‘사형감이다’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당시 진도군 지회장을 겸하고 있던 센터장은 직원 회의에서 ‘개 같은 ○’ ‘멍청한 ○’ 이라고 욕했다. ‘스스로 못 견뎌서 사표 쓰게 만든다’ ‘모가지를 딴다’ 등 지속적인 모욕과 욕설, 고성이 박씨를 향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박씨는 투명인간이었다. 법정의무교육이나 행정사무 감사자료,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 모든 구성원이 받아야 할 교육이 박씨의 유급휴가 기간에 이뤄졌다. 박씨를 징계하기 위한 징계위원회도 수시로 열렸다.

징계위원조차 반복적인 징계위원회 소집에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박씨는 2019년 전라남도 인권센터를 찾았다. 그는 동료 사무원과 지회장 겸 센터장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인권침해 관련 진정을 제기했다. 녹음 파일, 문서 등 그동안 모은 자료를 도민 인권보호관에게 건넸다. 도 인권센터는 지난해 5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박씨의 진정 내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5월27일 도 인권센터는 지회장 겸 센터장의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내리고, 신청인(박씨) 구제를 위해 유급휴가와 심리치료 제공 등 필요한 조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도 인권센터의 이 같은 시정권고를 따르지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터져
센터장 채용·보조금 논란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조치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지난해 12월 2차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면서 도 인권센터를 다시 찾기에 이른다. 도 인권센터는 조사 결과 박씨가 ▲지속적인 폭언과 욕설, 험담 ▲업무 배제 등을 당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전보다 근무환경이 매우 악화됐다고 봤다. 그러면서 지난 3월31일 박씨의 2차 진정 내용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두 번에 걸친 도 인권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시정권고 등에도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박씨가 신청한 유급휴가를 허가하지 않고, 징계위원회 소집을 진행하는 등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도 인권센터의 결정에도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8건이나 제기하는 등 반발했다.

도 인권센터 관계자는 “피신청인들은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충분한 소명 기회를 제공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직접 찾아가 소명을 받는 과정에서 피신청인이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기다림 끝에 답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9년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무용지물이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실제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도 인권센터, 언론, 시민단체 등이 비판과 지적의 창끝을 들이 밀어도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방패로 방어하고 있다.

도 인권센터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진정 사건을 여러 건 담당하고 있는데, 시정권고를 이렇게까지 이행하지 않는 곳은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노무사, 시민단체 관계자들 역시 “한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라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지난 3월 도 인권센터의 결정이 나온 이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통해 자신의 사정을 알리려 노력했다. 많은 언론에서 박씨의 이야기를 보도했고, 시민단체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그를 지원했다. 박씨는 보건복지부, 진도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진도군 지회 등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두 번이나
괴롭힘 인정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박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여러 기관들의 외면은 박씨의 고립으로 이어졌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지난달 18일 “근무태도가 불성실하고 직무명령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응했다”며 박씨에 대해 정직 3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기존의 인사위원들을 교체하면서까지 강행한 징계위원회 결과였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운영위원은 인사위원을 겸직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인사위원들이 갑자기 해촉됐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이의신청을 하려다가 안 했다. 어차피 해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더라. 나만 바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 대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직 3개월 기간 동안 월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박씨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은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다. 

박씨는 징계 의결 전날인 지난달 17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복지 노동자들에게 제도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문제는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에서 일어난 사건이 단순히 한 지회만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박씨 사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관계자들은 장애인이동센터의 구조적인 문제를 뜯어 고쳐야 한다고 비판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문제가 빙산의 일각이고, 어딘가에 또 다른 ‘박씨’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이동센터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도에 지부를 두고, 다시 지부가 시·군에 둔 지회에서 운영된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경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의 진도군 지회에서 운영하는 식이다. 각 지회의 지회장이 장애인이동센터 센터장을 겸임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시·군 지회장은 전맹(시력이 0으로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시각장애인이 맡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이동센터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센터장이 눈이 보이지 않아 상황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봤다. 그러다보니 주변 관계자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경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지적에도
요지부동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경우도 진도군 지회장이 센터장을 겸임했는데, 당시 지회장이 전맹 상태의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한다. 도 인권센터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는 시각장애인보다 상황 파악에 용이한 사람을 센터장에 채용하는 방식을 권고했다.

기존에 무급 명예직이었던 센터장 직급을 유급으로 바꿔 월급을 지급, 장애인이동센터 운영에 좀 더 적합한 인재를 뽑자는 취지다.

진도군에서 이를 받아들여 지난 3월 장애인이동센터는 센터장 공모 절차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도 잡음이 발생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직원 김모씨가 센터장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자신이 입후보하는 일이 일어난 것.


이른바 ‘셀프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총 3명이 센터장에 지원했지만 관계자 사이에서 2명은 들러리라는 말이 심심찮게 새 나왔다.

김씨가 박씨의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가운데 1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씨는 “센터장에 지원한 김씨도 나를 괴롭힌 게 맞다. 전임 센터장, 직원 2명 등 총 3명이 나를 괴롭혔다”며 “채용 과정에서 김씨가 센터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여러 차례 항변했는데 결국 (김씨가)뽑혔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씨는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박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3명 가운데 2명이 지회장과 센터장을 맡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센터장을 겸임했던 진도군 지회장이 김씨를 센터장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센터장의 권한이 막강한 만큼 가까운 사람을 센터장에 앉혀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는 소문이다. 

진도군과 도 인권센터에 센터장 채용 문제로 민원이 제기됐다. 민원인은 ▲전임 센터장이 면접관으로 면접을 본 점 ▲김씨가 사표를 내지 않고 센터장 후보에 지원한 점 ▲면접 과정이 공정했는지 여부 등을 진도군에 질의했지만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도군은 김씨의 센터장 취임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지회장 센터장 겸임
소극적 태도 사실관계 부정

진도군이 장애인이동센터에 지원한 보조금을 두고도 여러 지적사항들이 나왔다. 진도군은 장애인이동센터에 연 1억4000만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이 돈을 인건비, 차량 수리비, 유류비 등으로 사용한다.

진도군의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관련 운영 및 보조금 조사결과 보고’에서 장애인이동센터는 여러 가지 운영상 문제점을 드러냈다.

2018년과 2019년 예산 편성 과정에서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에서 규정한 서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또 편성 예산에 대한 공고 의무도 어겼다. 분기별 1회 이상 개최해야 할 운영위원회 정기회의도 개최하지 않았다. 

‘전라남도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운영규정에 따르면 운영위원회는 분기별로 정기회의를 개최하도록 돼있다. 운영위원들은 운영위원회를 통해 ▲운영 계획의 수립·평가 ▲종사자의 근무환경 개선 ▲종사자와 이용자의 인권보호 및 권익 증진 등을 논의한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는 올해도 운영위원회를 전혀 개최하지 않았다.

직원이 4명에 불과한 작은 단체에서 ▲직장 내 괴롭힘 ▲센터장 채용 논란 ▲보조금 문제 등 총체적인 문제가 발생했지만 진도군은 물론 상위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진도군 지회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등 박씨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진도군의 소극적인 행정이 일을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관계자들은 진도군이 매년 장애인이동센터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만큼 회계뿐만 아니라 인사, 직원 채용 등에 있어 확실한 관리·감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이동센터가 진도군의 시정 조치를 따르지 않을 경우 ‘시설 폐쇄’ 등 강경한 대응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진도군청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박씨에 대한)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센터장 채용 건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보조금 문제도 최근 진행한 회계감사 결과를 장애인이동센터에 통보했고, 시정 조치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지부 등은 진도군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각각 “잘 모른다”거나 “규정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인사권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 전남지부에 문의해보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남지부는 “사건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만, 운영규정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진도군 지회에 물어보라”고 전했다. 

진도군 지회 관계자는 “박씨의 주장은 전부 허위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박씨를 포함한 직원 2명이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피신청인이)박씨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발했다는 점만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 인권센터 결정에 대해서는 “(도 인권센터에서)제대로 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의 상위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노총 법률원 광주사무소 홍관희 노무사는 “이 사건이 진도군 장애인이동센터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인사업주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현재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대한 근로감독을 청원한 상태”라고 말했다.

미루고
또 미루고

이제 박씨에게 이 사건은 더 이상 개인만의 일이 아니다. 박씨는 자신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사명감으로 힘겨운 사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차라리 센터를 그만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내가 지금 그만두면 모든 것을 잘못한 사람이 된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가보겠다”며 “내가 선례를 만들면 어딘가에 있을 나 같은 사람이 언젠가는 도움을 받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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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