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종착지는? '널뛰는' 이낙연 지지율의 비밀

다시 뜨는 ‘어대낙’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맹추격’이 시작됐다. 이 전 대표는 1년 전 여야를 막론한 독보적 1위였지만, 당 대표 취임 이후 하락세를 걸었다. 그랬던 그의 지지율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진행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이 전 대표는 18.1%로 이재명 경기도지사(26.9%)의 뒤를 이었다. 지난달 말 16.9%(이 전 대표 11.5%, 이 지사 28.4%)의 격차를 보였던 것과 비교했을 때 절반가량 격차가 줄어든 결과다.

반등에 성공
대세 굳히기?

이에 더해 야권 유력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우위를 점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더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 전 대표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모든 국민이 중산층 수준으로 살 수 있는 삶을 보장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복지 계획이다.

또 그는 출마 선언에서 민주당 ‘원팀’ 정신을 강조했다. 민주당이 배출한 역대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할 의지를 보인 셈이다. 사실상 ‘민주당 적통 후보’임을 강조하려는 심산으로 읽힌다. 동시에 “상처받은 공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며 현 정부와 차별화 의지를 담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예비경선을 거치면서 상승세를 탔다. 경선 과정 내내 정치인의 품격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판도가 바뀌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특히 이 지사의 실수는 이 전 대표에게 기회가 됐다. ‘김 빠진 사이다’가 된 이 지사는 여권 경쟁자들에게 공세 수위를 조절했다. 하지만 여배우 스캔들을 두고는 “바지를 한 번 더 내릴까요”라고 말해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 지사의 다혈질 성격으로 민심을 잃었다는 평가다.

이 전 대표의 안정감은 돋보였다. 경쟁 후보의 발언이 구설에 오르면서 반사이익을 본 셈이다.

아울러 친문(친 문재인) 지지층 역시 이 지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국정경험을 내세웠다. 친문 세력과 보폭을 좁히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반면 이 지사와 친문 세력의 앙금은 여전하다.

이재명 ‘실점’에 바닥 찍고 상승세
1년 전 여야 독보적 1위, 지금은 왜?

이 지사에게 거부감을 갖는 친문 지지자들이 이 전 대표를 차선으로 택해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계에서는 이 전 대표의 자신감이 올랐다는 평이 나온다. 이 전 대표 캠프 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확산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예비경선 토론을 통해 안정감이 입증된 만큼 남은 고비를 잘 헤쳐 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전 대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인이다. 그는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동아일보>에서 21년간 기자 생활을 했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 지사는 기자 생활 동안 김 전 대통령을 전담한 바 있다.

이 지사는 5선 국회의원, 도지사를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던 중 노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대변인을 맡았다. 문정부에선 초대 국무총리이자 최장수 총리를 지냈다. 신중함과 균형감각·안정감이 강점이다. 유창한 언변과 덕에 ‘사이다 총리’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21대 국회 입성 후에는 민주당 코로나국난극복위원장을 맡아 코로나19 대응을 지휘했다. 이후 8월 전당대회에서는 60%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슈퍼 여당의 수장에 올랐다.

어쩌다
까먹었나

이 전 대표의 탄탄대로는 계속됐다. 민주당 총선 압승 후 실시한 2020년 4월 말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40%를 돌파했다. 4개월 뒤인 8월에 당권을 거머쥘 때만 해도 여야를 막론한 1위였다 ‘어대낙(어차피 대세는 이낙연)’이라는 명성에 걸맞았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이 전 대표였다. 하지만 당 대표에 당선된 뒤 문정부 레임덕과 맞물려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부동산 문제, 코로나19 방역 미흡 대응 등에 대한 성난 민심을 쉽게 잠재우지 못했던 것.

당 대표직을 1년간 수행하면서 정치 지도자로서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이 전 대표의 측근은 “민심을 잘 읽어 다수가 납득할만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장점을 당 대표 시절에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 전 대표의 강점은 위기 상황에서 약점이 됐다. 그의 ‘엄·근·진’(엄중·근엄·진지) 모습은 신속한 결단을 방해했다. “상황을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는 어록이 남을 정도였다. 과도한 신중함은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됐다.

미지근함은 민심의 신뢰를 얻지 못했고, ‘고구마 정치’라는 혹평이 잇따랐다.

언행으로 인한 논란도 있었다. “남자는 엄마가 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 나이 먹어도 철이 없다”는 발언이 화근이 됐다. ‘말에 강한’ 이 전 대표에게 특히 치명타였다. “철도 안 들었는데 왜 대선에 나오느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또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후  피해자를 ‘피해 고소인’으로 칭해 비판을 받았다.

특히 올해 초 이 전 대표의 사면론 거론은 ‘역대급 실책’으로 꼽힌다. 거론 이후 친문 지지자들의 집중 공격이 이어졌다. 이 전 대표는 “국민의 뜻과 촛불의 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지지율 급락을 막지 못했다.


엄근진
악수로

이 전 대표에게 이렇다 할 ‘세력’이 없는 점 역시 큰 한계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경선을 돕고 있는 캠프는 크게 친문, 호남, 언론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진짜 ‘동지’는 전무하다는 게 정계 중론이다. 이 전 대표는 의원 시절에도 측근을 두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양정철·노영민 등과 같은 ‘수족’이 있었던 것과 상반된다. 당 대표 임기 중 단기간에 ‘자기 편’을 만드려다 보니 삐걱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4·7 재보궐선거에 참패 이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당의 선거를 이끌었던 만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 대표 시절 당헌·당규를 개정해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와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한 책임도 받고 있다.

방침을 뒤집은 것이 악수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이 전 대표는 ‘반이재명 연대’의 구심점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로 꼽힌다. 1위 주자 견제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이 전 대표는 ‘2인자’ 이미지 탈피가 급선무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정세균 전 총리와 단일화를 이루는 것이 타개책으로 제시된다. 현재 당원 기반을 보면 이 전 대표는 전남 지지층이 특히 두텁다. 하지만 ‘이재명만이 윤석열을 이길 수 있다’는 시각이 팽배해지면 이 전 대표의 이탈표가 급증할 수 있다.

이 전 대표 자신의 독자적 지지층을 확보하지 않는 한 ‘반이재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사면론 결정타…당 대표 리더십 도마
일시적인 현상? ‘명낙대전’ 승자는?

이미 두 유력 주자간 이른바 ‘명낙대전’은 불이 붙은 양상이다. 앞서 정운현 이낙연 캠프 공보단장은 “대통령 부인은 공인인데 검증할 필요가 없다니. 혹시 ‘혜경궁 김씨’ 건과 본인의 논문 표절 건으로 불똥이 튀는 걸 우려하는 건 아닐까”라고 말했다.

이는 ‘결혼하기 전에 벌어진 일은 후보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 지사의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이 지사 역시 반격했다. 이 지사는 “나한테 가족 검증을 막으려는 거냐고 한 분이 진짜로 측근 또는 가족 얘기가 많지 않느냐. 본인을 되돌아봐야지 문제없는 저를 공격하면 되겠냐”고 이 전 대표를 정면으로 겨눴다. ‘옵티머스’ 연루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 전 대표 측근 등을 시사한 셈이다.

이 전 대표도 바로 응수에 나섰다. 이 지사를 겨냥해 “생각보다 참을성이 약하시다. (저의)지지율이 조금 올라간다고 그걸 못참고 벌써 그러시나”고 쏴붙였다.

이 전 대표는 현재 반등세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친문 여성 지지자들이 ‘NY(낙연) 재결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유튜브 ‘이낙연TV’ 구독자가 며칠 새 급증해 10만명을 돌파했다. 여성 전용 온라인 카페 회원들 중 이낙연 지지 뜻을 굳힌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지사 선두를 쉽게 꺾지 못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엠브레인퍼블릭외 3개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결과 이 지사(27%), 윤 전 총장(21%), 이 전 대표(10%) 등 1~3위가 큰 폭의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의 지지율 반등이 ‘일시적 바람’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두 차례 여론조사 결과로 예단할 수 없다는 것.

2인자
돌파구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경선 과정에서 이 지사에 대한 공격이 많아지면서 이 전 대표가 후보가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향후 이 전 대표에 대한 견제가 집중되면 이 추이가 그대로 계속될지는 의문”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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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