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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15일 17시38분

기업


신영증권 여의도 출신 사외이사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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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인 올리다 전직 국회의원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신영증권 사외이사 명단에 전직 국회의원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측은 후보자의 전문성에 주목했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견제 기능보단 대관업무를 감안한 결정쯤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십수년 넘게 이어진 내부인 출신 사외이사 선임 행보마저 재조명받는 양상이다.

사외이사 제도의 목적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 및 감시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본래의 감시기능 대신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한 거수기 역할에 그치곤 했던 게 현실이다. 방파제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특히 국회의원 출신 사외이사가 선임되면 외풍을 차단용 혹은 방패 역할을 기대한 인사라는 시각이 대두되곤 한다. 최근 신영증권의 사외이사 선임 움직임도 비슷한 맥락이다.

화려한 이력
진짜 목적은?

신영증권은 지난 6월25일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제67기(2020년 4월 1일~2021년 3월 31일) 재무제표 승인의 건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의 건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2인 선임의 건 등을 처리했다.

특히 지난 5월28일자로 임기가 만료된 신현걸·이병태 사외이사를 대신할 신규 사외이사 2인 선임의 건에 관심이 집중됐다. 두 사람은 2015년 5월 첫 선임됐고, 재선임을 거치며 사외이사 임기 6년을 꽉 채운 상태였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상장기업의 경우 사외이사 임기를 최대 6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신임 사외이사 후보에는 고봉찬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와 강석훈 성신여자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이름을 올린 상태다. 두 사람 모두 학계에 몸담고 있다. 

고 교수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 경영대학 학부와 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재무금융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경영대 증권금융연구소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한국거래소 주가지수운영위원장, 국민연금 투자정책전문위원, 한국증권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대백화점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경제통’ 전 국회의원 영입 왜?
정치권 외풍 차단 방패 역할?

1964년생인 강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우경제연구소에서 금융팀장으로 근무하다 성신여대에 몸담았다.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은 강 교수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이유로 작용한다. 강 교수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서울 서초을에 출마해 60%대 득표율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후 새누리당이 표방한 경제민주화 실현의 선봉에 섰다.

유승민 전 의원 더불어 이른바 ‘근혜노믹스’를 이끌어갈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강 교수는 18대 대통령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위원을 맡기도 했다. 후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으로 일하며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연금개혁에 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박성중 의원에게 밀려 공천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016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21대 총선에 도전장을 냈지만 또 다시 박 의원에게 재경선 끝에 공천권을 넘겨줘야 했다. 

대관 업무
선임 이유?

강 교수가 그간 보여준 정무적 감각은 금융투자업계가 원하는 사외이사 상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강 교수는 주변으로부터 이론적 전문성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초선 의원 신분으로 국회 기획재정위 간사를 맡았던 것도 그의 정무적 감각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강 교수가 신영증권 사외이사 후보에 오른 것을 두고 정치권 로비를 위한 창구 기능 차원의 인사쯤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상 대관업무까지 감안한 선임후보 추천이라는 시각이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치권 및 금융당국 출신 사외이사 선임 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25일자로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으로 인해 대관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고객들의 권익 보호를 확대하기 위해 시행되는 법으로 증권사가 판매원칙을 위반할 경우 징벌적 과징금 및 과태료 등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증권사와 고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증권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판매원칙 위반 시에는 판매액의 최대 50%에 이르는 ‘징벌적 과징금’과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입증책임 역시 증권사가 져야 한다.

거수기 논란
재점화 조짐

공교롭게도 강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이 결정되자, 꾸준히 제기됐던 신영증권 사외이사 독립성 논란이 또 한 번 부각되는 분위기다.

올해 3월 말 기준 신영증권 이사회는 사내이사 2인과 사외이사 3인으로 구성돼있으며, 사외이사가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상법상으로도 자산총액 기준 2조원 이상 상장회사는 3명 이상, 이사 총수의 과반을 사외이사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외이사 한 자리는 전직 임원이 채우고 있다. 지난해 6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임기 2년 연장이 결정된 장세양 사외이사는 내부인 출신이다. 주요 증권사 가운데 내부 임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곳은 NH투자증권과 신영증권에 국한된다.  

장 사외이사는 커리어 대부분을 신영증권에서 보낸 인물이다. 1989년 신영증권 입사 후 상무·전무 등 주요 직위를 두루 거쳤고, 2012년 리테일본부 총괄 부사장 자리를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10년 넘게 임원 출신 꽂기
견제는 뒷전…독립성 논란

회사와의 인연은 2018년 5월 사외이사 선임과 함께 다시 연결됐고, 장 사외이사는 2년짜리 임기 연장에 성공한 상태다. 현 임기는 내년 6월자로 만료되지만, 최대 6년인 연임 규정을 감안하면 한 번 더 재선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장 사외이사의 첫 선임 시기가 퇴직한 지 6년이 지났을 무렵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결격사유는 찾을 수 없다.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해 상법에서는 ‘최근 2년 이내 회사 업무에 종사한 이사·감사·집행임원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면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내부 임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뽑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립성 강화를 위해 자사 또는 계열사 출신 사외이사를 가급적 배제하고, 개방형 사외이사 추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외이사를 외부에서 채용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감시 기능

게다가 신영증권의 내부 임원 출신 사외이사 십 수년간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앞서 김부길 전 신영증권 대표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8년간 사외이사직을 역임했으며, 이종원 전 신용자산운용 대표 역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사외이사를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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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매질에 정신병원까지…<br>천주교 산하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고발

[단독] 매질에 정신병원까지…
천주교 산하 '꿈나무마을' 아동학대 고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제부터 이곳이 나의 집이라 했다. 이제부터 이 사람들이 나의 부모라 했다. 하지만 철들기 전부터 알았다. 집에는 온기가 없었고 부모는 사랑이 없었다. 약하면 잡아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집의 탈을 쓴 정글, 부모의 탈을 쓴 사육사. 사육사의 손가락이 나를 향하는 순간, 나는 ‘투명인간’이 됐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보육원에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사라졌다. 얼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부모 없는 아이, 나는 고아였다. 보육원을 집이라 배웠고, 보육교사와 수녀·수사들은 부모를 자처했다. 18세, 보호 종료가 되자마자 집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부모를 고소했다. 버린 부모 학대한 부모 지훈이(가명)에게 부모란 그저 희박한 개념이다. 낳아준 부모는 지훈이를 버렸다. 박지훈이라는 이름은 그 유래조차 알 수 없다. 땅 지(地), 공 훈(勳). 한글 프로그램에서 지와 훈을 한자로 변환했을 때 첫 번째로 나오는 글자를 조합했다. 박씨라는 성도 어떻게 붙게 됐는지 모른다. 지훈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꿈나무마을(옛 소년의집)로 옮겨졌다. 그리고 18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지훈이에게 꿈나무마을에서의 10여년은 ‘진절머리’가 나는 기억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18세 이후 꿈나무마을은커녕 은평구에도 잘 가지 않는다. 당시에 하도 울어서 이제는 눈물도 말라 버렸다. ‘맞고 있다’고 자각한 순간부터 자신에게 가해지는 행위가 ‘학대’라는 것을 알았다. 10여명의 소년이 모여 있는 방은 정글이었다. 누구는 호랑이, 누구는 사자, 누구는 토끼. 보육교사는 사람, 사육사였다. 보육교사가 부여한 역할을 소년들은 충실히 이행했다. 힘이 약하고 몸이 왜소했던 지훈이는 토끼였다. 사육사의 ‘토끼몰이’는 집요하고 잔인했다. 당시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몸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졌다. 마음도 망가졌다. 무엇보다 괴로운 점은 같이 망가져 가는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지훈이와 같이 꿈나무마을에서 생활했던 윤수(가명)는 밤이면 길거리를 한없이 배회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일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112로 신고 전화를 걸어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소리를 질렀다. 장난전화가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답답함이 윤수를 지배했다. 방구석에 처박혀 종일 휴대폰만 보다 견딜 수 없을 때 뛰쳐나갔다. 새벽에 몇 번이나 경찰의 전화를 받은 지훈이는 “10년 뒤에 윤수가 정신병원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윤수는 누구보다 빠르게 포기와 체념을 배웠다. 보육교사들과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받은 아이들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렸다. 꿈나무마을에서 체득한 무기력함은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꼬리표처럼 윤수를 따라붙었다. 지훈이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윤수와 친구들,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나서기로 결심했다. 통제 빙자 고문에 가까운 기합·폭행 밤마다 불러 마사지시키고 보복까지 사실 지훈이는 꿈나무마을에 있을 때부터 내부 상황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꿈나무마을 보육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보호 종료 이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도 제소했다. 인권위는 해당 내용이 1년 이상 경과된 사건이라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답변만 전해왔다. 결국 지훈이는 고아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는 단체인 고아권익연대를 찾아 자문을 받고 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훈이는 지난달 2일 꿈나무마을 보육교사 성모씨, 장모씨, 정모씨 등 3명을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가 지난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지훈이를 만나 들은 피해 사실이 고소장에 빼곡하게 기록돼있었다. 지훈이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또렷하게 기억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해 말했다. 가 단독으로 입수한 고소장에는 3명의 보육교사가 지훈이를 신체·정서적으로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자세히 나와 있다. 고문에 가까운 기합이 ‘통제’라는 이름으로 서슴없이 행해졌다. 피고소인들은 몇몇 아이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다른 아이들을 때리도록 지시했다. 피고소인들의 조종 아래 소년들은 훼손돼갔다. 지훈이는 나무 몽둥이, 대걸레 자루, 플라스틱 빗자루 등으로 엉덩이, 머리, 팔 등을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피고소인이 휴대폰으로 지훈이의 머리를 찍어 남은 열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옷을 모두 벗게 한 뒤, 샤워장 구석에 몰아넣고 호스와 샤워기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번갈아가며 수십분간 뿌리기도 했다. 지훈이와 소년들은 화장실에서 전과를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500~1만번 반복해야 했다. 지훈이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 좁은 곳에 애들이 모여 기합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더웠겠나. 애들이 쓰러져도 기합은 끝나지 않았다”고 진저리를 쳤다. 엎드려뻗쳐나 기마 자세로 1~2시간씩 있는 일은 예사였다. 망가진 몸과 마음 장궤(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꿇어앉음) 자세로 종일 기도를 하도록 시킨 일도 있었다. 천주교에서 하는 묵주기도를 10시간 가까이 하기도 했다. 한 여성 피고소인은 밤마다 지훈이를 불러 자신의 어깨와 허벅지, 다리 등을 매일 마사지시켰다. 마사지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날 어김없이 보복이 이어졌다. 피고소인은 다른 아이들에게 지훈이가 ‘지능이 낮은 아이’ ‘장애인’이라고 말하며 모욕했다. ‘투명인간’이라는 벌을 만들기도 했다. 투명인간으로 지목되면 꿈나무마을의 어떤 아이와도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도 혼자 먹어야 했고, 그마저도 그릇을 엎어버리는 등 눈치를 줬다. 벌은 한 달간 지속됐다. 피고소인들은 교대근무를 했기 때문에 지훈이는 늘상 학대에 노출돼있는 셈이었다. 엉덩이가 찢어지고 곪아 터진 상황에서도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왜 때리느냐’는 반항에, 친구와 다퉜다는 이유로 지훈이는 정신병원에 행정입원(강제입원) 당하기도 했다. 모두 부모를 자처한 이들이 한 행위였다. 지훈이는 “원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원장님하고 사무국장님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네 발로 곱게 (정신병원에)들어갈래, 강제로 (정신병원에)끌려갈래’라면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며칠 뒤 진짜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훈이에 따르면 정신병원에 끌려갈 당시 원장실에는 경찰, 119구급대원, 구청 관계자 등이 있었다. 그는 “스타렉스 봉고차에 타고 30분 정도 가서 고양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너무 무섭고 끔찍한 기억이었다”며 “(정신병원에 있는)간호사 누나들한테도 자초지종을 말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고 전했다. 지훈이를 정신병원에서 구한 건 학교 선생님이었다. 지훈이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면서 학교에 나오지 않자 꿈나무마을에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담당 의사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항의한 것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당시 선생님은 “(지훈이의)학교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왜 꿈나무마을 안에서만 그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문제 제기 해도 끝내 묵살 실제 가 확인한 지훈이의 생활기록부에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꺼리는 일을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주는 아주 듬직하고 든든한 학생’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해 행동하는 유쾌한 학생’ ‘자기 생각과 주장을 적절히 표현할 줄 알고 약속을 중요시 여기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큼’ 등 긍정적인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지훈이의 고소를 대리하고 있는 유정화 한강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고아들은 세상천지 그냥 자기 혼자뿐이다. 보육원에는 그렇게 세상천지 자기 밖에 없는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약자는 바로 이 아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훈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반복된 학대로 감정 조절 기능이 죽어버렸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 변호사는 “이 문제가 과연 보육교사 3명만의 문제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영 주체인 꿈나무마을 관리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꿈나무마을을 관리하는 수녀와 사무국장 등은 지훈이에 대한 피고소인들의 학대 행위를 알고 있었다. 지훈이가 여러 차례 보육교사들에게 학대 피해 사실을 언급했던 것. 이번 사건에서 더 충격적인 점은 꿈나무마을의 운영 주체가 수녀, 수사 등 천주교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창설된 재단이라는 사실이다. 서울시는 꿈나무마을을 재단법인 마리아수녀회(~2019년), 한국 예수회 산하 재단법인 기쁨나눔(2020년~ ) 등에 위탁, 운영을 맡겼다. 지훈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꿈나무마을의 운영 주체는 마리아수녀회였다. 반항하면 시설에 강제입원 피해자 고소…증언도 이어져 꿈나무마을 심모 사무국장은 와의 통화에서 “재단이 바뀌어서 해당 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도 “직원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심 국장은 자신도 꿈나무마을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고 털어놨다. 지훈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에 심 국장도 꿈나무마을에 있었던 셈이다. 마리아수녀회가 꿈나무마을 운영에서 손을 뗀 시점인 2019년 말까지 서울분원장을 맡았던 권모 수녀는 취재 전까지 피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권 수녀는 당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수녀를 관리하는 수녀’라고만 말했다. 권 수녀는 현재 마리아수녀회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권 수녀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은 저희가 알 길이 없지만 저희 집에 머물렀던 아이에 대한 일이라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저희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현재의 아이들이나 이곳에서 저희와 가족이 돼 생활을 같이했던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곳은 ‘집’입니다. 집에서 일어난 아픈 기억에 대해 저희도 귀와 마음을 기울이겠습니다”라고 전해왔다. 권 수녀를 비롯한 당시 사무국장 등 꿈나무마을 관계자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몰랐다면 직무유기, 알았다면 아동학대 방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가지 공교로운 부분은 꿈나무마을 관계자들은 물론 권 수녀까지 지훈이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는 점이다. 심 국장은 로 전화를 걸어와 “(지훈이의)친구가 잠을 깨우는 과정에서 (지훈이가)가구 등 기물을 파손하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해서 정신병원 행정입원 절차를 밟았다”며 “절차를 확실하게 지켰다”고 강조했다. 권 수녀 역시 “강제입원에 대해 문제가 됐던 점은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조사에 대해 최종적으로 무혐의 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훈이는 “당시 가구는 내가 부순 게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 원장님과 사무국장님께 명확하게 이야기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며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무엇에 대한 무혐의 처분인지 모르겠지만, 당사자에 대한 조사도 없이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수녀·수사들 관리 책임은? 유 변호사는 “피고소인들의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는 1975년 ‘소년의집’으로 설립된 보육시설의 존립 이유를 의심케 한다”며 “확실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훈이는 고소 이후 오히려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꿈나무마을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훤칠하게 자란 그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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