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4년> 갈라진 대한민국

남녀 '쩍' 세대 '쭉' 빈부 '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통합'은 모든 정치인이 외치는 구호다. 탄핵 정부에 이어 집권하게 된 문재인정부 역시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그로부터 4년, 대한민국 사회는 다양하고 첨예한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10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됐다. 1300만명(연 인원)의 국민이 3개월 이상 촛불을 든 결과였다. 2개월 후 장미 대선을 거쳐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19대 대선이 보궐선거로 치러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취임했다.

탄핵 직후
촛불정부 

문정부는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촛불정부'라는 정체성을 내세웠다. 박근혜정부 탄핵 과정에서 불거진 적폐 청산에 대한 염원,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바람 등 촛불집회에서 발산된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따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16년 10월부터 다음해 3월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를 메운 국민들은 문정부에 높은 지지를 보냈다.

실제 문 대통령 취임 초기 국민들의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2017년 5월16일부터 18일까지 성인 남녀 1004명에게 문 대통령의 향후 직무수행 전망에 대해 물은 결과 ‘잘할 것’이라는 응답이 87%에 달했다.


이명박 대통령(79%), 박근혜 대통령(71%)의 취임 초 기대치를 웃도는 수치다. 

취임 후 첫 직무수행 평가(2017년 6월1주)에서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84%였다. 당시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역대 대통령 직무 긍정률 최고치를 경신한 기록이다. 1993년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으로 취임 직후 국민적 지지를 받은 김영삼 대통령(83%)보다도 높았다. 

하지만 취임 4주년을 앞둔 4월 5주(4월27~29일) 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29%를 기록했다. 취임 후 최저치로 그동안 굳건하던 30%의 벽이 처음 깨졌다. 직무 부정률은 60%에 달했다.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면서 출범한 문정부의 직무 긍정률이 취임 4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역대급 기대 받았지만
지지율은 3분의 1토막

주요 분야별 정책 평가에서도 복지(48%) 분야를 제외한 외교(29%)·교육(29%)·고용노동(27%)·대북(24%)·경제(22%)·공직자 인사(14%)·부동산(9%) 분야에서 부정평가가 우세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부정평가가 81%에 달했다. 2017년 8월 전 분야에서 긍정평가가 높았던 게 4년 만에 복지 정책을 제외하고 정반대 상황으로 바뀐 것. 

<일요시사>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한국갤럽이 4년간(2017년 6월~2021년 4월) 조사한 직무수행 평가 월별 통합 결과를 성·연령별로 분석했다(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근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핵심 지지층인 30~40대와 여성의 긍정평가가 20대 남성과 50~60대의 부정평가를 버텨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 같은 현상은 두드러졌다.


실제 가장 최근 월별 통합자료인 4월 조사를 보면 문 대통령의 직무 긍정률은 31%로 나타났다. 20대(24%)와 50대(29%), 60대 이상(23%)에서 전체 직무 긍정률을 밑도는 부분을 30대(38%), 40대(44%)가 상쇄하고 있다. 50대를 기준으로 20~40대는 진보세가 강하고, 50대 이상은 보수세가 강한 일반적인 패턴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특히 20대 남성의 직무 긍정률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2017년 6월(통합) 87%에 달했던 20대 남성의 직무 긍정률은 지난 4월(통합) 17%까지 떨어졌다. 60대 이상 남성(24%)·여성(23%)보다 낮은 것은 물론 전체 성·연령층을 통틀어 꼴찌였다.

20대 남성의 직무 긍정률은 올해 들어 1월(18%), 2월(18%), 3월(21%), 4월(17%) 등 10% 후반~20%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사회갈등’을 꼽았다. 문정부 들어 심화된 남녀갈등·세대갈등·빈부갈등 등 사회갈등의 직격탄을 20대, 그중에서도 남성들이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념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 하는 세대인 만큼 자신의 삶에 닥친 불이익이 문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30% 벽 깨져
부정평가 높아

지난 1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진행한 '2020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은 문정부 출범 이후 집단갈등이 '늘었다'고 응답했다. '문정부가 갈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과반(52.6%)을 기록했다. 문정부 출범 1년차 조사에서 25.6%였던 수치가 2배 가까이 늘었다.

▲남녀갈등 =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성 평등 공약을 발표하면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성 인지 예산 증가, 여성 장관 기용 등 변화를 꾀했다. 또 기업 고위직 여성 비율 증가 등 여성의 권리를 증대하는 정책을 임기 내내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남성은 소외된다는 느낌을, 여성은 문정부의 여성 정책이 미적지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남녀가 정반대의 입장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이 늘어났다.

2018년 11일 이수역에서 일어난 폭행 사건은 각각 남녀 입장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고, 홍대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으로 남녀가 혜화역에서 맞부딪쳤다.

최근에는 단어나 이미지 등을 두고 남녀갈등이 불거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오조오억' '허버허버' 등의 신조어가 남성 혐오적 맥락에서 사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신조어가 남혐 단어라고 지적하는 이들은 '허버허버'가 남성이 밥을 급하게 먹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자를 떠올리게 하는 비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오조오억'은 '남성 정자가 쓸데없이 5조5억개나 된다'는 뜻을 내포한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이다. 

GS25 포스터에서 시작된 손가락 논란은 불매운동으로 번졌다. 포스터에 삽입된 무언가를 잡는 듯한 손가락 이미지가 남성을 혐오하는 표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온 것. GS25는 사과문을 내고 진화에 나섰지만, 손가락 논란은 다른 기업, 지자체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영향
불매운동도

남녀갈등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차기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면서 그 배경으로 '젠더 갈등'을 꼽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둔 4·7 재보선 승리 배경엔 젠더 갈등이 있고, 향후에도 성비 불균형 심화로 젠더 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4·7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 유권자의 70% 이상이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재보선 이후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서는 '이대남'(20대 남성) 잡기 정책을 쏟아낼 만큼 깜짝 놀란 결과였다. 일각에서는 20대 남성이 재보선을 기점으로 목소리 내기를 본격화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대갈등 = 코로나19의 영향은 2030세대를 덮쳤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경제회복이 더뎌지면서 일자리 찾기를 아예 그만두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벼락거지' '영끌' '포모 증후군' 등 2030세대의 현 상황을 드러내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2030세대는 목돈이 필요한 부동산보다 적은 돈으로 한탕을 노리며 주식과 가상화폐에 몰리고 있다. 특히 '코인 광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상화폐 시장에 돈이 몰리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거래소 폐쇄를 언급하는 등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은 위원장은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 줘야 한다'고 말해 2030세대의 비판을 받았다.


2030세대는 19대 대선 당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공약에 열광했다. 박근혜정부에서 드러난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존재, 그의 딸 정유라의 대학 부정입학 등이 불거지면서 훼손된 공정의 가치를 문정부에서 되살릴 것이라고 여긴 것. 

'이대남' 철저한 외면 
빛바랜 '통합' 외침

하지만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 절차 논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등이 불거지면서 2030세대의 분노가 폭발했다. 취업, 연애, 결혼, 육아 등 포기해야 할 게 점차 늘어나고 있는 N포 세대들은 정당한 절차 없이 기득권을 쟁취하거나 공직자들이 비대칭 정보로 재산을 불리는 모습에 좌절했다. 

특히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들, 이른바 조국 사태는 2030세대와 586세대의 갈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취임 직후부터 공정의 가치를 언급했던 문정부의 민낯이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2030세대의 실망감이 586 기득권에 대한 분노로 치환됐다는 분석이다.

▲빈부격차 = 문정부 들어 빈자와 부자의 격차는 점차 가파르게 벌어지고 있다. 문정부 초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여파도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이 줄고 부채 증가 폭이 커 빈부격차가 벌어진 것.

지난달 20일 신한은행이 내놓은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2021>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활동을 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78만원으로 2019년보다 1.6% 줄었다. 보고서를 처음 작성한 2016년 이후 5년 만에 2년 전 소득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1구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83만원으로 전년보다 3.2% 줄고, 5구간(상위 20%) 가구의 소득은 895만원으로 0.8% 감소했다. 5구간의 소득은 1구간의 5배에 달했다. 

문 대통령조차 '정말 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한 집값 문제도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원인이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 1주택자와 다주택자가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휘청거리고 있다. 널뛰는 집값은 무주택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 사회갈등의 단초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심각한 수준에 이른 저출산 문제, 남녀갈등, 세대갈등이 결국 경제적 요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임 초부터
통합 말했지만…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문 대통령의 임기는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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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