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대한민국은 지금…> 다이빙 국가대표 우하람·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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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5.18 15:19:28
  • 호수 13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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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만들어가는 두 다이버

[JSA뉴스] 1904년 올림픽에서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다이빙은 올림픽 역사와 함께해왔다. 도쿄올림픽에선 남녀 합계 모두 8개의 메달이 걸려 있다. 한국 다이빙 국가대표 우하람과 김수지에게 지난 1년간의 여정과 올림픽, 그리고 다이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19 광주 세계선수권에서 3m 스프링보드와 10m 플랫폼 종목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한 우하람은 비록 1년 연기되긴 했지만, 드디어 개최될 도쿄올림픽과 그에 앞서 예정된 다이빙 월드컵을 앞두고 각오를 다지고 있다. 많은 일들이 있었던 2020년, 우하람은 이렇게 돌아봤다.

처음엔 당황
오히려 기회

"올림픽이 처음 연기됐을 때는 당황스러웠는데, 오히려 1년을 더 준비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좀 더 훈련에 임했던 것 같다. 선수촌 퇴촌 후에 다들 소속팀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아서 문을 연 다이빙장이 없었다. 그래서 소속팀 체육관에서 웨이트 트레이닝과 지상 훈련 위주로 훈련을 진행했다."

올림픽 연기로 인해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은 지난해 3월 대표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퇴촌을 통보했다. 원래 계획은 선수들에게 약 5주간의 휴식을 준 뒤 방역을 마치고 재입촌과 훈련 재개를 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입촌 일정은 계속 늦춰지다 결국 5월 중순 무기한 연기됐다.

4개월 만에 다이빙대로 돌아온 우하람은 그로부터 4개월 후인 지난해 11월13∼15일 치러진 2021년 다이빙 국가대표 선발대회에서 3m 스프링보드와 10m 플랫폼 모두 1위에 올라 국가대표 자리를 이어갔다. 이어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 자신이 따낸 3m 스프링보드와 10m 플랫폼 올림픽 출전권을 통해 올림픽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우하람은 리우올림픽 10m 플랫폼에서 한국 다이빙 사상 최초로 올림픽 결선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다이빙 종목에 홀로 출전했지만, 총 28명이 출전한 예선에서 438.45점으로 11위, 준결선에서는 453.85점으로 18명 중 12위에 올라 12명이 출전하는 결선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결선 최종 순위는 11위였지만, 한국 다이빙 역사에는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다이빙 종목이 야외에서 진행됐던 리우올림픽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강풍 때문에 여러 선수들이 고전했고, 야외 다이빙이 처음인 우하람 선수도 스프링보드에서는 24위로 예선 탈락의 아쉬움을 겪었다.

[우] 출전 가능한 모든 세부종목 참가
2019 세계선수권 역대 최고 성적

우하람이 다이빙을 처음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인 2005년. 국내에 본격적인 다이빙 지상훈련장이 완공된 것은 2010년(김천 지상훈련장). 다이빙 대표팀이 다이빙풀과 지상 훈련장이 갖춰진 진천선수촌 수영장에 들어간 것이 2011년 12월, 그리고 다이빙 대표팀에 트레이너가 생긴 것이 2014년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다이빙을 시작했다.

우하람은 그래도 다이빙이 좋았다.

"처음에는 매력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때 재미로 시작했다.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것 같았고, 다이빙하는 것이 즐거웠다. 좋아해서 다이빙에 빠졌던 것 같다. 다이빙은 지상 훈련도 중요한데 전국적으로 다이빙 전용 지상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 이제 많이 생겼다.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조금 열악해진 상황이지만, 시설이나 실력은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다."


정해진 기술
더 완벽하게

2013년 바르셀로나 세계선수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우하람의 출전 기록을 보면 기본 3개 종목부터 시작해 최대 5개 종목(세계선수권의 경우 개인전 3개 - 1m, 3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 - 싱크로 2개 - 3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까지, 출전 가능한 거의 모든 세부종목에 참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우 2016 남자 3m 스프링보드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차오 위안을 포함해 많은 선수들이 많아야 대회당 최대 3개 종목 정도를 뛰는 것과 비교해 보면 상당한 숫자다. 

다이빙은 기계체조와는 달리 이전에 없던 창의적인 기술이 나오는 종목이 아니다. 정해진 기술을 누가 더 완벽하게 구사하느냐의 경쟁이다. 따라서 정상급 선수들의 경쟁은 대회에서 누가 더 완벽하게 하느냐, 누가 실수가 없느냐, 누가 컨디션이 좋으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우하람은 개인전 1m 스프링보드 동메달, 10m 플랫폼 동메달을 따냈다. 김영남과 한 조로 출전한 싱크로나이즈드에서는 3m 스프링보드와 10m 플랫폼 모두 중국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광주에서 열린 2019 세계선수권에서는 출전하는 종목마다 한국 남자 다이빙 역대 최고 성적을 냈고, 1m와 3m 스프링보드에서는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인 4위, 10m 플랫폼에서 6위, 10m 싱크로나이즈드에서도 6위를 기록했다. 이 결과로 3m 스프링보드와 10m 플랫폼은 도쿄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더 멀다. 어렸을 때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꿈꿨던 것들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

도쿄올림픽 3m 스프링보드, 10m 플랫폼 개인전 출전 자격을 획득한 우하람은 목표로 하고 있는 싱크로나이즈드도 남아 있다. 싱크로나이즈드에서 우하람과 한 조를 이루는 선수는 라이벌이자 동반자라 할 수 있는 김영남이다. 

두 선수는 개인전에서는 항상 국내 1, 2위를 다투지만 싱크로나이즈드에서는 함께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019 세계선수권에서 입상과 올림픽 출전 자격 획득을 동시에 노렸지만, 10m 플랫폼에서 6위, 3m 스프링보드에서 10위에 오르며 메달 획득에는 실패한 바 있다.

우하람은 도쿄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3년 후 개최되는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한 생각도 이미 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것이고, 다음 파리올림픽에서도 아직 전성기 나이이기 때문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김] 14세때 올림픽 첫 경험
2019 세계선수권 새 역사


김수지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1m 스프링보드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다이빙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됐다. 2021 FINA 다이빙 월드컵 여자 3m 스프링보드 예선 18위를 기록하며 도쿄올림픽 출전을 확정, 런던 2012 이후 9년만의 올림픽 출전을 예약했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14세의 중학생이자 한국 선수단 최연소 선수였던 김수지는 첫 올림픽에 대해 이렇게 기억했다.

"그때는 올림픽이 그렇게 큰 시합인지 체감하지도 못했고, 출전하기 힘든 시합인지도 몰랐다. 긴장이 되기는 했는데 너무 멍했다. 계속 그렇게 뛰다가 4차 시기에 구경하러 오신 아티스틱 스위밍 대표팀 언니들이 ‘한국 파이팅!’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심장이 뛰었다. 이미 많이 늦었을 때였지만 정신을 차렸다."

14세 때 경험한 첫 올림픽은 여자 10m 플랫폼 종목 26위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올림픽 이후 잠시 국제대회에서 주춤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1m 스프링보드와 3m 싱크로나이즈드 모두 4위에 오르며 다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비인기 종목
한계 넘는다

2018 아시안게임 1m 스프링보드에서 동메달을 획득,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올랐던 김수지는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2일차인 7월13일 목에 걸었던 여자 1m 스프링보드 동메달은 한국 다이빙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이자 2011년의 박태환 선수 이후 8년 만에 나온 세계수영선수권 메달이었다.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깜짝 동메달이었다. '최초'라는 수식어나 홈에서의 메달 획득으로 큰 관심을 얻게 된 것에 대해 김수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다이빙이 비인기 종목이라 다들 관심이 별로 없다. 다이빙이라고 하면 스쿠버 다이빙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 정도로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도 이렇게 응원을 해 주시는데, 이를 부담으로 느끼면 그건 너무 죄송스러운 일인 것 같다. 더 봐주시고 더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한국 다이빙 최초의 세계선수권 메달리스트가 됐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김수지에게 2019 세계수영선수권은 주종목인 3m 스프링보드에서 상위 12명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하지 못한 점에서는 아쉬웠던 대회였다.

남자 다이빙에서 '최초'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하람과 마찬가지로, 김수지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수업으로 다이빙을 처음 접했다.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학생이어서 방과 후 수영으로 에너지를 풀어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권유가 시작이었다. 그냥 수영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이빙 수업이었다. 전혀 모르고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칭찬도 많이 받아서 흥미를 느꼈고, 그렇게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4세 때부터 시작된 대표팀 생활과 첫 올림픽 출전, 아시안게임 등을 거치며 점점 더 발전하고 있는 다이빙 환경을 실감하고 있다. 다이빙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이 다이빙 경기를 볼 때, 그 매력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무엇일까.

"일반 시청자분들이 저희 경기를 보시면 몇 바퀴를 도는지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제일 편한 방법은 입수할 때 물이 어느 정도 튀는가, 봤을 때 ‘우와!’하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인가를 보면 될 것 같다."

두 번의 연기 끝에 지난 1일 막을 올린 2021 FINA 다이빙 월드컵.

김수지 선수는 한국 다이빙 대표팀의 일원으로 여자 3m 싱크로나이즈드와 3m 스프링보드에 출전했다. 첫날 열린 3m 싱크로나이즈드 종목에서는 조은비와 팀을 이뤄 예선에서 16개팀 중 11위를 기록, 상위 12팀이 진출하는 결선까지 올라갔고, 최종 순위 12위를 기록했다.

지난 3일 열린 여자 3m 스프링보드 경기에서는 예선 272.10점을 획득, 전체 48명 중 18위에 올라 올림픽 출전권 확보와 함께 준결선에 진출했다. 9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가야할 길 
아직 멀었다"

"너무 간절하고 진짜 나가고 싶다. 모든 대표팀 선수들이 다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노력을 해야 설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 없이 시합하려고 한다. 일단 출전만 하게 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고, 그 행복을 가지고 더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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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