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신동 김대섭, 다시 날아오르다

1998년 고교 2학년 때 아마추어 신분으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오픈을 제패하고 2001년 대학 2학년 때 또 한 번 한국오픈을 제패하며 ‘골프 천재’로 불리던 김대섭을 그 무렵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여드름도 가시지 않은 풋풋했던 그를 만난 후 7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해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고 2년간 우승이 없어 와신상담하며 보낸 시절이 있었다. 그런 그가 올해 3년 만에 우승컵을 안으며 다시 한 번 세간의 스포트라이트 받고 있다.


지금이야 한국남자프로골프를 주름잡는 선수들 대부분이 20대 초·중반의 젊은 프로들이지만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최광수, 강욱순, 신용진 등 30대 중·후반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이 무렵 등장한 무서운 10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대섭이었다. 앳된 얼굴에 체격도 호리호리한 소년의 모습이었지만 ‘한국오픈’처럼 큰 무대에서 기라성 같은 선배 프로들과의 대결에서도 당당하게 경기를 펼쳤기에 많은 골프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1998년 한국오픈에서 한국 남자골프 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된 김대섭은 2001년 대학 2학년 때 다시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대회에서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당시 국가대표로 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하면 ‘군 면제’라는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프로무대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한참 동안 주변에서 프로전향을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 올 때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말해왔었는데 사실 요즘은 그때의 선택을 조금은 후회하고 있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지금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김대섭 프로는 그 당시 ‘한국오픈에서 우승한 아마추어가 1년 이내 프로전향을 하면 프로테스트를 면제한다’는 조항에 끌려 프로로 전향했다고 한다.
2002년 프로로 전향한 김대섭은 시즌 첫 대회인 SK텔레콤오픈에서 4위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치른 뒤 포카리스웨트 오픈에서도 공동 2위에 올라 프로무대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9월에는 국내 대회 중 최고 상금이 걸린 메이저대회인 삼성증권배 한국프로골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프로데뷔 11개월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 김대섭은 총상금 1억7616만원을 벌어 상금순위 2위에 올랐고 그해 KPGA 최우수 신인에게 주어지는 명출상도 받았다. 다음해인 2003년에도 프로 2년차 징크스 없이 포카리스웨트 오픈에서 대회 최소타 타이기록인 19언더파 269타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기록하며 상금순위 5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2005년 3번의 준우승 끝에 동부화재 프로미배 PGA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이때 그에게 미PGA로 진출하라는 권유가 쏟아졌고 현재 소속사인 스포티즌의 노력으로 SK텔레콤과 2년간 후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대섭은 2005년 12월 같은 대학(성균관대)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오던 왕윤나 씨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결혼 후 김대섭의 골프는 하향세를 나타내기 시작해 2008년 9월 한-중투어 KEB 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결혼이 김대섭의 골프가 쇠퇴한 원인’이라는 억지스런 주변의 시선을 받았다.
“결혼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주변의 그런 시선에 아내와 저, 둘 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을 아무 굴곡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일인 결혼이 오해를 샀다는 사실에 괴롭기도 했다.”
김대섭은 올해 3년 만에 우승을 거두며 상금순위 3위에 올라 한국프로골프대상 시상식에서 ‘감동상’을 수상했다. 이 자리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두 돌을 넘긴 아들 ‘단이’가 함께했다.
“3년 간 왜 그렇게 골프가 안 됐냐고 묻는다면 어떤 시합 하나가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2006년 솔모로 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잘 가다가 마지막 날 스코어를 잘못 적어서 실격까지 당했다. 그 일 이후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생각도 부정적으로 변했다. ‘안 된다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니 진짜 안 되더라. 그러다보니 드라이버샷부터 시작해 골프가 망가졌다.”
2008년 상반기에 특별히 감이 좋거나 하진 않았는데 몇몇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마음이 놓였었다는 김대섭 프로. 그 여세를 이어가고 싶었던 김대섭은 후반기 시작하기 전 2달간의 휴식기에 아내가 컴퓨터에서 찾아주는 스윙을 보면서 감을 많이 익혔다고 한다. 후반기 시작한 후 3번째 시합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좋은 성적이 계속 이어졌다.
“이번 우승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역시 아내였다. 그동안 금전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었다. 아내는 성격이 저랑 정반대다. 저는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인데 아내는 시원시원하고 활발한 성격이다. 골프가 잘 안 될 때,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가서 운동하라는 소리도 안 하고 제가 하는 대로 지켜봐줘서 고마웠다.”

고교 2년때·대학 2년때 한국오픈 제패, ‘골프천재’ 등극
큰 무대에서의 기라성 같은 선배 프로들과 대결 ‘위풍당당’


지난 한 해 가장 아쉬웠던 대회로 상반기 때 있었던 토마토저축은행배 대회를 꼽은 김대섭 프로. 김형성 프로가 우승을 차지했던 그 대회에서 그는 초반에 역전도 했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2위를 차지했지만 기폭제 역할을 했던 대회로 기억했다.
후반기 때 KEB인비테이셔널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감각을 회복한 그는 이후 서너 개의 큰 시합에서 우승권에 들면서 한 번 정도 더 우승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가졌지만 2008년은 그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던 소중한 한 해였다.
한편 SK텔레콤과의 계약이 끝난 후 후원사를 찾지 못했던 김대섭 프로는 대학교 2~3학년 때 도움을 주었던 삼화저축은행 회장과의 인연으로 올해 삼화저축은행과 후원계약을 맺기도 했다.
“저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교훈을 얻었다. 지금 제게 닥친 가장 큰 과제는 군대 문제인데 군대 다녀오고 나서는 정말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할 생각이다. 일본이나 미국무대로의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 군대는 이르면 올해 갈 것 같다. 안 되다가 잘되니까 욕심이 생겨 조금 더 하다 갈까, 아니면 빨리 다녀올까, 이 생각 저 생각 들어서 고민 중이다.”
김대섭 프로는 2009년에 또 한 아이를 얻게 된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와 두 아이를 생각하면 마냥 행복해지고 의욕이 생긴다는 김대섭. 아직 많지 않은 나이지만 ‘좋은 아빠’의 모습이 느껴지는 그를 보는 마음이 흐뭇해진다.


김대섭 프로필
▲ 1981년 6월 30일생
▲ 2001년 프로입문
▲ 스포티즌 소속
▲ 계약: 삼화저축은행
▲ 173cm/65kg
▲ 1998년 한국오픈 우승
▲ 2001년 한국오픈 우승
▲ 2002년 삼성증권배 제45회 한국프로골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3년 포카리스웨트 오픈 골프 선수권 대회 우승
▲ 2005년 동부화재 프로미배 제48회 PGA 선수권 대회 우승
▲ 2008년 한-중투어 KEB인비테이셔널Ⅱ 대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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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