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영원한 현대맨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51년’ MK시대 막 내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지난해 10월 공식 은퇴를 선언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현대모비스 등기 이사직 사임을 마지막으로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정 명예회장은 51년간 현대자동차를 이끌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경영권은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넘겼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현장경영, 품질경영, 뚝심경영이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자동차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5위에 이르기까지 끌어올리며 세계적인 그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통 통한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는 1974년에 현대자동차 서비스의 사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인의 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부품 조달을 위해 직원들과 함께 트럭에 자동차 부품을 싣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이때부터 그는 현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경험을 얻고 해결책을 찾았다. 

일을 마치는 저녁 시간에는 서비스센터 한쪽에 놓인 드럼통에 삼겹살을 굽고 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애로사항에 대해 듣고 소통했다고 한다. 그는 직원과의 소통이 현장 경영을 함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겼다. 

경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현장을 찾아 직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신입사원 연수에 빠짐없이 참석해 새내기들의 손을 잡고 “회사의 미래를 잘 부탁한다”고 말을 전하기도 했다. 


현장에 직접 가서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소통한 그는 1977년에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을 설립했다. 현대정공은 컨테이너 사업으로 전 세계 공급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정 명예회장을 경영인으로서 인정하게 된 계기라고 전해진다.

현대정공은 사업 내용에 자동차 제조판매업을 추가해 갤로퍼를 생산했고, 이는 정 명예회장이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다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게 했다. 갤로퍼의 성공을 앞세워 ‘포니 정’이라 불리던 고(故) 정세영 명예회장에게 현대자동차의 경영권을 이어받고 독립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후 경영 위기에 처한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다. 자동차 관련 지식이 많았던 그는 기아의 발전을 위해 엔진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엔진이 자동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중요하게 생각해 현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불꽃 튀는 위험한 현장까지 
직접 발로 뛰는 현장경영 

정 명예회장은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반드시 현장으로 갔다. 보고서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개선을 촉구했다.

현장경영을 중요하게 여겨 해외 출장도 잦았다. 미국, 인도 등 해외 공장으로 가 직원들에게 현장의 문제점을 옆에서 듣고 문제를 개선할 방법을 찾아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의 현장 경영철학은 과거 제철소 사업 추진에서도 드러난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정 명예회장이 애정을 갖고 있던 곳이다. 그는 임원에게 “양재동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당진이 아른거린다. 자려고 누워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장이 보인다.”며 3일에 한 번은 반드시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의 현장경영으로 제철소는 3년 만에 착공을 완료해 연간 400만톤 이상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춰 자체적으로 강판과 후판을 생산했다. 정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건설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잦다 보니 직원들도 현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전해진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불꽃이 튀고, 철골구조가 많은 위험한 현장에 경영자가 직접 나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 건설책임자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맡은 분야를 열심히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현장경영과 더불어 정 명예회장이 강조한 것은 품질경영이다. 미국에 현대자동차가 처음 진출한 시기는 1986년이다. 저렴한 자동차로 주목받았지만, 품질과 성능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차량 판매 역시 적자 상태였다.

심지어 1998년 10월 미국의 한 토크쇼에서 진행자가 “우주에서 장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출연자는 “우주선 계기판에 현대자동차 로고를 붙이면 우주 비행사가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하기까지 했다.

파격적
품질경영

미국 언론 역시 현대의 영문 로고를 두고 ‘저렴하지만 운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Hope You Understand Nothing’s Driveable And Inexpensive)’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동차에 대한 품질 경영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의 자동차는 무상보증 기간을 3년·5만마일에서 10년·10만마일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현대자동차가 품질에서 뒤처져 수리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으나 정 명예회장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사장과 임원을 모아 노동자 옆에서 배우게 해 자동차의 품질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량은 1998년 9만대에서 2003년 40만대로 늘었다.

차량 전체 누적 판매량은 1999년 2100만대에서 20년이 지난 현재 5배가 넘는 1억1000만대로 늘었다. 팔렸다. 매출 역시 현대자동차가 기업으로 분리하기 이전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현대 자동차는 품질 평가 부문에서 2000년 37개 자동차 회사 중 34위에서 2006년 3위로 상승, 2016년은 포르셰를 제치고 1위를 달성했다.

품질을 강조한 그의 경영정신은 남양연구소 투자에서도 드러난다. 남양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연구소로, 현대의 울산연구소와 기아의 소하리공장을 하나로 통합한 곳이다.
 

▲ 현대기아차 사옥 ⓒ고성준 기자

정 명예회장이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본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곳이다. 그는 남양연구소에 투자한 이유로 “연구개발 역량과 효율 극대화를 통해 품질을 높여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 명예회장은 제철소만큼 남양연구소를 자주 방문해 직접 주행 테스트 등에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오피러스의 성능 시험 중 정 명예회장의 귀에 소음이 포착된 적이 있다. 


스피드
뚝심경영

임원들은 소음이 차량 운행에 전혀 문제가 없고, 소음 문제를 해결하면 차량의 선적 날짜에 맞출 수 없다고 전했지만 그는 “이대로 팔 수 없다”며 소음 제거를 위한 팀을 꾸려 완벽한 자동차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정 명예회장은 부족한 차량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개선했고, 오피러스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했다. 

품질 개선에 힘을 쏟자 세계는 현대자동차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동차산업 공헌상을 수상해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2004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비즈니스위크 자동차 부문 최고의 경영인에 선정됐다.

정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과 경영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다. 모두가 힘들 것이라 예측해도 그는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일을 진행시켜 결과를 만들었다. 한국전력의 부지 입찰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과감한 투자를 했던 성향이 그렇다.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15년 세계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 보복으로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았을 때, 그가 직접 러시아 공장을 방문해 “러시아에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며 시장에서 철수하는 다른 업체와 다르게 과감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했을 때도 비슷하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은 삼성그룹과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계속된 유찰로 3차까지 간 입찰경쟁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아자동차의 부채 7조4000억원과 1조1781억원 인수 비용을 모두 떠안았다. 임원들은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위기라며 정 명예회장을 말렸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여겨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도 공장을 확장하고, 중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해 사업을 확장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건설에 관련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국내 부품업체와 공동 진출을 하는 방법을 적용해 협력업체의 성장을 꾀해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경제계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위기가 기회“ 공격적 투자
부친 닮은 과감한 사업운영

정 명예회장은 자동차 산업이 점차 발달하자 뚝심경영을 발휘한다. 바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만드는 행보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경제 대침체로 인해 미국 자동차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소극적인 다른 업체와 달리 고급 자동차 제작에 주력했다.

제철소 건립으로 이미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주요 자동차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자동차용 강판 자체 개발 및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췄다. 기초 소재 단계부터 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구조를 갖춰 차체 주행 성능, 디자인 등에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당시 출시된 2세대 제네시스를 두고 업계 전문가는 “견고한 차체를 기반으로 한 차량의 5대 기본성능(동력, 승차감, 안전성, 내구성, 정숙성)과 디자인이 높은 수준의 자동차”라고 평가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수소 자동차의 초석도 정 명예회장이 마련했다. 오일쇼크와 외환위기로 자동차 수요가 줄자, 발 빠르게 수소·전기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 현대자동차그룹은 2000년 시험용 산타페 수소 전기차를 선보였다. 
 

정 명예회장은 마북연구소를 찾아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도 자동차를 굴려야 한다”며 “하고 싶은 기술을 마음껏 다 적용해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개발을 지시했다. 정 명예회장의 지시와 연구 개발 끝에 2013년 투싼 수소 전기차가 세계 최초 출시됐다. 

정 명예회장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단기간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세계시장으로 손을 뻗어 생산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을 내수기업에서 세계 자동차 경쟁업체들과 경쟁하는 기업으로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현대 스피드’라는 수식어로 정 명예회장의 추진력과 과감함을 높게 평가한다.

그의 좌우명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로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새벽부터
대책 마련

정 명예회장은 새벽 6시30분에 출근해 하루 종일 문제점에 대한 대책을 찾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현장과 제품 품질을 직접 챙기며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퇴임으로 경영 환경과 방식이 바뀌고 있지만, 현장에서 쌓은 그의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결정에 대해 정 명예회장이 자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차 3세 정의선 청사진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현대 자동차가 완벽한 정의선 체제로 새 출발한다. 아직 공정거래위원회가 정의선 회장을 총수로 지정하는 단계가 남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투명경영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확대하는 안건도 함께 의결했다.

주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들은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 기업 실적이 양호한 것 같다”며 “형식만 갖춘 준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개선을 통해 새롭게 출발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새로운 사업의 한 축인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관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첫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관계자는 “부진했던 중국 시장에 재진출해 그룹의 위상을 회복하고 상용차 분야 수익성을 높여, 미래사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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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