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추억> -독일 카약 비르기트 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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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3.22 10:52:30
  • 호수 13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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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다시 올림픽으로

▲ '1988 서울' 얀케 폰 세크(사진 왼쪽)와 비르기트 피셔

[JSA뉴스] 세계 여성의 날 (3월8일)을 기념하기 위해 스포츠와 사회를 모두 변화시켰던 여성 스포츠인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이번의 주인공은 24년 동안 카약에서 8개의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유일한 여자 선수, 독일(구 동독)의 카약 대표 비르기트 피셔다.

비르기트 피셔는 1962년 2월15일, 동독의 브란덴부르크 안 데어 하벨에서 태어났다. 카약을 처음 시작했던 것은 6세 때로, 오빠 프랑크를 따라 카약에 탄 이후 지역 카누 클럽인 BSG 스탈 브란덴부르크에 들어가게 된다. 

은퇴

두 사람의 첫 코치 역할을 맡았던 아버지 칼 하인츠 피셔의 지도 하에 오빠 프랑크는 이후 금메달 3개를 포함해 9개의 세계선수권 메달을 획득하는 선수로 성장했고, 피셔도 1978년부터 세계무대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피셔는 자신의 첫 올림픽이었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K1 500m 종목 금메달을 따며 18세의 나이로 카누/카약 최연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다. 올림픽 데뷔 이후 1981‧1982‧1983 3년 연속 세계선수권 500m 전 종목(K1, K2, K4) 금메달을 차지하는 절정의 기량을 보여줬지만, 동구권 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인해 1984년 로스엔젤레스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며 올림픽 2연패의 기회는 놓치게 된다.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다시 올림픽 무대에 복귀한 피셔는 K1 결선에서 0.12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같은 날에 열린 K2 종목과 그 다음날의 K4 결선에서 모두 금메달을 차지한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 이후 피셔는 둘째인 딸 울라의 출산으로 은퇴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카약에 올랐고, 이번에는 통일된 독일을 대표하며 K1 500m 금메달과 K4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는 K4 금메달과 K2 은메달을 차지했으며,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K2와 K4 종목으로 두 개의 금메달을 더 추가했다.

시드니올림픽을 마친 후 피셔는 두 번째로 은퇴를 결정했고, 이번에는 영광스런 커리어가 마침내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피셔는 은퇴한 올림픽 영웅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놀라운 커리어는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이자 독일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잡지 표지를 장식하고 TV에 출연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영화사는 피셔의 인생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원했다.

다큐멘터리를 위해 피셔의 집을 방문한 촬영팀은 피셔가 카약에 올라 있는 모습을 찍고 싶어 했고, 피셔는 은퇴 후 처음으로 카약에 올라타게 된다. 일단 카약이 물 위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피셔는 솟아오르는 경쟁심을 참을 수 없었고, 결국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 보자고 마음을 먹게 된다.

‘Olympic.org’와의 인터뷰에서 피셔는 그 결정의 이유를 “42세에도 정말 빠를 수 있을지 한 번 보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에게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3년간의 휴식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단 9개월 남은 시점에서 복귀했지만, 피셔는 결국 독일 카약 대표팀의 K4 스쿼드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카약계를 지배하고 있던 것은 세계선수권 K4 4연패(1999‧2001‧2002‧2003)를 기록 중이던 헝가리였다.

최연소·최고령 올림픽 챔피언
1980∼2004년 금 8개 은 4개


하지만 3년간 운동을 쉬었고, K2 종목 파트너인 카롤린 레온하르트보다 23살이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피셔의 자신감은 여전했다.

“팀 전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딴다면 꿈만 같을 것이다.”

8월23일과 24일, 피셔와 독일 대표팀은 조별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K2, K4 모두에서 결선으로 직행한다. K4 조별 예선에서 독일은 한 조에 속해 있던 라이벌 헝가리를 꺾었다.
 

▲ 2004 아테네올림픽 당시의 독일 대표팀

K4 결선에서 헝가리는 출발 신호와 동시에 선두로 나섰지만 독일은 9팀 중 최하위로 처져 있었다. 그러나 500m 스프린트의 절반 지점에서 독일은 헝가리와의 격차를 단 0.3초 차로 단축했고, 레이스의 마지막 구간에서 접전을 펼쳐나간 끝에 결국 0.2초 차이로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피셔의 8번째 올림픽 금메달.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최연소 카약 금메달리스트가 됐던 피셔는 24년 후인 2004 아테네에서 최고령 카약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리에 올랐다.

K4 결선 다음날 피셔는 K2 500m에서 또 하나의 올림픽 메달,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아테네에서의 성공으로 피셔는 1980년부터 2004년까지 이어진 올림픽 커리어에서 총 12개의 메달(금메달 8개 은메달 4개)을 차지했고, 같은 해 독일 ‘올해의 스포츠우먼’으로 선정됐다.

2008년에는 독일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피셔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 참가였다. 그 이후 피셔는 카누/카약을 통한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는 회사 ‘카누피시’에 집중했다.

올림픽 역사의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서, 피셔는 2019년, ‘Olympic.org’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래의 올림피언들에게 다음의 조언을 남겼다. 

복귀

“카누 바깥에 있는 인생을 절대 잊지 말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뭐든 하라. 코치 말만 듣지 말고, 항상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훈련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을 잘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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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