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스캔들’ 검찰 제물 시나리오

땅 빼려다 방 빼겠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LH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20번이 넘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들끓는 민심에 공직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더해지면서 역린을 건드린 모양새다. 문재인정부는 4·17재보선을 앞두고 터진 초대형 악재를 봉합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은 완전히 배제되는 분위기다.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박성원 깆다

지난달 24일 정부는 경기도 광명·시흥을 6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광명시 광명동·옥길동,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7만호의 주택을 공급, 서남권 거점도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신규공공택지 후보지를 주민공람 공고 즉시 개발예정지역으로 지정하고 주변 지역은 토지허가구역으로 묶는다고 덧붙였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최장 5년간 토지 소유권이나 지상권 등 투기성 토지거래가 차단된다. 

부동산 역린
초대형 악재

국토부 발표 일주일 뒤인 지난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참여연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LH 직원과 배우자, 지인 등 10여명이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약 7000평의 토지를 사전에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토지 실거래가 총액은 99억4512만원이며, 약 1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중 58억원가량은 대출로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제보받은 민변과 참여연대는 해당 필지의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직원 명단을 대조했다. 

조사 결과 이들은 해당 토지 소유권을 개별적으로 취득하기보다 소유권 지분을 공동 취득하는 방식으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감사원 감사뿐만 아니라 LH와 국토부가 철저한 자체 감사를 실시해 직원들의 비위 행위를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3일에 걸쳐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조사한 결과 74%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11%에 그쳤다. 그나마 ‘주택 공급 확대·신도시 개발’(16%)을 긍정 평가의 이유로 꼽았는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률은 40%로 나타났다. 직무수행 부정률은 51%로 긍정률을 상회했는데, 부정평가 이유로 첫손에 꼽은 것도 ‘부동산 정책’(19%)이다. 

말로는 발본색원·패가망신
1·2기 신도시 수사 검 패싱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LH 사태가 재보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의 성추행 의혹으로 공석이 생긴 터라 이미 악재를 안고 시작한 민주당에 부동산 악재까지 더해진 셈이다.

정부에서 ‘발본색원’(문재인 대통령), ‘패가망신’(정세윤 국무총리) 등의 강한 발언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인 지난 3일부터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골자로 한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국토부-LH-관계 공공기관 등 신규 택지개발 관련 부서 근무자 및 가족 등에 대한 토지거래 전수조사”(3일) “(LH)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었는지, 뿌리 깊은 부패구조에 기인한 것인지 규명해 발본색원”(4일) “청와대 전 직원 토지거래 전수조사”(5일) 등이다. 
 

▲ LH 임직원들이 사전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했던 토지 ⓒ박성원 기자

주말 이후에도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 동원”(8일), “투기는 투기대로 조사하되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의 신뢰가 흔들려선 안 돼”(9일), “우리 사회의 공정과 신뢰를 바닥에서 무너뜨리는 용납할 수 없는 비리행위”(10일) 등의 메시지를 냈다. 재보선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고, 레임덕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연일 이어진 문 대통령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LH 사태 대응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LH 사태를 조사‧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을 완전히 배제하고 국가수사본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셀프 수사’ ‘부실 수사’ 등의 우려가 제기된 것.

검찰과 경찰의 협력을 당부하면서도 결국 핵심인 수사는 경찰에 ‘몰빵’해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LH 의혹은)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한 첫 사건”이라며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입장이 다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유기적 협력으로 국가 수사기관의 대응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수사 노하우 및 기법 공유, 수사 방향을 잡기 위한 논의 등에서 경찰과 보다 긴밀히 협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770명 규모
검찰은 0명

그럼에도 경찰이 주축이 된 770여명 규모의 합동 특별수사본부(이하 합수본)에 검찰은 포함되지 않았다. 수사를 전담하는 국수본 인력 74명 외에 18개 시도 경찰청에서 695명의 경찰이 합수본에 파견된다.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 관계기관 37명도 참여한다. 검찰은 총리실에 와 있는 검사 1명 외에 부동산 전문 검사 1명이 합수본이 아닌 정부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에 추가 파견돼 법률 지원을 맡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김창룡 경찰청장, 검찰총장 권한대행인 조남관 대검 차장과의 회의에서 “수사를 맡은 경찰, 영장 청구와 공소 제기 및 유지를 담당하는 검찰 간의 유기적 소통과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찰은 기소를 담당하라는 역할 분담을 주문한 것이다. 

검찰은 1~2기 신도시 투기 의혹 당시 부동산 투기 세력과 유착해 정보를 제공하거나 개발 예정 용지를 미리 매입해 시세차익을 노린 공무원들을 대거 적발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 3기 신도시 1차 발표하는 정세균 국무총리

1989년 노태우정부는 성남시 분당·고양시 일산·부천시 중동·안양시 평촌·군포시 산본 등 5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1990년 2월 검찰은 합수본을 설치해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 수사로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명이 적발됐고 이 중 987명이 구속됐다. 금품 수수와 문서 위조 등에 연루돼 구속된 공직자는 131명에 달했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발표한 2기 신도시 조성 때에도 비슷했다. 2기 신도시는 경기 김포·인천 검단·화성 동탄1~2·평택 고덕·수원 광교·성남 판교·서울 송파(위례)·양주 옥정·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총 12곳이다. 


1·2 신도시
공무원 적발

이들 지역에서 또 다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검찰은 2005년 7월 두 번째 합수본을 설치했다. 당시 검찰이 단속한 부동산 투기 사범 중 공무원 27명이 적발됐다. 공무원 일부는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집단으로 매입한 뒤 형질을 불법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꾀했다.

검찰은 앞선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를 통해 이미 역량을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 보니 검찰이 LH 사태 수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진행한 지난 3월 둘째 주 정례조사에서 ‘정부 합수본에 검찰이 배제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주장에 49.5%가 찬성을 표했다.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은 30.4%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LH 투기 사태는 집권세력의 투기 DNA가 공직사회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며 “성난 민심은 LH 투기 사태와 관련해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검찰 수사, 감사원 감사를 원천 차단하는지 이 정권에 묻고 있다”고 비판했다. 
 

▲ 남구준

특히 지난 11일 합조단이 발표한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두고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 총리는 이날 1차 조사 결과 발표에서 “국토부와 LH 임직원 등 총 1만4000여명의 거래 내역과 소유 정보를 각각 조사하고 상호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며 “그 결과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제기한 투기 의심사례를 포함해 총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1차 전수조사 결과는 본인만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과여서 차명이나 가족명의 거래까지 대상을 확대하면 투기 의심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정 총리는 “정부는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허위 매물, 기획부동산, 떳다방 등 부동산 시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법과 불공정 행위를 엄단할 특단의 방안을 마련해 강력하게 집행하겠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수사권 조정 언급
고위공직자 겨냥 두려워서?

합조단의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두고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검찰의 직접수사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배제의 표면적 이유로 언급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검찰 권력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진행해왔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꾸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숙원이었다. 특히 올해부터 수사권이 조정됨에 따라 검찰 수사 범위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등 6대 범죄로 줄었다.

이 중 공직자 범죄는 대상자가 4급 이상일 때만, 경제 범죄는 피해액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사기만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부동산 투기 의혹은 6대 범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경찰이 수사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 대검찰청 ⓒ고성준 기자

일각에선 정부에서 LH 사태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로 번지지 않도록 일종의 제한선을 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 수사로 4급 이상 고위공직자가 LH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 등이 나올 경우 정부로선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장 한 달도 남지 않은 재보선은 물론 대선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남구준 국수본부장은 “과거 1~2기 신도시 수사 성과의 상당수가 경찰에서 나왔다”며 검찰이 LH 사태를 수사해야 한다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자신감을 보이는 것보다 진상규명이 더딜 경우 검찰의 직접수사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물론 검·경 수사권 조정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출범 초부터 검찰개혁에 사활을 걸어온 문재인정부로선 치명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LH 사태를 수사해야 한다는 법조계 안팎의 주장에 대해 “(검찰은)수사권 있을 때 뭐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때 잘하지”
“우리가 무당?”

박 장관은 지난 11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수사권 개혁은 올해 1월1일 시행됐고, 부동산 투기는 2~3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됐다”며 “수사권이 있을 때 적극 대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박 장관의 발언에 검찰 내부에서는 “그럼 문재인 정부는 (그 당시에) 뭘 했냐” “우리가 무당이냐”는 등의 비판 발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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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