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에선…’ 신종 학폭 천태만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3.02 11:48:15
  • 호수 13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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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에서 사이버로…셔틀의 진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빵셔틀’ 시대는 끝났다. 10년 전 학교 일진들은 힘 없는 친구들에게 빵 심부름을 일삼았다. 지금 학생들 사이에는 새로운 학교폭력이 등장하고 있다. 
 

▲ ⓒpixabay

‘빵셔틀’이란 말은 고유명사가 됐다. 빵셔틀은 음식물인 ‘빵’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수송 유닛 중 하나인 셔틀의 합성어다. 

심부름

빵셔틀의 진화는 계속됐다. 빵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물품으로 식부름이 확장됐다. 와이파이 셔틀의 경우, 일진들이 피해 학생의 핸드폰 데이터를 사용해 그 친구의 테더링에 접속해 인터넷 데이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담배, 생리대, 가방 등 일진들이 필요한 물건을 편리하게 얻을 수 있도록 힘이 약한 친구들을 셔틀로 취급하며 노예처럼 부리곤 했다. 

심부름으로 괴롭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학교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SNS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사이버 폭력으로 이어졌다. SNS를 통한 왕따를 ‘사이버불링’이라고 한다. 이는 SNS 등을 통해 특정 대상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다.

사이버 폭력에는 ▲한 사람을 단체 대화방에 초대해 욕설을 퍼붓는 ‘떼카’ ▲대화방을 나가면 계속 초대하는 ‘카톡 감옥’ ▲따돌림의 대상만 남겨두고 대화방을 나가버리는 ‘방폭’ 등이 포함된다. 이외에도 ▲채팅방에서 모두가 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카톡 유령’ ▲ 학생의 실명은 거론하지 않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게 험담하는 ‘저격’ 등이 있다.


SNS 계정을 빼앗아 괴롭히는 방법도 있다. 피해자의 카카오톡 계정으로 ‘애인구함’ ‘조건만남’ 등의 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사례도 많다.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인터넷에 유포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또 후배를 협박해 SNS 계정을 갈취하는 학교폭력도 발생했다. 3000~1만원의 현금이나 게임머니 등을 받고 넘겨진 SNS 계정은 스포츠 점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사이트 등의 불법 도박 홍보에 이용되기도 한다.

카카오톡 감옥…집단 따돌림
계정 빼앗아 불법사이트 홍보

이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은 폭력에도 노출된다. 여기에 더해 한 번 판매된 개인정보는 2차·3차 판매로 이어지면서 피해는 더 커지기도 한다. 또 다른 불법사이트에 2차·3차 거래되면서 학생들의 개인 휴대폰 번호로 불법 광고문자가 지속 발송돼 스팸 번호로 등록되는 것이다.

스팸번호로 등록되면 최장 60일 동안 SNS를 사용할 수 없다.

사이버 학교폭력은 아니지만 10대들 사이에서 명품 구매가 확산되자 신종 학교폭력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진들은 명품을 산 친구를 골라 괴롭혀서 돈을 갈취한다. 

서울의 한 고교 재학생 A군은 몇 주간 부모님을 졸라 명품 지갑을 구입했다. 하지만 이 지갑을 본 일진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돈이 많으면 용돈을 달라”는 등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이들은 A군을 괴롭히거나 따돌렸다. 
 

▲ ⓒpixabay

급기야 “지갑을 팔아서 맛있는 것 먹고 화해하자”며 A군의 스마트폰을 빼앗았고, 명품 지갑을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판매하도록 한 뒤 판매대금을 빼앗았다.

인천에 사는 여고생 B양도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 무리로부터 “소유하고 있는 고가의 물건을 팔아 판매대금을 가져오라”는 요구를 받았다. 자신의 집에 온라인 수업을 들을 노트북 PC가 없다며 구입비를 뜯어내려는 목적이었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명품을 사려고 자신이 소유한 짝퉁 명품을 피해자들에게 비싼 값에 강제로 팔아넘겨 돈을 빼앗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폭행과 협박이 동반된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벌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반 형사법이 똑같이 적용된다”며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교육부는 17개 시도 교육감이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학교폭력 피해를 봤다고 응답한 비율은 0.9%였다. 전년 1차 조사보다 0.7%p 줄었다. 1000명 중 26.9명이 피해를 당했다고 응답했다.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1000명당 4.9건) ▲집단따돌림(3.8건) ▲사이버폭력(1.8건) 순으로 많았다.

새로운 괴롭힘 등장
여전히 노예처럼 부려

학교폭력 유형별 비율은▲언어폭력(33.6%) ▲집단따돌림(26.0%) ▲사이버폭력(12.3%) 순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조사(2019년 4월)보다 사이버폭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3.4%p, 집단따돌림은 2.8%p 늘었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은 흔히 신체폭력(7.9%)이나 금품갈취(5.4%)를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괴롭힘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 밖 폭력 피해 장소도 사이버공간(9.2%)이 가장 많았다. 모바일 메신저 대화방에서 언어폭력이나 강요 등을 일삼는 경우가 늘었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답변도 17.6%에 달했다.

문제는 이 같은 괴롭힘이 온라인상에서 교묘하게 일어나는 만큼, 기존의 학교폭력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게다가 시간·장소 제한 없이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 ⓒpixabay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교폭력은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타인을 도구화하는 것”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근절을 외칠 게 아니라 인성교육 등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이수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도 “능력 지상주의나 결과 지상주의가 학교폭력을 부추긴다”며 “교우관계 등에 대한 종합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처벌이 크지 않은 점도 학교폭력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자가 받을 수 있는 법적 제재는 크게 세 가지다. ▲학교 안에 설치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괴롭힘 사건을 신고하는 방안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방안 ▲폭행죄나 상해죄 등 형사적 처벌을 구하는 방법 등이 있다.

처벌 어려워

하지만 이 방법 모두 학교폭력을 겪을 당시 신고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는 법률사무소 유일의 이호진 변호사는 “폭행죄는 공소시효가 5년이고, 민사적 손해배상은 민법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이 3년이면 소멸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자매, 가수 진달래 등을 상대로 ‘학교폭력 폭로’가 벌어진 것도 사실상 처벌 방법이 없어 공공 응징에 나선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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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