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한국케미호 사태 ‘이란통’ 윤석헌에 묻다

“특사보단 밀사가 필요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국케미호를 둘러싼 한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한국과 이란의 문제로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미국이 존재한다. 한국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묘수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요시사>가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현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을 만나 이번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을 물었다.
 

▲ ▲ 일요시사 기자와 대담 나누는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현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 ⓒ고성준 기자

지난 4일 한국 국적의 유조선 ‘MT-한국케미호’가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유주는 부산 소재의 ‘디엠쉽핑’으로, 선박에는 한국 선원 5명을 포함해 20명이 승선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나포 당일 한국케미호가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해양오염?
동결자금?

디엠쉽핑은 한국케미호의 해양오염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이란 측 역시 현재까지 해양오염과 관련된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케미호의 나포 배경으로 한국에서 출금이 묶인 동결자금 문제가 거론됐다. 한국 내 이란 자금은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로 멜라트 은행의 지불준비금까지 합치면 10조원이 넘는다.

이란은 2010년 이란 중앙은행 명의로 IBK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하고 이 계좌를 통해 원유 수출 대금을 받아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2018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려 이 계좌를 통한 거래가 중단됐다. 이란 정부는 그동안 이 동결자금을 해제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해왔다.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19일 미국 <블룸버그>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동결자금을 풀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하지만 그런 약속은 처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고, 이란과의 협력을 거부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동결자금과 한국케미호 나포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 10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을 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이란에 파견했다. 한국 대표단은 이란 최고 지도자의 외교 고문인 카말 하르라지 외교정책전략위원회 위원장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 등 이란 고위 관계자를 면담했지만, 해결에는 실패했다.

당시 ‘빈손 귀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케미호, 나포라고 볼 수 없어
이란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 정부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은 현재 양국의 갈등이 이란의 ‘섭섭함’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친구의 나라’라고 생각한 한국이 미국 제재에 있어 다른 국가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서운함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다음은 윤 회장과의 일문일답.

-정부는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케미호를 나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정부 발표와는 달리 한국케미호는 나포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공해상에 있던 우리 선박은 저항 없이 자진해서 이동했고, 이란 해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이란 정부의 무력 대응은 없었습니다. 또 선박 소유주인 디엠쉽핑 이천희 이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케미호가)영해에 자발적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나포라고 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 한국케미호

-한국케미호의 나포 여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포라고 하면 국제법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민간상선을 다른 국가의 군이 끌고 갔다면 제네바 협정을 위반한 것이 됩니다. 한국과 이란의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정확히 해석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나포가 아니라고 정의를 해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선사에서 직접 ‘우리는 나포된 게 아닙니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 말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핵심은 이란의 서운함입니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친서가 지난해 6월에 이어 두 번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됐습니다. 또 2019년 11월에도 유정현 주이란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이란 정부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 입장을 충분히 전달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라는 담 뒤에 숨기 급급했습니다. ‘미국 제재 때문인데 우리도 어쩔 수가 없잖아?’ 이런 논리가 이란 입장에서는 친구의 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란이 정부에 갖고 있는 섭섭함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현재 주한이란대사관의 공식 계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란 정부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란에 제재를 가한 장본인 미국도 비엔나 협약에 따라 뉴욕과 UN주재 이란 대사관에는 모두 미국 은행 계좌가 개설돼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의 핑계를 대면서 계속 계좌 개설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이 남대문 시장에 가서 환전을 할 때마다 한국 정부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초기대응
매뉴얼대로

-미국의 제재로 묶여 있는 이란의 동결자금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지금 한국에 있는 동결자금에 대해 이란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많을 것입니다. 동결돼있는 자금은 비자금도, 정치자금도 아닌 석유수출대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석유수입을 금지한 미국이 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예외조항을 인정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동의한 정상적인 석유수출대금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합의한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동결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 사태 초기 청해부대를 급파했습니다. 

▲청해부대의 업무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해적으로부터 한국 국민과 상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매뉴얼에 따라 행동한 것이지 다른 정치적 목적이나 군사적 의도는 없었습니다. 실제 청해부대는 현지에 파견된 이후 한 번도 다른 나라 군과 교전한 적이 없습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찾았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귀국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협상을 위해 외교부 고위급 인사가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전에 아무런 합의 없이, 회담의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방문하면서 결과 없이 빈손으로 왔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현재 상황에서 방문 성과가 없다고 마냥 잘못된 방문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외교적 프로토콜에 따라서 책임부서의 장 방문 등 매뉴얼대로 움직인 것입니다.
 

▲ ▲▲ 이란 반다르아바스(Bandar Abbas)가 속한 호르무즈간(Hormozgan) 주의 주지사 자데리(Jasem Jaderi, 사진 왼쪽 뒤에서 두 번째)와 이란 국가안보위 실력자 애슈리(Ashouri Taziani, 왼쪽 뒤에서 세 번째),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앞줄 오른쪽)

-한국케미호의 억류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의 공무원들은 힘든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마치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한국 정부의 끊임없는 미국 핑계에 이란 정부는 그동안 친구로서 믿고 있던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정부의 태도에 따라 사태 해결에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정부 태도에
장기화 달려

-선원들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선원들의 안전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란과 한국의 국가 간 우호상태나 외교관계를 보면 현재 감정이 좋지 않을 뿐 적대관계는 아닙니다. 다만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어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이란 상황은 어떤가요.

▲이란은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이후 40년 동안 제재를 당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역대 어떤 정권보다도 더 강력한 제재를 당했기 때문에 지금 현재 경제상황이 굉장히 안 좋습니다. 사실 온건파인 로하니 대통령 같은 사람을 미국에서 지지해 줬어야 이란이 개방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을 텐데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란은 미국에 대한 불신이 많습니다. 
 

▲ ▲이란 국가안보위 실력자 애슈리(Ashouri Taziani, 사진 가운데)와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

-이란 혁명수비대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종교지도자인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의 사병입니다. 이란에는 정규군이 있지만 그 위에 혁명수비대라는 약 20만명의 사병이 존재합니다. 이란에서 종교지도자 하메네이는 인간이 아닌 신의 대변자입니다. 로하니 대통령도 혁명수비대에는 명령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협상을 해도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20일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이번 사태에 영향이 있을까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강하게 제재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협상을 통한 다자간 외교를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바마정부 때 바이든 대통령이 그 당시 부통령으로서 이란과 핵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본인 자신이 의회주의자고 국가 간 다자주의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많은 국가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친구의 나라 섭섭함 때문”
진심 어린 태도만이 해법

-정부가 대 이란 외교에서 이 사건을 푸는 해법이 있다면. 

▲우선 한국 정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서로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외교도, 사업도, 인간관계도, 그 어떠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설령 멱살잡이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너무 계산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싸우는 한이 있어도, 밤새도록 싸워도…. 지금의 해법은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해하기 위해 진심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과거 외교 사례에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한국 정부는 한국이 중국과 수교할 때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1992년 수교 전날인 8월23일 당시 맹방이던 대만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8월24일 중국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이후 대만과의 모든 거래가 단절되면서 경제적으로도 많은 손실을 입었습니다. 우리와는 반대로 중국은 북한을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당시 강택민 국가 주석이 김일성 주석을 만나 충분히 설득하고 설명하는 등 한국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외교 스탠스를 보여줬습니다.
 

▲ ▲이란 적신월사(IRCS) 구호단체 수장 살리미(Morteza Salimi)와 케르만샤 지진 구호품 전달식, 적신월사 테헤란 본부

-정부가 대통령 특사 파견을 고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사 파견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정권 초기에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해찬 전 총리를 중국에 특사로 파견했지만 홀대만 받았습니다. 카메라를 앞에 두고 어떤 속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외교는 조건이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특히 이번 같은 경우에는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개인적 친분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공개적인 특사보다는 모든 섭섭함을 서로 다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친밀한 인사의 밀사 방문이 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 해결되면
더 친해질 것

-이란인들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이란 사람들은 가족을 중시하고 우리 한국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어른을 공경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과는 신라 때부터 교류해 신라의 허황후가 후에 페르시아 제국을 다시 세우는 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이란의 역사서에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는 오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이번 사건 뒤에 좋은 결과가 이어져 양국의 관계가 더욱 발전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석헌 회장은? 국내외 손꼽히는 ‘이란통’

윤석헌 전 한·이란상공회의소 회장은 국내외에서 중동 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이란, 이라크에 많은 인맥이 있다.

1990년부터 30여년 간 중동지역 인사들과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아왔다. 

2018년 30억 상당 구호품 전해

윤 회장은 지난 2018년 5월17일 한·이란상공회의소를 통해 2017년 11월 강도 7.3의 지진 피해를 겪은 이란 케르만샤주 지역에 민간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구호품을 전달했다.

30억원 상당의 구호품이 도착한 항구는 반다르아바스.

현재 한국케미호가 억류돼 있는 곳이다. 

윤 회장은 “일반적으로 구호물품은 재고품으로 구성되는데, 이란에 대한 한국인들의 애정과 응원을 담아 모두 신제품으로 마련했다”며 “당시 구호물품을 직접 받은 이란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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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단독] ‘현실판 차무식’ 사기극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 골프장 투자 사기에 연루된 정종수씨가 1심 재판에서 패소했다. 필리핀 법원은 정씨가 한국인 투자자들을 삭제하고 필리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제이비 크레스타(이하, JBC)의 일반정보보고서(GIS)를 무효로 판단했다. 정씨는 한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최대주주의 지분 탈취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인 사업가 정씨를 둘러싼 필리핀 골프장 투자 분쟁이 현지 법원의 주주 지위 회복 판결로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인 투자자 6명은 2019년 JBC 등에 총 104억원을 투자하고 회사 지분 63.98%를 확보했다. 투자자 측은 “계약에 따라 2024년 8월29일 지분을 배정받고 투자금을 입금해 JBC의 법적·실질적 최대주주가 됐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카르텔 JBC는 필리핀 클락에 위치한 스카이블루 골프 앤 리조트(이하, 스카이블루)를 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현지인과 친인척 관계를 맺으며 필리핀에서 장기간 활동한 정씨는 ‘현지 국회의원 등 4명을 스카이블루 이사로 등재해 골프장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조건으로 JBC와 자회사인 스카이블루의 경영권을 요구했다. 투자자들은 정씨가 현지 인맥을 활용해 골프장 사업을 정상화하고 매각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2024년 11월20일 정씨는 JBC의 주주와 이사진을 대거 교체하고 투자자들의 지분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했다. 투자자 측은 이 과정에서 적법한 주주총회와 이사회 절차 없이 문서가 위조되고 경영권과 지분이 넘어갔다며 정씨 측의 행위를 사기·배임·문서위조 등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판결은 정씨의 사기나 문서위조 등 형사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JBC의 주주 및 이사·임원 지위와 2024년 8월29일 이후 이뤄진 지배구조 변경의 적법성이 쟁점이다. 필리핀 앙헬레스시 지방법원 제60지원은 지난달 28일 함모씨 등 6명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안창현씨와 부민호씨가 정씨와 현지인 등을 상대로 제기한 회사 임원 권원 및 회사 행위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JBC의 적법한 주주라고 선언했다. 함씨를 비롯해 2024년 8월29일 자 GIS에 기재된 이사·임원들을 새로운 경영진이 적법하게 선출될 때까지 원상 복구하고, 당시 GIS에 기재된 주주들의 지위도 함께 회복하라고 판결했다. 이어 법원은 정씨가 제출한 JBC의 GIS를 모두 무효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정씨의 측근 크리스티나 송미 리, 줄리 앤 벨트란, 세스난다 빌라파냐,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 리코 안젤로 정, 디오네 오호일란 안토니야 등 6명은 JBC의 적법한 주주 및 이사·임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세스난다 빌라파냐는 정씨의 아내,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며느리, 리코 안젤로 정은 손자로 알려졌다. 2024년 8월29일 후 JBC 일반정보보고서 모두 무효 자기주식 75% 흡수한 정종수 라인⋯통지도 안 했다 정씨는 이번 소송의 피고지만 판결 주문에서 적법하지 않은 주주·이사·임원으로 특정된 6명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정씨가 불법 주주나 임원으로 판결받은 것은 아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1월 ‘카지노 차무식 현실판 사기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4030)’ 기사를 통해 한국인 투자자들의 JBC 지분과 자회사 스카이블루의 경영권 및 핵심 자산이 정씨 측에 넘어갔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한국인 투자자들은 2019년 JBC 등에 1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이어 스카이블루 증자 등을 명목으로 송금한 약 47억원까지 합하면 피해를 호소하는 투자금은 150억원대에 이른다. 투자자들은 JBC 지분 63.98%를 보유한 최대주주였지만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들은 2024년 8월29일부터 11월14일까지 GIS에 ‘JBC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여기에 함씨는 1500주, 백씨와 김씨는 각각 500주, 한강라이프는 499주, 유씨는 100주를 보유한 것으로 신고됐다. 원고 측 대표자 부민호씨도 최종적으로 100주를 보유한 주주로 기재돼있었다. 그러나 불과 엿새 뒤인 11월20일 제출된 GIS에서 이들의 이름은 정씨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원고들은 자신들이 주주 및 임원 지위에서 배제되는 과정과 관련된 회의에 관해 아무런 통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 역시 피고 측이 기존 주주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을 적법하게 통지했다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의 선출 시점을 둘러싼 모순도 확인됐다. 정씨 측은 2024년 12월2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 이사와 임원들이 적법하게 선출됐다고 주장했으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인 그해 11월20일 자 GIS에 이미 회사 임원으로 기재돼있었다. 고지도 절차도 스테파니 러브 타데오는 12월2일 재무 담당 임원으로 선출됐다고 주장했지만 그보다 앞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과 회사 장부를 조사하는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타데오는 11월12일 카르멜로 라사틴 주니어로부터 주식 1주를 매입했다고 주장했다. 기존 한국인 주주들을 배제하기 위한 실사가 이뤄지기도 전이었다.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직접 확인한 핵심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적법한 주주였으며, 이들의 지분을 연체 주식으로 처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다는 피고 측 주장을 뒷받침할 적법한 절차와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2024년 11월20일 자 GIS에는 JBC가 자기 회사의 보통주 3751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회사가 자기주식을 취득하려면 법이 정한 사유와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해당 GIS에는 이 주식이 어떤 경위로 회사 명의가 됐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주식의 성격도 자기주식이 아닌 일반 보통주로 표시됐다. 이후 회사 측 설명은 달라졌다. 2024년 12월2일 회의록에는 당초 자기주식으로 분류됐던 3752주를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납입하지 않은 연체 주식으로 정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피고 측은 기존 주주들이 청약대금을 완납하지 않아 해당 주식이 연체 상태가 됐고 이후 신규 주주들에게 적법하게 매각됐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필리핀 개정회사법에 따라 연체 주식을 처분하려면 해당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통지하고 일반 유통 신문에 2주 연속 매각 사실을 공고한 뒤 공개경매 절차도 거쳐야 한다. 연체 주식 지정을 위한 이사회 결의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 대한 통지, 매각 공고와 신문 게재, 공개경매, 실제 매각을 입증할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장부 제출 신규 주주들이 주식 대금을 실제 지급했다는 계약서와 영수증, 세금 납부 자료 역시 제출되지 않았다. 주식은 정씨 측근들에게 분산됐다. 2024년 12월21일 자 GIS에는 타데오가 1378주를 보유한 대주주로 등장했다. 카트리나 블랑카 데 레온과 아이리시 칼라구아스는 각각 550주, 이경희와 박재관은 각각 375주, 최민승은 375주를 보유한 것으로 기재됐다. 이성진과 손봉준에게도 각각 75주가 배정됐다. 재판부는 이들이 취득했다는 주식의 성격과 실제 취득 경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선 피고 측이 핵심 증거로 제출한 주주·주식양도 대장의 진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피고 측은 기존 한국인 투자자들이 JBC의 주주가 아니라는 근거로 주주·주식양도 대장 일부를 제출했다. 해당 장부에 원고들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들을 JBC 주주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문서를 확인한 결과 증거로 제출한 자료는 JBC의 장부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회사명이 기재돼있었고 원본대조필 표시 역시 모회사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 명의로 돼있었다. 타데오도 반대신문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JBC가 아닌 스카이블루의 주주명부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투자자 함씨와 김씨는 2022년 정씨와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라 스카이블루의 증자에 참여하기로 하고 약 47억원을 송금했다고 주장한다. 투자금 일부는 스카이블루 법인 계좌로 송금됐고 일부는 골프장 카트 구매비 명목으로 정씨가 지정한 한국 계좌에 입금됐다는 게 투자자 측 설명이다. 장부라며 낸 증거, 알고 보니 스카이블루 주주명부 코레이트자산운용 별도 재판⋯뒤집힌 지배구조 쟁점 함씨와 김씨는 2년이 넘도록 증자 절차가 등록되지 않았고 자신들의 지분도 필리핀 SEC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작성된 주주명부에도 함씨와 김씨의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자자 측은 투자금을 받고도 약속한 지분을 발행하지 않은 행위가 사기와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허위 내용이 포함된 GIS를 고의로 인증하거나 제출한 사실이 입증될 경우 필리핀 개정회사법 제162조의 허위·부정확 보고서 인증 규정이 문제될 수 있다. 지분을 탈취했다는 의혹을 받는 정씨는 스카이블루 매각을 최대주주 동의 없이 진행하기도 했다. 투자자 측은 스카이블루 주요 자산을 처분하려면 회사 주주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와 스카이블루 지분 99.9%를 보유한 모회사 JBC의 적법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매각 상대방으로는 한국토지신탁 자회사인 코레이트자산운용 측이 거론됐다. 골프장 관련 공사에는 포스코더샵 아파트 건설에도 참여한 다원이 시공사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이 스카이블루의 자산매각 자체를 무효로 판단한 것은 아니다. 해당 매각의 적법성은 별도로 제기된 탈락(Tarlac) 특별상업재판소 사건에서 심리되고 있다. 다만 이번 판결로 2024년 8월29일 이후 JBC의 GIS와 지배구조 변경이 무효로 판단된 만큼, 적법하지 않은 JBC 지배구조를 토대로 스카이블루의 매각 승인권이 행사됐는지가 별도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특히, 스카이블루 골프장 부지는 필리핀 국유지와 관련돼있어 기지전환개발청(BCDA)의 승인이나 동의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별도 사건에서 다뤄질 쟁점이다. 2025년 10월 매각 절차가 BCDA의 승인 아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승인 절차의 미비만으로 거래가 당연히 무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별도 가처분 사건에는 BCDA도 피고로 포함돼있다. 골프장 매각 따로 재판 이번 판결이 정씨에 대한 형사 유죄판결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한국인 투자자들을 JBC의 적법한 주주로 인정하고 2024년 8월29일 이후 제출된 GIS를 모두 무효화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이 적법한 절차 없이 회사 지배구조에서 배제됐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힘을 얻게 됐다. 150억원대 투자금과 골프장 자산을 둘러싸고 시작된 이른바 ‘현실판 카지노 차무식’ 사건은 이제 JBC 지배구조 복원과 스카이블루 자산매각의 적법성, 관련자들의 형사책임을 가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