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5년’ 요동치는 재계 서열

1위는 굳건한데…A 그룹 엎치락뒤치락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문재인정부가 어느덧 집권 5년 차를 앞두고 있다. 그 사이 재계 판도에는 많은 변화가 감지됐다. 건실한 성장을 거듭한 곳이 있는 반면 몇몇 기업은 대기업 지위를 상실했다. 변화의 소용돌이는 신축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현대자동차 사옥 ⓒ현대자동차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해왔다. 직전년도를 기준으로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을 공개하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됐다는 건 ‘대기업’으로 분류됐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흥미로운 
판도 변화

상호출자제한집단 지정은 재벌에 의한 시장경쟁 저해를 막기 위해 1987년 첫 도입됐다. 초창기에는 자산총액 4000억원이 기준이었지만, 2002년 2조원, 2009년 5조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호지급보증 금지 출자 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가 가해진다.

해당 기준은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수정됐다. 2017년 7월11일 자산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정을 위한 세부기준이 담긴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변화였다.

개정안은 석달 전 공표된 개정 공정거래법의 위임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시 의무와 사익편취 규제의 적용대상을 기존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집단 외에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분류하는 게 핵심이다.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절차는 기존 상호출자제한집단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했다. 자산총액 산정은 직전 사업연도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총액 합계로 이뤄지며, 금융·보험사는 자본총액과 자본금 중 큰 금액에 따른다. 대신 금융·보험업만을 영위하는 기업집단이나 회생·관리절차가 진행 중인 소속 회사의 자산총액이 전체의 50% 이상인 기업집단 등은 지정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해인 2017년에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이름을 올린 일반기업은 총 57곳. 상호출자제한집단이 31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26개였다. 

자존심 걸린 물밑 순위 경쟁
M&A·분리 나비효과…‘빅5’ 뒤바뀌나

3년 뒤 이 명단에는 변화가 뒤따랐다. 지난해 4월 기준 상호출자제한집단(34곳)과 공시대상 기업집단(30곳)에는 총 64곳이 포함됐다. 문 대통령 부임 첫 해와 비교하면 상호출자제한집단에 포함된 기업은 3개 늘었고,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1개 감소했다.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국내 기업 환경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으로 분류되던 몇몇 기업은 더 이상 이 명단에서 이름을 찾기 힘들다.

한진중공업은 인천 북항 운영에 대한 지배력 상실에 따른 자산 감소로 지난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2000년에 자산 기준 재계 순위 11위에 올랐던 한솔은 이후 외형 확대에 소극적인 양상을 나타냈고, 지난해 공시대상 기업집단 명단에서 제외됐다.
 

▲ SK본사 ⓒ고성준 기자

한솔과 한진중공업이 대기업 명단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이들의 공석은 금방 채워졌다. ▲넷마블 ▲유진 ▲애경 ▲다우키움 ▲HMM ▲장금상선 ▲IMM인베스트먼트 ▲KG ▲삼양 등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넷마블과 유진그룹은 2018년 공시대상으로 지정됐다. 넷마블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며 2조7000억원의 자금이 유입됐고, 유진그룹은 유진저축은행 인수 및 계열사인 유진기업의 실적 개선이 자산 증가에 기여했다.

지난 2019년에는 애경그룹과 다우키움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애경그룹은 계열사가 상장하고 신사옥을 준공하면서 자산이 증가했고, 다우키움은 사모펀드(PEF)와 특수목적법인(SPC)이 늘어난 데 따른 영향이 컸다.

뜨고 지고
흥망성쇠

올해는 5곳이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신규 지정됐다. HMM은 6조5000억원, 장금상선은 6조4000억원, IMM인베스트먼트는 6조3000억원, KG그룹은 5조3000억원, 삼양그룹은 5조1000억원으로 자산총액이 집계됐다.

HMM은 지난 2019년 적용된 국제회계 기준으로 2018년까지 부채에 포함되지 않았던 운용 리스가 부채로 인식되면서 자산이 늘었다. 여기에 글로벌 해운업계 흐름인 대형화에 맞춰 대형 선박 확보에 나선 것도 부채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장금상선은 지난해 흥아해운의 컨테이너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자산이 늘었다. 장금상선을 비롯해 계열회사 모두 비상장법인으로 구성돼있다.

KG그룹의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은 지난해 동부제철(현 KG동부제철)을 인수한 영향이 컸다. KG그룹은 2018년 말 기준으로 자산총액 2조2337억원의 중견 그룹이었는데, 2019년 8월 말 동부제철 인수를 완료하면서 자산이 대폭 늘었다. 동부제철의 자산총액은 2019년 말 기준 2조3553억원에 달한다.
 

▲ LG 본사

삼양그룹은 계열회사의 사채 발행과 당기순이익이 증가하면서 자산이 늘었다. 삼양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양홀딩스의 사채는 지난 2019년 말 기준 6985억원으로, 2018년 말(3441억원)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사모펀드 최초로 공시대상 기업집단에 지정된 IMM인베스트먼트는 최대주주인 지성배 대표가 IMM인베스트먼트 지분 76%를 확보한 유한회사 IMM의 지분 42.8%를 보유하고 있는 점이 감안돼 공시 대상에 포함됐다. 공정위는 지 대표가 IMM 지분을 통해 IMM인베스트먼트의 79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치열한
자리 싸움

지난해 인수합병·계열분리 등 굵직한 이슈가 이어진 만큼 올해 재계 순위는 어느 때보다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분류된 최상위권 집단에서의 순위 변동이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해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삼성전자가 자산총액 424조원으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이 그 뒤를 잇고 있다.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산총액은 234조원이고, SK그룹은 225조원이다. 두 기업의 자산총액 차이가 10조원을 넘지 않는 상황에서 SK가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10조원에 인수하면서 격차는 한층 좁혀지게 됐다.


SK그룹이 인수합병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내 순위 역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지난 2019년, 111개였던 SK그룹 내 소속 회사 수는 지난해 125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그룹은 53개에서 54개로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재계 빅5’의 나머지 구성원인 LG그룹과 롯데그룹의 순위 변동 가능성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지난해 상호출자제한집단 및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보면 LG그룹과 롯데그룹의 자산총액은 각각 137조원, 121조원으로 15조원 이상 격차를 보인다.
 

▲ 농심 본사 ⓒ농심

다만 LG그룹의 계열분리가 변수다. LG그룹은 지난달 24일 LG상사와 LG하우시스의 계열분리를 공식화했다. 두 회사의 자산총액 합계는 약 8조원이고, 계열분리가 완료되면 LG그룹은 약 10조원가량의 자산총액 감소가 불가피하다. 계열분리 세부 내역과 롯데그룹의 자산총액 상승 여부에 따라 순위 자리바꿈이 연출될 수 있는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약진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63조원으로 재계 순위 9위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완료하면 순위가 오를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의 2020년 기준 자산총액은 12조원으로, 두 기업이 합치면 한화의 자산총액 72조원을 뛰어넘게 된다.

M&A·분리 나비효과
‘빅5’ 순서 뒤바뀌나

이 경우 재계 순위는 2계단 뛰어오른 7위에 위치하게 된다. 여기에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작업까지 연내 마무리되면 자산총액 규모는 더욱 불어난다. 


지난해 기준 재계 14위 한진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향방에 따라 현재 11위인 신세계그룹을 넘어설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총액은 13조원 규모로 파악되고 있으며, 한진그룹과 신세계그룹의 자산총액은 각각 33조원, 41조원이다.

반면 재계 순위 하락이나 대기업 지정 제외가 불가피한 집단도 눈에 띈다.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29조원으로 재계 순위 15위인 두산그룹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이 마무리되면 순위가 하락할 전망이다. 수년 전부터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두산그룹은 지난해 ‘3조원 자구안’ 마련을 위해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해왔고, 이로 인해 자산총액이 9조원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 ⓒ두산그룹

이로 인해 두산그룹의 자산총액이 21조원으로 감소하면, 재계 순위는 2계단 하락한 17위권에 해당한다. 지난해 기준 17위는 부영그룹(23조원)이고, 대림그룹(18조원)이 18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자산총액 17조원으로 재계 순위 20위에 위치했던 금호아시아나는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속도에 따라 올해부터 대기업 명단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의 자산총액이 그룹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아시아나항공 및 산하 자회사까지 일괄 매각될 경우 그룹의 자산은 3조원대로 줄어든다. 

이 경우 상호출자제한집단은 물론이고,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도 제외된다.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그룹 명칭도 바꿔야 한다. 건설회사인 금호산업과 운수업체인 금호고속 정도만 남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대기업 사이에서의 순위 변동도 흥미롭지만, 새롭게 대기업 편입을 앞둔 집단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농심그룹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변화의 
소용돌이

올해부터 공시대상 기업집단 신규 지정이 확실시 되는 농심그룹은 농심홀딩스를 지배회사로 상장사 3개, 비상장사 15개, 해외법인 15개 총 3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농심그룹 상장사 3개 자산 총액만 4조70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메가마트, 태경농산, 농심엔지니어링, 엔디에스, 농심미분 등 비상장 계열사 15개까지 합치면 5조원을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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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