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료 이력서> (23·24) 쑥갓, 시금치

고려의 국화와 채소의 왕

오이, 쑥갓, 가지… 소박한 우리네 밥상의 주인공이자 <식재료 이력서>의 주역들이다. 심심한 맛에 투박한 외모를 가진 이들에게 무슨 이력이 있다는 것일까. 여러 방면의 책을 집필하고 칼럼을 기고해 온 황천우 작가의 남다른 호기심으로 탄생한 작품 <식재료 이력서>엔 ‘사람들이 식품을 그저 맛으로만 먹게 하지 말고 각 식품들의 이면을 들춰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나름 의미를 주자’는 작가의 발상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해 인간이 식품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쑥갓 ⓒpixabay

 

쑥갓

다음은 속명(俗名) 호개(蒿芥)로 일컬어지는 김창업의 작품 ‘동호’(茼蒿) 이다. 

有菜不知名(유채부지명)
이름 모르는 채소 있는데
小花如菊黃(소화여국황)
자그마한 꽃 누런 국화 같네
茼蒿載本草(동호재본초)
동호는 본초에 기재되어 있는데
顧我考未詳(고아고미상)
보건데 나는 세세히 살피지 못했네 

고려시대 때부터 식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쑥갓의 한자명이 위 작품에 등장하는 茼蒿(동호)이다.

김창업은 쑥갓의 꽃이 국화 같다고 했는데 정약용도 그의 작품서 茼蒿花似蘜(동호화사국)이란 표현을 사용해 ‘쑥갓 꽃은 국화와 비슷하다’고 했다. 

이를 살피면 쑥갓과 국화의 관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쑥갓의 꽃은 국화와 닮았는데 조선조 실학자 이규경은 그의 작품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쑥갓을 지칭해 高麗菊(고려국) 즉 고려의 국화로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쑥갓이란 이름은 어디서 파생했을까.

바로 동호의 속명 호개(蒿芥)에서 기인한다.

蒿芥에서 蒿는 쑥을 그리고 芥는 갓을 의미하니 더해 쑥갓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쑥갓을 쑥을 의미하는 艾(애)와 芥(개)를 합해 艾芥(애개)라 칭하기도 한다.

여하튼 다시 위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본초는 송나라 당신휘(唐愼徽)가 짓고 구종석(寇宗奭)이 수정한 ‘경사증류대전본초(經史證類大全本草)’의 약칭이다.

이 책은 약물학에 대한 저서로 증류본초라고도 한다.

김창업은 본초에 실려 있는 쑥갓을 세세하게 살피지 못해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쑥갓의 유래를 살피면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곳에서는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고 그 이름 또한 Crown Daisy(왕관 모양의 데이지 꽃)로 채소가 아닌 꽃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일성록>을 살피면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갔던 봉림대군(후일 효종)을 호종했던 노원 역리 출신 홍끗룡(洪唜龍)이 효종이 환국할 때 호개(蒿芥) 종자를 숨겨 와 왕십리에 파종했고 효종이 보위에 오른 이후 쑥갓을 진상해 가자(加資, 품계가 오름)됐다는 기록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앞서 이야기, 고려시대부터 식용됐다는 이야기는 오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이 ‘이제부터 어선(御膳)에 茼菜(동채, 쑥갓)를 올리지 말라’고 한 기록을 살피면 고려시대에도 식용됐다는 추측이 그르지 않다.  

이제 조선후기 문신이었던 이학규(李學逵, 1770∼1835)의 작품 쑥갓(艾芥, 애개)을 감상해보자.

蒿芽芥其臺(호아개기대)
쑥으로 싹 터 그 대는 갓인데
芳馨溢齒本(방형일치본)
그윽한 향기 입안 가득하네
嘗聞煗爐供(상문난로공)
일찍이 난로에 기여했다 들었고
再蒔須秋晩(재시수추만)
늦가을 다시 심어도 되네

위 작품에 등장하는 煗爐(난로)에 대해 부연한다.

난로는 난로회의 준말로 10월 초하루가 되면 화로에 숯불을 피우고 석쇠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양념해 화롯가에 둘러앉아 구워 먹었던 풍습으로 그 과정에서 쑥갓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만큼 쑥갓이 애용됐음을 의미한다.

실학자 이규경 ‘고려의 국화’로 표현
‘뽀빠이’ 하면 생각나는… ‘채소의 왕’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위 작품에 그 이유가 함축돼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려 한다.

그윽한 향기를 의미하는 芳馨(방형)과 난로회에 기여했다는 煗爐供(난로공)을 살피면 능히 짐작되리라 생각한다. 

시금치

시금치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기록을 살펴본다. 

원산지는 페르시아지방으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나라에선 1577년(선조 10)에 최세진(崔世珍)에 의해 편찬된 <훈몽자회>에 처음 시금치가 등장하고 있어서 조선 초기부터 재배된 것으로 여겨진다. 
 

▲ ▲시금치 ⓒpixabay

이 내용이 옳은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작품을 살펴 보려 한다.

김창업의 형인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작품이다.

菠薐 俗名時根菜(파릉, 속명 시근채)
시금치 속명 시근채

菠薐傳數名(파릉전수명)
시금치는 여러 이름 전하는데
其始出波羅(기시출파라)
그 시작은 페르시아에서 나왔네
我國有俗稱(아국유속칭)
우리 나라에는 속칭 있는데
恐是赤根訛(공시적근와)
아마도 적근의 와전인 듯하네 

위 작품의 제목인 菠薐(파릉)이 시금치의 한자명으로 전래 과정은 <훈몽자회>의 내용이 맞다.

그렇다면 전래 시기는 어떠할까.

서거정의 작품이다.

謝金少尹同年 永濡 送菠菜子(사김소윤동년 영유 송파채자) 
동반 급제한 소윤 김영유가 시금치 씨앗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다 

我有荒田數頃餘(아유황전수경여)
내게 내버려둔 밭 두어 이랑 있어
秋來擬種滿園蔬(추래의종만원소)
가을에 전원 가득 채소 심으려 했는데
感君多送靑菠子(감군다송청파자)
고맙게도 자네 시금치 씨앗 많이 거두어
急喚僮奴送弊廬(급환동노송폐려) 
급히 종 아이 불러 우리 집에 보내주었네 
圓莖如竹葉如磐(원경여죽엽여반)
둥근 줄기는 대같고 입은 너럭바위 같은데
滿甕沈虀味自酸(만옹심제미자산) 
항아리 가득 절이면 맛이 절로 새콤하네 
預識秋來滋味足(예식추래자미족)
가을 되면 맛이 풍부할 걸 미리 아니
煩君爲我一來看(번군위아일래간)
번거롭더라도 자네 나를 위해 와서 보시게

위 작품은 서거정이 1457년(세조 3) 평양 소윤(정4품)이었던 김영유(1418∼1494)가 시금치 씨앗을 보내준 일에 대해 김영유에게 사례하는 글이다. 

위 글에 등장하는 菠菜(파채)와 菠(파) 역시 시금치를 지칭하는데, 시금치가 서거정과 김영유에게 상당히 친숙한 나물로 여겨진다.

특히 사대부인 서거정이 시금치를 식용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훈몽자회>와는 다르게 오래전부터 즉 조선 이전 고려조 후반부터 시금치가 전래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여하튼 시금치는 우리 세대에게 미국서 제작한 인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뽀빠이’를 통해 친숙해졌다.

아직도 뽀빠이와 뽀빠이의 여자 친구 올리브, 악역으로 등장하는 블루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다.

줄거리는 <두 얼굴의 사나이>(The Incredible Hulk)에 등장하는 헐크처럼, 평소에는 나약한 뽀빠이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시금치를 먹고 강력한 인물로 변해 블루토를 응징하는 방식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시금치가 남자들의 정력 강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여기고 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금치와 정력은 별개의 문제다.

그와 관련해선 1983년 5월10일자 <동아일보>의 기사를 인용해 본다.

‘시금치 정력제 안 돼’ ‘타자수 실수로 논문 잘못 알려져’라는 제하로 <AFP> 기사를 인용했다. 

「시금치의 다량섭취가 정력을 강화시킨다는 학설은 잘못된 것이며 이 학설을 근거로 뽀빠이 만화까지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한 조심성 없는 여비서의 타자 실수에 그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보고서가 최근 발표돼 화제」

비록 시금치가 정력제로서는 적합하지 않지만 건강식품임에는 틀림없다. 시금치에는 채소 중에서 비타민 C가 가장 많이 들어 있다. 또 비타민 B1, 비타민 B2, 나이아신, 엽산, 사포닌 등이 함유돼있으며 당질, 단백질, 지방, 섬유질, 칼슘, 철 등의 영양소도 함유돼 있어 채소의 왕으로 불릴 정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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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