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2막’ 여는 정의당의 큰그림

‘데스노트’ 다시 펼칠 수 있을까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진보정치 1세대가 곧 막을 내린다. 정의당은 작년 조국 사태 이후 크게 흔들리면서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새로운 당 지도부는 범여권 프레임서 벗어나 정의당만의 노선을 보여야 한다. ‘포스트 심상정’은 과연 누가 될까.
 

▲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의당이 새로운 당 지도부 선출 작업과 함께 독자적인 노선을 밟고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노동’이라는 어젠다에 더욱더 집중하는 모습도 보인다. 당은 오는 27일, 새로운 대표단을 확정할 예정이다. 다만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갖는다. 새로운 지도부는 몰락할 위기에 처한 진보정당을 다시 살리는 중책을 맡게 된다.

몰락 위기
여권 비판

정의당은 최근 연이은 여권 인사들의 논란에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정의당은 공적 권력에 대한 안일한 인식에 아쉬움을 표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추 장관은 의도치 않은 개입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여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실망감을 표했다. 초선인 장혜영 의원은 “민주화 주역들이 기득권자로 변했다”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류인 민주화운동 세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특히 정의당은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통보 사태에 대해서는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이다. 이스타항공의 창업주는 민주당 이상직 의원이다.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과정서 아들과 딸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업무상 횡령·배임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이 의원 은 형의 회사를 통한 차명재산 축적 의혹, 위계를 이용한 후원금 모금 및 선거 동원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


이스타항공은 지난 7일 직원 60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5일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서 “재난이 약자들에게 더 가혹하지 않도록 하겠다던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약속은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지고 말았다”며 “불법 증여 의혹에 휩싸인 16살 골프선수가 기간산업인 항공사 대주주가 되었는데 정부는 정녕 책임이 없느냐. 212억 자산가가 5억 고용보험료를 떼먹어 고용안정기금조차 못 받고 있는데 이런 악덕 기업주에게 금배지를 달아 준 집권여당이 이렇게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되느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의당은 재산신고 누락 논란에 휩싸인 민주당 김홍걸 의원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 재산신고서 10억원대의 강동 아파트 분양권 재산신고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2016년에 강남, 서초서 두 채의 아파트를 추가로 분양받아 당 해에만 총 세 채의 아파트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부동산 투기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그야말로 호부견자(아비는 범인데 새끼는 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힐난했다. 김 의원은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

조국 사태 이후 중심 못 잡아
범여권 프레임 벗어나 독자 노선?

일각에서는 최근 민주당발 악재가 오히려 정의당의 선명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권을 향한 따끔한 지적을 통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범여권’ 프레임과 결별을 선언하고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정국이 막힐 때마다 ‘중심 추’로써 존재감을 보였다. 거대 양당 체제가 공고한 구조서 소수정당의 쓴소리는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대표적인 일례가 정의당의 ‘데스노트’다. 데스노트는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 낙마한 정부 인사들이 모두 정의당의 반대 명단에 들어가면서 생긴 용어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은 정의당의 데스노트 명단에 올라간 후 모두 자진사퇴했다. 원내 6석에 불과한 소수정당이었지만, 이들이 여권으로부터 돌아설 경우 진보 진영 여론에 상당한 파급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그랬던 정의당이 중심을 잃은 것은 지난해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다. 당은 조국 사태 내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년 정당, 진보 정당을 자처했던 정의당은 검찰개혁이라는 대의 앞에서 여권의 손을 들어줬다.
 

▲ 정의당 대표 후보자들 ⓒ정의당

당시 심상정 대표는 “무분별하게 쏟아낸 수많은 의혹 어느 하나도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존중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조국 사태 초반에 조 전 장관을 반대하는 듯한 당의 입장과는 분명 다른 결이였다.

하지만 이는 지도부의 잘못된 선택이었다. 정치권에서는 정의당을 향해 ‘민주당 2중대’라는 비아냥을 쏟아냈다. 이로 인해 정의당은 심한 당 내홍을 겪었고, 당원들의 집당탈당이 이어졌다. 특히 진성 당원으로 꼽혔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의 탈당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는 탈당 이유로 “(당의 조국 사태 대응 방식 등) 포함해 세상이 다 싫어서 탈당계를 냈다”고 말했다.

이후 심 대표는 당의 일관성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내상은 오래 갔다. 결국 당의 위기를 자초하는 치명적인 원인이 됐고, 각 이슈마다 민감도가 높은 진보정당의 딜레마는 정의당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게 됐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종민 부대표 역시 한 토론회서 “정의당은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대안은 다르게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비판도 대안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주 2중대
이제는 남?

이후 당의 숙원이었던 ‘정치 개혁’마저 무산되면서 큰 위기에 처한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통과를 위한 연대를 노렸다. 선거법이 개정되면 정의당은 21대 총선서 가장 큰 특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치 개혁의 핵심인 선거제 개정안은 유례없는 ‘비례위성정당’ 난립을 낳았다.

각종 꼼수가 난무하고, 거대양당의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면서 개혁의 취지는 바랬다.

정의당은 원칙을 강조하며 비례위성정당을 반대했다. 명분은 지켰지만, 꼼수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미비했다. 결국 정의당은 21대 총선서 교섭단체(20석)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원내 6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지역구에선 심상정 대표만이 생환했고, 정의당의 지지율은 10%를 넘지 못했다.


심 대표는 지난 15일 비교섭단체 연설서 정치 개혁이 무산된 점에 대해 큰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개혁을 거부한 보수 야당과 개혁을 무너뜨린 여당의 합작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모두를 부끄럽게 만든 후과(後果)”라며 “그럼에도 거대 양당의 반성문은 아직 본 적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원칙을 지킨 정의당이 최대 수혜자가 아닌 피해자가 된 점에 대해 꼬집은 것이다.

아울러 정치 개혁 실패의 원인에 민주당에 있음을 정확하게 짚음으로써 차별화를 보였다. 그는 “길 잃은 정치 개혁, 민주당의 결자해지를 요구한다”며 “국민들은 민주당에 180석을 안겨 줬지만, 정치 개혁 실패를 면제해 준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국회 본회의장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하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고성준 기자

21대 국회가 열린 이후로도 정의당의 수난은 계속됐다.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당은 혼선을 빚었다.

대표적인 예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 논란이다.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범람하면서, 당내 일부 의원들은 박 전 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피해자와의 연대 차원서 정의당만이라도 나서야 한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로 당원들의 대거 탈당이 이어졌고, 심 대표는 다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정의당이 당의 전면 쇄신을 위해 지난 5월 출범시킨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심 대표가 임기를 1년 가량 앞당겨 대표직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혁신위는 ‘포스트 심상성’ 시대 구상에 나섰다. 혁신안에는 ‘부대표 확대 및 당 대표 권한 축소’ 등을 통해 당 대표에게만 집중됐던 권한을 분산시키고자 했다.


대표 의제
‘노동’

하지만 정의당만이 가질 수 있는 진보 의제를 독자적으로 선점하지 못했고, 당의 정책은 선명성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당내 계파 싸움이 두드러졌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성현 전 혁신위원은 “혁신위는 심상정 대표의 (총선 실패)책임 면피용으로 만들어진 기획이며, 그 기획조차도 실패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정책 미비가 당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자 최근 정의당은 선명한 진보적 의제를 띄우고 있다. 민주당이 펼치기 다소 어려운 정책을 과감히 제시함으로써 정의당만의 입지를 다지겠다는 계획이다. 정의당은 민주노동당 시절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 등을 선점해 대중적 지지를 받은 선례가 있다.

정의당은 여권과 달리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선별지급으로는 정책 효과도 미미할뿐더러, 정치적 선전 효과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심 대표가 주장한 코로나 방역 2단계부터 ‘전국민 재난기본수당’, 소득 기반의 ‘전국민고용·소득보험’ 도입 등은 민주당과 차별화를 보일 수 있는 정책이다.

또 심 대표는 최근 비교섭단체 연설서 임대인의 피해단계별 임대료 감면 동참을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내세우기에는 다소 파격적인 정책이다. 현재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영업제한 조치로 경제적 위기에 쳐해 있다.

심 대표는 이를 두고 “방역 전시체제라며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고 시민들에게 소득 손실을 강제하면서, 임대소득은 왜 보장돼야 하느냐”며 “코로나 뉴딜을 위한 고통 분담은 정의롭게 재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정의당의 대표 의제는 ‘노동’이다. 정의당은 최근 노동보다는 젠더 이슈에 더 많이 경도된 것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노동에 더욱 더 집중하는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일례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를 위한 정의당 의원들의 릴레이 1인 시위다.

해당 법안은 사업장서 산업재해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안전조치 미비가 인정될 경우 사업장 운영 법인과 사업주 등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룬다.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서 또 다른 노동자가 2톤 기계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나면서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포스트 심상정’ 4파전 주목
정책 차별화 등 과제 산적

당 대표로 출마한 이들 역시 진보 정책의 선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 대표를 이을 당 대표로 김종민 부대표와 김종철 선임대변인, 박창진 갑질근절특별위원장, 배진교 전 원내대표가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0세로, 누가 당선돼도 자연스레 당의 세대교체가 가능해진다.

배 후보는 노동 존중·기후 위기·젠더 평등을, 김종민 후보는 기본소득과 보편복지를 언급했다. 김종철 후보는 과감한 증세를 통한 ‘재분배 복지국가’를, 박창진 후보는 대국민 소통과 민생문제 실력을 강조했다. 박창진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진보정당 정책을 강조한 셈이다.
 

▲ 비교섭단체 대표연설 중인 심상정 정의당 대표 ⓒ고성준 기자

정의당이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지도 큰 관심사다. 사실상 이번 당직선거의 최대 쟁점은 민주당과 얼마나 선을 긋느냐로 볼 수 있다.

김종민 후보는 “정의당의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며 사실상 독립에 가까운 독자노선을 표방했다. 김종철 후보는 민주당과의 차별화서 더 나아가 ‘이재명과의 경쟁’을 강조하며 과감한 정책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배진교 후보는 특별활동비 폐지, 차별금지법과 같은 이슈를 선점으로 민주당과의 정책 경쟁을 주장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창진 후보는 민주당과의 차별화 보다는 국민들의 실질적 삶의 향상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과의 인위적인 선 긋기가 아닌, 실용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로 읽힌다.

당직선거로 인해 계파간 대결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초반에는 당내 최대 계파인 과거 민족해방(NL) 계열 인천연합 소속 배진교 후보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종철 후보는 좌파(PD) 계열로, 양경규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위원장과 단일화를 통해 좌파·노동계 대표로 나섰다. 김종민 후보는 당내 서울 기반 조직인 ‘함께서울’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폭로했던 박창진 후보는 옛 국민참여당 참여계의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당내 지지 세력이 공고한 천호선 전 당 대표가 박 후보를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크게 부상하고 있다.

새 변곡점
중대 기로

고 노회찬 전 원내대표와 심상정 대표로 대표됐던 진보정치 1세대가 물러나면서 진보정당은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새 얼굴을 찾는 선거가 아니다. 몰락하는 정의당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이들이 과연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벗고 정의당만의 차별화된 노선을 걸을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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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