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홍원찬 감독 “<다만악>은 배우의 영화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신세계>서 ‘부라더’로 유명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뭉친 것만으로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는 기대감을 줬다. 일각에선 기시감이 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베일을 벗은 <다만악>은 완전히 새로운 하드보일드 장르물의 형태를 갖췄다. 빠른 속도감에 전에 없던 액션 타격감, 새로운 캐릭터의 창출 등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게 <다만악>에 대한 평가다.
 

▲ ▲ 홍원찬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는 선 굵은 <다만악>을 진두지휘한 홍원찬 감독을 만나,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계관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엄청난 화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무너진 극장가를 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극장가를 구하소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실제로 주말에는 50만, 평일 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코로나 정국 이전의 티켓 파워를 보이고 있다. 굶주려 있던 극장가의 구원자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영화의 작품성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월등한 완성도를 보인다. 하드보일드 장르적 특성을 연출의 묘로 정확히 살린다. 빠른 속도감과 서스펜스, 타격감 좋은 액션,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력, 텁텁하면서도 개운한 마무리까지 영화가 가진 장점이 상당하다. 일부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나 불친절한 대목,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장점이 워낙 출중해 감싸주고 싶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메가폰을 잡은 홍원찬 감독을 최근 만났다. 하드보일드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연출 의도를 들어봤다. 

다음은 홍원찬 감독과의 일문일답. 


- 주위 반응은 어떤가. 호평의 늪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 대부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는 인물의 전사나 백 스토리가 빠진 게 너무 불친절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속도감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게 있다. 불친절해서 좋다는 분들도 있다. 조금 나뉘는 것 같다. 

- 실제로 레이나 인남이나 캐릭터 설명이 거의 없는 편에 해당한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 캐릭터의 경우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명분보다는 기질에 집중했다. 보는 사람으로서 인물을 알고 이해가 되면 덜 공포스럽지 않을까. 한국 영화 자체에 설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설명하려면 신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이야기 템포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됐다. 

- 레이뿐 아니라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도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꼭 납득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력을 어필하는 건 꼭 설명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화했다. 딱 영주와의 관계까지만. 

- 이 영화서 좋았던 점은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혹은 알려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추격이 있었다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건가. 


▲ 말한 대로 메시지를 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마다 각자의 지향점이 있는데 영화라고 해서 꼭 메시지를 줄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예술적 성취나 철학적인 성찰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에 치중한 작품이다. 그게 1차적인 목표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누아르,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악으로 상징되는 세계관 안에서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서 벌어지는 질이다.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작품도 아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세계를 좋게 보신 분들은 하드보일드 세계관에 잘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 작업을 하면서 공부한 것 중 하나가 내러티브의 리듬감이었다. 과정을 세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장면이 있고, 과감한 편집으로 리듬을 빨리 가야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런 안배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했다. 
 

▲ ⓒCJ엔터테인먼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오피스> 이후 5년 만에 나왔다. 이 영화는 어떻게 출발하게 됐는가. 

▲ 10년 전일 듯하다. 처음에 하이브 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님이 외국서 아이를 찾다가 고군분투하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에 방콕을 배경으로 정하고, 방콕 답사도 갔다 왔다. 어느 정도 쓰는 중에 <아저씨>가 개봉했다. 재밌게 봤는데 아이템이 겹쳤다. 아류로 보일 것 같아 일단은 제쳐놨다. 

그러다 <오피스>로 데뷔하고 다른 작품을 쓰던 중 다시 김 대표님이 이 작품을 해보자고 하더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그래서 다시 봤는데, 재밌는 구석이 많더라. 그래서 몇 달 정도 각색하고 준비하게 됐다. 그 사이에 <존 윅>도 나오고 비슷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식으로 차별화를 가져가려고 했다. 

- 캐스팅이 사실 놀랍다. <신세계>라는 인기 영화의 두 배우를 그대로 섭외하긴 쉽지 않았을 부분인데, 그런 선택을 했다. 

▲ 인남과 레이는 서로 겨룰 수 있는 파워가 있는 인물이라, 인지도나 연기력만 보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두 분을 모신 것 같지만, 사실 우연이다. 빅 사이즈 영화의 캐스팅치고는 순조로웠다.

처음에 대표님께서 황정민 배우를 제안했는데, 의외로 금방 답을 줬다. 그리고서 이정재 배우를 말씀하시더라. 나야 ‘하면 좋죠’라는 생각이었는데, 할 줄 몰랐다. 지금이야 레이가 이렇게 화려한 인물이 됐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이정재 배우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라. 미팅하고 싶다는 건 호기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이정재 말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고 하던데. 

▲ 이 영화서 개인적으로 추구한 건 리얼 베이스다. 리얼리즘을 지켜 가려고 했다. 리얼리즘과 레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이 캐릭터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공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전사나 대사가 많지 않아 인물이 모호해 보일 수 있는데 정재 선배가 무자비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외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이 글을 내가 쓰긴 했지만, 구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파격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레이의 외형에 있어 백지나 다름없었다. 캐스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 다를 것으로 생각해서 고민이 깊지는 않았다. 


정재 선배가 비주얼적으로 과감하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실제로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사실 걱정도 좀 있었다. 그 비주얼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모호한 이미지와 선배가 제시한 의상이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 부두서 박명훈 배우와 만나는 신을 찍고 편집한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정재 선배가 한국에 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화한 기억이 난다. 

- <다만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말 메시지가 없다. <오피스>는 왕따라는 사회문제를 절묘하게 담은 작품이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오피스>는 의도적으로 시대성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 작품은 각본을 받은 걸 각색한 것이다. 검토해 달라고 해서 대본을 읽었다가 내가 연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CJ의 인턴이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턴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누구는 한시적 인턴이고, 누구는 정직원이 보장된 인턴이다. 절박함의 차이가 있다. 월급을 많이 받지도 못한다. 당시의 그 절박함을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까지는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반대로 이번 작품은 장르적 재미에만 충실히 하려고 했다. 저 스스로는 <오피스>나 이 작품이나 본질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푸는 과정, 그 안에서의 서스펜스, 영화적 표현 등 작품 특성에 맞게 고민한 건 비슷하다. 
 

▲ ⓒCJ엔터테인먼트

- 이 작품의 매력은 액션의 타격감이다. 기발하다. 

▲ 무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기발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기시감이 들어도 안 된다. 당시 낸 아이디어가 어떤 레퍼런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톱 모션이라고 우리는 지칭했는데, 고속으로 찍어놓고 편집 때 정속으로 돌리면 이런 효과가 난다고 하더라. 배우들에게 고마운데, 현장서 구현하는 건 다른 문제인데, ‘이게 맞아?’라고 하면서 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것이다. 

- 자세하게 언급하긴 그렇지만, 비밀병기는 박정민이다. 박정민 배우는 내면의 남성성이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 역할을 시키게 된 건지 궁금하다. 

▲ 영화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그 흐름을 따라오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환기가 되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유이라는 역할이다. 여러 고민이 있었다. 소위 꽃미남도 생각했다. 여자는 안됐다. 수술을 위해 방콕에 간 사람이니까. 

<오피스>서 정민이랑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남성성을 잘 안다. 외향적인 남자는 아니어도, 남성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남성성과 캐릭터의 여성성이 충돌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민이는 잘 해낼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도 있었다. 

- 일부 사람들이 이 역할을 두고 희화화했다고 할까봐 걱정도 된다. 

▲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희화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오버스럽지 않게 하려고 했다. 나름대로 의도는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의도한 건 유이가 마지막에 남는데, 그게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존재이길 원했다. 남자가 혹은 여자가 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실 구원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지 않나. 

- 워낙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의 영화가 아닌 배우의 영화라는 말도 나온다. 

▲그 말에 정말 동감한다. 지금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호평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 제목이 정말 좋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어떻게 이 문장이 나왔나.

▲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악이라는 건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인남을 둘러싼 세계다. 거기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다. 이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구원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일차적으로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고, 두 번째로 제목과 유추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대성을 읽기를 바랐다. 사실 이 제목을 떠올리고 나서, 마케팅 과정서 바뀔 거라고 짐작했다. 문장형 제목이 익숙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쭉 가더라. 

- 레이가 칼을 쓰다가 총으로 넘어간다. 그 넘어가는 과정이 인남이 가진 힘을 부각한다. 

▲ 이런 일을 하는 업자의 경우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대상이랑 밀접하게 다가간다. 인남이 고수라는 건 첫 시퀀스서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총격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적절한 설정이 필요했다. 총을 어디서 습득하는지 고민이 많았고, 인남은 레이가 턱밑까지 왔다는 걸 알고 얻게 된다. 레이는 인남과 맞붙고 나서 총을 구입한다. 

- 마지막 장면서 레이가 인남에게 모호한 말을 남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냐는 식. 그게 인남에게 말하는 것인지 본인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호한데. 

▲실제로 그 복합적인 의미를 갖길 바랐다. 표면적으로 너도 내가 쫓아온 이상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가 있고,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느낌도 있길 바랐다. 정재 선배가 그 모호함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표정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200% 만족한다. 
 

▲ ⓒCJ엔터테인먼트

- 하나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레이 같은 사람은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흘러서 저런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질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는 단 한 장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 아직도 생각한다. 레이에게 한 신을 더 넣고 싶은 욕구가 있다. 레이가 혼자 있을 때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혼자 있을 때 레이를 계속 상상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혼자 있을 때 레이는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넣지는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학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영화를 보고 후반부에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 유이가 아이를 들쳐메고 가는 장면을 보는 인남의 눈빛이 그렇다. 

▲ 거기서 아이가 울거나 그랬으면, 신파가 되는 건데 비교적 건조하게 잘 매듭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연기를 정말 잘해준 것 같다. 이번에 홍보하면서 다시 만났는데, 영락없는 아이다. 내가 이 애를 데리고 어떻게 영화를 찍었는가 싶다. 몇몇 분들이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분들은 내 기대보다도 더 많이 반응했다. 훌쩍거리면서 우는 사람도 있더라. 내 노림수가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드보일드치고 혈흔이 없다. 묘사도 적극적이지 않다. 

▲피가 터지는 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 기획부터 15세 관람가로 잡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했다. 

- 차기작은 어떤 방향이 되나.

▲배경은 사극인데,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 이번 작품보다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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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