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홍원찬 감독 “<다만악>은 배우의 영화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영화 <신세계>서 ‘부라더’로 유명한 배우 황정민과 이정재가 뭉친 것만으로 신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이하 <다만악>)는 기대감을 줬다. 일각에선 기시감이 강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베일을 벗은 <다만악>은 완전히 새로운 하드보일드 장르물의 형태를 갖췄다. 빠른 속도감에 전에 없던 액션 타격감, 새로운 캐릭터의 창출 등을 바탕으로 한 짜임새 있는 완성도를 갖춘 영화라는 게 <다만악>에 대한 평가다.
 

▲ ▲ 홍원찬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일요시사>는 선 굵은 <다만악>을 진두지휘한 홍원찬 감독을 만나,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계관이 무엇이었는지 들어봤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엄청난 화제를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무너진 극장가를 구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극장가를 구하소서’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실제로 주말에는 50만, 평일 2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코로나 정국 이전의 티켓 파워를 보이고 있다. 굶주려 있던 극장가의 구원자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영화의 작품성은 올해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월등한 완성도를 보인다. 하드보일드 장르적 특성을 연출의 묘로 정확히 살린다. 빠른 속도감과 서스펜스, 타격감 좋은 액션, 몰입도를 높이는 배우들의 연기력, 텁텁하면서도 개운한 마무리까지 영화가 가진 장점이 상당하다. 일부 기시감이 드는 부분이나 불친절한 대목, 일부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나, 장점이 워낙 출중해 감싸주고 싶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메가폰을 잡은 홍원찬 감독을 최근 만났다. 하드보일드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의 연출 의도를 들어봤다. 

다음은 홍원찬 감독과의 일문일답. 


- 주위 반응은 어떤가. 호평의 늪에 빠져 있을 것 같은데. 

▲ 대부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는 인물의 전사나 백 스토리가 빠진 게 너무 불친절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속도감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화시킨 게 있다. 불친절해서 좋다는 분들도 있다. 조금 나뉘는 것 같다. 

- 실제로 레이나 인남이나 캐릭터 설명이 거의 없는 편에 해당한다. 일종의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레이 캐릭터의 경우는 설명을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명분보다는 기질에 집중했다. 보는 사람으로서 인물을 알고 이해가 되면 덜 공포스럽지 않을까. 한국 영화 자체에 설명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설명하려면 신을 할애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이야기 템포가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됐다. 

- 레이뿐 아니라 황정민이 연기한 인남도 설명이 부족한 편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꼭 납득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매력을 어필하는 건 꼭 설명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화했다. 딱 영주와의 관계까지만. 

- 이 영화서 좋았던 점은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뭔가 가르치려는 혹은 알려주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런 추격이 있었다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 건가. 


▲ 말한 대로 메시지를 주려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마다 각자의 지향점이 있는데 영화라고 해서 꼭 메시지를 줄 필요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예술적 성취나 철학적인 성찰을 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에 치중한 작품이다. 그게 1차적인 목표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누아르, 하드보일드 세계관을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악으로 상징되는 세계관 안에서 선인지 악인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서 벌어지는 질이다.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작품도 아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런 세계를 좋게 보신 분들은 하드보일드 세계관에 잘 안착했다고 생각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 작업을 하면서 공부한 것 중 하나가 내러티브의 리듬감이었다. 과정을 세세하게 전달해야 하는 장면이 있고, 과감한 편집으로 리듬을 빨리 가야 하는 장면도 있다. 이런 안배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했다. 
 

▲ ⓒCJ엔터테인먼트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오피스> 이후 5년 만에 나왔다. 이 영화는 어떻게 출발하게 됐는가. 

▲ 10년 전일 듯하다. 처음에 하이브 미디어코프 김원국 대표님이 외국서 아이를 찾다가 고군분투하는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에 방콕을 배경으로 정하고, 방콕 답사도 갔다 왔다. 어느 정도 쓰는 중에 <아저씨>가 개봉했다. 재밌게 봤는데 아이템이 겹쳤다. 아류로 보일 것 같아 일단은 제쳐놨다. 

그러다 <오피스>로 데뷔하고 다른 작품을 쓰던 중 다시 김 대표님이 이 작품을 해보자고 하더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그래서 다시 봤는데, 재밌는 구석이 많더라. 그래서 몇 달 정도 각색하고 준비하게 됐다. 그 사이에 <존 윅>도 나오고 비슷한 작품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른 식으로 차별화를 가져가려고 했다. 

- 캐스팅이 사실 놀랍다. <신세계>라는 인기 영화의 두 배우를 그대로 섭외하긴 쉽지 않았을 부분인데, 그런 선택을 했다. 

▲ 인남과 레이는 서로 겨룰 수 있는 파워가 있는 인물이라, 인지도나 연기력만 보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두 분을 모신 것 같지만, 사실 우연이다. 빅 사이즈 영화의 캐스팅치고는 순조로웠다.

처음에 대표님께서 황정민 배우를 제안했는데, 의외로 금방 답을 줬다. 그리고서 이정재 배우를 말씀하시더라. 나야 ‘하면 좋죠’라는 생각이었는데, 할 줄 몰랐다. 지금이야 레이가 이렇게 화려한 인물이 됐지만, 시나리오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 얼마 있다가 이정재 배우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라. 미팅하고 싶다는 건 호기심이 있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만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 이정재 말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캐릭터에 많이 녹아있다고 하던데. 

▲ 이 영화서 개인적으로 추구한 건 리얼 베이스다. 리얼리즘을 지켜 가려고 했다. 리얼리즘과 레이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레이 캐릭터가 안착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공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전사나 대사가 많지 않아 인물이 모호해 보일 수 있는데 정재 선배가 무자비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외형에 많은 아이디어를 주셨다. 이 글을 내가 쓰긴 했지만, 구현하는 건 배우의 몫이다. 파격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레이의 외형에 있어 백지나 다름없었다. 캐스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 다를 것으로 생각해서 고민이 깊지는 않았다. 


정재 선배가 비주얼적으로 과감하게 해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실제로 준비를 많이 해오셨다.

사실 걱정도 좀 있었다. 그 비주얼이 이 영화에 어울릴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모호한 이미지와 선배가 제시한 의상이 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일본 부두서 박명훈 배우와 만나는 신을 찍고 편집한 것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정재 선배가 한국에 있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고 전화한 기억이 난다. 

- <다만악에서 구하소서>는 정말 메시지가 없다. <오피스>는 왕따라는 사회문제를 절묘하게 담은 작품이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 <오피스>는 의도적으로 시대성을 담으려고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그 작품은 각본을 받은 걸 각색한 것이다. 검토해 달라고 해서 대본을 읽었다가 내가 연출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당시 CJ의 인턴이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턴마다 상황이 다 다르다. 누구는 한시적 인턴이고, 누구는 정직원이 보장된 인턴이다. 절박함의 차이가 있다. 월급을 많이 받지도 못한다. 당시의 그 절박함을 보여줘야겠다는 사명감까지는 거창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었다. 

반대로 이번 작품은 장르적 재미에만 충실히 하려고 했다. 저 스스로는 <오피스>나 이 작품이나 본질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푸는 과정, 그 안에서의 서스펜스, 영화적 표현 등 작품 특성에 맞게 고민한 건 비슷하다. 
 

▲ ⓒCJ엔터테인먼트

- 이 작품의 매력은 액션의 타격감이다. 기발하다. 

▲ 무술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기발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기시감이 들어도 안 된다. 당시 낸 아이디어가 어떤 레퍼런스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스톱 모션이라고 우리는 지칭했는데, 고속으로 찍어놓고 편집 때 정속으로 돌리면 이런 효과가 난다고 하더라. 배우들에게 고마운데, 현장서 구현하는 건 다른 문제인데, ‘이게 맞아?’라고 하면서 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것이다. 

- 자세하게 언급하긴 그렇지만, 비밀병기는 박정민이다. 박정민 배우는 내면의 남성성이 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이 역할을 시키게 된 건지 궁금하다. 

▲ 영화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 그 흐름을 따라오면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환기가 되는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유이라는 역할이다. 여러 고민이 있었다. 소위 꽃미남도 생각했다. 여자는 안됐다. 수술을 위해 방콕에 간 사람이니까. 

<오피스>서 정민이랑 작업했었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남성성을 잘 안다. 외향적인 남자는 아니어도, 남성적인 이미지가 분명히 있는데, 그 남성성과 캐릭터의 여성성이 충돌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민이는 잘 해낼 것이라는 이상한 믿음도 있었다. 

- 일부 사람들이 이 역할을 두고 희화화했다고 할까봐 걱정도 된다. 

▲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희화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오버스럽지 않게 하려고 했다. 나름대로 의도는 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의도한 건 유이가 마지막에 남는데, 그게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한 존재이길 원했다. 남자가 혹은 여자가 구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사실 구원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르지 않나. 

- 워낙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서,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의 영화가 아닌 배우의 영화라는 말도 나온다. 

▲그 말에 정말 동감한다. 지금의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호평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이 지배적이었다. 

- 제목이 정말 좋다. 제목을 잘 지은 것 같다. 어떻게 이 문장이 나왔나.

▲ 세계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악이라는 건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인남을 둘러싼 세계다. 거기서 희망을 찾는 내용이다. 이 사람이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구원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들이 일차적으로는 장르적 재미를 느끼고, 두 번째로 제목과 유추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대성을 읽기를 바랐다. 사실 이 제목을 떠올리고 나서, 마케팅 과정서 바뀔 거라고 짐작했다. 문장형 제목이 익숙한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런데 쭉 가더라. 

- 레이가 칼을 쓰다가 총으로 넘어간다. 그 넘어가는 과정이 인남이 가진 힘을 부각한다. 

▲ 이런 일을 하는 업자의 경우 윗 단계로 올라갈수록 대상이랑 밀접하게 다가간다. 인남이 고수라는 건 첫 시퀀스서 나온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사실 총격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적절한 설정이 필요했다. 총을 어디서 습득하는지 고민이 많았고, 인남은 레이가 턱밑까지 왔다는 걸 알고 얻게 된다. 레이는 인남과 맞붙고 나서 총을 구입한다. 

- 마지막 장면서 레이가 인남에게 모호한 말을 남긴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지 않았냐는 식. 그게 인남에게 말하는 것인지 본인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호한데. 

▲실제로 그 복합적인 의미를 갖길 바랐다. 표면적으로 너도 내가 쫓아온 이상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가 있고, 나 역시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의 느낌도 있길 바랐다. 정재 선배가 그 모호함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표정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200% 만족한다. 
 

▲ ⓒCJ엔터테인먼트

- 하나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레이 같은 사람은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흘러서 저런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본질에 가깝다. 하지만 레이는 단 한 장면서도 두려움이 없다. 

▲ 아직도 생각한다. 레이에게 한 신을 더 넣고 싶은 욕구가 있다. 레이가 혼자 있을 때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 혼자 있을 때 레이를 계속 상상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혼자 있을 때 레이는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넣지는 못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가학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영화를 보고 후반부에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 유이가 아이를 들쳐메고 가는 장면을 보는 인남의 눈빛이 그렇다. 

▲ 거기서 아이가 울거나 그랬으면, 신파가 되는 건데 비교적 건조하게 잘 매듭이 된 것 같다. 아이가 연기를 정말 잘해준 것 같다. 이번에 홍보하면서 다시 만났는데, 영락없는 아이다. 내가 이 애를 데리고 어떻게 영화를 찍었는가 싶다. 몇몇 분들이 정서적인 울림을 받았다고 했다. 여자분들은 내 기대보다도 더 많이 반응했다. 훌쩍거리면서 우는 사람도 있더라. 내 노림수가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드보일드치고 혈흔이 없다. 묘사도 적극적이지 않다. 

▲피가 터지는 걸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 기획부터 15세 관람가로 잡았다.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분위기로 표현하려고 했다. 

- 차기작은 어떤 방향이 되나.

▲배경은 사극인데, 액션 영화가 될 것 같다. 이번 작품보다 보편적으로 좋아할 만한 이야기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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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