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암행’ 창성동 별관팀 실체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12.09 10:22:26
  • 호수 12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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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 ‘관가 저승사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검찰이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 앞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별도 특별감찰반을 가동했다는 의혹에 보수야당은 이를 ‘백원우 별동대’로 규정하고, 3대 청와대 게이트 사건의 교집합으로 청와대 인근의 창성동 별관을 지목했다. <일요시사>는 창성동 별관을 다각도로 추적했다.
 

취재진이 청와대로 모여들었다. 지난 4일 오전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난 후다. 현장에선 검사와 수사관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건물로 드나들었다. 청와대에서 약 500여미터 떨어진 창성동 별관도 그 중 하나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청와대서 
500여미터

앞서 속칭 ‘백원우 별동대’가 창성동 별관 3층서 근무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의혹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김도읍 의원이 당시 민정수석실 직원들과의 면담을 통해 제기됐다. 직원들은 김 의원과의 면담서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밑에 아주 문제 있는 조직이 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에 따르면, 민정비서관실서 창성동 별관으로 2개의 팀이 나와 있었다. 5층은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팀이 사용했으며, 3층은 백원우 별동대가 사용했다는 것. 최근 유명을 달리한 A 수사관과 경찰 출신의 다른 특감반원이 별동대로 활동했다.

한국당은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 2일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백원우 별동대와 창성동 별관에 대해 “어떻게 하면 이 정권 측근들의 죄를 덮고, 상대편에게는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서 끌어낼지 중상모략을 꾀하던 밀실”이라며 “(여권이 추진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축소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4일 “(A 수사관이 속했던)백원우 별동대 자체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미래를 보여준다”며 “친문(친 문재인) 세력의 범죄는 모두 덮어버리고, 야권 세력에 대해선 불법적 공작·수사를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신상진 의원도 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현대판 ‘3·15 부정선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그것보다 더한,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가 울산시장 선거서 공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백원우 별동대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라”고 촉구했다.

검, 전격 BH 압수수색 왜?
‘백원우 별동대’ 별관 3층에…

청와대는 별동대 의혹에 대해 즉시 반박했다. 고민정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특감반원이 당시 직제상 없는 일을 했다든지, 혹은 비서관의 별동대였다든지 하는 등의 억측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당시 (대통령의)특수관계인을 담당했던 두 분은 대통령비서실 직제령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창성동 별관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1년 전 이맘때 검찰은 창성동 별관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첫 청와대 압수수색이었다.

압수수색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이하 특감반)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불거지고 난 후 진행됐다. 앞서 김태우 전 수사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업무 범위를 넘어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한국당은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조국 당시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등 4명을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은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과 특감반 등이 위치한 청와대 경내 여민관과, 창성동 별관서 자료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다. 청와대는 검찰에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제출했다. 
 

▲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압수수색에 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청와대는 군사상 보안을 요하는 시설이라 그에 준해 압수수색 절차에 응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경내 진입은 아니고 임의제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반박에도
의심 가득

이번 압수수색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임의제출 형식으로 진행됐다. 압수수색을 집행한 서울동부지검은 “(4일) 오전 11시30분께 대통령비서실 압수수색에 착수했다”고 알렸다. 1년 전 압수수색을 집행한 곳도 서울동부지검이다.

청와대는 이번 압수수색에 유감을 표명하는 과정서 검찰이 김태우 전 수사관의 진술에 의존해 압수수색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고민정 대변인은 “오늘(지난 4일) 서울동부지검이 압수수색으로 요청한 자료는 지난해 12월 ‘김태우 사건’서 비롯한 압수수색서 요청한 자료와 대동소이하고, 당시 청와대는 성실히 협조한 바 있다”며 “비위 혐의가 있는 제보자 김 전 수사관의 진술에 의존해 검찰이 국가중요시설인 청와대를 거듭해 압수수색한 것은 유감”이라고 성토했다.

창성동 별관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때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곳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며 국정 농단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 2017년 3월, 검찰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 창성동 별관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수색했다.

당시 창성동 별관에도 현 정권과 마찬가지로 특감반이 위치해 있었다.

검찰이 창성동 별관을 압수수색한 이유는, 그곳에서 특감반이 영장 없이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감사담당관의 신체를 수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지난 2015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감사담당관의 주장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문체부 국민소통실의 사무관과 주무관을 지목하며 “이들을 감찰해 무조건 중징계를 받도록 조치하라”고 직간접적으로 지시했다는 것. 감사담당관은 이들에 대해 특별히 부적절한 사항을 찾지 못하자 압박이 들어왔다고 진술했다.

공포 대상
불려 가면…

해당 감사담당관은 지난 2017년 3월 “(지난 2016년 1월)영장도 없이 저와 사무관, 주무관의 휴대전화·컴퓨터·서랍·이메일을 4시간 이상 뒤졌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특감반이 있던 창성동 별관에 불려가 신발과 양말 등을 벗고 신체수색을 당했다고 한다. 휴대전화도 빼앗긴 뒤 개인정보 이용에 동의하라고 강요받았다. 지갑서 국가유공자증이 나오자 “사기 쳐서 받은 것 아니냐. 털어보겠다”는 협박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직사회 내부서 창성동 별관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과거 정권은 이곳에 특감반은 물론 비밀 사무실을 두곤 했다. 일례로 이명박정권 때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곳에 들어섰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포항 인맥인 ‘영포회’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광우병 촛불집회’ 직후인 지난 2008년 7월 신설됐다. 공직자와 공기업의 비리를 조사한다고 해 ‘관가의 저승사자’ ‘암행감찰반’ 등으로 불렸다.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소유인 김해시의 한 골프장서 기업체의 골프 접대를 받은 공직자들을 적발해 징계를 요구한 사건은, 이 조직이 어떤 업무했던 곳인지 보여준다.

그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008년 7월 공직윤리지원관실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희화화한 ‘쥐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한 중소기업 대표를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문제제기로 2010년 1차 수사를 벌여 불법 사찰이 실제로 있었음을 확인한 바 있다.

현재 창성동 별관은 백원우 별동대가 위치한 곳으로 의심받고 있다. 한국당은 민주당 등 범여권이 주장하는 공수처의 미래가 백원우 별동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정부여당은 이러한 주장에 반박하며, 검찰의 청와대 압수수색을 맹비난했다.

GH 공무원 신체 수색
MB 민간인 사찰 나서

민주당은 ‘검찰 공정수사촉구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 5일 첫 회의서 설훈 특위위원장은 “해방 후 집권당서 검찰 공정수사촉구특위를 만든 일은 처음일 것”이라며 “패스트트랙 폭력사태 수사와 관련해 한국당 의원들은 7개월 넘게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의)의도가 뻔히 보인다. 그래서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게 아닌가”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종걸 의원도 “검찰총장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검찰조직을 사병처럼 선별적으로 동원하는 행태는 참 후진적 행태”라며 “우리 민주당은 노회한 정치꾼 같은 검찰의 행태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난했다.


이상민 의원 역시 “마치 큰 조직폭력배나 범죄집단을 습격해 일망타진하듯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면서 청와대를 압수수색했다”며 “그 행태를 보면 불순한 여론몰이, 망신주기 등 그야말로 저의가 있는 악랄한 정치행위를 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구속된 지 7일 만에 이루어진 압수수색이었다. 앞서 지난달 27일 유 전 부시장은 금융위원회서 근무할 당시 3∼4개의 금융업체로부터 5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기고, 자산관리업체에 동생 취업을 청탁해 1억원대 급여를 지급하게 한 혐의로 지난달 27일 구속됐다.

2017년 민정수석실이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중단했다는 의혹이 청와대 강제수사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은 감찰중단 의혹과 관련해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 김용범 전 금융위 부위원장, 백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상태다. 검찰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민정수석실 특감반이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어느 수준까지 진행했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검날은
어디까지?

법조계 안팎에선 검찰이 백 전 비서관과 박 비서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만큼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 전 수석은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을 총괄했고, 검찰의 조사를 받은 백 전 비서관과 박 비서관의 직속상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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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