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다사다난’ 나경원 성적표

당당한 등장 초라한 퇴장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나경원 원내대표가 추운 날 아스팔트에 앉아 싸울 수 있겠나.”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나 원내대표의 취임 초 그에게는 강력한 대여 투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이같이 말했다. 이보다는 고급진 엘리트의 느낌을 살려 협상력을 부각시킬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이 관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임기가 오는 10일이면 종료된다. 지난 3일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서 나 원내대표의 임기를 연장하기 않기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서 재신임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 일방적인 통보에 별다른 반발 없이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막말

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국회 의원총회서 “임기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며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당 최고위원회의 의결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권한과 절차를 둘러싼 여러 의견이 있지만 오직 국민의 행복과 대한민국의 발전, 당의 승리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1년 한국당 원내대표로서 보낸 시간은 뜨거운 열정과 끈끈한 동지애로 가득한 1년이었고, 눈물과 감동의 시간이었다”며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와 자유한국당의 승리를 위한 그 어떤 소명과 책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의원총회를 열고 자신의 재신임을 물을 계획이었다. 당규에 따라 원내대표 잔여 임기가 6개월 내인 경우 국회의원 임기만료 전까지 임기를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나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불발은 당 지도부로부터의 불신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당 소속 여성 의원 중 최다선(4선),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 판사 출신, 사학 재단 집안의 딸인 나 원내대표는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스타 정치인’이다. 하지만, 지난해 원내사령탑에 오른 후 나 원내대표는 어느 정치인보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냈다.

지난해 12월에 열렸던 원내대표 경선서 총 103표 중 68표를 득표했다. 당시 원내대표 후보였던 김학용 의원을 두 배 가까운 득표차로 따돌리면서 보수정당의 ‘첫 여성 원내사령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첫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원내대표 취임 초 정치권에선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주일이 넘도록 단식을 강행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합의해 두 대표가 단식을 멈출 출구를 열어줬고, 이들의 단식은 중단됐다.

이후 나 원내대표가 협상력을 발휘해 취임 초부터 존재감을 부각했다는 평가들이 잇따랐다. 다만, 당시 합의한 선거제 개정안 검토 합의안은 임기 내내 나 원내대표의 발목을 잡는 ‘큰 과제’로 남게 됐다.

취임 초 당 내에선 나 원내대표를 ‘예측 가능한 협상가’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기득권의 고급 이미지 때문에 나 원내대표의 대여 투쟁력을 낮게 본 것이다. “문재인정부와 독하게 싸우겠다”며 투쟁 의지를 보였던 나 원내대표가 투쟁력보다는 협상력으로 승부를 볼 것이라는 관측들이 주를 이뤘다.

조국 정국서 리더십 발휘
곧바로 필리버스터 역풍

하지만 이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전방위적 대여 공세의 중심에는 늘 나 원내대표가 주역을 맡았다. 4월 ‘패스트트랙 정국’서 나 원내대표는 처음으로 예상 밖의 강경 투쟁력을 보여줬다. 


당시 그는 국회 본회의장 문 앞에서 ‘빠루’를 들고 의원과 당직자들을 진두지휘하는가 하면, 국회 본청 바닥에 드러누운 채 인간띠를 만들어 ‘헌법 수호, 독재 타도’를 외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처럼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면서 ‘보수 여전사’로서 당내 장악력을 높였다.

하지만 국회 선진화법을 위반하고, ‘동물 국회’를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오명도 함께 쓰게 됐다. 또 패스트트랙 충돌로 인해 한국당 의원 60명이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최악의 국회’라는 역사적 오점을 남긴다.

도 넘은 막말도 논란이 됐다. 지난 5월 대구서 열린 장외집회서 나 원내대표는 ‘문빠’ ‘달창’ 등 극우 지지자들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 논란이 됐다. 당시 “달빛 창문으로 알고 썼다”고 해명했지만 ‘말도 안 되는 변명’일 뿐이라며 민심은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정권은 광주일고 정권” 발언으로 지역 감정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리더십이 크게 타격을 받았던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80일간의 국회 공전 끝에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총회서 합의안이 거부되면서 국회 정상화가 무효화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나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안을 당에서 거부하면서 그는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게 됐다.

지난 ‘조국 정국’서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후보가 임명된 8월부터 한국당은 인사청문회 대책 TF를 꾸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 등을 강하게 주장했다. 조 전 장관은 결국 장관에 임명됐지만, 결국 취임 5주 만인 지난 10월14일에 물러났다. 나 원내대표는 이로 인해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조국 전 장관의 사퇴에 공을 세웠던 의원들에게 표창장을 수여하면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아울러 패스트트랙 사건에 연루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당 안팎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결국 조국 정국서 끌어올린 당의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 원내대표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결정적인 사건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반행) 발표였다. 그는 지난달 29일 패스트트랙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막기 위해 199개의 법안에 무더기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그는 “선거제 개혁안을 직권 상정하지 않는 조건으로 민식이법의 우선 처리를 제안”한다고 말해, 희생된 아이들 법안들마저 인질 삼아 선거제 개정안을 막고 있다는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또 199개의 법안 안에는 한국당 소속 의원이 대표발의한 26건을 포함 민생법안이 다수 포함돼있어 당내에선 전략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나 원내대표가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필리버스터 신청 이유를 “무식해서 그랬어요”라고 대답해 문 의장이 황당함에 굳어졌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나 원내대표의 임기 연장 불가 결정에는 황교안 대표를 포함, 최고위원들과의 불화설이 끊이질 않았던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서 나 원내대표가 평소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관철시키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 나왔다는 전언이다.

앞날은?

또 표창장 수여, 공천 가선점 등의 논란으로 ‘월권’에 대한 우려도 계속해서 제기됐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지난 4일 본인이 페이스북에 “나경원, 권력은 그저 꽃송이 같아서 필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며 “남 쳐낼 땐 좋았겠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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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