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만?’ 경찰 개혁의 이면

검 방패 삼아 묻어가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은 문재인정부 들어 개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부터 나오던 검찰 개혁의 목소리는 최근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검찰 권한의 축소는 필연적으로 경찰 권한의 강화로 이어진다. 경찰의 오랜 숙원은 이제 눈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일각에선 경찰 역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제주도 펜션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

2017310일 헌법재판소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안을 인용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주문과 함께 정국은 조기 대선모드에 돌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핵심 공약으로 삼았다. 특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검, 힘 빼고
경, 강화?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는 수사기관 권력구조와 관련해 내놓은 3대 공약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당시 문 대통령이 내건 공약은 ·경 수사권 조정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추진 공수처 신설이었다. 지난해 621일 구체적 실행방안이 담긴 ·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이 발표됐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429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개정안을 신속처리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하거나 수사종결권을 갖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 범죄로 좁혔다. 자치경찰을 제외한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해서만 수사지휘권을 유지하도록 했다.


전직 대통령·국회의원·법관·지방자치단체장·검사 등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를 설치해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제어하고자 했다.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현재 국회에 잠들어 있다. 잠잠해지나 했던 검찰 개혁의 목소리는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 민정수석서 물러난 조 장관을 법무부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그와 동시에 조 장관의 딸, 아내, 동생, 조카 등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고 검찰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정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 장관과 그 가족들에 대한 논란은 검찰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로 변해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 집결했다.

검찰 개혁 목소리 높아져
경찰 숙원 이뤄질 가능성↑

반대로 조국 사퇴를 주장하는 쪽의 목소리가 서울 광화문서 울려 퍼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청와대서 연 수석·보좌관 회의서 조 장관 수사, 검찰개혁과 관련해 최근 표출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하나로 모아지는 국민의 뜻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보장 못지않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 모두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국회에 계류된 개정안이 통과되면 경찰은 지금보다 강화된 권한을 갖게 된다. 문제는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크고 분명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경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 생각에 잠긴 민갑룡 경찰청장

오히려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경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사그라지는 모양새다.

경찰은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국가사회기관 조사서 지난해와 올해 검찰, 국회와 함께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리얼미터는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2019년 국가사회기관 신뢰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통령이 25.6%1, 시민단체가 10.1%2위를 차지했다. 이어 언론 9.0%, 종교단체 8.1%, 대기업 6.3% 등이 뒤를 이었다.

경찰은 2.2%로 국회 2.4%, 검찰 3.5%보다도 낮은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서도 1위는 대통령(21.3%)이었고, 경찰(2.7%)과 검찰(2.0%), 국회(1.8%)는 바닥권을 맴돌았다. 경찰은 지난해 조사보다 수치가 0.5%p 떨어졌고, 순위도 뒤에서 3번째서 꼴찌로 낮아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경찰 불신에 기름을 붓는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를 달궜던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해 경찰이 봐주기 의혹에 휩싸였다. 버닝썬 게이트서 경찰총장이라고 지칭됐던 윤모 총경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경찰은 지난 5월 버닝썬 게이트와 관련해 윤 총경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지만 밝혀낸 혐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국민 신뢰도
검·경 비슷

뇌물과 김영란법 위반 의혹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고 결국 직권남용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윤 총경은 가수 승리와 유리홀딩스 유모 전 대표가 운영하던 클럽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신고가 들어오자 단속정보를 미리 알아봐 준 혐의를 받았다.

앞서 윤 총경은 유 전 대표로부터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이는 무혐의로 결론 났다.

경찰은 윤 총경의 사건 개입 시점과 골프 접대 시점이 1년 이상 차이 나고 일부 비용이 윤 총경이 내기도 해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접대 금액이 적다는 이유도 들었다. 청탁금지법을 적용하려면 한 번에 100만원 또는 1년 기준으로 300만원 이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윤 총경이 접대 받은 금액은 260여만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달 27일 윤 총경과 관련된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7일에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자본시장법 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로 윤 총경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 버닝썬 압수수색 중인 경찰

윤 총경은 지난 10일 구속됐다.

윤 총경은 주식 수천만원어치를 받고 수잉크 제조업체 녹원씨엔아이의 정모 전 대표에 대한 경찰수사를 무마하는 데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정 전 대표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과 달리 검찰은 윤 총경이 사건을 무마했다고 본 것이다. 윤 총경에 대한 경찰 조사가 미온적으로 진행됐다는 의심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경찰이 마주한 악재는 버닝썬 게이트만이 아니다. 과학수사의 쾌거로 불렸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으로 경찰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화성 일대서 일어났다. 개구리소년 사건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제사건으로 꼽혔다.

200642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미제로 남는 듯했던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지난 8월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경찰이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이미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던 이춘재를 특정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18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다.

경찰은 모방범의 소행으로 알려진 8차 사건을 제외하고 4건의 DNA가 이춘재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춘재는 지난 19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5건 등 14건의 범행을 자신이 했다고 자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이 모방범의 소행이라고 결론 낸 8차 사건을 이춘재가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고문 가능성에
부정여론 높아

8차 사건은 19889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서 중학생 A양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여성이 성범죄를 당한 뒤 살해됐다는 점을 들어 화성연쇄살인 사건으로 포함됐다. 19897A양 집 인근에 살던 윤모씨가 범인으로 잡혔다. 윤씨는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과 3심에선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20여년을 복역하다가 감형돼 2009년 출소했다. 8차 사건의 진범이 이춘재일 경우 경찰의 책임 소재가 커진다. 진범이 아닌 사람이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춘재가 진범이 아닐 경우에는 14건의 자백도 신뢰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고유정 사건은 여전히 부실수사, 유착 의혹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유정은 제주서 전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518일 고유정은 본인의 차를 배편에 싣고 제주도로 들어갔다. 이후 일주일 만인 25일 전 남편 강모씨를 만나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 입실한 뒤 살해했다.

하지만 고유정의 범행 이후 경찰의 미흡한 초동 조치가 도마에 올랐다. 제주 경찰은 수사 초반 용의자 추적의 핵심 단서인 CCTV를 유족이 찾아줄 때까지 놓치고 있었다.

또 펜션 주인의 사건 현장에 대한 내부 청소를 허락하는 등 현장훼손도 그대로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고유정이 시신을 유기하기 전 체포할 수 있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경찰은 결국 지난 7월 고유정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수사 과정서 부족함이나 소홀함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 본청서 진상조사팀을 구성해 하나하나 수사 전반을 짚어보겠다고 말했다.
 

▲ ▲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와 몽타주

바로 잡아야 할 것과 현장서 잘 안 되는 것들이 어떤 것인가를 반면교사로 삼고 큰 소홀함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필요한 추가 조사 후 상응하는 조치를 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민 청장은 버닝썬 사태 등에서 불거진 제 식구 감싸기’ ‘부실수사논란에 대해 경찰 수사는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온 의혹에 대한 것이라며 검찰 수사와 경찰 수사는 영역이 다르다고 해명한 바 있다.

버닝썬, 화성, 고유정…잇단 악재
공무원 범죄 절반이 경찰청 소속

그는 지난 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이하 행안위) 국감에 출석해 국민과의 약속인 경찰개혁을 차질 없이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버닝썬 게이트 등으로 드러난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내부 감찰제도를 쇄신하고 강도 높은 유착비리 근절대책을 시행하는 등 투명하고 청렴한 경찰상 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이해진 공직기강은 수치로 확인됐다. 최근 공개된 국가공무원 범죄 통계 자료서 범죄를 저지른 전체 국가공무원의 절반이 경찰청 소속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 행안위 소속 김한정 의원이 경찰청서 제출받은 2018년도 공무원 범죄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은 총 3356명이었다. 이중 경찰청 소속 공무원이 1460(48.9%)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범죄를 많이 저지른 법무부 소속(304)과 비교해도 5배 이상 많은 수치다. 교육부가 280(8.3%)으로 세 번째였다. 강간 범죄의 경우 23건 중 18(78.3%), 협박 범죄는 47건 중 30(63.8%)이 경찰청 소속 공무원에 의해 저질러졌다.

김 의원은 법질서 수호자인 경찰의 부끄러운 민낯이자 낮은 윤리의식과 공직 기강 해이의 결과라며 경찰의 철저한 반성과 쇄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에도 국회 행안위 소속 김영우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국가공무원 범죄 현황서도 경찰은 독보적이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12000명에 달하는 국가공무원 범죄가 발생했다. 이중 경찰은 4년 동안 5610명이 범죄를 저질렀다. 46.7%에 달하는 수치다.

최근 3년간 유착비리 혐의로 기소된 경찰도 30여명에 이른다. 국회 행안위 소속 권미혁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유착비리 혐의로 기소 처분된 경찰공무원은 총 28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청 소속 B경위는 풍속영업단속 지원 출동 업무와 112신고 사건처리 및 방범순찰 등의 업무를 담당하던 중 관내 성매매 업주에게 단속 상황, 수사 상황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총 4회에 걸쳐 5698000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 경찰 대응 논란으로 불거졌던 대림동 여경 사건ⓒ유튜브

서울청 소속 C경위도 단속 및 수사정보를 제공, 수사를 축소·은폐하고 수사경과를 알려주는 대가로 성매매 업소서 11만원 상당의 마사지와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 봐주고
대가 받았다

대부분의 비위행위는 풍속 단속업무 중 오래 알고 지낸 경찰과 업주들의 유착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경찰 내부 감찰로는 걸러지지 못했다. 실제 유착비리의 50% 이상(17)이 검찰·감사원 등 외부서 적발됐다.

권 의원은 최근 경찰의 유착비리는 금품과 향응 수수와도 같은 눈에 띄는 비위행위를 넘어 부정청탁 또는 수사·단속정보 유출도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버닝썬 게이트 이후로 경찰이 명운을 걸고 유착비리를 개혁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유착비리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내부 반부패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