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 미스터리] ‘밤의 여왕’ 정마담 실체

연예계뿐? 정재계 아랫도리도 비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버닝썬 게이트의 양상이 달라졌다. 소속 연예인 선에서 일단락되는 듯했던 사건이 회사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 과정서 새로운 인물인 ‘정마담이 등장했다. 그녀의 입이 버닝썬 게이트의 또 다른 도화선으로 떠오르고 있다.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 대표가 버닝썬 게이트 전면에 등장했다. 핵심 연루 인물인 승리(본명 이승현)에 대한 수사를 끝으로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던 사건에 또 다른 불씨가 등장한 것이다. 양 대표와 YG는 버닝썬 게이트가 일어난 이후 줄곧 승리와 거리를 둬왔다.

YG-승리
손절 맞아?

지난해 11월 말 서울 강남의 클럽 버닝썬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 게이트로 비화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버닝썬 가드에게 폭행당한 김상교씨는 클럽과 경찰의 대응을 문제 삼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김상교씨 사건이 알려졌다. 그와 동시에 강남 클럽의 실상, 경찰과의 유착 의혹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왔고, 버닝썬의 이사였던 승리에 대한 의구심도 서서히 피어올랐다. 그러던 중 가수 정준영, 최종훈, 승리 등이 함께 대화를 나누던 카카오톡 단톡방 내용이 공개됐다.

단톡방의 대화 내용은 일종의 연예계 살생부로 작용했다.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유포한 흔적, 여성을 물건처럼 여기는 듯한 대화 등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세상에 드러났다. 해외 촬영 중이던 정준영이 귀국해 경찰 포토라인에 섰고, 연루된 여러 연예인이 소속사와 팬들로부터 이른바 손절을 당했다.


사건 초기부터 핵심 인물로 지목된 승리는 성접대 의혹을 받았다. 승리가 지인들과 나눈 대화서 접대를 위해 여성들을 준비시키는 듯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

처음에는 메시지가 전부 조작된 것이라고 했던 승리는 결국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경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조사 다음 날인 311일 승리는 연예계 은퇴를 암시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승리는 제가 이 시점서 연예계를 은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안이 너무나 커 연예계 은퇴를 결심했다국내 모든 수사기관이 저를 조사하고 있는 상황서 국민 역적으로까지 몰리는 상황인데 저 하나 살자고 주변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도저히 저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고 했다.

이틀 후인 313YG는 “승리와의 전속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다.

양현석 성접대 의혹에 등장
성매매녀 10명 동원한 인물

YG승리의 요청에 따라 전속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최근 승리가 참여했다는 클럽의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갖가지 의혹과 논란이 계속 불거진 가운데 팬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회사 모든 임직원들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YG의 대응은 버닝썬 게이트는 승리가 개인적으로 관여한 문제일 뿐 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실제 YG는 승리가 연예계 은퇴를 암시한 이후 전속 계약을 해지하고 승리 지우기에 나섰다. 승리가 소속됐던 아이돌 빅뱅의 굿즈서도 승리의 얼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됐다. YG 홈페이지에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공간서도 승리의 이름은 빠르게 삭제됐다. 포털사이트서 승리를 검색해도 YG와 연관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앞서 228<조선일보>YG 사옥 앞에서 기록물 파쇄 서비스 업체의 호송차량 2대가 포착됐다면서 1톤과 2톤 차량에 서류와 물품을 실어갔다고 보도했다. 전날인 227일은 당시 소속 가수였던 승리가 경찰에 자진출석해 버닝썬 관련 의혹에 대해 밤샘 조사를 받은 시점이다. 공교롭게도 승리가 조사를 받은 다음 날 YG서 대량의 물품이 외부로 나간 셈이다.

YG<조선일보>와의 통화서 매월 혹은 매분기별로 실시하는 정기적인 문서파쇄작업이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도 “YG서 문서파쇄를 하는 걸 어떻게 알겠냐버닝썬과 YG 사이에 직접적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서 문서파쇄작업을 막을 명분이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YG는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지만, 승리의 발자취에 YG의 흔적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먼저 승리가 해외 투자자를 접대하는 과정서 YG 법인카드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본 투자자가 머문 호텔의 숙박비 3000여만원을 승리가 YG 법인카드를 이용해 지급했다는 것.

경찰은 승리와 동업자 유모씨가 201512월 한국을 찾은 일본인 투자자 일행 79명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혐의를 조사하는 과정서 유씨로부터 성접대를 시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접대가 이뤄진 서울 유명 호텔 숙박비 3000여만원을 YG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실도 확인했다.

승리 지우기
실패 했나?

하지만 YG는 이번에도 선긋기에 나섰다. YG 관계자는 승리가 지난 2015년 사용했다고 알려진 YG 법인카드는 업무와 관련 없이 발생한 모든 개인 비용을 승리가 부담하고 결제했던 카드라고 해명했다. 해당 카드 결제내역 중 업무 관련성이 없는 금액에 대해서는 승리가 개인 사비로 추후 정산하는 시스템이었다는 설명이다.

앞서 승리 소유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의 클럽 러브시그널의 탈세 의혹이 불거지는 과정서도 실소유주가 양 대표로 드러나면서 파장이 일었다. 러브시그널은 과거 클럽 엑스로 알려져 있었다.

승리는 클럽 엑스가 개점할 당시 제가 직접 운영하는 클럽 엑스가 홍대 삼거리포차 건너편 지하에 오픈합니다. 오세요라고 밝힌 바 있다.

러브시그널은 술을 팔고 손님들이 무대에 나와 춤을 추는 등 일반 유흥업소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실상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곳이었다. 일반음식점은 수입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납부하지만 유흥주점은 개별소비세, 교육세 등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탈세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러브시그널의 실소유주는 A주식회사로 돼있는데, 양 대표는 A주식회사의 지분 70%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YG는 이 의혹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후 버닝썬 게이트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의 마약 투약·공급 의혹, 아이돌 출신 배우 박유천의 마약 투약 의혹으로 번졌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정준영 등이 포함된 단톡방서 경찰총장이라 불렸던 윤 총경에 대한 수사가 반쪽짜리로 전락하면서 버닝썬 게이트 자체가 용두사미로 끝날 위기에 처했다.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민갑룡 경찰청장이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던 사실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3강남 클럽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 영업과 범죄에 대해 일부 권력기관이 유착한 의혹이 있다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양 대표의 성접대 의혹이 불거졌다. 승리와의 연관설을 끊임없이 부정해온 YG가 버닝썬 게이트에 관련돼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것이다. 지난달 27MBC <스트레이트>추적 YG, 강남 클럽과 커넥션편에서 YG의 성접대 의혹을 보도했다.

또 다른 의혹
어디까지 가나

<스트레이트>에 따르면 20147월 강남의 한 고급식당서 태국인 밥과 당시 할리우드 등 세계 연예계의 큰손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의 재력가 조 로우를 위한 YG의 접대 자리가 열렸다. 태국인 밥은 버닝썬서 만난 여성 고객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 금융업자로 알려진 조 로우는 말레이시아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인물이다.

<스트레이트>는 밥과 조 로우의 접대 자리에 유명 가수와 YG의 양 대표가 있었다고 보도하면서 익명과 대역을 통해 목격자의 진술을 전했다. 한 목격자는 당시 식당을 통째로 빌려 식사했다. YG 측의 요청으로 아시아 재력가들을 초대해서 접대하는 자리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식사를 마친 일행 대부분이 양현석씨와 관련 있는 강남 클럽 NB로 건너가 테이블을 잡고 놀았다. 다른 사람들은 초대된 여성들과 함께 어울렸고 양현석씨는 난간서 지켜보고 있던 기억이 있다. 매번 자리마다 술집 아가씨들이 정말 많았고라고 덧붙였다.


클럽 NB는 사실상 양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목격자는 “YG 사람들과 재력가를 포함해 남성 8명 정도가 식당 가운데 앉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초대된 여성 25명 정도가 있었다여성 중 10명 이상은 YG 측과 잘 알고 지내는 일명 정마담이 동원한 화류계 여성들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초대된 일반인 가운데는 황하나씨도 있었다고 전했다.
 

▲ 황하나씨

성접대 의혹을 받고 있는 접대 자리에 참여한 유명 가수는 싸이로 밝혀졌다. 싸이는 지난달 29SNS를 통해 보도에 언급된 조 로우는 저의 친구가 맞다할리우드 쇼 비즈니스 분야서 활발히 활동하던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나의 해외 활동시기와 맞물려 알게 됐다. 내가 조 로우를 양현석 형에게 소개했다고 말했다.

조 로우와 일행들이 아시아 일정 중 한국에 방문했을 때 그들의 초대를 받아 저와 양현석 형이 참석했다면서도 초대된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술을 함께한 후 저와 양현석 형은 먼저 자리서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먼 나라서 온 친구와의 자리로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불씨 꺼져가는 버닝썬 게이트
의문의 여인, 또 다른 불씨?

양 대표는 정마담은 알고 있지만 성접대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세간의 관심은 묘령의 인물인 정마담에게로 쏠렸다. YG 성접대 의혹을 보도한 MBC <스트레이트> 팀의 고은상 기자는 지난달 28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취재 후일담에 대해 털어놨다.

고 기자는 이날 정마담에 대해 이분이 사실 양현석씨, 그 자리에 동석했던 유명 가수(싸이), 그리고 승리씨 등 특히 YG 인사들과 상당히 인맥이 깊은 분이라고 설명했다. 고 기자에 따르면 정마담은 텐프로라고 칭하는 가라오케 업소를 운영하면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 가수 싸이

고 기자는 “(정마담의) 힘이 상당히 강하다. 정재계 쪽에도 끈이 굉장히 있다는 정평이 나 있는 분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9일에는 노영희 변호사가 YTN라디오 <최형진의 오! 뉴스>에 출연해 정마담에 대해 언급했다. 이날 노 변호사는 정마담이란 사람이 없었으면 사실은 YG의 성매매 알선이라고 하는 게 좀 얘기가 안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마담이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어 정재계에 이런 식의 사람들의 연결해주고 공급해주는 공급책으로 유명하다는 얘기가 나와 있고요. 유흥업계의 큰손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거든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에 승리가 자신의 생일파티를 팔라우섬서 할 때 그때도 역시 이런 분들을 통해서 그런 여성들을 공급받은 게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승리는 지난 201712월 필리핀 팔라완의 아만폴로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자신의 생일파티를 열었다. 당시 생일파티에 룸살롱 여성들이 동원됐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실제 경찰 조사 결과 당시 생일파티에는 유흥업소 여종업원 8명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승리 생일도?
여성 동원돼

승리 성접대 의혹이 YG 성접대 의혹으로 확산되면서 정마담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버닝썬 게이트가 이대로 묻힐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주목받을지 여부가 정마담의 입에 달려 있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경찰은 사실관계 확인 뒤 필요하다면 내사 또는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배우 한상진의 일침 “아직 안 걸렸을 뿐”

배우 한상진이 양현석 YG 대표를 향해 일침을 날렸다.

그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MBC <스트레이트>서 보도한 YG 성접대 의혹 기사 화면을 캡처해 올리고 이거 진짜 <스트레이트>가 꼭 스트레이트 날리기를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긴 글을 올렸다.

한상진은 이 세상 절대 공짜 선물은 없다. 선물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이건 좀 아니지. 이 세상에는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며 이곳에 불려간 사람이나 부른 사람이나 각자의 욕망과 허영심이 너무 크기에. 이것이 대체 무슨 잘못이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혹시 지금 주위에 나의 의도와 다르게 나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는지 둘러보기를 바란다. 욕망과 허영심은 지금 당장은 달콤할 수 있지만 결국은 자신의 안으로부터 썩어가고 있음을 자각하기를 바란다난 안 걸렸으니 괜찮아 하는 사람들, 안 걸린 게 아니고 아직 안 걸렸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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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