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적인 여행 ②보성 대원사와 티벳박물관

두 개의 불교문화 체험험

▲ 티베트 불탑인 수미광명탑과 대원사티벳박물관

봄 향기 가득한 4월, 전남 보성의 고찰 대원사를 찾아가는 코스는 눈이 호강하는 길이다. 5.5km 진입로에 벚꽃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기 때문.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며 취한 듯 걷다보면 어느새 사찰 입구에 도착한다. 
 

▲ 4월이면 대원사 진입로를 따라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사진제공:보성군청>

일주문이 맞아주는 여느 절과 달리 이국적인 불탑이 눈에 들어온다. ‘초르텐’이라는 티베트 불탑이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높이 15m의 희고 웅장한 수미광명탑과 바람에 나부끼는 오색 깃발이 이채롭다. 맞은편에는 티베트 사원 양식으로 지은 대원사티벳박물관이 우뚝 섰다. 해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보던 풍경을 눈앞에 맞닥뜨린 듯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 수미광명탑 내부에는 티베트 왕궁 화가가 그린 벽화와 만다라를 봉안했다.

달라이 라마와 인연

대원사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은 대원사 주지인 현장 스님이 세웠다. 인도 여행 중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티베트 불교문화는 인류가 이룩한 영적인 문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티베트의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소개하고, 한국 불교와 교류를 촉진하고자 2001년 박물관을 열었다. 또 박물관 개관을 축하하는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와 티베트·네팔에서 보내온 부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수미광명탑을 만들었다.
 

▲ 불경 구절을 적은 오색 깃발, 타르초

탑 내부에는 티베트의 왕궁 화가가 그린 벽화와 만다라를 봉안하고, 외부에는 네팔에서 제작한 마니보륜 108개를 모셨다. 불교 경전이 들어 있는 마니보륜을 돌리면서 탑을 한 바퀴 돌면 소망이 이뤄진다니 한 번쯤 체험해도 좋겠다. 이때 티베트 불교의 육자진언 ‘옴마니밧메훔’을 암송한다. 온 세상에 부처의 자비가 널리 퍼지기 바란다는 의미다. 
 

▲ 대원사티벳박물관에서 〈신과 함께 저승 여행〉 특별전이 열린다.

바람에 날리는 오색 깃발은 ‘타르초’다. 우주의 5원소(하늘, 땅, 불, 구름, 바다)를 상징하는 파랑·노랑·빨강·하양·초록 깃발에 불경 구절을 깨알같이 적어 끈으로 이었다. 부처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퍼지라는 염원이 담겼다.
박물관에서는 달라이라마실, 티베트 불교회화인 탕카, 티베트 사람들의 생필품인 티포트, 석가모니 직계 후손인 석가족 장인이 만든 불상, 티베트 불교의 정수로 꼽히는 만다라를 볼 수 있다. 
 

▲ 영정 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작성하는 죽음체험실

‘신과 함께 저승 여행’이라는 특별전도 흥미진진하다. 불교의 사후 세계를 극적으로 표현한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에 나오는 7대 지옥과 불교의 10대 지옥을 비교·전시한다. 망자의 시신을 독수리 먹이로 내주는 티베트의 장례문화를 담은 사진이나 영정 사진을 찍고 유언장을 작성한 뒤 관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하는 죽음체험실은 오싹하면서도 성찰할 기회를 준다. ‘영혼이 떠난 시신은 썩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떠나는 자도, 보내는 자도 아무 갈등 없이 새들이 먹기 좋도록 살과 뼈를 곱게 빻아 내놓는 천장(조장)의 현장은 다소 충격적이다.
 

▲ 머리로 치는 커다란 목탁이 걸린 연지문 뒤로 극락전이 보인다.

티베트 불교에 이어 한국 불교를 만날 차례다. 백제 때 창건한 대원사는 화재로 소실되고 다시 세우기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주불전은 불교의 이상향인 서방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7호)이다. 일주문과 사천왕루를 지나고 구품교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연지문 너머 극락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연지문에는 머리로 치는 커다란 목탁이 걸렸다. 두 손으로 목탁을 잡고 이마로 세 번 치며 “나쁜 기억 사라져라, 나의 지혜 밝아져라, 나의 원수 잘되거라”를 외고 들어간다. 
 

▲ 대원사 극락전 서쪽 벽에 있는 관음보살 벽화

구품교 아래 연못은 대원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대원사 경내에는 연못이 7개 있는데, 여름이면 활짝 핀 연꽃과 각종 수생식물로 생태공원을 방불케 한다.

티베트 정신·문화 예술 소개
한국 불교와의 교류 촉진

극락전은 꼭 내부까지 볼 것을 권한다. 특히 좌우 벽을 장식한 벽화에 주목하자. 서쪽 벽에는 흰옷 입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가 함께 있는 관음보살 벽화가, 동쪽 벽에는 달마대사와 혜가단비의 고사를 표현한 달마대사 벽화가 그려져 있다. 양쪽에 그려진 이 벽화는 보성 대원사 극락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보물 1861호)로 영조 때인 1766~1767년 작품이라 추정된다.
 

▲ 떠도는 어린 넋을 위로하는 동자상과 태안지장보살상

대원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어린 영령(태아령)을 위로하는 지장 기도 도량이라 곳곳에 빨간 모자를 쓴 동자상이 많다. 극락전 옆에 어린 영혼들을 천도하고자 봉안한 태안지장보살상이 있고, 천도를 위한 백일기도가 열린다. 
 

▲ 대원사 경내에 핀 매화

그밖에 주요 전각으로 중국에서 존경받는 신라 출신 지장 스님을 기리는 김지장전, 황희정승영각, 아도영각, 템플스테이를 위한 선방 등이 있다. 올해 대원사는 티베트 현지인과 함께하는 티베트 음악과 예술 세계 체험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자세한 일정과 참가 방법은 홈페이지를 참고한다.
 

▲ 대원사 진입로 초입에 자리한 보성군립백민미술관

대원사 방문 전후에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이나 서재필기념공원에 들러도 좋다. 보성군립백민미술관은 1993년에 국내 최초로 개관한 군립 미술관이다. 보성 출신 백민 조규일 화백과 국내 원로·중견 작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두루 전시한다. 서재필기념공원은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열정을 다한 서재필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서울의 독립문을 재현한 모형도 있다. 단 유물과 각종 자료를 전시한 서재필기념관은 내부 공사가 끝나는 4월 이후에 관람이 가능하다.
 

▲ 태백산맥문학관 2층에 조정래 작가의 아들과 며느리가 쓴 소설 <태백산맥> 필사본이 있다.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도 보성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조정래 작가의 문학 세계와 〈태백산맥〉 관련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소화의집, 현부자네집, 김범우의집, 벌교 홍교, 구 벌교금융조합, 구 보성여관, 중도방죽으로 이어지는 소설 속 명소를 따라 걷는 태백산맥문학기행길이 인기다.
벌교 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벌교 홍교는 국내에 남은 홍교 중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304호로 지정됐다. 구 벌교금융조합(등록문화재 226 호)은 일본 건축양식이 반영된 근대건축물이며, 현재 한국 화폐사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 국내에 남은 홍교 중 가장 크고 아름다운 벌교 홍교

소설 〈태백산맥〉 배경

소설에서 남도여관으로 나오는 구 보성여관(등록문화재 132호)은 복원을 거쳐 카페와 자료실, 전시실, 소극장, 숙박동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태어났다. 근대건축물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대원사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대원사→보성군립백민미술관→서재필기념공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대원사티벳박물관과 수미광명탑→대원사→보성군립백민미술관→서재필기념공원
둘째 날: 태백산맥기념관→태백산맥문학기행길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보성문화관광 http://tour.boseong.go.kr
- 대원사 www.daewonsa.or.kr
- 대원사티벳박물관 www.tibetan-museum.org
- 태백산맥문학관 http://tour.boseong.go.kr/tbsm
- 구 보성여관 www.boseonginn.org  

문의 전화
-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0-5214
- 대원사 061)852-1755
- 대원사티벳박물관 061)852-3038
- 태백산맥문학관 061)850-8653
- 구 보성여관 061)858-7528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5~30분 간격(05:30~다음 날 02:0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광천터미널 정류장에서 217번 농어촌버스, 사평터미널 정류장에서 보성-벌교 농어촌버스 환승, 대원사 정류장 하차, 약 2시간3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고속버스통합예매 www.kobus.co.kr 광주유스퀘어 062)360-8114, www.usquare.co.kr 화순 교통 062)373-5666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광주제2순환도로 화순 방면→화순 IC에서 벌교·동복 방면→구암교차로에서 모후산·벌교·보성 방면→대원사삼거리에서 대원사·보성군립백민미술관 방면→대원사

숙박 정보
- 구 보성여관: 벌교읍 태백산맥길, 061)858-7528, www.bo- seonginn.org
- 벌교소형관광호텔: 벌교읍 신정길, 061)858-9800, www.벌교펜션호텔.kr
- 호텔다향: 조성면 조성3길, 061) 804-1004, www.bosungcc.co.kr/html/facility/facility06.asp


식당 정보
- 보성녹차떡갈비원조(한우떡갈비): 보성읍 흥성로, 061)853-0300, http://보성떡갈비원조.crw.kr
- 수복식당(한정식): 보성읍 중앙로, 061)853-3032, www.수복식당.kr
- 국일식당(꼬막정식): 벌교읍 태백산맥길, 061)857-0588

주변 볼거리
주암호, 율포해수녹차센터, 득량역 추억의거리, 한국차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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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