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해남부선 부실자재 의혹

설계도엔 KS, 실제론 비KS?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동해남부선 교대역 교량에 KS인증뿐만 아니라 검수조차 받지 않은 비KS강재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재의 성능은 교량의 안전성과 직결된다. 공사현장서 강재를 사용할 때 검증 절차가 따르는 이유다. 발주청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일요시사>가 교량 전문사이트 건설과사람들의 자문을 받아 내막을 살펴봤다.

▲ KTX 동해남부선 교대역 교량

동해남부선은 부산의 부산진역과 경북 포항의 포항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다. 동해안을 따라 부설된 동해남부선은 길이가 145.8에 이른다. 2003년 부산과 울산을 잇는 동해남부선 단선 철로를 복선화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업은 부산시 구간 37, 울산시 구간 26.7등 총 65.7로 계획됐고, 예산은 260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도급 업체
교량 공사

지난 20161229일 동해남부선 1단계 부전일광(28.5) 구간의 복선전철이 개통했다. 당초 광역철도 사업으로 착공했지만 부산시의 공사비용 분담 문제 등으로 진통을 겪다 국비로 건설하는 일반철도 사업으로 전환됐다. 버스로 1시간40분 정도 소요되던 부전~일광 구간이 전동차로 37분이면 갈 수 있게 돼 동부산권 접근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구간에는 14개의 현대화된 철도역사가 들어섰다. 교대역, 벡스코역, 거제역서 각각 부산도시철도 1·2·3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KS강재 문제가 불거진 곳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교대 정거장 승강장 교량(이하 교대역 교량)이다. 하도급업체 한국피씨에스가 MSP BEAM 특허공법을 적용해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시설공단)은 철도노선이 필요한 곳에 공사를 발주한다. 원도급 업체는 공사를 쪼개 하도급 업체에 맡긴다. 실질적인 공사 주체는 하도급 업체지만 원도급 업체서 이들을 관리한다. 공사현장의 전체적인 관리·감독은 감리단서 담당한다.


전체 공정에 대한 최종 책임자는 발주청, 시설공단이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1공구는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동해남부선의 시작점인 부전역을 포함해 총 6개역이다. 원도급 업체 현대건설은 교대역 교량 공사를 한국피씨에스에 맡겼다.

한국피씨에스는 교량용 거더를 제작하고 일반 교량용 자재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다. 거더는 교량의 상부구조물로 집에 비유하면 대들보와 비슷한 개념이다.

문제는 교대역 교량에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비KS강재가 사용됐다는 점이다. 강재는 건설공사 등의 재료로 쓰기 위해 압연 따위의 방법으로 가공한 강판이다. 강재의 양과 질 그리고 종류에 따라 교량의 강도가 좌우된다. 실제 교량의 강도는 안전도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공사현장서 가능한 한 KS인증을 받은 강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산 대응 저렴한 철판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사용

당초 교대역 교량 설계도에는 KS인증을 받은 SM520 철판 511톤과 SS400 철판 42톤을 합쳐 총 553톤의 철판을 사용하도록 돼있었다. 하지만 실제 교대역 교량에 들어간 강재를 살펴보면, SM520 철판은 동국제강으로부터 구입한 KS인증 철판을 사용한 반면, 42톤에 달하는 나머지 철판은 KS인증을 받지 못한 비KS GS400 철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GS400 철판은 포스코서 중국 철판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판매하는 수입 대응재다. 일반적으로 KS인증 철판은 결함이 생기면 제조사에 클레임을 걸 수 있다. 하지만 GS400 철판은 결함이 있어도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저원가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시설공단 등은 시공 당시 SS400 철판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동일한 성능의 GS400 철판을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GS400 철판은 고강도 콘크리트에 강연선(여러 가닥의 강철선을 꼬아서 만든 줄)의 긴장력이 균일하게 전달되도록 설치한 보강판에 사용됐다강연선 긴장력은 고강도 콘크리트가 견디도록 설계됐기에 구조적으로 (GS400 철판의) 중요도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SS400 철판 수급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교량서 중요한 부분에 들어가는 철판도 아니었기에 GS400 철판으로 대체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한 철강업계 영업팀 관계자는 “20152016(교대역 교량공사 시공시기) SS400 철판 수급은 원활했다당시 철강업계가 수요 부족으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주문이 있었다면 신속하게 공급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교량 전문업체 관계자는 “(교대역 교량서) GS400 철판은 거더와 콘크리트를 연결해주는 부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그 부분은 강연선에 힘이 가해질 때 교량의 하중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저렴하지만
노 클레임

더 큰 문제는 비KS강재가 교대역 교량에 사용되는 과정서 제대로 된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재 선택과 사용은 공사현장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다. 모든 공사현장서 지켜야 할 매뉴얼을 담은 표준시방서나 특정 공사현장서 하도급 업체가 따라야 하는 제작특별시방서에도 강재 사용 시 지켜야 할 절차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도로교표준시방서(2016)에 따르면 강재를 구입할 때는 시험성적증명서인 밀시트와 입고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계약상대자는 강재의 품질 확인과 검증을 위해 밀시트, 재료 시험보고서, 제품 검사보고서와 검사성적서 등을 제출해 감독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기돼있다.
 

물론 KS인증을 받지 않은 비KS강재를 무조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철도설계기준 철도교편(2004)’ 4장 사용재료 부분을 보면 강철도교에 사용되는 재료는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산업규격(KS)에 규정된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새로운 재료를 적용할 때는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고 기재했다.

철도설계기준에서 말하는 타당한 근거는 감리의 확인 하에 직접 현장에 납품된 자재에 대해 샘플링해 의뢰한 시험성적증명서를 뜻한다. 이때 밀시트로 품질시험을 대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공사현장에 비KS강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검사를 거친 후 받은 일정 기준 이상의 성적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 별표2와 국토교통부 고시자료(2015. 6. 30)에 따르면 압연용 강재는 겉모양, 치수, 무게, 화학성분, 인장강도, 굽힘성 등에 대해 제조회사·제품규격별로 50톤마다 시험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교대역 교량 제작을 위한 ‘MSP 합성거더 제작특별시방서에도 공사에 사용하는 재료는 설계도 재료표에 명기한 것으로, 사용 강재는 규격증명서를 첨부해 감독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제작특별시방서에 규정하지 않은 사항은 해당 설계기준과 표준시방서에 따른다고도 명시했다.

하지만 <일요시사>가 교대역 교량 공사에 사용된 SM520 철판과 GS400 철판의 밀시트를 입수해 건설과사람들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두 철판의 출신 성분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SM520 철판은 제조·공급 등 유통과정이 명확했던 반면 GS400 철판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제조·공급
불분명하다

정상적으로 발주해 납품된 철판은 제조사에서 기입한 정보가 마킹돼있다. 모든 사항이 기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철판의 재질과 규격, 제품번호, 제강번호 등은 필수로 들어간다. 공사현장에 납품되는 철판마다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는 셈이다. 공사현장에서는 철판에 마킹된 주문번호와 밀시트에 기재된 번호를 비교해 실제 주문한 제품이 맞는지 확인한다.

동국제강이 교대역 교량 공사에 납품한 SM520 철판의 경우, ‘회사 로고’ ‘제품규격’ ‘제품치수’ ‘제품번호’ ‘제강번호’ ‘목적지명등이 마킹돼있고 이는 밀시트 내용과 일치한다. 교대역 공사에 사용된 SM520 철판은 동국제강서 전량 공급됐다.
 

반면 GS400 철판은 각기 다른 4군데 대리점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GS400 철판의 밀시트서 설계 수량과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됐다. 밀시트에 기재된 제작 수량과 구매 수량이 일치하지 않았다. 시설공단 등은 이에 대해 “GS400 철판의 밀시트가 일부 누락됐다고 해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비KS강재를 공사현장에 공급할 때 시험성적증명서 등을 제출해 받아야 하는 자재공급원 승인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설공단 등은 교대역 교량 공사에 사용된 GS400 철판에 대한 자재공급원 승인원을 받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2016년 다른 공사에서 받은 GS400 철판의 자재공급원 승인원이 있기 때문에 적정한 자재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몰랐다” 시설공단
감리에 책임 떠넘겨

시설공단 등에서 말한 GS400 철판의 자재공급원 승인원은 진접선(당고개~진접) 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공사에서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진접선에 들어가는 GS400 철판의 자재공급 승인 날짜는 20161110일로 확인된다.

그 시기 동해남부선 1단계 부전일광 구간은 개통을 한 달 앞두고 있던 때였다. 이미 준공된 공사에 들어간 GS400 철판의 적정성을 이후 다른 공사에서 받은 자재공급원 승인원으로 무마하려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설공단 영남본부 동해남부선 부산울산 PM 관계자는 GS400 철판 사용 문제는 감리단의 업무라고 해명했다. 당시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1공구 감리는 설계업체 유신이 맡았다.

시설공단에서 유신에 책임감리를 맡긴 만큼 공사현장 자재 검측이나 자재공급원 승인 등은 감리단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문제가 된 자재공급원 승인은 시설공단에서 해주는 게 아니라 감리단장의 승인 사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시설공단은 언론 등에서 비KS강재 사용,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해당 사항에 대해 몰랐다고 말했다. 발주청인 시설공단은 문제를 야기한 업체나 감리단에 벌점 등의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대역 교량 공사에서 비KS강재 사용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해 8월경, 하지만 업체나 감리단 등에 벌점이 부과된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실제 책임감리제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우현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은 터널공사 과정서 사상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시설공단은 책임감리제를 구실로 직원들에게 경징계를 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책임소재
누구한테?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발주청의 업무 범위에는 건설공사의 품질관리와 안전관리에 대한 지도가 포함돼있다. 하지만 실제 공사현장서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은 시공업체나 감리단이 맡고 있는 상황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설공단서 책임감리를 맡겼다는 핑계로 감리단을 방패막이로 쓰고 있다”며 문제를 인지한 이후에도 시설공단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상한 철판 공급업체 “면허도 없는데 재하도급?"

교대 정거장 승강장 교량(이하 교대역 교량)에 비KS강재를 사용한 하도급업체 한국피씨에스는 인천 소재의 영세업체 금강스틸에서 절단한 GS400 철판을 경주 소재의 동보테크로부터 공급받았다. 대한전문건설협회 확인 결과, 두 업체는 철강 관련 면허뿐만 아니라 어떠한 건설면허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건설기술산업법 제29(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에 따르면 하수급인은 하도급을 받은 건설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재하도급할 수 없게 돼있다. 단 하도급을 받은 전문공사의 일부를 그 전문공사를 시공하는 업종을 등록한 건설업자에게는 하도급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문제는 동보테크가 전문건설업 등록이 안 된 상태라 건설업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당초 동보테크는 한국피씨에스의 재하도급을 받을 수 없는 업체였던 셈이다. 시설공단 등은 동보테크는 일부 강재를 가공해 납품하는 자재납품 업체이므로 재하도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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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