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해남부선 부실자재 의혹

설계도엔 KS, 실제론 비KS?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동해남부선 교대역 교량에 KS인증뿐만 아니라 검수조차 받지 않은 비KS강재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재의 성능은 교량의 안전성과 직결된다. 공사현장서 강재를 사용할 때 검증 절차가 따르는 이유다. 발주청인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일요시사>가 교량 전문사이트 건설과사람들의 자문을 받아 내막을 살펴봤다.

▲ KTX 동해남부선 교대역 교량

동해남부선은 부산의 부산진역과 경북 포항의 포항역 사이에 부설된 철도다. 동해안을 따라 부설된 동해남부선은 길이가 145.8에 이른다. 2003년 부산과 울산을 잇는 동해남부선 단선 철로를 복선화하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업은 부산시 구간 37, 울산시 구간 26.7등 총 65.7로 계획됐고, 예산은 260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도급 업체
교량 공사

지난 20161229일 동해남부선 1단계 부전일광(28.5) 구간의 복선전철이 개통했다. 당초 광역철도 사업으로 착공했지만 부산시의 공사비용 분담 문제 등으로 진통을 겪다 국비로 건설하는 일반철도 사업으로 전환됐다. 버스로 1시간40분 정도 소요되던 부전~일광 구간이 전동차로 37분이면 갈 수 있게 돼 동부산권 접근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 구간에는 14개의 현대화된 철도역사가 들어섰다. 교대역, 벡스코역, 거제역서 각각 부산도시철도 1·2·3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 KS강재 문제가 불거진 곳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교대 정거장 승강장 교량(이하 교대역 교량)이다. 하도급업체 한국피씨에스가 MSP BEAM 특허공법을 적용해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이하 시설공단)은 철도노선이 필요한 곳에 공사를 발주한다. 원도급 업체는 공사를 쪼개 하도급 업체에 맡긴다. 실질적인 공사 주체는 하도급 업체지만 원도급 업체서 이들을 관리한다. 공사현장의 전체적인 관리·감독은 감리단서 담당한다.


전체 공정에 대한 최종 책임자는 발주청, 시설공단이다.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1공구는 현대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동해남부선의 시작점인 부전역을 포함해 총 6개역이다. 원도급 업체 현대건설은 교대역 교량 공사를 한국피씨에스에 맡겼다.

한국피씨에스는 교량용 거더를 제작하고 일반 교량용 자재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다. 거더는 교량의 상부구조물로 집에 비유하면 대들보와 비슷한 개념이다.

문제는 교대역 교량에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비KS강재가 사용됐다는 점이다. 강재는 건설공사 등의 재료로 쓰기 위해 압연 따위의 방법으로 가공한 강판이다. 강재의 양과 질 그리고 종류에 따라 교량의 강도가 좌우된다. 실제 교량의 강도는 안전도와 직결되는 부분이다. 공사현장서 가능한 한 KS인증을 받은 강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산 대응 저렴한 철판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사용

당초 교대역 교량 설계도에는 KS인증을 받은 SM520 철판 511톤과 SS400 철판 42톤을 합쳐 총 553톤의 철판을 사용하도록 돼있었다. 하지만 실제 교대역 교량에 들어간 강재를 살펴보면, SM520 철판은 동국제강으로부터 구입한 KS인증 철판을 사용한 반면, 42톤에 달하는 나머지 철판은 KS인증을 받지 못한 비KS GS400 철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GS400 철판은 포스코서 중국 철판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판매하는 수입 대응재다. 일반적으로 KS인증 철판은 결함이 생기면 제조사에 클레임을 걸 수 있다. 하지만 GS400 철판은 결함이 있어도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저원가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시설공단 등은 시공 당시 SS400 철판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동일한 성능의 GS400 철판을 사용했다고 해명했다. “GS400 철판은 고강도 콘크리트에 강연선(여러 가닥의 강철선을 꼬아서 만든 줄)의 긴장력이 균일하게 전달되도록 설치한 보강판에 사용됐다강연선 긴장력은 고강도 콘크리트가 견디도록 설계됐기에 구조적으로 (GS400 철판의) 중요도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SS400 철판 수급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교량서 중요한 부분에 들어가는 철판도 아니었기에 GS400 철판으로 대체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한 철강업계 영업팀 관계자는 “20152016(교대역 교량공사 시공시기) SS400 철판 수급은 원활했다당시 철강업계가 수요 부족으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던 때라 주문이 있었다면 신속하게 공급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교량 전문업체 관계자는 “(교대역 교량서) GS400 철판은 거더와 콘크리트를 연결해주는 부분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그 부분은 강연선에 힘이 가해질 때 교량의 하중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저렴하지만
노 클레임

더 큰 문제는 비KS강재가 교대역 교량에 사용되는 과정서 제대로 된 검증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강재 선택과 사용은 공사현장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다. 모든 공사현장서 지켜야 할 매뉴얼을 담은 표준시방서나 특정 공사현장서 하도급 업체가 따라야 하는 제작특별시방서에도 강재 사용 시 지켜야 할 절차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도로교표준시방서(2016)에 따르면 강재를 구입할 때는 시험성적증명서인 밀시트와 입고명세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계약상대자는 강재의 품질 확인과 검증을 위해 밀시트, 재료 시험보고서, 제품 검사보고서와 검사성적서 등을 제출해 감독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기돼있다.
 

물론 KS인증을 받지 않은 비KS강재를 무조건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제정한 철도설계기준 철도교편(2004)’ 4장 사용재료 부분을 보면 강철도교에 사용되는 재료는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산업규격(KS)에 규정된 것으로 사용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새로운 재료를 적용할 때는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고 기재했다.

철도설계기준에서 말하는 타당한 근거는 감리의 확인 하에 직접 현장에 납품된 자재에 대해 샘플링해 의뢰한 시험성적증명서를 뜻한다. 이때 밀시트로 품질시험을 대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공사현장에 비KS강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정 검사를 거친 후 받은 일정 기준 이상의 성적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건설공사 품질관리 업무지침 별표2와 국토교통부 고시자료(2015. 6. 30)에 따르면 압연용 강재는 겉모양, 치수, 무게, 화학성분, 인장강도, 굽힘성 등에 대해 제조회사·제품규격별로 50톤마다 시험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교대역 교량 제작을 위한 ‘MSP 합성거더 제작특별시방서에도 공사에 사용하는 재료는 설계도 재료표에 명기한 것으로, 사용 강재는 규격증명서를 첨부해 감독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제작특별시방서에 규정하지 않은 사항은 해당 설계기준과 표준시방서에 따른다고도 명시했다.

하지만 <일요시사>가 교대역 교량 공사에 사용된 SM520 철판과 GS400 철판의 밀시트를 입수해 건설과사람들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두 철판의 출신 성분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SM520 철판은 제조·공급 등 유통과정이 명확했던 반면 GS400 철판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제조·공급
불분명하다

정상적으로 발주해 납품된 철판은 제조사에서 기입한 정보가 마킹돼있다. 모든 사항이 기입되는 것은 아니지만 철판의 재질과 규격, 제품번호, 제강번호 등은 필수로 들어간다. 공사현장에 납품되는 철판마다 고유의 이름이 붙어 있는 셈이다. 공사현장에서는 철판에 마킹된 주문번호와 밀시트에 기재된 번호를 비교해 실제 주문한 제품이 맞는지 확인한다.

동국제강이 교대역 교량 공사에 납품한 SM520 철판의 경우, ‘회사 로고’ ‘제품규격’ ‘제품치수’ ‘제품번호’ ‘제강번호’ ‘목적지명등이 마킹돼있고 이는 밀시트 내용과 일치한다. 교대역 공사에 사용된 SM520 철판은 동국제강서 전량 공급됐다.
 

반면 GS400 철판은 각기 다른 4군데 대리점서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GS400 철판의 밀시트서 설계 수량과 맞지 않는 부분이 발견됐다. 밀시트에 기재된 제작 수량과 구매 수량이 일치하지 않았다. 시설공단 등은 이에 대해 “GS400 철판의 밀시트가 일부 누락됐다고 해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비KS강재를 공사현장에 공급할 때 시험성적증명서 등을 제출해 받아야 하는 자재공급원 승인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설공단 등은 교대역 교량 공사에 사용된 GS400 철판에 대한 자재공급원 승인원을 받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2016년 다른 공사에서 받은 GS400 철판의 자재공급원 승인원이 있기 때문에 적정한 자재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몰랐다” 시설공단
감리에 책임 떠넘겨

시설공단 등에서 말한 GS400 철판의 자재공급원 승인원은 진접선(당고개~진접) 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공사에서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진접선에 들어가는 GS400 철판의 자재공급 승인 날짜는 20161110일로 확인된다.

그 시기 동해남부선 1단계 부전일광 구간은 개통을 한 달 앞두고 있던 때였다. 이미 준공된 공사에 들어간 GS400 철판의 적정성을 이후 다른 공사에서 받은 자재공급원 승인원으로 무마하려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설공단 영남본부 동해남부선 부산울산 PM 관계자는 GS400 철판 사용 문제는 감리단의 업무라고 해명했다. 당시 동해남부선 복선전철화 사업 1공구 감리는 설계업체 유신이 맡았다.

시설공단에서 유신에 책임감리를 맡긴 만큼 공사현장 자재 검측이나 자재공급원 승인 등은 감리단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문제가 된 자재공급원 승인은 시설공단에서 해주는 게 아니라 감리단장의 승인 사항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 시설공단은 언론 등에서 비KS강재 사용, 절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해당 사항에 대해 몰랐다고 말했다. 발주청인 시설공단은 문제를 야기한 업체나 감리단에 벌점 등의 페널티를 부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대역 교량 공사에서 비KS강재 사용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해 8월경, 하지만 업체나 감리단 등에 벌점이 부과된 사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실제 책임감리제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우현 국토교통위원회 의원은 터널공사 과정서 사상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시설공단은 책임감리제를 구실로 직원들에게 경징계를 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책임소재
누구한테?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발주청의 업무 범위에는 건설공사의 품질관리와 안전관리에 대한 지도가 포함돼있다. 하지만 실제 공사현장서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은 시공업체나 감리단이 맡고 있는 상황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시설공단서 책임감리를 맡겼다는 핑계로 감리단을 방패막이로 쓰고 있다”며 문제를 인지한 이후에도 시설공단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은 채 상황을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상한 철판 공급업체 “면허도 없는데 재하도급?"

교대 정거장 승강장 교량(이하 교대역 교량)에 비KS강재를 사용한 하도급업체 한국피씨에스는 인천 소재의 영세업체 금강스틸에서 절단한 GS400 철판을 경주 소재의 동보테크로부터 공급받았다. 대한전문건설협회 확인 결과, 두 업체는 철강 관련 면허뿐만 아니라 어떠한 건설면허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건설기술산업법 제29(건설공사의 하도급 제한)에 따르면 하수급인은 하도급을 받은 건설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재하도급할 수 없게 돼있다. 단 하도급을 받은 전문공사의 일부를 그 전문공사를 시공하는 업종을 등록한 건설업자에게는 하도급할 수 있다고 예외를 뒀다.

문제는 동보테크가 전문건설업 등록이 안 된 상태라 건설업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당초 동보테크는 한국피씨에스의 재하도급을 받을 수 없는 업체였던 셈이다. 시설공단 등은 동보테크는 일부 강재를 가공해 납품하는 자재납품 업체이므로 재하도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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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