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되는’ 약 부작용 주의보

잘못 먹으면…어디 타미플루뿐일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모든 약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약을 먹어도 사람에 따라 정반대의 반응이 나올 가능성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약을 복용하기 전에 부작용을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 이유다.
 

▲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

최근 부산서 여중생이 추락사했다. 유가족은 숨진 학생이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복용한 이후 환각 증세를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사고의 원인이 약물 부작용서 비롯됐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타미플루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약 먹은 밤
뛰어내려 왜?

지난 22일 오전 6시경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있는 한 아파트 화단서 중학생 A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파트 12층에 살고 있는 A양의 부모는 방문과 창문이 열려 있기에 아래를 내려다봤다가 딸이 추락한 모습을 보고 119와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A양에 대해서는 특별한 외상 없이 고층 추락으로 인한 장기 손상으로 숨진 것 같다는 소견이 나왔다.

A양의 고모는 사고 이틀 뒤인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타미플루 의사가 처방 시 꼭 약 부작용 고지하게 해주세요라는 청원글을 올렸다. 그는 타미플루 부작용으로 이틀 전 죽은 중학교 1학년 A양 고모입니다. (A양은)오빠 가족이 10년 만에 얻은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입니다라고 글을 시작했다.

이어 저희가 원하는 건 타미플루 부작용을 식약청()서 일선 병원 의사·약사에게 의무사항으로 고지하게 만들어 A양처럼 의사·약사에게 한마디 주의사항도 듣지 못해 허망하게 가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었다.


A양은 사고 전날 학교 부학생회장에 당선돼 가족들과 기쁨을 나눈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유가족에 따르면 A양은 사고 전날 오후 10시쯤 타미플루를 두 번째 복용했고 자정쯤 방으로 향했다. 당시 A양은 물을 마시러 간다면서 주방이 아닌 다른 방으로 가는 등 이상행동을 했다고 유가족은 주장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A양의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른바 타미플루 복용 후기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타미플루를 복용한 후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는 등 이상증세가 나타났는데도 의사나 약사로부터 아무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말도 나왔다. 여기에 과거 타미플루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드러나면서 타미플루 공포증이 번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타미플루의 안전성과 관련된 서한을 국내 의약 전문가와 소비자 단체 등에 배포했다. 식약처는 서한을 통해타미플루를 복용 중인 인플루엔자 환자들 중 주로 소아·청소년 환자서 경련과 섬망과 같은 신경정신계 이상반응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소아와 청소년 환자의 이상행동 발현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했다.

여중생 추락사, 타미플루 원인?
의사도 약사도 부작용 언급 없어

“10세 이상의 소아 환자에 있어서는 인과관계는 불분명하지만 타미플루 복용 후에 이상행동이 발현하고 추락 등의 사고에 이른 사례가 있다이 때문에 보호자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소아·청소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타미플루에 의한 치료가 개시된 이후에 이상행동의 발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자택서 요양하는 경우 적어도 2일간 보호자 등이 소아·청소년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094월 이후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타미플루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이와 동시에 타미플루 관련 이상반응 보고 건수도 증가했다. 국내에선 2016년 11세 남자아이가 타미플루 복용 후 이상증세로 21층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식약처는 의약품 피해구제 보상금을 지급했다. 앞서 2009년 경기 부천에선 역시 타미플루를 복용한 14세 남중생이 환청증세를 호소하면서 6층서 투신해 전신에 골절상을 입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타미플루 부작용 논란은 특히 일본서 불거졌다. 2004년 일본 기후현에선 한 고교생이 타미플루를 복용한 뒤 맨발로 도로를 걸어 다니다가 대형 트럭에 뛰어들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5년에는 일본 아이치현의 남자 중학생이 타미플루를 먹고 9층 집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타미플루를 복용한 이후 이상증세를 보이다가 숨진 것으로 의심되는 120여명 중 80%에 이르는 사람이 20세 미만인 것으로 보고됐다. 이 때문에 10대를 중심으로 한 청소년층서 환각이나 환청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2007년 타미플루 복용 안내문에 관련 경고 문구가 기재됐다.

일본서 먼저
이상반응 보고

미플루 부작용 신고 건수는 국내서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타미플루 부작용 신고 건수는 201255건서 2016257건으로 5년 만에 5배가량 늘었다.

연도별로는 201255, 201366, 2014184, 2015209, 2016257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구토 215,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 170, 설사 105, 어지러움 56, 소화불량 44, 사망 3건이었다. 타미플루 관련 사망 사고는 2014년 이후 매년 1건씩 발생하고 있다. 사망 원인은 간기능 이상, 심장정지, 추락 등이었다.

성 의원은 “20157월 보건당국은 타미플루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검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타미플루 안전성과 관련된 정밀조사나 허가 변경 등 사후 조치는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미플루 관련 허가 변경 사항은 20137월 사용상의 주의사항에 관한 변경 이후 없었다타미플루와 이상행동 사이의 의학적인 인과관계, 타미플루 복용 시 기저질환과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의약품 관련 국민 보건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타미플루 말고도 복용 후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으로 의심되는 약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수면유도제로 알려진 졸피뎀이 대표적이다. 뇌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을 강화시켜 진정 및 수면효과를 나타낸다. 효과가 빠르기 때문에 주로 취침 바로 직전에 투여한다. 약물 의존성과 오남용 위험이 있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있다.

졸피뎀은 20167SBS <그것이 알고 싶다>서 다루면서 높은 관심을 받았다. 방송에는 졸피뎀에 중독된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갑자기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다가 깨서 폭식을 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였다. 새벽에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한다거나 어린 자녀를 두고 새벽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여성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과다·장기 복용
자살 시도까지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약물 부작용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의심받는 사람은 총 34명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58, 201613, 20178, 2018년 5명(상반기 기준)이다.

자살 시도를 하거나 자살 경향을 보인 사람은 더 많았다. 36개월 동안 약물 부작용으로 자살 경향을 보인 사람은 46명이었고,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은 50명이었다.

김 의원은 약물 부작용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34명 중 특정 성분이 담긴 약물을 복용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다수 있다고 밝혔다. 뇌전증 치료, 간질 치료 등에 쓰이는 레비티라세탐은 2015년 해당 성분이 담긴 약물을 복용한 후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졸피뎀은 지난 36개월간 4명이, 뇌경색 환자 등에 쓰이는 실로스타졸은 3명이, 조현병 치료에 이용되는 향정신병약물인 클로자핀도 3명이 복용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식약처는 해당 의약품 등과의 인과관계 여부와 관계없이 이상사례 의심 약물로 보고된 것으로, 해당 자료만으로 특정 제품에 의해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먹기만 하면 살이 쭉쭉 빠진다고 홍보하는 다이어트 약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30대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혐의로 붙잡혔다. 이 불로 집 내부와 집기류 등이 불에 타 45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불이 난 시간대가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등교 시간과 맞물려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불을 지른 여성은 수년 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장기간 비만 치료제를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어트 약 대부분에 포함된 펜터민은 정신질환을 유발한다는 의학계 보고가 있다.

펜터민에는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암페타민 계통의 유도체인 펜티메트라진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이 환청과 망상 등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실생활서 흔하게 접하는 감기약, 멀미약도 환자의 복용 상황, 건강 상태에 따라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는 아세트아미노펜 함유 서방형 제제의 판매 중지를 결정했다. 아세트아미노펜 서방형 제제는 몸 안에서 서서히 퍼져 진통 효과가 오래가도록 하는 정제 약이다. 아세트아미노펜은 감기약, 진통제 등에 많이 쓰이는 성분이다.

수면제 다이어트 약 부작용으로
이상증세 나타날 가능성 있어

EC는 아세트아미노펜 서방형 약이 유익한 면보다 위험성이 더 크다고 봤다. 과다 복용이 쉬워 간 손상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식약처도 국내 의약 전문가와 소비자 단체 등에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서방형 제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서한을 배포했다. 서한에서는 복약 간격을 준수하고 소아와 성인의 복약량을 달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멀미약도 사용에 앞서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는 게 부작용을 줄이는 길이다. 특히 붙이는 멀미약의 경우 임산부는 사용해선 안 된다. 성인과 소아의 복용량 차이를 눈여겨 봐야 하고, 배뇨장애가 있는 사람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해야 한다.

A양 사건으로 복약지도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전문가들은 타미플루 복용과 이상증세 발현 간의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200710대 미성년자에게 타미플루 사용을 금지했던 일본도 과학적으로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자 올해 8월부터 투여 재개 방침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타미플루 처방 시 의사와 약사로부터 부작용에 대한 복약지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6일 부산 연제구청 보건소는 A양에게 타미플루를 조제해준 약국을 방문 조사했다. 이 과정서 이 약국 약사가 신경정신계 이상행동 같은 타미플루 부작용을 안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보건당국은 A양 추락사와 관련해 타미플루를 조제해준 약국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부작용 설명 등 복약지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서다. 의사는 근거 규정이 없어 과태료 처분 대상서 빠졌다.
 

▲ 졸피뎀

약사법 24조에는 약사는 의약품을 조제하면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에게 필요한 복약지도를 구두 또는 복약지도서로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해당 약국에는 과태료 30만원과 경고행정처분이 내려졌다.

의료법에도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 등 일부 의료행위에 한해 설명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이를 어길 시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받는다.

복지부 이제야
복약지도 강화

A양 사건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만큼 의사에 대한 과태료 처분은 빠졌다. 이번 사태에 대해 약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모든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6일 의사협회와 약사회, 대한병원협회에 타미플루 처방·조제 시 환자 안내 요청공문을 긴급 발송했다. 그동안 복약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이번 사건으로 확인한 셈이다. 복지부는 조만간 복약지도 강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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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