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업하는 교수들 실상

학생 1명 데려오면 180만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들은 지난 11월 학교법인 호서학원에 호소문을 보냈다. 호소문에는 연봉체계와 재임용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이들은 앞서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그 결과 학교 측에 시정요구 통보가 내려졌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자 호소문을 보낸 것이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2003년 서울 강남구에 개교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이하 SVU)는 석·박사과정만 운영하는 대학원대학이다. 고등교육법 제30(대학원대학)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대학원만 두는 대학을 설립할 수 있다고 돼있다.

SVU는 융합산업학과, 부동산학과, 사회복지상담학과 등 3개과로 구성돼있다. 정년트랙 12, 비정년트랙 2명 등 총 14명의 교수가 250여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을 가르친다.

뿔난 교수들
생존권 투쟁

교육부와 학교법인에 문제를 제기한 교수들은 각양각색의 연봉체계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교수별로 연봉체계가 다른 것은 물론 그 액수 차이도 천차만별이라는 주장이다.

A 교수는 교수들 연봉이 1600만원서 7500만원까지 분포돼있다연봉 책정 과정서 교수들과 어떠한 합의도 없었고, 근로계약서도 없이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통보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수들의 연봉은 학생 모집 실적과 지도학생을 근거로 하고 있다교수는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인데 이 학교서만큼은 영업사원 대접을 받는다고 한탄했다.

SVU가 학생 모집 실적과 연봉을 연계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VU는 석·박사과정 전공을 2개 학과로 신청했다가 변칙적으로 17개 학과로 증설한 사실이 교과부(현 교육부)에 적발돼 2007년부터 학생 모집 정지 3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010년은 SVU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다. 3년 동안 신입생을 받지 못하면서 존폐위기에 놓였기 때문. 당시 SVU교원연봉책정기준()’을 만들어 교수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SVU는 “3년간의 학생 모집 중지로 재정이 고갈돼 당해년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됨에 따라 2010학년도에는 연봉삭감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점을 교수들에게 공지하고 학생 모집과 연봉체계를 연동하겠다고 설명했다.

연봉은 교수별로 모집한 학생의 등록금 수입액의 일정 비율을 적용한 기본급과 연구 간접비나 기부금 유치 등 교수가 학교재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금액의 일정 비율을 적용한 성과급으로 책정됐다.

2010학년도에는 등록금 수입액의 40%, 2011학년도에는 37.5%, 2012학년도 이후에는 33.5%의 비율로 정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다 2013년 말부터 지급되는 연봉이 바뀌기 시작했다. A 교수는 당시에는 산출 기준이 정확했기 때문에 액수가 어느 정도 고정돼있었다그런데 그 시기(2013년 말)부터 급여가 들쭉날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이 시기(2013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교수들은 어떤 기준으로 자신들의 연봉이 책정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연봉·재임용 문제해결 요구
민원제기하고 법인에 호소문

결국 일부 교수들이 지난해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학생 모집 실적을 근거로 한 연봉체계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은 현재의 연봉체계가 학생들의 학습권과 지도교수 선정권은 물론 교수들의 수업권까지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SVU 교수들은 모집한 학생을 관심사와 상관없이 자신의 학과에 고정시킨다. 지도교수 역시 자신이 맡는다. 교수의 모집 활동으로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에겐 선택권이 거의 없는 셈이다.

이 과정서 교수들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A 교수는 같은 과 교수들끼리 밥을 먹기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학생을 빼앗긴다는 것은 급여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로 지낸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돼 병원 신세를 지고도 2주 만에 복귀해 수업을 진행했다. 병원서도 휴직을 권할 정도였지만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바꿀까봐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모집 경쟁서 도태되는 교수는 최저시급도 안 되는 연봉으로 생활해야 한다. 한 교수는 학생 모집 실적이 부진해 약 16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세금을 제하면 한 달에 120만원 정도다. 이 교수는 데려온 학생이 없어 수업조차 힘들다. 그래도 수업시수를 채워야 학교에 계속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교수들에게 학생을 구걸하는 지경이다.

고정급 3600만원으로 계약을 맺고 2012년 임용된 교수들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학생 모집 실적에 대한 성과급은 전무한 채 올해까지 같은 연봉을 7년째 받고 있다. 또 성과급이 전혀 없음에도 수업을 위해 학생을 모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 교수는 고정급 3600만원은 2003SVU 개교 당시 교수들에게 책정됐던 연봉이라며물가인상 등 사회 변화에도 불구하고 약 15년간 변하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A 교수 등은 몇몇 교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교수들이 저임금 수준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서 박호군 총장의 연봉은 수억원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수나 교직원에 대한 복리후생은 전무한 수준인데 학교는 미사용 차기 이월금으로 23억원가량을 적립하는 등 갑질을 일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파도 출근
돈으로 재임용

재임용 기간도 문제 삼았다. SVU는 정년트랙과 비정년트랙 구분 없이 1년 단위로 재임용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1년 단위로 재임용이 진행되다 보니 3년 단위의 박사과정 학생들이 지도교수의 중도 탈락을 염려하는 등 정당한 수업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학교가 재임용을 무기로 교수 길들이기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

2012SVU는 부족한 실적을 근거로 정년트랙 교수 5명의 재임용을 거부한 적이 있다. 당시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수들은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제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학교로 되돌아왔다.


당시 재임용을 거부당한 교수 중 한 명은 당시 교수 임명권을 가진 학교법인이 아니라 학교 총장직무대행이 임의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재임용 거부 처분을 내렸다면서 다른 학교 같았으면 징계 처리가 됐어야 할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임용 평가 기준도 도마에 올랐다. SVU는 교육(100), 봉사(100), 연구 실적(60), 벤처연구 실적(60) 등을 재임용 평가 기준으로 두고 있다. 교육은 수업시수, 봉사는 사회활동, 연구 실적은 논문 편수, 벤처연구 실적은 외부 프로젝트 수주액을 기준으로 한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연구 실적과 벤처연구 실적이다. 연구 실적은 국외 저명학술지(SCI) 논문 편당 10, 국내 저명학술지(KCI) 논문 편당 8, 국내 학술지 논문 편당 5점으로 계산한다. 1년에 SCI급 논문 6편이나 KCI8편을 발표해야 연구 실적 점수를 채울 수 있다.
 

벤처연구 실적은 외부 프로젝트비 수주액을 기준으로 연봉 대비 50% 미만이면 60, 50%~100% 미만이면 80, 100% 이상이면 120점으로 정했다. A 교수는 이 같은 재임용 평가 기준에 대해 '살인적'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들어 재임용 평가 기준이 조금 완화됐지만 여전히 버거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학생 선택권 
크게 제한돼

또 연구 실적과 벤처연구 실적 등 120점을 채우지 못한 교수들은 발전기금 등을 납부하면서 재임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연봉의 5%10점으로 계산, 모자란 점수를 학교 발전기금을 내고 받은 점수로 충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연봉을 1800만원 정도 받던 한 교수는 1000만원에 이르는 학교 발전기금을 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원 내용에 대해 교육부는 지난해 12SVU에 교원임용 계약체결 및 교직원 보수규정 운영에 대한 시정요구를 통보했다. 먼저 SVU가 교원과 체결한 교원임용계약서 제4(보수)에 따라 연봉계약제 교원의 보수는 별도의 계약을 한다고 규정돼있지만, 실제 별도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A 교수에 따르면 SVU는 교수와 임용계약은 맺으면서도 연봉 관련 계약은 진행하지 않았다.

201211월 교육부 감사 및 시정처분 요구에 따라 SVU가 호봉을 연봉으로 수정해 교직원 보수 규정을 개정함으로써 이행완료했다고 20134월 보고했지만, 호봉제를 연봉제로 변경한다는 사실 자체만 규정했을 뿐 급여지급 기준 및 성과급 산정 기준 등 보수체계의 세부적인 내용은 보수규정 및 보수규정서 위임한 인사규정에 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직원 보수규정 및 교원 인사규정에 급여지급 기준과 성과급 산정기준 등 보수체계의 세부적인 내용을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등교육법 제602항에 따라 학생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A 교수 등은 교육부의 시정요구 통보에도 불구하고 학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몇 번이나 요구한 끝에 현행 연봉체계에 대한 근거 자료를 받았을 뿐이다. 지난 3월 교수게시판에는 ‘2014학년도 교원연봉 책정 품의자료가 올라왔다. 교수 연봉의 산정 기준을 정한 내부결재 문서다.

연봉은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나뉘어 책정됐다. 기본급은 2010~2012학년도 3년 평균 연봉의 25%, 2009년도 연봉 40%, 직급별 수당을 합해서 산출한다. 2010~2012학년도는 SVU에서 교원연봉책정기준()’에 따라 연봉을 지급하던 시기다.

교육부 시정조치 통보했지만…
학측 
“개선 조치 취하고 있다”

2009년은 학생 모집이 정지됐던 시기로 당시 교수들을 산학A/산학B 그룹으로 나눠 연봉을 지급했다. 산학A 그룹은 주4일 근무에 6시간 강의를 하는 교수들로 연봉 3600만원이 지급됐다. 산학B 그룹은 주2일 근무에 3시간 강의를 하는 교수들로 구성됐고 1800만원을 받았다.

문제는 2010년 학생 모집을 재개했을 당시에는 교수들 모두 주4일 근무에 6시간 강의를 했다는 점이다. 산학A·B 그룹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뜻이다.

A 교수 등은 “2014년 연봉 책정 기준을 잘 뜯어보면 보직 교수들이 돈을 더 받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2009년 연봉이 기본급 산정에 들어가 있는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과급은 학생 모집 실적을 기준으로 했다. 입학생 1명당 180만원으로 정했고 재학생은 75만원이다. 교수가 모집한 1명의 학생이 학교에 3년간 다닐 경우 받을 수 있는 돈은 330만원이다. 학생이 휴학하거나 자퇴하면 다음 학기 급여는 줄어든다.

SVU는 이 같은 연봉체계를 2014학년도까지 시행하고, 2015학년도에는 교원 간의 의견 수렴을 통해 새로운 교원급여 체계를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A 교수에 따르면 이 연봉체계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재임용 시기가 된 교수들에게 내민 연봉계약서도 해당 연봉체계를 바탕으로 구성돼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교수들이 연봉계약서 서명을 거절했지만 급여는 이 연봉체계를 바탕으로 지급되고 있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결국 A 교수 등 7명은 학교법인에 호소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그간 교수들이 총장에게 연봉 및 재임용 등 불합리한 것들을 개선해 주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해주지 앉아 재단에 호소문을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본 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연봉을 책정해주길 바란다지금의 학교 상황에서 많은 연봉을 요구하지 않는다. 합리적으로 형평성 있게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법인 “학교 일”
학교 “개선 중”

학교법인 호서학원 관계자는 호소문은 받았다. 교육부에 민원이 제기되는 등 이미 여러 차례 나온 얘기라며학교 차원서 교육부에 소명자료를 보내는 등 대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법인은 교육기관의 법적 주체일 뿐 행정 업무 등 실무는 학교에서 담당한다지난 112일자로 정관을 개정해 신규 임용과 교원 승진을 제외한 교원 임용과 관련된 모든 사항은 학교장(총장)이 자율성을 갖고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SVU 행정처 관계자는 학교에선 뭘 숨기거나 은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교육부에 그와 관련된 자료를 수차례에 걸쳐 보고하고 있고,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은 학교서 계속 개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할 말 많은 SVU 교수들 인터뷰
"총장 퇴진해야

-이번 사태에 대한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수년 동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부는 적폐 청산과 사학비리 척결을 운운하면서도 교수들의 민원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니 교육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

-학교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학교는 20억원이 넘는 미사용 이월금을 조성하면서 교수들의 인건비를 착취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교수들의 인건비를 착취하려 하지 말고 명실상부한 대학원대학교로 거듭나기를 바라고 있다. 더 이상 교수들을 학생모집으로 내몰지 말고 우수한 석·박사 배출에 몰두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학교법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교수들은 학교의 현안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챙겨가는 총장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총장은 학생 모집도 안 하면서 고액의 연봉만 챙겨가는 매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다. 즉시 퇴진시켜주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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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