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새해캠페인> 斷② 재계 5대 악습 되풀이 실태

로열패밀리 제버릇 ‘황제에서 황태자로…’

재벌그룹 도덕적 해이 등 고질병 매년 반복
기업 병폐 나라경제 직결 “털 건 털고 가자”

비자금 조성·정관계 로비, 주가 조작, 경영권·재산 다툼, 하청업체 죽이기, 이물질 파동….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계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지난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시대의 악습은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문제는 이런 병폐가 나라 경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불황의 벽 앞에서 극심한 불안과 절망으로 벌벌 떨고 있는 정부와 국민으로선 마땅히 질타하고 감시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새해를 맞아 <일요시사> 뉴 캠페인 ‘끊자 끊자’를 통해 ‘털건 털고 가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재계에서 사라지지 않은 고질병들을 되짚어 봤다.

재벌 집단은 지난 1990년대 말 대한민국 경제를 초토화시킨 IMF 외환위기 사태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의 뒷짐으로 가능했던 온갖 불법과 편법, 부실경영, 도덕적 해이 등이 환란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재계의 고질병이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재벌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각 그룹은 2000년대 들어 앞 다퉈 지배체제 전환을 서두르는 등 재정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나라 경제는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결국 IMF가 재벌그룹의 투명경영을 공고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재계의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IMF에 못지않은 경제 한파가 또 다른 양상으로 들이닥친 지난해 충격적 추문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으름장도 소용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후 “경제계의 몇 가지 고질병을 고친다면 7% 성장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재임 1년이 지난 결과 두 전제 모두 공염불에 그쳤다.


 
<1>기업 털면 정치인 나온다
비자금·로비의혹 줄이어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는 재계에서 끊이지 않는 추문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경영 1세대부터 줄곧 그랬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부인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기업 비리 의혹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댔다.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검은 돈’을 집중적으로 털어냈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특정인을 솎아내는 데 비자금만 한 통로가 없다. 비자금이 곧 정·관계 로비로 연결되는 탓이다.

검찰이 전 정권 인사들을 표적삼아 우선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여기서 나온다. 검찰이 기업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가장 먼저, 가장 이슈화된 비자금 사건은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 촉발된 삼성그룹 비자금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 일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42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룹 수뇌부인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 역시 퇴진했다.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도 해체됐다.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이 전 회장의 차명재산 규모는 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임직원 명의의 1천200여 개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된 이 돈의 출처와 용처를 놓고 세간의 추측이 무성하다.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100여일간 계속된 ‘삼성 수사’는 올해 초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받았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도 비자금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수천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혐의 등으로 백 회장을 구속했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 구속 등 본격적인 정·관계 로비 수사로 접어들었다.


이외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포스코 ▲유한양행 등도 비자금 또는 로비 혐의로 검찰에 이미 구속되거나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재계의 비자금·로비 후폭풍이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재벌가 자제 ‘주식 장난’
꼬리에 꼬리 문 주가 조작

재벌 일가의 주가조작 사건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재벌가 2∼4세들의 ‘주식 장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지난해 재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초부터 재벌가 자제들의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의 첫 타깃은 코스닥 시장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LG가 방계 3세 구본호(사진)씨였다.

구씨는 2006년 9∼10월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 연루된 조풍언 씨의 자금을 이용해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속이고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을 끌어들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상승시킨 후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재벌가 2∼4세 주가조작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검찰은 상당수 재벌가 자제들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해 지난해 8월 두산가 4세 박중원 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씨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뉴월코프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거짓 공시를 해서 일반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말 한국도자기 창업주 손자인 김영집 씨를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엔디코프와 코디너스(당시 엠비즈네트웍스)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수백억원 규모로 재산상 피해를 끼치거나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가 3세 정일선 씨 등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 3형제도 같은달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돈을 투자한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로 풀려났다.

뿐만 아니다. 기형적인 투자로 주식 대박을 터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수두룩하다. 현재 A그룹 창업주 손자 N씨, K그룹 회장 아들 J씨, L그룹 3세 S씨 등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역시 투자한 회사의 시세차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내사를 거쳐 표적에 바짝 다가선 형국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관심사다. 조 부사장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 조작 의혹을 캐고 있는 검찰은 조만간 조 부사장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재벌그룹 총수의 주가조작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유티씨인베스트먼트가 허위공시를 통해 수백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정황을 포착했다. 이 회사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창업투자회사다. 검찰은 임 회장이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3>가족간 피 튀는 재산다툼
끊이지 않는 ‘골육상쟁’

재벌그룹 일가의 재산 다툼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경우도 빈번했다. 법정 공방은 기본. 피붙이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치며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도 불사했다. 가히 혈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겉으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십중팔구 목적은 ‘돈’이기 마련이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란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종근당 일가가 딱 그렇다. 이들은 15년 전 별세한 고 이종근 회장의 차명주식을 놓고 분쟁에 휘말렸다.

이 회장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난해 12월 “이 회장 사망 후 장남인 이장한 회장이 가족을 완전히 배제하고 종근당 등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단독으로 경영권을 장악했다”며 종근당산업주식회사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종근당 일가는 이 전 회장이 1993년 사망한 이후 줄곧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맛살 명가’오양수산 일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의 골육상쟁은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이 지난해 6월 타계한 뒤 상속지분 처분을 놓고 불거졌다. 2000년 11월 김 회장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1000억원대의 재산을 놓고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해를 넘겨 지난해까지 계속됐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김 회장 소유 오양수산 지분(35.2%)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겼지만 장남인 김명환 전 오양수산 부회장이 반발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이 비극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도 연출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결국 법원이 지난해 7월 1심에서 어머니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대성그룹 일가인 고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3남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 등도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 이후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지난해 유난히 가족 간 분쟁이 마무리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5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외 딸들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 창업주 가족을 상대로 낸 100억원대의 상속재산 청구소송은 지난해 2월 혼외 딸들에게 40억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조용히 종지부를 찍었다.

2004년부터 5년간 이어지며 ‘진흙탕 싸움의 진수’를 보여준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강문석 전 이사의 부자간 경영권 분쟁도 강 전 이사가 지난해 말 동아제약 지분(2만500주)을 모두 매각하는 것으로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됐다.


<4>‘먹는 음식에 장난을…’
식품업계 이물질 파동 반복

지난해 ‘먹거리 쇼크’도 되풀이됐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기업의 두둑한 ‘배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 먹거리에 비상등을 켠 사건은 ‘생쥐깡’과 ‘칼날 참치’ 파문이다.

지난해 3월 농심은 197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민 간식’으로까지 불리며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새우깡에서 생쥐머정되는 이물질이 검출돼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사건을 ‘쉬쉬’한 농심의 태도다.

농심은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한 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말 충북의 한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산 새우깡에서 1.6㎝ 크기의 털이 난 이물질을 발견하고 회사 측에 통보했지만 농심은 식약청이 이 문제를 발표한 뒤에야 내부조사 사실을 털어놨다. 어이없는 사고를 터뜨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칼날 참치’ 생산업체인 동원 F&B도 2006년 11월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이 나왔다는 소비자 불만신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동원 F&B는 이를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 선물세트를 주며 사태 무마를 시도했다. 제품 수거조치도 없었다. 동원 F&B는 지난해 3월 참치에서 또다시 칼날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제품에서 잇달아 이물질이 발견돼 진땀을 흘렸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두충 꽁치, 다이옥신 삼겹살, 바퀴벌레 라면, 생쥐 냉동야채, 볼트 컵라면, 동전 시리얼 등 이물질 파문은 계속됐다. 해당 식품업체들은 즉각 수습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대다 달랑 사과문만 발표하는 데 그쳤다.

이물질 충격이 채 가시기 전 지난해 9월 ‘멜라민 공포’가 엄습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멜라민 파동은 전 세계를 강타했고 분유를 비롯해 유제품, 사료, 가공식품 등으로 확대됐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잇달아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문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멜라민 파동’에 휩싸인 식품업체들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나몰라라’하는 업체들의 수수방관에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멜라민 검출 제품이 늘어나면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반해 업체들의 느슨한 위기관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해태제과 등 업체들은 멜라민 파문 초기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했다. 그러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전량 회수에 나선 것. 롯데제과도 당초 “중국산 제품은 1개뿐”이라며 멜라민 식품 유통 사실을 숨기다 식약청의 판매금지 품목에 일부 제품이 포함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5>말뿐인 대·중소 상생관계
‘하청업계 죽이기’ 여전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쓰러져가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998년 6.01%에서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 2007년 4.43%까지 추락했다.

이에 정부는 틈만 나면 긴급 간담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기업에 전했고 대기업들은 모두 협력을 다짐했다. 이 대통령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생경영 투자액은 지난 2005년 1조401억원에서 지난해 2조3484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상생협력 전담 조직을 갖춘 기업도 2005년 5개에서 지난해 19개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소업체들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원자재가 상승, 매출감소 등으로 인해 자금수요는 늘어난 반면 현금결제 비중 감소 등에 따른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추세다.

특히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의 ‘대기업 불공정거래 사례 발굴 조사’결과 대기업들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별로 보면 ▲하도급대금 지연지급 ▲대기업 통신사의 부당한 거래관행 ▲PVC레진 가격의 비합리적 산정 ▲대기업의 비밀유지각서 강제 ▲대형 홈쇼핑사의 일방적 반품 및 비용상계 처리 ▲대기업의 일방적 납품단가 산정 ▲대기업의 서면교부의무 위반?일률적 납품단가 인하 등 ▲대형 SI업체의 일방적 거래거절 등이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 보복이 두려워 참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국내 건설 대기업들이 주로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하도급 업체에 선급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은 하도급 업체를 위협해 선급금 포기각서를 받았다.

대형 백화점·마트가 우월적 지위 남용해 입점업체들을 압박한 사례도 허다했다. 또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란 고전적 수법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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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