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새해캠페인> 斷② 재계 5대 악습 되풀이 실태

로열패밀리 제버릇 ‘황제에서 황태자로…’

재벌그룹 도덕적 해이 등 고질병 매년 반복
기업 병폐 나라경제 직결 “털 건 털고 가자”

비자금 조성·정관계 로비, 주가 조작, 경영권·재산 다툼, 하청업체 죽이기, 이물질 파동…. 해마다 되풀이되는 재계의 뿌리 깊은 고질병이다. 지난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시대의 악습은 약속이나 한 듯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문제는 이런 병폐가 나라 경제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불황의 벽 앞에서 극심한 불안과 절망으로 벌벌 떨고 있는 정부와 국민으로선 마땅히 질타하고 감시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09년 새해를 맞아 <일요시사> 뉴 캠페인 ‘끊자 끊자’를 통해 ‘털건 털고 가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재계에서 사라지지 않은 고질병들을 되짚어 봤다.

재벌 집단은 지난 1990년대 말 대한민국 경제를 초토화시킨 IMF 외환위기 사태의 가장 큰 주범으로 꼽힌다. 정부의 뒷짐으로 가능했던 온갖 불법과 편법, 부실경영, 도덕적 해이 등이 환란의 한 축으로 지목됐다.

재계의 고질병이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재벌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각 그룹은 2000년대 들어 앞 다퉈 지배체제 전환을 서두르는 등 재정비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나라 경제는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결국 IMF가 재벌그룹의 투명경영을 공고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재계의 악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IMF에 못지않은 경제 한파가 또 다른 양상으로 들이닥친 지난해 충격적 추문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으름장도 소용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전후 “경제계의 몇 가지 고질병을 고친다면 7% 성장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재임 1년이 지난 결과 두 전제 모두 공염불에 그쳤다.


 
<1>기업 털면 정치인 나온다
비자금·로비의혹 줄이어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는 재계에서 끊이지 않는 추문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경영 1세대부터 줄곧 그랬다.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부인하지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대기업 비리 의혹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댔다.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인 ‘검은 돈’을 집중적으로 털어냈다. 검찰은 부인하지만 특정인을 솎아내는 데 비자금만 한 통로가 없다. 비자금이 곧 정·관계 로비로 연결되는 탓이다.

검찰이 전 정권 인사들을 표적삼아 우선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여기서 나온다. 검찰이 기업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가장 먼저, 가장 이슈화된 비자금 사건은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 촉발된 삼성그룹 비자금 및 정·관계 로비 의혹이다.

이 일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4월 대국민 사과와 함께 42년 만에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룹 수뇌부인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 역시 퇴진했다. 과거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도 해체됐다.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이 전 회장의 차명재산 규모는 약 4조5000억원에 달한다. 임직원 명의의 1천200여 개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된 이 돈의 출처와 용처를 놓고 세간의 추측이 무성하다.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100여일간 계속된 ‘삼성 수사’는 올해 초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등을 선고받았다.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도 비자금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수천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하거나 배임한 혐의 등으로 백 회장을 구속했다. 프라임그룹 비자금 의혹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는 이주성 전 국세청장 구속 등 본격적인 정·관계 로비 수사로 접어들었다.


이외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남중수 전 KT 사장과 조영주 전 KTF 사장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포스코 ▲유한양행 등도 비자금 또는 로비 혐의로 검찰에 이미 구속되거나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재계의 비자금·로비 후폭풍이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재벌가 자제 ‘주식 장난’
꼬리에 꼬리 문 주가 조작

재벌 일가의 주가조작 사건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재벌가 2∼4세들의 ‘주식 장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지난해 재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초부터 재벌가 자제들의 주가조작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의 첫 타깃은 코스닥 시장 ‘미다스의 손’으로 불린 LG가 방계 3세 구본호(사진)씨였다.

구씨는 2006년 9∼10월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대우그룹 구명 로비에 연루된 조풍언 씨의 자금을 이용해 차입금을 자기자금으로 속이고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을 끌어들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처럼 허위 공시해 주가를 상승시킨 후 수백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재벌가 2∼4세 주가조작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검찰은 상당수 재벌가 자제들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해 지난해 8월 두산가 4세 박중원 씨를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씨는 마치 자신의 돈으로 뉴월코프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거짓 공시를 해서 일반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말 한국도자기 창업주 손자인 김영집 씨를 특경가법상 배임 및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김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엔디코프와 코디너스(당시 엠비즈네트웍스)를 인수해 운영하면서 수백억원 규모로 재산상 피해를 끼치거나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대가 3세 정일선 씨 등 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 3형제도 같은달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돈을 투자한 것으로 밝혀져 무혐의로 풀려났다.

뿐만 아니다. 기형적인 투자로 주식 대박을 터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재벌가 로열패밀리는 수두룩하다. 현재 A그룹 창업주 손자 N씨, K그룹 회장 아들 J씨, L그룹 3세 S씨 등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 역시 투자한 회사의 시세차익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첩보를 수집한 검찰은 내사를 거쳐 표적에 바짝 다가선 형국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관심사다. 조 부사장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가 조작 의혹을 캐고 있는 검찰은 조만간 조 부사장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재벌그룹 총수의 주가조작 의혹도 불거졌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유티씨인베스트먼트가 허위공시를 통해 수백억원의 시세 차익을 남긴 정황을 포착했다. 이 회사는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창업투자회사다. 검찰은 임 회장이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3>가족간 피 튀는 재산다툼
끊이지 않는 ‘골육상쟁’

재벌그룹 일가의 재산 다툼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경우도 빈번했다. 법정 공방은 기본. 피붙이의 치부를 낱낱이 파헤치며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도 불사했다. 가히 혈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겉으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뻔하다. 십중팔구 목적은 ‘돈’이기 마련이다. ‘돈이 피보다 진하다’란 말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종근당 일가가 딱 그렇다. 이들은 15년 전 별세한 고 이종근 회장의 차명주식을 놓고 분쟁에 휘말렸다.

이 회장의 부인과 자녀들은 지난해 12월 “이 회장 사망 후 장남인 이장한 회장이 가족을 완전히 배제하고 종근당 등 관련 회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해 단독으로 경영권을 장악했다”며 종근당산업주식회사 등을 상대로 주주지위 확인 등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종근당 일가는 이 전 회장이 1993년 사망한 이후 줄곧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맛살 명가’오양수산 일가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의 골육상쟁은 고 김성수 오양수산 회장이 지난해 6월 타계한 뒤 상속지분 처분을 놓고 불거졌다. 2000년 11월 김 회장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1000억원대의 재산을 놓고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해를 넘겨 지난해까지 계속됐다.

어머니와 가족들은 김 회장 소유 오양수산 지분(35.2%)을 경쟁사인 사조산업에 넘겼지만 장남인 김명환 전 오양수산 부회장이 반발하면서 다툼이 벌어졌다.

이 비극은 저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도 연출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달았고 급기야 법정공방으로 비화됐다. 결국 법원이 지난해 7월 1심에서 어머니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대성그룹 일가인 고 김수근 창업주의 장남 김영대 대성산업 회장과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 회장, 3남 김영훈 대구도시가스 회장 등도 김 창업주가 작고한 2001년 지분 다툼 이후 등을 돌려 아직까지 발길을 끊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지난해 유난히 가족 간 분쟁이 마무리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5월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외 딸들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등 창업주 가족을 상대로 낸 100억원대의 상속재산 청구소송은 지난해 2월 혼외 딸들에게 40억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조용히 종지부를 찍었다.

2004년부터 5년간 이어지며 ‘진흙탕 싸움의 진수’를 보여준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강문석 전 이사의 부자간 경영권 분쟁도 강 전 이사가 지난해 말 동아제약 지분(2만500주)을 모두 매각하는 것으로 마침내 마침표를 찍게 됐다.


<4>‘먹는 음식에 장난을…’
식품업계 이물질 파동 반복

지난해 ‘먹거리 쇼크’도 되풀이됐다.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는 기업의 두둑한 ‘배짱’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 먹거리에 비상등을 켠 사건은 ‘생쥐깡’과 ‘칼날 참치’ 파문이다.

지난해 3월 농심은 1971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국민 간식’으로까지 불리며 오랫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새우깡에서 생쥐머정되는 이물질이 검출돼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사건을 ‘쉬쉬’한 농심의 태도다.

농심은 이물질이 나온 사실을 알고도 한 달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말 충북의 한 소비자가 슈퍼마켓에서 산 새우깡에서 1.6㎝ 크기의 털이 난 이물질을 발견하고 회사 측에 통보했지만 농심은 식약청이 이 문제를 발표한 뒤에야 내부조사 사실을 털어놨다. 어이없는 사고를 터뜨리고도 이를 은폐하려다 위기를 자초한 셈이다.

‘칼날 참치’ 생산업체인 동원 F&B도 2006년 11월 참치캔에서 커터 칼날이 나왔다는 소비자 불만신고를 받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 했다.

동원 F&B는 이를 신고한 소비자에게 참치 선물세트를 주며 사태 무마를 시도했다. 제품 수거조치도 없었다. 동원 F&B는 지난해 3월 참치에서 또다시 칼날이 나왔으며 이후에도 여러 제품에서 잇달아 이물질이 발견돼 진땀을 흘렸다.

사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구두충 꽁치, 다이옥신 삼겹살, 바퀴벌레 라면, 생쥐 냉동야채, 볼트 컵라면, 동전 시리얼 등 이물질 파문은 계속됐다. 해당 식품업체들은 즉각 수습에 나서지 않고 뭉그적대다 달랑 사과문만 발표하는 데 그쳤다.

이물질 충격이 채 가시기 전 지난해 9월 ‘멜라민 공포’가 엄습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멜라민 파동은 전 세계를 강타했고 분유를 비롯해 유제품, 사료, 가공식품 등으로 확대됐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잇달아 밝혀지면서 엄청난 파문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멜라민 파동’에 휩싸인 식품업체들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나몰라라’하는 업체들의 수수방관에 소비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멜라민 검출 제품이 늘어나면서 전국이 들썩거리고 있는데 반해 업체들의 느슨한 위기관리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해태제과 등 업체들은 멜라민 파문 초기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했다. 그러다 국내 식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자 돌연 입장을 바꿨다.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전량 회수에 나선 것. 롯데제과도 당초 “중국산 제품은 1개뿐”이라며 멜라민 식품 유통 사실을 숨기다 식약청의 판매금지 품목에 일부 제품이 포함되자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5>말뿐인 대·중소 상생관계
‘하청업계 죽이기’ 여전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쓰러져가는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1998년 6.01%에서 계속 하락세를 보이다 2007년 4.43%까지 추락했다.

이에 정부는 틈만 나면 긴급 간담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대기업에 전했고 대기업들은 모두 협력을 다짐했다. 이 대통령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자가 돼야 한다”며 대-중소기업간 상생을 여러 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생경영 투자액은 지난 2005년 1조401억원에서 지난해 2조3484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상생협력 전담 조직을 갖춘 기업도 2005년 5개에서 지난해 19개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소업체들의 자금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 원자재가 상승, 매출감소 등으로 인해 자금수요는 늘어난 반면 현금결제 비중 감소 등에 따른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는 추세다.

특히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횡포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의 ‘대기업 불공정거래 사례 발굴 조사’결과 대기업들의 횡포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별로 보면 ▲하도급대금 지연지급 ▲대기업 통신사의 부당한 거래관행 ▲PVC레진 가격의 비합리적 산정 ▲대기업의 비밀유지각서 강제 ▲대형 홈쇼핑사의 일방적 반품 및 비용상계 처리 ▲대기업의 일방적 납품단가 산정 ▲대기업의 서면교부의무 위반?일률적 납품단가 인하 등 ▲대형 SI업체의 일방적 거래거절 등이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절반 이상이 대기업 보복이 두려워 참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 국내 건설 대기업들이 주로 중소기업들로 구성된 하도급 업체에 선급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대기업은 하도급 업체를 위협해 선급금 포기각서를 받았다.

대형 백화점·마트가 우월적 지위 남용해 입점업체들을 압박한 사례도 허다했다. 또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란 고전적 수법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