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도 어언 1년이다. 지난 2008년 2월25일 ‘실용정부(實用政府)’를 표방하며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안고 야심차게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1년 동안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마디로 국가경제를 도탄에 빠뜨리고 국민을 실망시킨 것도 모자라 분노케 만든 ‘실망정부(失望政府)’ 그 자체였다.
더욱이 얼마 전 이 대통령이 던진 ‘실용 농담’ 한마디는 실소를 자아낸다. 그는 자신의 생일과 당선일, 결혼기념일이 12월19로 같은 것과 관련해 “이것이 진정한 실용주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대통령의 67회 생일이자 당선 1주년, 결혼 3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경제적이지 않은가? 한꺼번에 모두 하니까”라는 청와대 대변인의 부연설명은 더 가관이다.
무릇 ‘실용’의 사전적 의미는 ‘실제로 쓰거나 실질적인 쓸모’를 말한다. 하지만 실용정부라던 현 정부는 실제로 쓰거나 실질적인 쓸모가 있는 정책들을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물론 이는 민초(民草)인 서민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1% 부자와 재벌들은 ‘그들만의 실용정부’ 우산 아래서 전보다 더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지금 ‘1%의 나라’란 말이 나돌고 있을까.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48% 이상 압도적인 지지율을 획득하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실용정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제 우선의 정책과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CEO 출신으로 실물 경제통인 그의 경제이슈 선점은 가뜩이나 힘든 국민들의 가슴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다.
게다가 정부 출범 전 대통령 당선자였던 그는 국민의 기대에 걸맞게 너무도 실용적이었다. 일례로 새 정부 앞에 ‘참여’니 ‘국민’이니 하는 번지르르한 수식어를 붙이지 말자고 한 그였기에 ‘역시 우리의 실용 선택이 옳았구나’라고 여겼던 국민들이다.
그러나 지난 1년을 돌이켜보건대 지금 국민들의 가슴속엔 실망과 시퍼런 멍 자국만 남아있을 뿐이다. 기껏해야 수천만원의 종부세 완화 수혜를 입은 1% 부자들에게 쏠린 따가운 시선을 돌리기 위해 서민들에게 선심 쓰듯 유가환급금 몇 십만원을 쥐어준 게 실용정책의 전부였다.
나머지는 하나같이 99% 서민들을 한숨짓게 하고 울부짖게 하는 정책들뿐이니 뉘라서 감히 이 정부를 신뢰하고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에도 멀쩡한 중소기업이 수백개씩 쓰러지고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널뛰는 물가를 따라잡을 재간이 없는 상황에서 죽어나는 것은 오로지 서민들뿐이다. 망해도 장사를 잘못한 자신 때문에 망하면 누구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지금 쓰러지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모두가 정부의 정책부재와 재벌중심 정책 탓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2기 내각을 또 자기 사람으로만 채우는 ‘실용적인 인사(?)’를 단행했고 그것이 화근이 되어 ‘과잉충성’으로 인한 용산 철거민 참사를 불러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경제 살리기’다. 다수의 국민이 지금의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분명 잘사는 나라를 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절호의 성장기회로 전환시킬 사명이 있다. 이를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만 한다.
혈연, 지연, 학연은 물론 지지층까지도 배반하고 때로는 이념마저 외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이 정부가 한때 자부했고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실용주의인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대통합의 기치를 내건 오바마의 미국이 부러울 따름이다. 국가적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적과의 동침도 불사하는 오바마의 ‘통큰 리더십’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우리 ‘나랏님’도 그를 반만이라도 닮길 바라고 있다.
모름지기 ‘나랏님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 했다. 그리고 진정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도 했다.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다. 그리 높진 않지만 30%대의 국민들이 그나마 대통령을 지지하고 믿는 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나랏님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정서가 살아있고 아직 4년이란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이 대통령은 논어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되새겨보고 남은 4년을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자는 국가지도자의 네 가지 그릇됨을 ‘▲첫째, 사람을 가르치지 않고 죽이는 것이요 ▲둘째,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 일의 성과만 보고자 함이며 ▲셋째, 일의 지시는 애매하게 하고 기한만을 촉박하게 하여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고 ▲넷째, 공평하게 분배를 하지만 나눠줌이 인색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 네 가지만 염두에 두고 국정을 펼친다면 그야말로 실천적 실용정부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