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의 대명절 설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민중의 지팡이’ 노릇을 해야 할 경찰이 ‘민중의 몽둥이’로 둔갑한 후진국형 사건이 또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구역 내에서 철거에 항의하는 서민들과 이를 진압하던 경찰이 충돌하면서 6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대명천지에 이 같은 참담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서둘러 수사본부를 설치한 검찰의 수사를 통해 진상이 낱낱이 가려지겠지만 법과 원칙을 천명해온 당국의 졸속 과잉진압에서 비롯된 참사일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대규모 인명피해를 불사할 정도의 무모하고 원시적인 공권력은 도대체 어느 나라의 누구를 위한 공권력이란 말인가.
불과 40여명의 철거민들이 생존권을 담보로 24시간가량 대치해오던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 공권력을 투입했는지 무엇보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공공의 안녕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현행범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는 너무도 성급한 판단이고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초기였기에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며 신중히 대응했어야 마땅하다.
설사 불법을 묵과할 수 없어 전격적인 진압에 나섰다 하더라도 최소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사전준비를 철저히 했어야 했다.
하지만 경찰은 한낱 농성중인 철거민 해산에 막강한 특공대를 투입해 전격 진압에 나섰고, 결국 예견된 참사를 불렀다. 경찰특공대의 역할은 국민의 안녕을 위해하고 국가질서를 파괴하는 대테러 임무가 주임에도 불구하고 서민들과의 대치상황 하루 만에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경찰의 이 같은 막가파식 처사는 아연실색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이는 전날 신임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과잉충성이 빚은 참극임에 분명하다.
어디 그뿐이랴.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날 법무부 차관에 새로 임명된 이귀남 전 대검 공안부장 역시 “불법 집단행동을 통해 의사를 관철하거나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법에 따라 엄단,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용산 철거민들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이명박정권의 실세 차관으로 불리는 그의 말을 경찰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너희들은 이제 다 죽었어’였을 것이다. 실제로 다음날 경찰의 모습은 전날과 확연히 달랐다. 살수차 3대가 동원됐고 컨테이너 박스에 경찰병력을 실어 기중기로 건물 옥상에 끌어올리며 가혹하게 진압작전을 벌였다.
가히 이 정권의 실세차관인 신임 법무차관의 발언을 충실하게 이행했다고 자부할만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먹고살려고 발버둥치던 영세자영업자들과 상명하복을 충실히 수행하던 말단 경찰관의 참혹한 주검이다.
이귀남 차관의 전력을 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는 지난해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으로부터 정기적인 떡값을 상납했다고 공개적으로 지목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더욱이 이번 참사가 발생한 재개발 현장의 시공사는 공교롭게도 삼성건설이다.
과연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까? 아닐 것이다. 생계를 보장해달라고 아우성치던 자영업자들의 참혹한 죽음은 이명박정권의 재벌중심 정책과 법대로 하겠다는 공안통치가 낳은 필연이다. 가뜩이나 부자만을 감싸는 이른바 ‘강부자 정권’이란 오명을 쓰고 있는 현 정권이다.
따라서 당국은 진압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사태의 전말을 소상히 밝혀야 그나마 국민들의 의혹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사후약방문 격이라도 이참에 아예 뉴타운 등 각종 재정비 사업 자체에 대한 재정비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세입자들에 대한 법적, 행정적 보완장치도 서둘러 보완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민심은 지금 잔뜩 뿔이 난 상태다. 출범 초기부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경제를 위기상황으로 몰고 온 것도 모자라 백주에 공권력을 동원해 민생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몬 책임을 어찌 감당할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