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국회 ‘날치기 헌정사’ 천태만상

머릿수로 횡포부리다 민심의 철퇴 맞았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정국이 얼어붙다 못해 마비된 모양새다. 지난 22일 한나라당이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적으로 통과시키면서다. 이는 MB정부에서만 다섯 번째 ‘날치기’로 꼽힌다. 특히 여야에서 국회선진화법이 논의되던 와중에 터진 일이라 충격은 배가되고 있다. 역대 국회에서 다수당의 법안 날치기 처리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는 민심의 역풍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음에도 끊이지 않는 악습으로 자리 잡았다. 역대 국회의 날치기 천태만상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국회의 날치기에 민심의 역풍…‘몰락의 전주곡’
독재정권 시절 야당에 무력행사 기습처리 빈번

‘말 많고 탈 많은’ 한미FTA 비준안이 지난 22일 국회를 전격 통과했다. 한나라당 주도하에 기습적으로 본회의가 열리면서 한미FTA 비준안이 강행처리된 것이다. 야당 측은 날치기 처리된 한미FTA 비준안의 원천무효를 선언하며 투쟁의사를 밝혔다. 이어 예산심의를 포함한 이후 모든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는 보이콧을 선언해 정국이 바짝 얼어붙은 상태다.

이승만 정권에서
날치기 악습 시작

역대 국회를 돌이켜보면 다수당의 날치기는 항상 민심의 역풍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날치기 의 고질적 병폐가 고쳐지기는커녕 보다 치밀하게 진화하며 국회 악습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날치기의 역사는 이승만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자유당이 통과시킨 발췌개헌이 날치기의 효시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을 위해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에서 부결됐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군대를 동원해 국회를 포위했고, 그해 7월4일 여당 의원들만 참석시킨 채 재투표를 진행해 개헌안을 처리했다. 이것이 악명 높은 발췌개헌이다.

이로 인해 1956년 정?부통령 선거와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에서 패하며 여당인 자유당에 대한 민심이반이 확인됐다. 결국 이승만 정부는 다시 언론, 국민의 비판규제를 위해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야당을 중심으로 범국민적 반대투쟁이 전개되었다.
1958년 12월24일 이 전 대통령은 다시 무술 경관을 동원해 폭력으로 농성 중이던 야당 의원들을 국회 본회의장서 끌어내고 지하실에 연금했다. 또 다시 자유당 의원들만 구성된 채 국가보안법이 통과됐다.

그리고 개정된 보안법을 적용해 이 전 대통령과 접전 끝에 낙선한 죽산 조봉암 선생을 간첩혐의로 사형시켰고, 뒤이어 죽산이 결성한 진보당도 해산시켰다. 이로 인해 촉발된 성난 민심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 사형된 조봉암 선생은 사형당한지 52년 만인 올해 1월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노동법·탄핵안
정국 최대 파장

1969년 공화당 의원들의 날치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전격 도모했다. 그해 9월14일 새벽2시30분 공화당 의원들은 국회 제3별관(현 서울시의회)에 전등을 끈 채 몰래 모인 뒤 박 전 대통령의 3번째 대통령 연임을 위한 헌법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어 박정희 정권은 1979년 당시 신민당 총재인 김영삼 의원 제명안 처리를 위해 국회 경호권을 발동했다. 공화당은 회의장을 옮겨 단독으로 제명안을 의결했고,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극한투쟁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부마항쟁 등 민주화운동이 전국에서 발발했고, 박정희 정권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5년 12월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신민당이 본회의장을 밤새 점거하자 의원총회를 하겠다며 새벽에 국회 146호실에서 소속 의원들만 모인 가운데 최영철 국회부의장 주도로 새해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1986년에는 국시발언 주역인 유성환 신민당 의원 구속동의안 처리를 놓고 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민정당은 경위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 로텐더홀을 가로막은 채 예결위 회의장 뒷문을 통해 기습적으로 들어가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당시에도 민심이반이 가속화 되며 1987년 6월 항쟁의 불씨를 제공하였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는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제3자 개입금지’ 등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로 진척이 없었다. 이에 같은 해 12월26일 새벽 신한국당 의원 155명은 본회의장에 몰래 모여 노동법 등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노동계의 파업은 한 달여간 이어졌다. 파업 등으로 3000여명이 구속되는 전례 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놀란 여당은 1997년 3월 야당 및 노동계와 협상을 통해 민주노총을 합법화하고, 3자 개입금지 조항을 없애는 내용으로 노동법을 재개정했다.

하지만 민심은 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렸고, 이후 한보사태에 이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하며 정권교체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노동법개정안·노무현 탄핵안 가장 큰 파장 일어
총·대선 앞두고 날치기, 한나라 민심동향에 촉각


한나라당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강행처리도 기록에 남을 날치기였다. 2004년 3월 야당이었지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옛 민주당과 함께 소수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의 저지를 물리력으로 봉쇄하고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하지만 촛불집회 등 범국민적 저항에 직면했고,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대패했다.

이어 17대 총선으로 전세가 역전된 열린우리당은 2005년 12월9일 한나라당과 몸싸움 끝에 직권상정을 통해 ‘개방형 이사제’를 골자로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나라당은 당시 박근혜 대표 주도로 장외투쟁에 나섰고, 사학재단과 종교계 등이 날치기라며 극렬하게 반발했다. 이에 열린우리당의 정국 주도력이 위축됐고, 사학법은 결국 2007년 재개정됐다.

이명박 정권에서도 예외 없이 국회 날치기가 성행했다. 4년차 되는 현 정권에서 무려 다섯 번의 날치기가 이뤄진 것. 첫 번째 날치기는 지난 2008년 12월13일 새해 예산안 처리였다.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야가 2009년도 예산안 처리시한(12일)에 최종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자 다음날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예산안과 부수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의 감세법안도 함께 처리했다. 당시 이른바 ‘형님 예산’으로 불렸던 포항지역 예산은 대폭 증액되며 비판여론이 거셌다.

두 번째 날치기는 대기업·신문의 방송 진출을 가능케 하는 미디어법 처리였다. 지난 2009년 7월 여야는 미디어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대치하고 있었다. 그러다 레바논 파병연장 동의안 처리를 위해 본회의가 잠깐 열린 15일, 여야는 상대편 점거를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 남아 며칠간 동시농성을 벌이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후 22일 당시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아 미디어 관련 3법을 직권상정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경제 살리기를 위해 미디어 시장의 세계화를 위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디어 법통과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야당과의 물리적 충돌을 불사하고 재투표와 대리투표 등의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야당의 극렬한 반반을 샀다.

MB정권 4년
5번의 날치기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미디어 산업을 통한 경제 살리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친정부 성향의 보수언론 4개사의 종편을 허가하기 위함이었다는 비판이 아직까지 일고 있다.

야당은 미디어법 처리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야당 의원의 권한 침해가 인정된다”면서도 법안무효 청구는 기각했다.

2009년 12월31일 2010년도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두고 세 번째 날치기가 있었다. 당시 여당은 본회의 처리 전 예결위원회의 예산안 처리를 거쳐야 한다.

당시 예산안 처리를 예결위 회의장이 아닌 국회 245호 회의실에서 불시에 강행했다. 이어 당시 김형오 의장은 본회의를 열고 예산안과 부수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이에 김 전 의장은 ‘역대 최다 직권상정 국회의장’이라는 오명을 쓰며 이듬해 5월 퇴임했다.

박희태 국회의장 취임 후에도 여전히 날치기 처리는 계속됐다. 2010년 12월8일 새해 예산안이 날치기 처리된 것. 당시 4대강 주변지역의 개발을 가능케 하는 친수구역활용특별법, UAE파병동의안 등 쟁점 법안도 함께 날치기 처리됐다.

다섯 번째가 이번 한미FTA 비준안의 기습처리다. 당시 사회권을 넘겨받은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본회의 비공개 동의안부터 상정해 단 4분만에 전광석화처럼 한미FTA 비준안 및 이행법안들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집권당이나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의 병폐는 헌정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독재정권 시절에 벌어진 대표적 날치기들도 야당의 강한 반발과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 종국에는 ‘날치기 세력’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등 역대 헌정사에서 날치기에 대한 결과는 혹독했다.

이번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한 한나라당이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내년에 본격 선거정국을 앞두고 선 날치기 후 민심수습에 들어간 한나라당. 과연 국민들은 한나라당에 대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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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