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 엘리엇 실체 해부

잊을만하면 나타나 ‘감놔라 배놔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전방위 공격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엘리엇은 과거 적폐 청산과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 중인 우리 정부의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모양새다. 엘리엇이 국내 정부와 재계를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면서 그 실체와 속셈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3월28일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해 그간 공정위로부터 해결 압박을 받아온 4개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합병시키고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와 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계열사들이 합병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현대글로비스를 기아차 산하 기업으로 만들어 현대모비스가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구상이었다. 

3년 만의 귀환
대기업 노리다

그간 증권가서 많이 거론됐던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3사를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정리해 현대모비스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직접 지분 매입 방식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증권가서도 호평이 쏟아져 현대차의 구상은 곧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 후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달 4일,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투자자문사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의 보통주 10억달러(한화 약 1조500억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의 추가 조치를 주문하고 나섰다. 


일단은 엘리엇이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다. 하지만 과거 삼성그룹이 추진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강력한 태클을 걸었던 전력 때문에 이번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과정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투자금융업계가 엘리엇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주시하는 이유다. 
 

엘리엇은 일반적으로 행동주의(Activism)를 표방하는 헤지펀드(hedge fund)로 분류된다. 헤지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기업형 펀드다. 이 중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한다. 

대표적인 행동주의 전략으로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지배구조 개편 등이 있다. 한마디로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 관철시키는 펀드다. 

과도한 기업 경영권 침해로 인해 일각에선 ‘기업 사냥꾼’으로 매도되기도 하지만 헤지펀드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어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1977년 미국서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 폴 싱어가 설립한 헤지펀드다.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의 두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최근까지 순 투자 수익은 14.6%이며 현재 전체 운용자산은 340억달러 이상이다. 

엘리엇의 포트폴리오 중 3분의 1 정도는 부실 채권을 초저가에 사들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2014년 아르헨티나를 두 번째 국가부도 사태로 몰아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2001년 아르헨티나가 950억달러 규모의 국가부도를 냈을 때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의 국채를 매입한 해외 투자자들과 여러 차례 협상을 벌여 채무의 70% 내외를 탕감받았다. 하지만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국채 탕감을 거부했다. 

특히 엘리엇은 국가부도 당시 4800만달러라는 폭락가에 구입한 아르헨티나 국채에 대해 액면가 6억3000만달러의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국가부도 몰아
여러나라 피해

헤지펀드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약 15억달러의 국채를 상환하기 전까지는 채무 조정된 다른 빚들도 상환할 수 없게 해달라고 미국 법정에 소송을 걸었고, 2014년 6월 미국 대법원은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아르헨티나로서는 헤지펀드들에게 액면가로 전액을 상환하게 되면, 앞서 채무 조정을 약속한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적용해야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13년 만에 다시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엘리엇은 비슷한 전략을 페루 등 빈곤 국가에 적용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2000년 말 반정부 시위의 격화로 망명을 모색하던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사례다. 엘리엇은 액면가 200만달러어치의 페루 국채를 1140만달러에 사들인 뒤 액면가와 이자를 합쳐 5800만달러의 지급소송을 냈다. 

페루 정부가 돈을 내지 않자 해외로 도피하려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전용기를 압류해 원하던 금액을 모두 받아냈다.

엘리엇은 지배구조 관련 투자서도 2003년 미국 피앤지(P&G)가 독일기업 웰라를 인수하며 제시한 우선주의 가치가 부당하다며 독일 펀드와 손잡고 주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06년에는 스위스 인력컨설팅업체 아데코가 독일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 개입해 지분가격을 주당 54.5유로서 113유로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엘리엇은 헤지펀드 특성상 특정 기업 주식을 사들여 일정 의결권을 확보한 뒤 그 기업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며 주로 단기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배당을 더 하라고 압박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배구조 개선, 자산매각, 자기편 이사 선임 등도 요구한다. 

국내서 엘리엇이 이름을 알린 것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추진할 때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약 7000억원에 매입한 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해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가치를 높여 팔고 나갔다. 

이어 2016년에는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설이 퍼졌을 때 지분 0.67%를 인수한 후 30조원의 특별배당을 요구하고 최소 3명의 독립적인 이사 선임과 잉여현금흐름의 75%를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1조원 규모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무기로 지배구조 개선 추가 조치와 이익 주주환원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면서 노골적인 주가 띄우기라고 비판받았다. 


엘리엇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부를 상대한 것이다. 엘리엇은 지난 2일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13일 우리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재의향서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에 엘리엇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국정 농단 걸림돌
정부 압박하기?

엘리엇은 2015년 6월 합병을 결정하는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를 금지해달라고 가처분 신청 등을 냈지만 기각된 바 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며 특검은 국민연금이 직권을 남용해 합병에 찬성했다고 판단했고, 법원은 1·2심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초래(업무상 배임죄)했다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는 엘리엇이 ISD에 나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결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기업의 법무 담당 임원은 “2015년 합병이 진행된 시기는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던 때”라며 “주가 하락이 합병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엘리엇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엇이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재판을 지켜보면서 치고 들어갈 우리 정부의 ‘약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산운용 업계에선 엘리엇이 우리 정부에 ‘앞으로 있을 한국 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에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던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라’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기업의 일에 정부가 함부로 개입했다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고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엘리엇의 제안은 금산분리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제안”이라며 현대차를 두둔하는 듯한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한 사모투자전문회사(PEF) 관계자는 “35년간 연 평균 2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엘리엇이 ISD를 통해 얻는 실익은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비용을 고려할 때 그다지 크지 않다”며 “다른 곳에 투자해 얻는 이익이 더 큰데도 ISD를 감행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엘리엇이 노리는 한국 기업은 삼성·현대차만이 아니다”라며 “지배구조 개편, 주주 이익 환원 등을 요구하며 한국 기업을 압박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정부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 측은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각종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서 합병 적절성 논란이 다시 불거진 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엘리엇의 중재에 응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 경우 엘리엇은 3개월 후인 7월부터 한국 정부에 대한 제소가 가능하다. 

정부는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등과도 중재 없이 ISD에 들어갔다. 

법무부 관계자는 “만약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어떤 손해를 끼쳤는지 명확하게 입증돼야 하는데 중재의향서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엘리엇의 행동은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 청산과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맞물려 있는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있는 양상이다. 

약점 간파해야…
적절한 대응 필요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과거의 사례를 봐도 엘리엇은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정부를 상대로 한 엘리엇의 공격은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우리 정부 길들이기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헤지펀드 특성과 약점을 간파해 적절한 대응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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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