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62) 갈등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11 10:35:23
  • 호수 11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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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당나라만 믿었는데…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연개소문이 그를 확인하고 남아 있는 힘을 다해 설인귀에게 칼을 휘둘렀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설인귀가 갑작스런 공격에 말머리를 돌려 뒤로 물러나는 순간 연개소문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고구려 진영으로 돌아갔다.

“오랑캐 중에도 저런 놈이 있었다니.”

호흡을 가다듬으며 당의 진영을 주시하자 설인귀가 부하들과 함께 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놈 영웅으로 만들어 주어야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의 실정을 살펴보시지요.”

가만히 선도해의 표정을 살피며 고구려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추격만 생각했지 장기적 측면에서 고려해 보지 않았다.

그를 살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결국 쥐새끼를 놓아 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뜻 보기에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듯합니다.”


“하기야, 정통으로 맞았으니. 그러면 어찌해야 하오?”  

“퇴각해야지요.”

“바로 말이오? 그러면 저들이 쫓아올 터인데.”

“곧바로 퇴각할 수는 없지요. 저놈에게 한번 본때를 보여주어야지요.”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대가로 말입니다.”

영웅의 대가

연개소문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선도해의 지시로 고구려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되는 대로 진을 세우고 일찌감치 밥을 해먹고 저녁 무렵이 되자 슬금슬금 이동했다.

설인귀가 당나라 진영에서 그를 유심히 살피고는 밤이 깊어지자 고구려 군들이 퇴각한 것으로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고구려 진으로 다가섰다.

가까이 이르러 고구려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설인귀를 필두로 당당하게 진으로 들어섰다.

거의 모든 당나라 군사들이 진에 들어서자 선도해의 지시로 불화살이 날아올랐다.

그를 신호로 주변 숲속에 매복해 있던 고구려 군사들이 일시에 튀어나와 당나라 군사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구려의 진이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해갔다.

진을 세우면서 겨울철 마른 풀들 역시 곳곳에 배치해 놓았고 살랑살랑 이는 바람에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던 때문이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나라 군사들이 싸움은 고사하고 등을 돌려 달아나기에 바빴다.

다시 불화살을 날리자 당나라 군사들의 몸에서 불이 타오르며 이러 저리 도망가는 모습이 흡사 불꽃 축제를 하는 듯 보였다.

설인귀가 크게 낙담하며 전방을 주시하자 연개소문이 고함과 함께 곧바로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낮에 한번 겨루어 보았던 터고 사기가 꺾일 대로 꺾인 상태서 곧바로 말머리를 돌려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모든 화살을 소비하고 진 앞에 서서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는 그들을 주시하며 연개소문이 선도해를 주시했다.

“자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퇴각하도록 하시지요.”

연개소문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돌렸다. 

당태종이 고구려 침공에 실패하였고 그 과정에서 연개소문에게 치명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신라 조정은 그야말로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도 황룡사에 탑을 건조하는 데 혼신을 다하던 선덕여왕이 비담과 염종의 강력한 요구에 회의를 소집했다.

그 회의에는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춘추는 물론이고 알천과 필탄ㆍ술종(죽지의 아버지)ㆍ임종ㆍ호림(고승 자장의 아버지)ㆍ염장 등 다수의 각간들이 참여했다. 

“이게 뭡니까. 흡사 우리 꼴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자 염종이 포문을 열었다.

고구려에 패한 당나라…위기의 신라
회의 소집한 선덕…날선 책임론

“뭐라. 우리가 개란 말인가.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필탄이 핏대를 올리자 여러 사람이 혀를 찼다.

“이보시게, 트집 잡지 말고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게.”

“현실이 어떻다고 그러시는가?”

비담의 이야기에 알천이 나섰다.

“그래요. 그동안 조정 일에 그다지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이참에 한번 세심하게 살펴봅시다.”

아들 자장이 여주와 함께 황룡사 탑을 건설하자 본의 아니게 그 일에 매달렸던 호림이 선덕여왕을 주시했다.

“이왕 이야기 나온 거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여주가 힘없이 말을 받았다.

“먼저 이 나라에 중심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중심이라니요. 당연히 전하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누가 그를 몰라서 이럽니까. 그러나 전하께서는 전쟁 상황보다 불교에 심취하셔서 너무 자비롭게 일처리 하시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나라간의 문제는 단지 불덕으로 해결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일을 도모해야지요.”

염종과 필탄의 대화를 들으며 선덕여왕이 신하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수품 상대등은 아직도 편치 않으십니까?”

오래전에 상대등에 오른 수품의 건강이 악화되어 그동안 거의 공석이다시피 했다.

“일전에 방문한 적 있는데 거동조차 힘들다 합니다.”

비담이 염종의 눈치를 살피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렇다면 이대로 있을 수는 없고, 이른 시일에 상대등을 새로 임명하셔야 할 일입니다.”

염종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겠다는 듯이 모두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당연한 일이오.”

“그렇다면 말이 나온 김에 탁방을 내시지요.”

염종이 시선을 비담에게 주며 말을 이었다.

“잠깐, 그 전에. 지금 이 자리에 김유신 대장군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술종의 말에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패장 입장에서 언감생심 참석할 수 있었겠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패장이 아니면. 기껏 백제군을 격퇴시키라고 군사를 주어 보냈는데 격퇴는 고사하고 당나라에게도…….”

“그걸 어떻게 패장이라 칭할 수 있는 게요.”

염종과 필탄의 대화에 술종이 개입했다.

초췌한 모습

“아들이 함께 있다고 편드는 겁니까?”

김유신 휘하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들 죽지를 지칭했다.

“뭐라! 공과 사를 그리고 대인과 소인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 무슨 망발이오!”

술종의 목소리가 올라가는 순간 밖에서 김유신이 도착했다는 전갈에 이어 초췌한 모습의 유신이 들어섰다.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온다고 했는데 늦었습니다.”

사태의 추이를 짐작하였는지 목소리가 차분했다.

“그곳에서 여기까지 짧은 거리가 아닌데, 여하튼 고생하셨습니다.”

춘추의 치사에 유신이 여주를 향해 가볍게 고개 숙였다.

“김유신 장군이 도착하였으니 금번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패장으로서 유구무언입니다.”

“아니오. 그러니 더 들어봐야겠어요.”

비담의 점잖은 말투에 유신이 늘어선 대신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모두의 시선이 유신에게 한 마디 하라는 듯이 비쳐졌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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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