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35>

‘죽기 아니면 살기’로 레드모델바 오픈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냈다. 김 대표의 책 내용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수백 명 면접 보고 연예인급 외모 30명 골라
직원들 월급 줄 형편도 안 돼 사채까지 손대

■ 막혀버린 돈줄
웨이터를 뽑는 일도 급했다. 키 180cm 이상, 대졸 이상의 학력, 군필자, 그리고 23세에서 29세까지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
‘여성전용 클럽’이라는 이색적인 광고이다 보니 하루에 전화가 1000통 이상 온 적도 있었다. 매일 매일 공사와 면접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여성전용바에서 중요한 것은 웨이터들의 뛰어난 대화능력과 세련된 매너였다. 그것이 아니면 성공은 요원할 뿐이었다. 특별히 중요하게 본 것은 호스트빠 출신이었다. 그들은 ‘공사’에 대한 습성이 남아 있어서 절대로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호빠 출신 선수들은 절대로 채용하지 않는 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나름대로 점차 업소가 완성되어 가고 있고, 채용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큰 문제가 터졌다. 돈 1000만원을 당장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사실 진정한 ‘내 사업’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부동산 복비 300만원이 나가야 했고 가게세도 선불로, 사채의 이자도 선불로 내야했다. 돈줄이 순간적으로 막혀버렸던 것이다. 목수들은 하루하루 일당을 받아가기 때문에 당장 돈이 없으면 공사는 하루아침에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무작정 돈을 구해야 했다. 내 장기를 팔아서라도 구해야 하는 돈이 1000만원이었던 것이다. 그때 머리를 스친 것이 ‘주류대출’이었다. 특정 회사의 술을 사용해주는 대가로 그 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제도였다. 여기저기 주류유통 영업 사원들이 그간 자주 찾아왔었다. 그들에게 제안을 했지만 쉽게 성사가 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속내도 이해는 갔다. 처음 하는 업소가 망할지도 모르는데 선뜻 술을 넣어주고 대출까지 해줬다가는 문제가 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업사원들을 만나 타진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여성전용 클럽’에 대해서는 모두들 좋은 반응을 보였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시장이다 보니 회사의 상급자들이 결제를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다시 예전의 성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잘 알고 있는 주류 유통업자가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말이다.
“우리 동이 부탁인데 안 들어 줄 수 있나. 기다려 보라고.”
성사장님과의 통화가 끝나자 단 10분 만에 한 업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사장님이 보증을 섰으니 당장 내일 1000만원을 입금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1000만원을 갚은 것은 물론이고 3년 동안이나 그 주류회사와 거래를 했다. 어려움에 처했던 나를 도와준 사람을 배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면접은 계속 진행됐다. 수백 명을 면접을 본 결과, 그 중에서 30명을 골라냈고 또다시 그 중에서 10명을 추렸다. 누가 봐도 연예인 뺨치는 수준이었다. 아니, 지금 당장 연예인을 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의심할 수 없는 훌륭한 외모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렇게 46일간의 긴긴 준비의 시간들. 드디어 모든 인테리어와 주방과 메뉴판과 전단지, 홈페이지, 그리고 웨이터들이 준비되었다. 2007년 1월31일. 드디어 레드모델바의 새로운 비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다 끝난 것이다.
방송출연, 그리고 심장을 뛰게 하는 성공의 눈물.
지금 생각해보면 레드모델바의 오픈은 ‘죽기 아니면 살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 틀림없다.
오픈 첫날. 손님은 달랑 한 명이었다. 대박을 예상했던 나의 생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살 길은 전단지를 돌리는 것 밖에 없었다. 추운 겨울 날씨는 영하 10도를 향하고 있었다. 맹렬한 칼바람이 귓불과 뺨을 때리듯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전단지 알바생들은 하루 만에 그만두기 일쑤였고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나의 보물 1호였으니 그들을 고생시킬 수는 없었다. 오후 2시면 어김없이 강남역 인근으로 전단지를 돌리러 나갔다.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에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별다른 반응이 오지는 않았다. 하루에 천장씩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는 조만간 망할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오픈 이후로는 하루도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나마 드문드문 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내가 술을 먹고 손님들을 서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밤 술에 취해 잠들었고 마음속의 두려움은 점점 더 커가기만 했다. 직원들은 나를 믿고 매일 출근을 하기는 했지만 월급이나 제때에 나올지 망설이는 듯 한 표정들이었다. 가끔씩 문의전화가 오기는 했지만 업소를 호빠로 착각한 손님들의 문의들일 뿐이었다. 팁이 얼마인지, 초이스가 되는지를 물어왔다.

■ 5부의 사채이자
아무리 설명해도 고객들은 목석이었다. 호빠와 건전한 여성전용클럽의 차이를 도저히 이해시키기 힘들었다. 막상 업소에 왔다고 하더라도 초이스가 없다고 하면 바로 발길을 돌려버리기도 일쑤였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한 달이 지나 월급날이 돌아왔지만 월급을 줄 수 있는 돈은 없었다.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동생 현우의 여자 친구인 민영이가 내 사정을 알았는지 선뜻 500만원을 내 놓았다. 직원들 월급을 주라는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두달째로 접어들면서 재방문을 하는 고객도 늘어났고 문의전화도 오기는 했지만 월세에 이자며 직원들 월급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자 직원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함께 사업을 시작했던 현우는 자신의 지분을 빼겠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든 상황에서 현우의 지분 5000만원을 빼줄 돈이 있을리는 만무했다. 할 수 없이 나는 5부라는 엄청난 사채이자를 주면서 겨우 지분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심정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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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