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쥔 ‘21개의 카드’

검찰만? 사법부도 물갈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7일 문재인정부가 출범 100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적폐 청산과 개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으로부터 개혁 요구가 높았던 검찰과 방송은 이미 개혁 드라이브가 걸린 상태다. 문 대통령의 칼끝은 이제 사법부로 향하고 있다. 무기는 법관 지명 카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산이 필요한 적폐 분야의 개혁을 시행할 때마다 인적 쇄신을 첫 번째 단추로 채웠다.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후임으로 앉힌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인사가 검찰개혁의 신호탄이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이효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앉힌 것도 언론 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효성 위원장은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방송의 비정상 상태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시작
사람부터 바꿔

사법개혁 역시 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사법부 기조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손에 쥔 법관 지명 카드는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에 큰 무기가 될 전망이다. 이미 사용한 5개의 카드 역시 사법개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명수 현 춘천지방법원장을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점이나 강한 개혁 성향, 양승태 현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은 점까지 김명수 후보자의 지명은 파격의 연속이다. 이 때문에 김명수 후보자 인선은 문 대통령이 드러낸 강력한 사법개혁의 의지로 읽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김명수 후보자는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사법 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다”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 성공 가능성은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신임 대법원장에 김명수 후보자를 선택한 것처럼 문 대통령이 임기 중 꺼내들 수 있는 법관 지명 카드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교체된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했을 당시 “법학자로서 박근혜 탄핵 관련 추가로 기쁜 점이 있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오는 9월26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난다. 탄핵이 없었다면 박근혜가 지난 1월 퇴임한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자는 물론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하게 돼있었다”며 “그러나 이제 새 대통령이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한다. 물론 공석인 헌재소장도 새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었다.

실제 19대 대통령선거가 예정대로 올해 12월에 치러졌다면 2018년 1월까지 퇴임하는 대법관 5명과 헌법재판관 2명은 박 전 대통령이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돼있었다. 헌재소장과 대법원장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몫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하면서 두 기관의 수장을 포함, 고위 법관 7명의 임명 기회는 고스란히 문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헌법재판관 8명, 대법관 13명
임기내 21명 인사 직간접 관여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신임 헌재소장으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지명했다. 


이날 김이수 후보자 지명 소식을 직접 발표한 문 대통령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헌법수호와 인권수호 의지가 확고할 뿐 아니라 공권력 견제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소수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는 등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며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할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인선 배경을 전했다.

2012년 9월 국회 야당 몫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김이수 후보자는 헌법재판관들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서는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내 주목을 받았다.

당시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통합진보당 주도 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진보당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실현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한 반면 김이수 후보자는 “진보당 강령 내용인 진보적 민주주의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201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만든 법률 조항 합헌 여부를 결정할 때도 “해직교사 등의 단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며 홀로 위헌의견을 냈다. 

올해 3월 탄핵 심판 선고에선 이진성 재판관과 함께 세월호 관련 보충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에도 집무실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낸 징표”라고 일침을 가했다.

취임 100일 동안
5명 법관 지명

김이수 후보자의 지명은 이번 대법원장 인선과 맞물려 문 대통령의 향후 법관 인선 방향을 가늠케 하는 초석이었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 양대 기관에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인사를 앉히면서 개혁의 주춧돌을 깔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아직도 김이수 후보자가 ‘후보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는 장기간 표류 중에 있다. 헌법재판소법 12조 2항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 6월8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까지 완료됐지만 국회 동의라는 산을 넘지 못해 헌재소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소수 의견을 낸 사건을 문제 삼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전교조 법외노조 합헌 등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김 후보자에 대한 동의안을 방치하는 동안 이유정 변호사를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지난 1월 퇴임한 박한철 재판관의 후임이다. 이로써 1월 이후 줄곧 8명이었던 헌법재판관 구성은 9명으로 완성됐다.

이유정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23기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를 지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서울시 인권침해구제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유정 후보자는 호주제 폐지, 인터넷 실명제,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 다수의 헌법 소송을 대리하며 공권력 견제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헌법 및 성 평등 문제에 대한 풍부한 이론과 실무 경험을 갖춘 여성 법학자로서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의 임무를 가장 수행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사법부 무게 중심
보수서 진보로

하지만 이유정 후보자의 앞날도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야당이 이유정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을 짚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 3당은 이유정 후보자가 과거 노무현·문재인 대선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지지선언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며 부적격 인사로 규정하고 있다.

김이수 후보 임명동의안과 이유정 후보자 임명 철회를 연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전략을 수정하면서 오는 28일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회 일정에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셈이다. 야당은 이유정 후보자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통해 여론전을 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정부의 사법부 지형 바꾸기는 헌법재판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6월에 임명된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역시 진보적 색채를 띤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두 대법관은 이상훈·박병대 전 대법관 자리에 임명 제청됐다. 먼저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각계각층에서 추천받은 36명을 심사해 8명을 골랐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이 8명 가운데 조재연 변호사와 박정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대법관 임명을 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앞서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고른 8명의 후보군도 진보 인사와 여성이 대거 포함돼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조재연 대법관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 인권신장 등 헌법적 가치 수호에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풍부한 실무경험과 능력, 균형 있는 시각을 갖췄다고 인정받는다.

조재연 대법관은 한국은행서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성균관대 법대에 진학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 전두환 정권 때 판사로 근무하며 시국 사건서 소신 판결을 내려 주목 받았다. 
 

특히 1985년 저항의식이 담긴 ‘민중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피의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된 사건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영장을 기각했다.

헌재소장·대법원장 ‘진보 색채’
자유한국당 ‘정치적 편향성’ 반발

박정화 대법관은 서울행정법원 개원 이래 첫 여성 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사법부 ‘유리천장’을 깬 법관이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당한 쌍용자동차 직원에게 해고가 부당하다고 처음 판결했다. 

직업이 없는 구직자가 포함된 노동조합 설립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판결도 있다. 노동관계 법률의 해석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의 법익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아내상속 관습에 따라 재혼을 강요당하고 재산까지 빼앗긴 케냐 여성,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우리나라로 도피한 나이지리아 남성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등 기본권 보호에 힘써왔다.

두 대법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 7월19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취임식서 박정화 대법관은 “소수의 작지만 정당한 목소리가 다수의 큰 목소리에 가려 묻히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다하겠다”며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재연 대법관 역시 “전국 법관들의 판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그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며 “사회의 여러 목소리와 가치를 대법원 판결에 반영하고 사법부의 신뢰 회복에 힘써달라는 국민의 요로를 무겁게 받아들여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은 임기가 각각 6년이다. 대통령(5년)이나 국회의원(4년) 임기보다 길기 때문에 진용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한다. 사법권력 교체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으로 5년 혹은 4년 만에 한 번씩 바뀌는 정치권력보다 훨씬 변화가 어렵다.

이런 상황서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5명의 고위 법관 인선을 통해 사법부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고위 법관 자리에 파격적인 인사를 연이어 단행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내년에만 대법관 6명, 헌법재판관 5명 등 총 11명이 퇴임한다. 대법원에선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이 내년 1월에,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이 8월에 한꺼번에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 

11월에는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 대법관이 교체될 예정이다.

9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내년 9월 5명의 재판관이 한꺼번에 바뀔 예정이다. 김이수·이진성·김창종·강일원·안창호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교체되면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재편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에 대한 지명권은 문 대통령이 선택한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있다. 대법관 전원과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의 후임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기수 등 서열에 얽매이지 않는 인사를 이어갈 경우 진보적 색채를 띤 법관들이 중용될 가능성도 높다.

2019년 4월에는 대통령 몫인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이 퇴임한다. 이 두 재판관의 후임은 문 대통령이 지명한다.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가운데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5월 전에 임기가 끝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하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이 크게 반영된다.

야당은 강력 반발
임명까지 가시밭길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사법부 인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가 연이어 고위 법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활동을 한 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 등을 들어 “지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정치재판소로 만들고 정치 대법원화 될까 우려의 시각이 높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개혁 어디서부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3월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 축소 필요성을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문제는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이 이 대회를 축소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서 법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현직 판사들은 충분한 조사 없이 내려진 결론이라며 전국법관회의를 열어 추가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했다.

판사들 사표내고 단식하고

양 대법원장의 거부에 항의해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또 인천지법의 한 판사는 지난 10일부터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법원행정처 권한 남용 추가 조사와 인적 쇄신 등을 요구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신임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사법개혁 과제로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꼽았다. 

노 원내대표는 “현재 대법원이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 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양 대법원장이 덮고 있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재조사하는 것부터 사법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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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