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쥔 ‘21개의 카드’

검찰만? 사법부도 물갈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17일 문재인정부가 출범 100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적폐 청산과 개혁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으로부터 개혁 요구가 높았던 검찰과 방송은 이미 개혁 드라이브가 걸린 상태다. 문 대통령의 칼끝은 이제 사법부로 향하고 있다. 무기는 법관 지명 카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산이 필요한 적폐 분야의 개혁을 시행할 때마다 인적 쇄신을 첫 번째 단추로 채웠다.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 후임으로 앉힌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의 인사가 검찰개혁의 신호탄이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이효성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앉힌 것도 언론 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효성 위원장은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방송의 비정상 상태를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시작
사람부터 바꿔

사법개혁 역시 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 사법부 기조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손에 쥔 법관 지명 카드는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에 큰 무기가 될 전망이다. 이미 사용한 5개의 카드 역시 사법개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김명수 현 춘천지방법원장을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점이나 강한 개혁 성향, 양승태 현 대법원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13기나 낮은 점까지 김명수 후보자의 지명은 파격의 연속이다. 이 때문에 김명수 후보자 인선은 문 대통령이 드러낸 강력한 사법개혁의 의지로 읽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김명수 후보자는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사법 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다”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문재인정부의 사법개혁 성공 가능성은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신임 대법원장에 김명수 후보자를 선택한 것처럼 문 대통령이 임기 중 꺼내들 수 있는 법관 지명 카드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문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교체된다.

조국 민정수석은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했을 당시 “법학자로서 박근혜 탄핵 관련 추가로 기쁜 점이 있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오는 9월26일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난다. 탄핵이 없었다면 박근혜가 지난 1월 퇴임한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자는 물론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하게 돼있었다”며 “그러나 이제 새 대통령이 후임 대법원장을 임명한다. 물론 공석인 헌재소장도 새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었다.

실제 19대 대통령선거가 예정대로 올해 12월에 치러졌다면 2018년 1월까지 퇴임하는 대법관 5명과 헌법재판관 2명은 박 전 대통령이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돼있었다. 헌재소장과 대법원장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몫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하면서 두 기관의 수장을 포함, 고위 법관 7명의 임명 기회는 고스란히 문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헌법재판관 8명, 대법관 13명
임기내 21명 인사 직간접 관여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9일 신임 헌재소장으로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지명했다. 


이날 김이수 후보자 지명 소식을 직접 발표한 문 대통령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헌법수호와 인권수호 의지가 확고할 뿐 아니라 공권력 견제나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소수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는 등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왔다”며 “다양한 목소리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할 적임자라고 판단한다”고 인선 배경을 전했다.

2012년 9월 국회 야당 몫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김이수 후보자는 헌법재판관들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소수의견을 가장 많이 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도 있다. 

특히 2013년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서는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내 주목을 받았다.

당시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통합진보당 주도 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진보당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실현 목적을 갖고 있다”고 한 반면 김이수 후보자는 “진보당 강령 내용인 진보적 민주주의에는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고 소수의견을 냈다.
 

201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노조로 만든 법률 조항 합헌 여부를 결정할 때도 “해직교사 등의 단결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다”며 홀로 위헌의견을 냈다. 

올해 3월 탄핵 심판 선고에선 이진성 재판관과 함께 세월호 관련 보충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에도 집무실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낸 징표”라고 일침을 가했다.

취임 100일 동안
5명 법관 지명

김이수 후보자의 지명은 이번 대법원장 인선과 맞물려 문 대통령의 향후 법관 인선 방향을 가늠케 하는 초석이었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사법부 양대 기관에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인사를 앉히면서 개혁의 주춧돌을 깔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아직도 김이수 후보자가 ‘후보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재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는 장기간 표류 중에 있다. 헌법재판소법 12조 2항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 6월8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까지 완료됐지만 국회 동의라는 산을 넘지 못해 헌재소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아있다. 야당은 김 후보자가 소수 의견을 낸 사건을 문제 삼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전교조 법외노조 합헌 등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김 후보자에 대한 동의안을 방치하는 동안 이유정 변호사를 신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지난 1월 퇴임한 박한철 재판관의 후임이다. 이로써 1월 이후 줄곧 8명이었던 헌법재판관 구성은 9명으로 완성됐다.

이유정 후보자는 사법연수원 23기로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를 지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서울시 인권침해구제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유정 후보자는 호주제 폐지, 인터넷 실명제, 휴대전화 위치 추적 등 다수의 헌법 소송을 대리하며 공권력 견제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헌법 및 성 평등 문제에 대한 풍부한 이론과 실무 경험을 갖춘 여성 법학자로서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재판관의 임무를 가장 수행할 적임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사법부 무게 중심
보수서 진보로

하지만 이유정 후보자의 앞날도 험난하긴 마찬가지다. 야당이 이유정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을 짚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등 야 3당은 이유정 후보자가 과거 노무현·문재인 대선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 민주노동당·진보신당 지지선언 등의 이력을 갖고 있다며 부적격 인사로 규정하고 있다.

김이수 후보 임명동의안과 이유정 후보자 임명 철회를 연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전략을 수정하면서 오는 28일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국회 일정에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 셈이다. 야당은 이유정 후보자에 대한 혹독한 검증을 통해 여론전을 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정부의 사법부 지형 바꾸기는 헌법재판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6월에 임명된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역시 진보적 색채를 띤 법관으로 평가받는다. 두 대법관은 이상훈·박병대 전 대법관 자리에 임명 제청됐다. 먼저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각계각층에서 추천받은 36명을 심사해 8명을 골랐다.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이 8명 가운데 조재연 변호사와 박정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대법관 임명을 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앞서 대법관 추천위원회가 고른 8명의 후보군도 진보 인사와 여성이 대거 포함돼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조재연 대법관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보호, 인권신장 등 헌법적 가치 수호에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풍부한 실무경험과 능력, 균형 있는 시각을 갖췄다고 인정받는다.

조재연 대법관은 한국은행서 은행원 생활을 하면서 성균관대 법대에 진학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 전두환 정권 때 판사로 근무하며 시국 사건서 소신 판결을 내려 주목 받았다. 
 

특히 1985년 저항의식이 담긴 ‘민중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피의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된 사건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해 영장을 기각했다.

헌재소장·대법원장 ‘진보 색채’
자유한국당 ‘정치적 편향성’ 반발

박정화 대법관은 서울행정법원 개원 이래 첫 여성 부장판사를 지내는 등 사법부 ‘유리천장’을 깬 법관이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당한 쌍용자동차 직원에게 해고가 부당하다고 처음 판결했다. 

직업이 없는 구직자가 포함된 노동조합 설립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판결도 있다. 노동관계 법률의 해석 기준을 명확하게 하고 사회적 약자의 법익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이외에도 아내상속 관습에 따라 재혼을 강요당하고 재산까지 빼앗긴 케냐 여성,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우리나라로 도피한 나이지리아 남성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등 기본권 보호에 힘써왔다.

두 대법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쳐 지난 7월19일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취임식서 박정화 대법관은 “소수의 작지만 정당한 목소리가 다수의 큰 목소리에 가려 묻히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배려를 다하겠다”며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조재연 대법관 역시 “전국 법관들의 판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그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며 “사회의 여러 목소리와 가치를 대법원 판결에 반영하고 사법부의 신뢰 회복에 힘써달라는 국민의 요로를 무겁게 받아들여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은 임기가 각각 6년이다. 대통령(5년)이나 국회의원(4년) 임기보다 길기 때문에 진용을 갖추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한다. 사법권력 교체는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으로 5년 혹은 4년 만에 한 번씩 바뀌는 정치권력보다 훨씬 변화가 어렵다.

이런 상황서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동안 5명의 고위 법관 인선을 통해 사법부의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고위 법관 자리에 파격적인 인사를 연이어 단행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장 내년에만 대법관 6명, 헌법재판관 5명 등 총 11명이 퇴임한다. 대법원에선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이 내년 1월에,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이 8월에 한꺼번에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 

11월에는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김소영 대법관이 교체될 예정이다.

9명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내년 9월 5명의 재판관이 한꺼번에 바뀔 예정이다. 김이수·이진성·김창종·강일원·안창호 재판관이 임기 만료로 교체되면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재편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에 대한 지명권은 문 대통령이 선택한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에게 있다. 대법관 전원과 이진성·김창종 재판관의 후임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기수 등 서열에 얽매이지 않는 인사를 이어갈 경우 진보적 색채를 띤 법관들이 중용될 가능성도 높다.

2019년 4월에는 대통령 몫인 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이 퇴임한다. 이 두 재판관의 후임은 문 대통령이 지명한다.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가운데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2년 5월 전에 임기가 끝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하지만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뜻이 크게 반영된다.

야당은 강력 반발
임명까지 가시밭길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사법부 인선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진보 색채가 강한 인사가 연이어 고위 법관직에 임명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우리법연구회 활동을 한 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 등을 들어 “지금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정치재판소로 만들고 정치 대법원화 될까 우려의 시각이 높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법개혁 어디서부터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3월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 축소 필요성을 주제로 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문제는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이 이 대회를 축소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서 법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별도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조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현직 판사들은 충분한 조사 없이 내려진 결론이라며 전국법관회의를 열어 추가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반발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 요구를 거부했다.

판사들 사표내고 단식하고

양 대법원장의 거부에 항의해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또 인천지법의 한 판사는 지난 10일부터 물과 소금만 섭취하며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법원행정처 권한 남용 추가 조사와 인적 쇄신 등을 요구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신임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사법개혁 과제로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꼽았다. 

노 원내대표는 “현재 대법원이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 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양 대법원장이 덮고 있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재조사하는 것부터 사법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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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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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