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송응철 기자] 대림산업에서 ‘요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용구 전 회장이 뭇매를 맞고 있는 것. ‘몽둥이’를 손에 쥔 건 다름 아닌 전 부하직원들이다. 이들은 이 전 회장에게 재임시절 지불하지 않은 골프장?호텔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불과 3개월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그에게 이빨을 드러낸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 배경이나 내막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오너가의 미움을 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막연한 추측만이 업계에 나돌 뿐이다.
"골프장·호텔 개인적 사용, 1억3000만원 변제하라"
"파렴치한 행위는 하지 않았으니 변제 못 한다"
대림산업은 지난 4월부터 ‘기본이 혁신이다’라는 모토 아래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소통캠페인을 실시했다. 그 일환으로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과 청탁, 압력들에 대해서 ‘고해성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 퇴임한 이용구 전 회장이 계열사인 오라관광의 골프장과 호텔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대림산업은 밝혔다. 또 사적인 해외여행에 회삿돈을 쓴 사실도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건 대림산업 노사협의체인 한숲협의회가 이 전 회장에게 골프장과 호텔 비용 1억3000여만원을 변제하고 공개사과 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오라관광 직원들은 한술 더 떴다. 이 전 회장 집 앞으로 찾아가 “이용구 회장님!! 모든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호텔 숙식료, 골프장 이용요금을 하루빨리 입금해 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열흘째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림산업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2007년에 9차례 등 10여 회에 걸쳐 골프장과 호텔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돈을 내지 않았다. 이 전 회장이 변제해야 할 금약은 골프비와 호텔비 각각 2400만원, 9200만원에 연체료 6%를 더한 1억3390만원이다.
‘소통 캠패인’과정서 드러나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대금을 변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 재직 시 비난 받을 만한 일은 없었고, 골프장과 호텔도 회사 업무와 관련 있는 사유로 이용하게 됐다는 게 이 전 회장의 항변이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대림산업과 이 전 회장의 대립은 악화일로로 내 달리고 있다. 한숲협의회는 이 전 회장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액수를 변제하지 않을 경우 대한상공회의소와 청와대 앞 등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차라리 검찰에 고발해서 떳떳하게 진실을 규명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대림산업은 회사 이미지를 고려, 고소·고발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이 전 회장 “차라리 검찰에 고발해서 진실규명하자”
이 부회장과 불화설 등 업계에 추측만 무성
이 같은 사실이 전해지자 업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42년간 대림에 몸담은 데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게다가 재임시절 탁월한 경영성적과 리더십을 발휘하기까지 했다. 업계는 이런 이 전 회장에게 회사 측이 이빨을 드러내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지난 2006년 12월 이준용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회장직을 맡은 이 전 회장은 1971년 대림산업에 입사한 이래 현장과 본사, 국내와 국외에서 두루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전통 ‘대림맨’이다.
경영성적도 화려하다. 지난 2009년 매출액 5조8922억원, 영업이익은 389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익 모두 처음 사장으로 취임한 지난 2000년에 비해 2~3배나 증가한 액수다. 이뿐 만이 아니다. 이 전 회장은 재임시절 대규모 국외 수주를 잇따라 달성하며 수익 창출은 물론 건설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또 창업주인 고 이재준 회장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경영원칙을 몸소 실천해 낸 인물로 꼽힌다. 이 전 회장의 모든 경영활동의 근간에는 신뢰가 바탕이 돼 있었다. 함께 일하고 교류해온 많은 사람들이나 재계 여러 기업들은 물론, 정부 유관기관과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항상 신뢰를 최우선으로 한다. 굳이 서면화 된 형태의 협약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믿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정부나 유관기관의 대규모 사회간접시설의 공사도 도맡아 할 수 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잘하던 회장 뒤통수, 업계는 갸우뚱
이번 일에 대한 배경에 대해선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대림산업에서도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업계에선 갖가지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우선 이번 일이 최근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전면에 나선 이해욱 부회장과의 갈등에서 촉발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95년 대림산업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았다. 그러던 지난 2007년 11월 이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경영권 승계 가능성이 예상됐다. 그러나 아버지 이 명예회장은 이 전 회장을 택했다. 자연스레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는 뒤로 미뤄졌다. 이런 이 전 회장이 이 부회장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균열이 생겼으리란 게 업계 일각의 견해다.
사측이 아닌 노사협의체가 이번 일의 선봉에 서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현재 대림산업엔 노조가 없다. 업계에서 강성으로 유명했던 대림산업 노조가 공중분해 된 것은 지난 2005년의 일이다. 당시 사측은 임단협 협상 테이블에 ‘칼’과 ‘장미’를 내밀었다. 임금 인상분 외에 0.5%의 추가 인상을 조건으로 노조전임자에 임금을 지불하지 않을 것을 제안한 것이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2007년부터 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시행되리란 전망이 제기된 때문이다.
이어 2006년 말에는 아예 노조를 해산해 버렸다. 당시 노조는 “집행부의 일방적인 의견 전달이라는 구태를 벗고 민주적으로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사측에 전달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며 “노동자끼리 토의하고 때로는 경영진과 함께 앞날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투쟁권을 포기한 협의체는 사실상 ‘이빨 빠진 호랑이’가 돼 버렸다는 지적이다.
칼자루는 경영진에 넘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이 부회장이다. 실제 이 부회장은 지주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32.1%를 소유하고 있다. 대림코퍼레이션은 대림산업 지분 21.67%를 가진 최대주주다. 영향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노사협의체를 수족처럼 쥐고 흔들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일에 양팔을 걷어붙인 오라관광도 대림산업이 100%의 지분을 소유한 수직계열사라는 점도 석연치 않다.
사측 아닌 협의체, 사태 선봉 왜?
일각에선 이 명예회장과의 트러블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비상장사인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61%를 소유한 최대주주로 여전히 그룹 경영권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그런 이 명예회장의 눈 밖에 나 험한 꼴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설들에 대해 대림산업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대림산업 측 관계자는 “이번 일은 오너가와의 관계로 인해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