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위기 ③

IMF세대들의 ‘통한의 목소리’

 

 

IMF의 삭풍이 몰아쳤던 1990년대 후반 대학교를 졸업한 IMF세대.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로움 속에서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을 보냈던 그들은 앞으로 남은 미래도 장밋빛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딛으려는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IMF시대라는 괴물과 취업전쟁, 그리고 냉혹한 현실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삶의 방식과 태도, 사고방식까지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 속에 버려졌다.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 그들은 여전히 힘들다. 지난 10년간의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은 세계적 경제공황 속에서 물거품이 될 위기다. 하루하루가 위태한 30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IMF는 벗어났지만 고통은 10년 째

컴퓨터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개발팀에 근무하는 전모(38)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10년간 하루도 위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 밑에서 부족할 것 없는 청년기를 보냈던 전씨. 대학시절에도 아르바이트 한 번 안 해봤을 만큼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렸다. 자신의 삶은 앞으로도 쭉 평화롭고 안정적일 거라는 전씨의 기대가 무너진 것은 대학 졸업을 몇 달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교과서에서나 보던 ‘IMF’란 세 글자가 연일 뉴스에 나올 때만 해도 자신과는 무관한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IMF의 직격탄은 전씨의 가정에도 떨어졌다.
퇴직을 10여년 앞둔 아버지가 ‘명퇴’를 당하면서 가정경제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퇴직금으로 받은 2억원 남짓한 돈과 모아둔 돈을 합해 시작한 사업이 화근이었다. 체계적인 준비 없이 뛰어든 사업은 전씨의 가정에 별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1998년 8월,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서울 소재 사립대 공대에 다녔던 그는 유례없는 취업전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선배들이 쉽게 들어갔던 기업들에 수십 번 이력서를 냈지만 합격소식은 남의 일이었다. 결국 눈높이를 낮춰 이듬해 봄, 중소기업에 입사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전씨는 대학 때 마지노선으로 생각했던 연봉의 절반수준밖에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일주일에 6일씩 야근을 하며 2년간의 직장생활을 했다.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경제를 떠안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점점 설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20대 후반을 아등바등 살다 맞이한 30대는 더욱 매서웠다. 그가 다녔던 회사가 도산해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된 것.
몇 개월을 실업급여에 의존해 살아가던 전씨는 선배의 소개로 또 다른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규모도, 연봉도 적지만 내실 있는 회사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회사에 몸담고 있다.
더 조건이 좋은 회사로 옮기려고도 해봤지만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 자기계발을 하며 몸값을 올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또 5년 전 결혼하면서 생긴 아파트대출금과 각종 은행대출이자를 갚느라 휴직을 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은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여기에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 걱정은 덤이다.
몇 달 전부터 그를 짓누르는 또 한 가지는 지난 해 무리를 해가며 산 펀드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반토막이 나는 것도 시간문제란다.
전씨는 “IMF시대를 벗어난 지 10년이 지났다고 하지만 난 한 번도 IMF세대라는 걸 잊어본 적이 없다”면서 “아버지가 40대에 누렸던 경제적 안정을 몇 년 후에나 맛볼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씨처럼 IMF를 즈음해 사회에 뛰어든 30대들은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면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1970년에서 1975년 전후로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가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유년기를 맞이했다.
물론 지금의 10대와 20대들이 맛보는 정도의 풍요로움은 아니지만 ‘내 자식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부모세대의 뼈아픈 희생으로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고생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대학교만 졸업하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일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로 다가올 시련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바로 몇 해 전에 졸업한 선배들을 봐도 그랬다. 그들에게 대학교는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낭만의 캠퍼스였고 졸업만 하면 치열한 경쟁 없이 쉽게 직장을 얻었다. 이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나 막막함은 그리 크지 않았다.
92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가 1999년에 졸업한 김모(37)씨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대학교에 가서 특별히 공부를 한 기억은 없다”며 “마치 고3처럼 공부한다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보면 우리 세대는 편한 대학시절을 보낸 셈”이라고 말했다.
IMF 세대는 또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배낭여행 1세대이기도 했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면서 이들의 무대는 해외로까지 넓혀졌다. 이로 인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졌고 다가올 사회생활도 두렵지 않았다.

대학졸업과 함께 IMF시대 맞아 냉혹한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치열한 취업경쟁 뚫은 뒤 구조조정과 무한경쟁에서 고군분투


그러나 이들이 사회에 발을 들이기도 전, 대한민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1997년 11월21일, 경제국치라 불리는 IMF가 시작되고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외환정책의 실패,  위험성 대출자산 증가 통제불능으로 인한 기업의 연쇄도산, 기업투자의 부실화 등 각종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한 위기는 여유로웠던 이들의 인생에 태클을 걸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의 수가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다. 이전만 하더라도 4~5월이면 대기업들은 공채사원 모집으로 수천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그러나 1998년 상반기 신입사원을 뽑은 대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취업준비생은 이에 비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IMF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이기도 하다. 1970년에서 1972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출생인구가 가장 많은 해는 1971년으로, 87만5천1백87명이나 됐고, 1970년(85만9천8백17명)과 1972년(85만9천5백12명) 생이 뒤를 이었다. 이는 가장 수가 작은 2005년생(41만3천8백5명)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이로 인해 1998년 20대 실업자는 52만명에 달했다. 이전 해의 27만여 명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다.
이처럼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고생 끝에 취직했다고 해서 안전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언제 자신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직장생활을 해 나갔다.이때부터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간부급으로 승진해 정년퇴직을 보장받는 곳이 아니라 다른 직장으로 옮겨가는 교두보의 역할만을 할 뿐이란 것.
IMF를 벗어나고 21세기를 맞이했다고 해서 이들 세대의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결혼적령기를 맞은 이들은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값이 폭등해 월급쟁이에게는 전셋집을 마련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삶의 질은 높아만 갔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하고, 명품 하나쯤은 있어야 대접받는 시대가 왔다. 여기에 주6일제에서 주5일제로 바뀌면서 여가생활을 즐기는 데 드는 돈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하모(39)씨는 “아직까지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형편이지만 가족 여행과 취미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 저축할 몫이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전 세대에 비해 기본적인 생활비도 늘 수밖에 없다. 휴대폰, 인터넷 등 정보생활에 필요한 돈이 수도세처럼 빠져나가고 사교육비도 늘어만 간다. 그리고 이들 세대의 자녀들은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는 중, 고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 부담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몇해 전부터 광풍처럼 불었던 펀드와 주식바람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쉽고 가볍게 재테크를 생각하는 30대들은 실제로 재테크로 짭짤한 맛을 본 사람들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대박의 꿈마저도 앗아갔다.
불안한 직장생활의 마지막 보루로 투자했던 펀드와 주식은 바닥으로 치닫기 일쑤고 어렵게 대출을 받아 산 아파트 등의 부동산도 날이 갈수록 값이 떨어지고 있다.
직장인 박모(37)씨는 “틀림없는 정보라고 해서 믿고 산 펀드의 수익률이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어 자다가도 벌떡 깬다”면서 “주식실패로 자살했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30대들의 목을 조이는 또 다른 것은 ‘무서운 후배’들이다. 어느 세대든 후배들이 자신들을 치고 올라와 위협하는 것은 순리(?)겠지만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이들의 후배는 누구보다 능력 있는 세대다.
10대 시절에 IMF를 겪고, 바로 윗세대들이 얼마나 냉혹한 사회에서 일하는지를 지켜봤던 이들은 어느 세대보다 철저히 준비하고 사회에 발을 들였다. 대학교는 술을 마시고 연애나 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학원’ 정도로 여긴 ‘후배’들은 고3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투자를 쏟아 취업문을 통과한 인재들이다.
게다가 30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기기 힘든 것은 이들이 가진 정보력이다. 20대 후반에서야 인터넷을 접한 IMF세대와 달리 이들은 이미 10대부터 자유자재로 인터넷을 가지고 논 세대. 무려 10년이란 차이를 따라잡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모(39·여)씨는 “언젠가 부장님이 나와 후배에게 같은 일을 시킨 적이 있는데 후배는 나보다 24시간이나 빨리 보고서를 제출했다”며 “일한 경력은 내가 훨씬 길기 때문에 당연히 후배를 이길 줄 알았는데 인터넷을 이용한 정보력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IMF세대인, 30대 후반을 맞은 이들은 예고도 없이 가장 치열한 세상 속으로 들어온 뒤 10년 동안 무한 경쟁 속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IMF보다 더 혹독한 경제위기라는 지금, 10년 전의 잔혹한 추억을 떠올리며 불안에 떨고 있다.
 

IMF 처녀에서 88만원 세대까지 ‘그때 그 유행어들’
IMF 이후 취업난 빗댄 신조어 쏟아져


IMF 이후 10년 동안 계속 되고 있는 취업난과 청년 실업은 각종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들은 우울한 현실 속에서 쓴 웃음을 주며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잠깐 사용되다 사라진 신조어와 관용어로 굳혀진 용어들을 되돌아보자.

IMF 처녀
IMF시대였던 1990년대 후반 생겨난 신조어.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던 당시 기혼녀부터 해고시키는 회사방침으로 인해 결혼을 하고도 처녀행세를 하는 유부녀를 일컫는 말. 심지어 결혼하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거나 남편과 당분간 따로 사는 등 직장을 사수하기 위한 당시 직장인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갤러리족
주인의식 없이 회사 돌아가는 대로 그저 따라다니다가 그만둘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 직장인들을 일컫는 말. IMF 후 구조조정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강제 퇴직당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이까지만 해도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겼지만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더 나은 직장이 나오면 미련 없이 직장을 옮기는 풍속도가 생겼다. 갤러리족이라는 이름은 회사의 운명은 상관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생각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마치 골프장의 갤러리들이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를 쳐 주고, 선수가 이동하면 따라 나서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생겨났다.

각종 생선 시리즈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들의 목숨과 관련한 신조어들도 연일 생성됐다. 명예퇴직자를 이르는 ‘명태족’, 하루아침에 생매장당한 직장인인 ‘생태족’, 어느 날 황당하게 잘린 직장인을 말하는 ‘황태족’, 30대에 일찌감치 잘린 조기 명퇴자를 일컫는 ‘조기족’, 퇴직금을 두둑이 받은 명예퇴직자를 이르는 ‘알밴 명태족’ 등이다. 이들 용어 중 명태족 등은 지금도 쓰이며 IMF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고공족(考公族)
구조조정으로 해고당하는 이들이 늘면서 해고의 위험성이 없는 공기업과 공무원이 큰 인기를 얻으며 생긴 용어다. 고공족은 고시건 공무원시험이건 일단 붙고 보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하는 수험생들을 일컫는다.


공휴족(恐休族)
쉬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 이들은 주로 취업에 부담을 느낀 대학생들로 방학 중에도 쉴 틈 없이 학업 외에 3~5개 활동을 동시에 한다. 이들은 어학공부, 각종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기업 인턴십, 자격증 취득 등 졸업 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마다않고 한다.

이태백·삼태백
청년실업은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란 말을 만들었다. 장기화된 취업난은 연령대를 넓혀 30대 태반이 백수라는 ‘삼태백’으로 바뀌기도 했다.

대학 둥지족
취업이 어려워지자 휴학을 하며 졸업을 미루는 학생을 일컫는다. 이들은 어학연수, 인턴쉽 등을 핑계로 휴학을 밥 먹듯하며 사회로 나가는 시간을 유예시킨다.

버블리족
‘거품족’이라고도 하는데 1986년부터 1990년까지 거품 경기 때 입사했거나 대학생활을 보낸 직장인 중 거품경기가 사라지면서 급변하는 기업 조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장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버블리족의 특징은 무관심·무능력·무경쟁으로 조직의 입장보다는 개인적 관심에의 일을 추진하고 모든 책임을 조직에 돌리는 것. 또 자신에 대한 남의 평가에 대해 관심이 없고 경쟁의식도 없으며, 근무시간에 조직 업무에 대한 집중도 취약해 공사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88만원 세대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약 88만원을 받는다는 뜻. 88만원은 비정규직 전체의 평균 임금(1백19만 원)에 20대 평균 소득 수준 비율인 74%를 적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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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