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8) 진퇴양난

  • 황천우 작가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31 11:37:28
  • 호수 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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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맞바꾼 여인의 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저런 놈은 그냥 현장에서 참형에 처해야 하건만 내 귀관들의 요청에 따라 자초지종을 파악한 연후에 처리하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품석이 칼을 넣고는 휑하니 돌아섰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애랑이 모척과 함께 옥에 있는 검일을 찾았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소.”“무슨 그런 말이 있어요.”


“정말이라니까.”

검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모척이 혀를 찼다.

“정말로 사태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인가?”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차근히 생각해보게. 혹시 단체로 술 마신 건 아닌가?”

“형님, 근무 중에 술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그런데 어떻게 부대 전체가 그럴 수 있나?”

“그러니 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답을 한 검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는가?”

“특별한 일이 있을 턱이 없지요. 항상 하던 대로였는데.”

“조금이라도 걸리는 일이 없는지 차근히 생각해보게.”

검일이 지난 일을 회고하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저 야식 먹고.”말을 하다 말고 검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그러는가?”

“야식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짰다는 생각이 들어서.”“짜다니!”

“뿐만 아니라 맵기도 했고요.”“그래서?”

“야식을 먹고 난 후 모두들 물을.”

말을 하다 말고 검일이 다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아무래도 음식과 물에 이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맵고 짰으니 당연히 물이 먹힐 터인데, 그게 무슨 이유가 되는가. 그리고 음식이며 물은 다 자네 부대서 마련한 거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요.”

저도 말을 해놓고는 아연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어떻게 됩니까?”

그 상황에도 자신의 향후 문제가 걱정되는지 검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척과 검일의 처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흡사 상대에게 답을 하라는 듯했다.

“왜요, 결국.”

“군율대로 처리할 모양이네.”

“그러면 참수형이란 말인가요?”

모척이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방도가 없습니까, 형님!”

사색이 된 검일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주시했다.

“성주가 정황을 참작해서 살려주는 길 뿐인데.”

모척이 말을 하다 말고 검일의 처를 바라보았다.

“저는 왜 바라보시는지요?”

“혹시 제수씨가 나선다면, 성주가 제수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서.”

“성주의 시선이 어떤데요?”

애랑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제수씨가 나선다면 성주가 배려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거지요.”

“그저 나서면 되나요?”

“그거야.”

모척의 얼굴에 곤혹감이 들어차자 애랑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행여 꿈속에서라도 그런 말씀 마세요. 제게는 서방님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방이 죽도록 내버려두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몸을 더럽혀 구걸이라도 할까요?”

“그게 어찌 구걸이오, 아우를 살리는 길이지요.”

모척이 간절한 표정으로 애랑을 주시하자 고개를 돌려 검일을 바라보았다.

검일이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제게는 오로지 서방님뿐인데.”

애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제수씨가 나서는 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합니다.”

죽을 위기의 검일…살기 위한 방법은?
떠날 채비 갖추고 애랑과의 마지막 밤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지요. 당신의 목숨과 저를 바꾼 거지요.”

자신의 아내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애랑을 바라보는 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아내를 품석에게 내주어야 하는 한심한 형국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검일의 처는 흡사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곁눈질로 검일을 살펴보았다.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기어이 애랑이 침묵을 깨고 나섰다.

“다 내 죄지, 내 죄.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지요. 어쨌든 살고 봐야지요.”

“자네 없는 삶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도 다른 남자 옆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는 자네 모습을 보면서 말이야.”

“그러면 제가 죽을까요?”

“그럴 수 없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어야지.”

“다 이년이 박복한 탓이지요.”

검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자 애랑이 천천히 다가섰다.

“내일이면 그 놈에게 가야 하는데 이 밤을 이대로 보내시려는지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진한 체취를 느끼고 그를 기억하며 팔자려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애절하게 말하는 애랑을 검일이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자네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네.”

“어쩌시려고요?”

순간 애랑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도망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

울음인지 한숨인지 분간 못할 소리가 이어졌다.

“도망가다니요?”

“백제 땅으로라도 도망가야지.”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는 안 되겠네.”

“그렇게 해서 둘 다 죽으면 무슨 소용 있나요?”

애랑의 목소리가 앙칼졌다.

“그러면 자네는 이대로 가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죽자는 말인가요, 사는 길이 있는데.”

검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애랑을 주시했다.

“저는 지금 이 길이 좋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지금 이 순간까지 당신만 오로지한 저에게는 이 일이 좋은 줄 아시냐고요.”

기어코 애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며 검일이 애랑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자네에게 몹쓸 짓 하는구려.”

애랑이 말은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미안하오, 부인. 내 죽어서도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 잊지 못할 것이오.”

애랑의 등을 휘감았던 검일의 손이 허리께로 이동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애랑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군사, 계책을 말해보시오.”

대소 신료가 자리를 정돈하자 의자왕이 곁에 있는 흥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흥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 곁에 자리했다.

“여러 대신들께서도 감을 잡고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전하께서 이참에 신라를 공격하여 심기일전의 기회, 또 백제 중흥의 기반을 닦으시려 합니다.”

흥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의자왕의 눈치를 살피고는 시선을 신료들에게 주었다.

“아울러 금번에는 전하께서 친정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친정!”

누구 한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친정을 되뇌었다.

“그러하오, 내 직접 전투를 진두지휘하여 우리 백제의 의지를 만 천하에 밝힐 참이오.”

“그렇다고 전하께서 친정하시다니요?”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이 역시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흥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의자왕이 좌중을 주시하다가 이내 헛기침했다.

“경들이 걱정하는 바는 충분히 알겠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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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