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시간을 쌓는 그림' 허수영

끝없는 붓질로 시간을 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그림이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나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어떤 모호한 상태로 한 번 더 끌고 가고 싶다.” “더 이상 언어화되지 않는 지점에 보다 그림다운 그림이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려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때 비로소 겨우 마치지만 그렇게 끝난 그림도 시간이 지나면 빈틈이 보인다.” “아…이 짓거리에는 끝이 없다” “끝없는 붓질의 고생이 그림의 진실이다.” 허수영의 작가 노트 ‘그리다 보면’의 일부다.

허수영 작가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신세대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에는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의 흔적이 담겨 있다. 학고재 갤러리는 지난 9일부터 허수영의 개인전을 열었다. 2013년 인사미술공간 개인전 이후 3년간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 이번 전시에서 허수영은 최초로 공개하는 ‘1년’ 시리즈를 포함, 16점을 소개한다.

계절·낮·밤 공존

허수영은 최근 몇 년 새 수차례의 레지던시에 선정돼 도착하고 정착했다가 떠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예술가들에게 입주할 공간을 제공,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그는 짧은 정착 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고심 끝에 방향을 정했다.

레지던시 기간 동안 한 장소를 거의 매일 방문, 그곳의 풍경을 한 폭의 캔버스 위에 겹쳐 그린 것이다. 캔버스에 축적된 시간은 보는 사람에게 심오함과 중후함을 동시에 전해줬다.

그가 지금까지 한 작업 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하는 ‘숲10’에는 셀 수 없는 붓 터치와 시간, 추억이 담겨 있다. 작품 속에는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해 죽어 사라지는 모습이 응축돼있다. 오랫동안 중첩된 색채감은 큰 울림으로 변했다. 1년에 걸쳐 완성한 ‘숲5’ 속에는 낮과 밤이 수없이 나타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시간 화폭에 쌓아

1년간 쌓이고 쌓인 낮과 밤은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 속에는 대개 자연 풍경이 들어있다. 허수영은 “자유로운 붓질로 필력을 드러내기에 가장 용이한 대상”이라며 자연 풍경을 주제로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허수영은 대학 시절 곤충도감, 식물도감, 동물도감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도감에는 그가 주제로 선택한 자연의 이미지가 모여 있었다. 도감을 활용할 방법은 찾던 작가는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한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을 시도했다.

데뷔작 ‘한 권의 책 한 점의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2013년 들어서는 ‘양산동’ 시리즈를 시작했다. 다수의 레지던시서 마주하게 된 풍경과 일상을 채록하는 과정이 담긴 작품이다.

봄에는 앙상한 가지 위에 피어나는 싹, 여름이 오면 그 싹 위에 무성한 푸른 잎을 덧입혔다. 가을에는 여름의 짙은 녹음 위에 울긋불긋한 단풍을 덮었고, 겨울에는 그 위로 내리는 눈을 씌웠다. 사계절을 한 작품에 담고 나서야 비로소 허수영은 붓을 놓았다.

그는 작가노트 ‘1년’서 “내게 있어 기억은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며 현실적이지만 추억은 흐릿하고 애매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며 “날마다 무언가를 화면에 누적시키는 것은 기억들을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겹쳐진 이미지는 점점 복잡해지고 그림의 표면도 거칠어져 처음처럼 세밀하지 않다. 그 결과 공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중첩된 풍경과 서로 다른 시간들이 혼재된 순간이 펼쳐진다”며 “기억이 모여 추억이 되듯 정지된 순간을 모아 흐르는 시간의 모호한 무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통 회화 가능성 보여 눈길
겹쳐진 풍경은 모호한 상태로

2014년에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이전의 그림들을 꺼내 다시 붓질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서 경험한 메뚜기떼의 습격과 밤하늘의 우주 등 대자연은 작가에게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라는 숙제를 안겼다.

백곤 서울시 학예연구사는 “허수영의 작업은 평생에 걸쳐 빛과 색채의 변화무쌍함을 집요하게 추구해 화폭에 옮겼던 인상파 회화의 선구자 클로드 모네의 예술가적 태도와 닮아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허수영은 회화의 기본인 원근법을 넘어서지 않는다. 숲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 그래서 근경·중경·원경의 강조와 생략 없이 평면화되는 그의 그림은 원근법의 한계를 넘어 재현을 통한 추상이 된다”고 덧붙였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작가가 하나의 화면에 풍경의 단락들을 겹겹이 쌓는 행위는 기억의 채록에 가깝다”며 “매체 관점서 보면 일상성과 접근성의 용이함을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서구 모더니즘의 원형을 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했다.

이어 “하지만 그의 작업을 한 꺼풀 벗겨내면 단지 이미지를 재현하고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론 사실성이 사라지고 난 후의 존재의 실체를 탐구해 가는 과정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간의 모호한 무늬

학고재 갤러리 관계자는 “다양한 장르의 미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정통 회화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허수영의 개인전은 다음달 8일까지 열린다.

<jsjang@ilyosisa.co.kr>

 

[허수영은?]

1984 서울 출생


▲학력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대학원 졸업(2010)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과 졸업(2008)

▲개인전

‘허수영’, 학고재갤러리, 서울(2016)
‘Recent paintings’, 인사미술공간, 서울(2013)
‘3852pages, 5725images’, 신세계갤러리, 광주(2013)
‘Ctrl + V’,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2011)
‘The smaller majority’, 자하미술관, 서울(2010)

▲수상

14회 신세계 미술제 대상(2012)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