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박근혜 출구전략 넷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2.05 10:43:12
  • 호수 10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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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국에 노후까지 대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불통은 계속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국민 정서와 괴리를 보였다. 하야·탄핵 등 자신의 거취 문제보다 최순실 사태와 선을 긋는 데 방점을 둔 인상이 강했다. 오히려 공을 국회로 넘겨 일련의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박 대통령의 출구전략이 드디어 발동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정치권에 무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담화의 핵심은 ▲자신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모두 국가를 위해서 한 일이라는 것 ▲대통령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 이 두 가지다. 사실상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야는 없을 것이란 대부분의 시민들 예상이 적중한 셈이다. 직접 자신의 거취 문제를 매듭짓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에 시민들은 실망감을 표출했다.

담화 발표가 있은 지 하루가 지난 11월30일,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실시한 정기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내용이 ‘퇴진 요구에 충실이 화답한 것’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18.7%에 불과했다. 반면 ‘특검과 탄핵을 피하려는 정치적 꼼수’라고 답한 사람은 74.2%로 약 4배가량 많았다.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해도 국민들이 신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담화 발표 후 하야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창원시청 광장에 모인 5000여명의 지역 시민들은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쳤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거리로 나와 “즉각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박 대통령의 고향인 대구·경북서도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은 담화 직후 긴급성명을 통해 “박 대통령의 담화는 국민의 즉각 퇴진 요구와 특검, 국정조사, 탄핵 등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해당 단체는 박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이유가 시간 끌기를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출구전략1]
개헌 물타기

담화 내용을 보면 표면적으로 정치권 안팎서 불거진 ‘질서 있는 퇴진’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치권에 공을 넘기면서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그간 하야가 위헌이라는 입장을 거듭 강조해왔다. 즉 국민과 야당이 촉구하는 조기 퇴진을 위해서라도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국회가 나서서 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정치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박 대통령의 담화도 개헌을 담보로 한 결정으로 읽힌다. 개헌이란 단어를 직접 꺼내진 않았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임기단축을 포함한 진퇴”를 위해서는 개헌이 유일한 방법이다. 사실상 국회가 개헌에 나서줄 것을 촉구한 셈이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직전, 국회 시정연설서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앞서 박 대통령은 개헌을 두고 ‘블랙홀’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어 정치권은 그 진정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상황이다. 개헌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시각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개헌 얘기가 정치권서 흘러나올 때마다 박 대통령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며 ‘개헌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를 전후로 박 대통령은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전격적으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에선 비난의 화살을 자신들에게 돌리기 위해서라고 진단하고 있다.


두 번째 개헌 카드로 정치권 싸움 부추겨
인력·시한 등 검찰보다 못한 특검 선택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정치권은 박 대통령 임기 내 개헌의 접점을 찾기 힘든 구조다. 차기 정권 창출을 두고 정면대결을 펼치는 여야이기에 지루한 합의 과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어떤 식으로 개헌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당내 대선주자들의 유불리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야 간 갈등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 추미애 대표와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최근 비공개 회동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추 대표는 내년 1월까지 즉각적인 퇴진을 주장한 반면, 김 전 대표는 내년 4월 말까지 퇴진하면 된다고 맞섰다.

야권은 여야 협상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이후 더민주 추미애,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회서 회동을 갖고 박 대통령이 요구한 ‘임기단축을 위한 여야 간 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불확실한 여야 협상에 맡겨 갈팡질팡하는 것보다 국회 절차에 맞춰 탄핵하는 게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 비박계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는 최근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야3당에 대해 “참으로 오만한 태도”라며 “야당은 국회가 할 일, 정당이 할 일을 내팽개쳤다”고 비난했다. 여야 간 갈등이 장기화될수록 시민들의 화살은 정치권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높다.

[출구전략2]
특검 선택

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박영수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하며 “본격적인 특검의 수사가 시작되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특검의 직접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수사에 대해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형사상 피의자로 규정한 검찰을 버리고 사실상 특검을 선택한 것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검찰이 제시한 대면조사 일정을 세 차례 어긴 바 있다. 지난달 29일 마지노선도 결국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검찰은 안 되고 특검은 된다는 것일까. 박 대통령은 자신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검찰수사를 ‘사상누각’이라고 혹평했다. 대통령 영향권 안에 있는 행정부 소속 검찰조직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특검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국면전환을 위한 결정이라고 보고 있다. 특검수사팀은 특검 임명 후 20일간 준비기간을 거쳐 구성된다. 이후 70일 동안 1차 수사, 미진할 시 30일 추가 수사가 가능하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장 120일이 소요되는 것이다.

더민주 금태섭 의원은 “검찰수사는 당장 받아야 하지만 특검으로 가면 3개월 이상 시간을 벌게 된다. 그 사이 총리 문제 등으로 여야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촛불집회가 시들해질 때를 노려 다른 방법으로 살길을 찾으려는 게 아닌가”라며 국면전환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다른 이유로 특검이 검찰에 비해 화력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인력, 조직력 등 수사의 힘을 결정짓는 사항 중 검찰에 비해 특검이 우위에 있다고 볼 만한 점은 없다.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인력 지원, 시간 제한 등에 자유롭다. 또한 국세청, 금감원, 공정위 등 유관기관의 측면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특검은 이러한 부분들에서 한계가 있다.

특검 키포인트는 당연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이다. 이는 탄핵과도 직결되는 혐의다. 그러나 특검이 이를 밝혀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관측이 법조계서 흘러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검찰은 대기업에 대한 압박 수사가 가능하지만, 특검은 한시적 조직이기 때문에 대기업을 압박하기 힘들다.
 

또한 역대 특검이 새로운 혐의를 입증한 사례가 없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로 꼽힌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의 경우 경호실 관계자를 기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데는 실패했다. BBK특검 또한 이 전 대통령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삼성 특검 역시 검찰수사에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한 채 종결됐다.

[출구전략3]
동정심 유발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 해왔다.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나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담화 초반부터 지난 18년간의 정치인생을 언급하며 “가슴이 더 무너져 내린다”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등 감성적 발언을 쏟아냈다.

이를 두고 촛불로 들끓는 민심에 호소하며 지지층 결집을 모색한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등 자신의 결백을 강조한 부분은 일련의 의혹에 대한 모든 책임이 최순실씨에게 있다고 방점을 찍은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이어지는 담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동정심 유발해 보수 재집결 의도
‘탄핵 불필요’ 기류 비박계 감지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나의 큰 잘못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내에 소상히 말씀 드리겠다. 그동안 나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해왔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호소에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던 당청 지지율이 드디어 멈췄다. 특히 새누리당은 국민의당에 내줬던 2위 자리를 다시 되찾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일 ‘레이더P’ 의뢰로 실시·발표한 ‘11월 5주차 주중집계(11월28∼30일, 1518명, 응답률 11.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0.1%포인트 오른 9.8%로 조사됐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 역시 0.4%포인트 내린 86.0%로 회복세를 보였다.

새누리당도 최순실 사태로 지난 8주 동안 하락하던 지지율이 16.3%서 멈췄다. 국민의당이 15.3%로 하락함에 따라 새누리당은 2위 자리를 회복했다. 대통령의 3차 담화 이후 소수의 보수성향 지지층이 결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출구전략4]
탄핵 결사 저지

결국 탄핵을 막기 위한 담화 발표였다는 의혹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줄곧 탄핵보다 퇴진에 무게를 둬왔다. 이정현 대표는 지난달 30일 “야당이 12월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러한 기류는 비박계 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시점은 담화 발표 이후다. “탄핵에 앞장서겠다”던 김무성 전 대표 또한 “4월 퇴진이 적당하다”며 돌연 입장을 선회했다.

하야와 탄핵은 주체가 누구냐의 차이다. 대통령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야라면 탄핵은 국민의 손에 끌려 내려오는 것이다.

헌법 제65조는 탄핵에 대해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새누리당서 얘기하는 퇴진은 시한을 정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란 의미에서 하야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담화 발표 후 당청이 힘을 합치는 모습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탄핵과 하야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대한 법률적 지원 부분이 현격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상실할 경우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을 수 없다. 경호동 마련과 경호 경비 예우 등을 제외한 연금과 각종 지원이 모두 사라진다.

반면 하야 시에는 임기를 마친 대통령과 동등한 지원을 받는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 4조2항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은 임기 후 월급의 70%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 또한 경호 지원,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 사무실, 통신, 본인 및 가족의 치료 지원, 기타 필요한 예우 등을 모두 국민 혈세로 지원받게 된다. 박 대통령 입장에선 절대 놓칠 수 없는 혜택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흔들리는 탄핵 대오
9일도 장담 못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2일 국회 본회의 표결이 무산됐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긴급회동을 갖고 ‘1일 탄핵안 발의-2일 본회의 표결’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박 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 대오에서 이탈할 것을 우려해 2일 표결을 반대했다.

박 위원장은 회동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탄핵은 발의가 목적이아니라 가결이 목적”이라며 “비박계가 탄핵에 동참하도록 개별적으로 말했지만 불행히도 비박계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오는 7일까지 퇴진 약속을 하지 않으면 탄핵에 동참하겠다고 해 내일 탄핵 (의결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더민주는 탄핵소추안 2일 표결을 당론으로 채택하며 의지를 보였으나, 국민의당의 거부로 사실상 무산됐다. 이에 비박계 측이 말한 것처럼 7일까지 박 대통령의 퇴진 약속이 없을 시 오는 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다. 그러나 비박계와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단일대오가 흔들리고 있어 9일 표결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지 않고 탄핵 절차에 들어갈 경우 국회 탄핵안 통과 뒤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18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헌재가 탄핵을 확정하면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일정을 감안하면 최소 8개월의 시간이 필요, 빨라도 내년 8월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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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