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22>

굳은 신념, “몸 팔아 돈 벌진 않겠어!”

전국 20여 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000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 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필 꽃힌 여자 있으면 섹스로 붙잡으란 말이야”
“넌 도대체 애들 관리 어떻게 하는 거야?”

■ 도항은 절대 안 돼
사쪼가 말하는 ‘남들처럼’이란 곧 섹스를 의미했다. 호빠에 있던 대부분의 선수들은 섹스를 통해서 손님을 붙잡았고 돈을 받아냈으며 가게로 오도록 했다. 낯선 타향에 살던 여성들에게 섹스만큼이나 좋은 ‘치료제’는 없는 듯싶었다. 사쪼가 또 말한다.
“야, 너한테 필 꽂힌 여자 없어? 있으면 그냥 섹스로 붙잡으란 말이야!”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것만큼은 수긍을 할 수 없었다. 몸을 팔아서 손님을 유치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한국에서도 나의 굳은 신념이었다. 어떻게 마음이 가지 않는데 몸을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관계는 ‘동물들의 관계’에 다름 아니라고 여겨졌다. 아무리 내가 노예로 팔려왔다고는 해도 내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사쪼도 어쩌지 못했다. 내가 여자와 섹스를 하거나 안 하는 것은 순전히 나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이제 어느덧 점점 에이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름대로 지명 손님들도 있었다. 준꼬, 야나기, 아끼꼬… 일본 이름이지만 다 한국 여성들이다. 도항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와 내가 벌금을 내지 않도록 해주었고 남모르게 조금씩 팁도 주었다. 몸을 팔지 않고도 얼마든지 손님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도 언제나 나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가게가 끝나면 퇴근을 한 후 자신과 함께 있어주기를 원했고 그때는 늘 섹스를 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녀들은 나에게 마치 보라는 듯이 다른 선수들이 노래를 할 때 많은 팁을 주기도 했다. 사실 나도 약이 올랐다. 내 손님인 그녀들이 다른 선수들에게 더 많은 팁을 준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나에게 오는 팁은 모두 사쪼가 강탈해 간다. 그러니 팁에 대한 욕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럴수록 여자들은 더욱 더 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번은 지명 손님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너를 가질 수 있어?”
물론 대놓고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은 절대 나를 가질 수 없다.’
돈을 버는 일은 지지부진했지만 나는 이제 일본 호빠 생활에 거의 적응을 했다. 이제 사쪼도 나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부분도 있었고 경계심도 어느 정도는 푼 것 같았다. 나를 함부로 때리지도 않았다. 뭐랄까, 그냥 묵인이라고 할까. 나도 그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그저 밤이 되면 출근하고 여자들과 술 마시고 노래하고, 또 허탈하게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나마 정우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늘 나를 배려해 주었고 가게에서도 여러 가지를 챙겨주었다. 그 시절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지금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정우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무료하고 허무하던 시절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유일한 것은 빠찡고였다. 물론 매번 돈을 잃었다. 하지만 굉음 속에서 구슬이 굴러가고 있는 모습은 현실과 희망이 교차하는 꼭짓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빠찡고는 나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고 숨 막히는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나마 조금씩이라도 버는 돈은 모두 빠찡고로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희망이 없었으니 빠찡고를 멈출 수도 없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할수록 나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함부로 자기 것이 되지 않으니 더욱 더 탐이 나는 것일까.

■ 형석이의 운명은?
그런데 무료하던 나의 일상을 순식간에 깨뜨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형석이의 탈출 사건이었다.
“마마 어디 있어!”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사쪼의 목소리가 오후의 정적을 깼다. 잠을 자고 있던 선수들은 모조리 일어나 긴장감에 휩싸였다. 도대체 또 무슨 일일까. 사쪼의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고, 그들은 형석이를 질질 끌듯이 데리고 오고 있었다. 형석이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묻어났다. 형석이를 데리고 있는 사내들은 누가 봐도 야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덩치가 크지는 않지만 짧고도 강인한 인상, 다부진 체격이 형석이 하나쯤은 순식간에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마가 사쪼 앞으로 튀어나갔다.
“야, 마마, 넌 도대체 애들 관리 어떻게 하는 거야?”
뒤에 있던 야쿠자는 그 순간 형석이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형석이가 저만치 굴러 떨어져 버렸다. 사쪼는 형석이의 뺨을 무자비하게 갈겼다. 그렇게 때리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주변에 있던 빗자루로 마구 때린다. 형석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퍽!’ ‘퍽!’하는 소리만이 숙소에 울렸다. 하지만 사쪼의 무서운 기세에 누구하나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새끼는 가만 두면 안 돼!”
씩씩거리는 사쪼는 드디어 야쿠자들에게 일본말로 뭐라 뭐라 속삭였고 야쿠자들은 형석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형석이는 내가 이곳 가게에 온 며칠 뒤에 도망을 쳤다. 이유는 ‘반스’라는 것 때문이다. 반스란 한국의 ‘마이낑’이랑 비슷한 개념이다. 일을 하기 전에 업주로부터 선불을 받는 것이다. 형석이가 땡긴 반스는 총 50만 엔이었다. 하지만 사쪼가 형석이 혼자만을 위해 50만 엔을 준 건 아니다. 형석이는 사쪼에게 여러 명의 선수들을 데려올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잘 안됐던 모양이다. 사쪼에게 계속해서 독촉을 받게 되자 형석이는 결국 도망갈 생각을 하게 되고, 어느 날을 골라 도항을 한다고 일찍 나간 뒤 그때부터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난 사쪼는 그때부터 백방으로 형석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찾아내는 게 쉽지만은 않다. 수십, 수백 개의 호스트빠가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 한 명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요한 사쪼는 결국 야쿠자를 동원해 형석이를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지금 형석이를 선수들 앞에서 무자비하게 때린 것이다. ‘너희들도 도망가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보여주고자 함이다. 사쪼는 정말로 무서운 여자임에 틀림없다. 아마도 그때까지 내가 본 여자들 중에서는 가장 잔인한 성격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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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