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만난 휴식 ④경북 포항시

바다와 운하, 도심 속 낭만 가득

어릴 적 꿈은 바닷가에 사는 것이었다. 한적한 바닷가보다 북적이는 바닷가였으면 했다. 푸른 바다와 황홀한 야경을 품은 경북 포항. 영일대해수욕장에 옹기종기 앉아 여름을 즐기는 이들을 보니, 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야경, 모래 썰매…즐길거리 많은 영일대해수욕장
데크 로드 따라 기암절벽 감상, 호미해안둘레길

포항이 아름다운 것은 도심 한가운데 보석이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눈부신 영일대해수욕장, 낭만 가득한 운하, 호젓하게 걷기 좋은 오어지둘레길까지 마음을 풀어놓고 쉴 곳이 많다.
해마다 여름에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열리는 영일대해수욕장은 지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한가롭게 산책을 즐기는 연인, 편안한 차림으로 운동하는 가족, 모래 썰매를 타는 어린이,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친구들…. 영일대해수욕장에서는 모두 주인공이 된다. 

영일대해수욕장은 1975년 북부해수욕장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2013년 국내 최초 해상 누각 영일대가 만들어진 뒤 이름이 바뀌었다. 경복궁 경회루를 모델로 삼은 영일대 2층에 올라 바다를 보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린다. 밤이 되면 색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LED 조명으로 화려해진 포스코의 스카이라인에서는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산책로에는 잔잔한 음악이 깔리고, 건너편 조개구이 집에서는 즐거운 모임이 한창이다.

올해는 모래 썰매장도 마련했다. 해수욕장 끝에 모래를 쌓아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든 것. 밤이 되면 신나게 모래 썰매를 타는 이들로 북적인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예술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해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해 조형화한 ‘인상-해돋이’, 바다와 도시 정취를 담은 ‘꿈꾸는 세상’ 등 스틸 아트 작품이 산책로에 설치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5~10시에는 핸드메이드 작품을 판매하는 포항문화예술시장이 열려, 예술과 문화가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뻥 뚫리는
영일대 경치


영일대해수욕장 부근에는 도심 속 추억과 낭만이 숨쉬는 환호공원이 있다. 중앙공원, 체육공원, 해변공원 등 6개 공원과 야생화동산 등으로 꾸며졌다. 포항시민이라면 누구나 이 공원에 대한 추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중앙에 자리한 전망대에 오르면 영일만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공원에는 포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포항시립미술관도 있다.

영일대해수욕장과 함께 포항의 낭만을 대표하는 곳이 포항운하다. 도심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운하는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멋을 선물한다. 포항운하는 해도동 형산강 입구부터 동빈내항까지 1.3km 구간에 폭 15~26m로 만들어졌다. 원래 물길이던 곳을 산업화로 매립했는데, 동빈내항 복원 사업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
크루즈를 타고 운하를 즐겨보자. 흐르는 강물을 따라 드넓은 바다를 만나는 기분이 짜릿하다. 포항운하관 앞 선착장에서 출발하면 죽도시장과 동빈내항, 송도해수욕장을 거쳐 약 8km를 달린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고 갈매기와 사진도 찍는다. 포항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포스코 경치를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도심 가르는
포항운하

포항은 바다와 204km나 맞닿아 있다. 이 중 남구 동해면과 구룡포읍, 호미곶면, 장기면까지 해안선 58km가 호미해안둘레길이다. 기암절벽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감상하는 길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구간은 입암리 선바우에서 마산리까지의 700m 구간. 이전에는 절벽과 파도로 접근하지 못했는데, 해상 데크 로드가 놓여 근사한 풍광을 볼 수 있다.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하선대, 힌디기, 선바우, 여왕의 왕관을 닮은 여왕바위, 계곡바위, 킹콩바위 등이 걷는 재미를 더한다. 포항에는 걷기 좋은 길도 여럿이다. 그중에서 호미해안둘레길과 오어지둘레길, 덕동문화마을 숲길은 특별한 멋을 풍긴다. 호미해안둘레길이 호탕하다면, 오어지둘레길은 고즈넉하고, 덕동문화마을 숲길은 따뜻하다.

호미해안둘레길이 동해의 시원함을 안겨줬다면, 오어지둘레길은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이 길은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오어사에서 원효교를 건너며 시작됐다. 고즈넉한 오어지를 끼고 7km를 천천히 걷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와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으로 추천할 곳은 덕동문화마을 숲길이다. 북구 기북면 오덕리 덕동문화마을은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다. ‘덕 있는 인물이 많은’ 덕동마을에는 용계정과 사우정 등 고택이 남았다. 마을 앞에는 산림청이 주관한 제7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상에 선정된 덕동마을 숲이 자리한다. 고목이 사이좋게 모여 있어, 숲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포항을 대표하는 여름 먹거리는 물회다. 바쁜 어부들이 갓 잡은 물고기를 고추장에 비벼 물과 함께 먹은 물회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포항에서는 광어, 도다리, 노래미 등 흰살 생선과 해삼, 성게 등 신선한 해산물로 물회를 만든다. 물회 한 그릇이면 동해가 몸속으로 밀려드는 기분이다. 바다를 따라, 숲을 따라, 호수를 따라 걷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영일대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빛이 있으나 요란스럽지 않은 영일대해수욕장의 밤, 더 부러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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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코스

· 낭만 코스: 영일대해수욕장→환호공원→포항운하→호미해안 둘레길
· 힐링 코스: 영일대해수욕장→포항운하→호미해안둘레길→오어지둘레길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호미해안둘레길→오어지둘레길→영일대해수욕장
· 둘째 날: 포항운하→덕동문화마을→포항전통문화체험관
관련 웹사이트
· 포항시 문화관광 http://phtour.ipohang.org
· 포항운하 http://innerharbor.ipohang.org
· 포항전통문화체험관 http://potcec.phsisul.org
· 포항시립미술관 http://www.poma.kr
문의 전화
· 포항운하 054-270-5177
· 영일대해수욕장(두호동주민센터) 054-246-0131
· 포항시립미술관 054-250-6000
· 오어사 054-292-2083
· 덕동문화마을(기북면사무소) 054-243-5301
대중교통(버스)
· 서울-포항: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하루 27회(06:00~다음 날 01:00) 운행, 약 4시간 소요.
· 대전-포항: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하루 11회(06:30~22:1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기차)
서울역-포항역: KTX 하루 10회(05:45~22:1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 서울 출발: 경부고속도로→도동 JC→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IC→영일만대로→소티재로→새천년대로→영일대해수욕장 · 대구 출발: 팔공산 IC→익산포항고속도로→포항 IC→포항 · 부산 출발: 경부고속도로→경주 IC→서라벌대로→구황로→국도7호선→포항
숙박
· 포항전통문화체험관: 북구 기북면 덕동문화길, 054-280-9372, http://potcec.phsisul.org
· 갤럭시관광호텔: 북구 해안로, 054-251-9988, http://www.galaxyhotel.kr
· 필로스호텔: 북구 죽파로, 054-250-2000
· 베스트웨스턴포항호텔: 북구 삼호로265번길, 054-230-7000, http://www.hotelpohang.co.kr
· 파인비치호텔: 북구 흥해읍 해안로, 054-262-5600, http://www.pinebeachhotel.com
식당
· 하봉석회대게 환호점: 짬뽕물회·대게, 북구 삼호로468번길 , 054-252-1110
· 묵돌이구이: 조개 요리, 북구 해안로, 054-252-1962
· 환여횟집: 물회, 북구 해안로, 054-251-8847
· 양포생아구 오천점: 아귀탕, 남구 오천읍 정몽주로, 054-292-2622
· 새포항물회식당: 물회, 북구 삼호로, 054-241-2087
축제와 행사
· 포항바다국제연극제: 8월31일~9월4일, 환호공원 중앙아트홀·시립미술관 일원, 054-283-1152
·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9월 중순~10월 중순, 포항시 일원, http://phsaf.co.kr
· 칠포재즈페스티벌: 10월7~9일, 칠포해수욕장 상설무대, http://www.chilpojazz.com
주변 볼거리
죽도시장, 호미곶, 구룡포, 오어사, 비학산, 경상북도수목원, 봉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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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