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15>

장 대표“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아”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그냥 매일 술만 들이켰다. 그렇게 근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내가 만난 어머니는 차가운 시신의 모습이었다.

■ 도망간 장 대표
할 수 없이 부리나케 함께 연습을 했던 여자 연기자 두 명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녀들의 말을 들어보니 기가 막혔다. 두 명도 장 대표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서로 만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한명은 7000만원, 또 다른 한명은 2000만원의 돈을 캐스팅 대가로 건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락을 줄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자신들도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단다.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지금의 사태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사기. 명백한 사기극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장 대표에게 계속 삐삐를 쳤다. 하지만 역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렀다. 꼼장어와 소주. 두 병을 먹어도 취하지 않았다. 네 병, 다섯 병까지 먹은 건 기억이 났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다음날 서대문 경찰서에 가서 여자 연기 지망생들과 고소장을 썼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소장을 쓴다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걸 써서 뭐한단 말인가. 이미 배역은 날아가 버린 것 아닌가. 경찰서를 나오는데 엄마가 생각났다. 속으로는 끊임없이 흐느꼈다.
그날 이후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매일 술만 들이켰다. 그렇게 근 한 달이 다되어 갔다. 사채업자들에게서 삐삐가 오기 시작했다. 카드 독촉장도 수시로 날아왔다. 7개의 카드사에서 돈을 빌린 셈이나 마찬가지니 어느덧 우편박스에는 독촉장이 가득했다. 사채업자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지껄였고 나는 그저 묵묵히 듣고 있는 것밖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돈 20만원만 빌려주라. 한 달 안에 갚을게.”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 스타가 되어 다시 ‘왕자’가 될 것 같았는데, 그 꿈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버린 것이다. 이제 엄마의 얼굴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친구에게 빌린 돈 20만원으로 고구마 장사를 시작했다. 낮에는 땔감을 구하러 다니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꼬박 고구마를 팔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버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겨우 끼니만 때우면 다행일 정도였다. 그나마 봄이 되니 군고구마를 찾는 사람도 없어졌다. 할 수 없이 노가다판에 뛰어들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라 일을 어디서 어떻게 구하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겨우 인력회사에 찾아가 일을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비지땀을 흘렸고 저녁이면 소주 한잔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하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고 마음속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어두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7개월이라는 시간동안 길고 긴 악몽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대문 경찰서에서 삐삐가 왔다. 기획사 장 대표가 구속되었으니 와서 진술서를 쓰라는 이야기였다. 사기를 알아챈 그날의 분노와 절망이 또다시 밀려오는 듯했다.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쓰고 장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왜 그러셨어요. 왜 저한테 그런 거짓말을 하셨어요!”
“미안하다, 동이야.”
장 대표는 당시 빚이 엄청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받은 돈으로 해외에 가서 도박을 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빚을 갚으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에서 또다시 모든 돈을 다 잃고 나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때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들은 더욱 피를 거꾸로 솟구치게 했다. 합의서를 써주면 밖에 나가서 다시 탤런트로 성공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자기를 한번만 더 믿어봐 달라고 했다. 그 순간 소름이 끼쳤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몸서리가 쳐졌고, 이제 다시는 사람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그에게 남긴 말은 “절대로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절대 용서하지 않아
그 후 나는 단 한 푼도 돈을 되돌려 받지 못했고 그 수많은 빚을 떠안고 하루하루 빚을 갚는 생활을 해 나갔다. 건너서 들은 이야기로 장 대표는 그 후 2년간 징역살이를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또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유명해지면서 많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뤄질 수가 없었다. 장 대표가 2년을 징역살이를 하든, 20년을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 모든 꿈을 잃은 채 전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니,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라고 불렀다. 평생 동안 고생만 하신 분, 나를 위해 아낌없이 사신 분, 이제 그분에게 어울리는 말은 ‘엄마’가 아니라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강원도로 향했다. 철없이 어머니에게 돈을 해달라고 내려갔던 그 길을 똑같이 가면서 나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속으로 기도를 했다. 제발 살아계셔 달라고. 죽을 때 죽더라도 내 얼굴은 한번 보고 가셔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내가 만난 어머니는 광목으로 둘러싸여진 차가운 시신의 모습이었다. 3일장 내내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친척 중 한 분은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너는 왜 눈물도 없냐’며 질타를 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현실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니.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3일장을 마치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모두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기정사실화하는 그 분위기가 싫어서일까.
다시 아무 일도 없는 듯한 일상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언제나 전화를 걸면 들을 수 있었던 따뜻한 목소리. 하지만 그날은 그 전화번호가 결번처리가 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께서 진짜로 돌아가셨다는 말인가?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에서 강원도로 향했다. 내가 그때 볼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머니의 무덤뿐이었다. 하염없이 울음이 쏟아져 나왔다. 3일장 동안 내내 울지 못했던 나의 울음이 그제야 터지는 듯 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갈수록 더 악화됐다. 모델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호빠에 다시 갈 수도 없었다. 그간의 고생으로 인해 살은 10kg이나 더 빠져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했다. 그렇게 또다시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사채업자들은 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고 다녔고 나는 그들을 피해 끝없이 도망을 다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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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